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행복의 내적 조건"이란 제목
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든지 또 어느 곳에 살던지 모두다 행복을
간절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그 행복의 조건을
외적 환경에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다. 혹은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해질 것이다. 명
예나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적
인 조건이 다 구비되면 나는 꿈같이 행복한 삶을 살 것이
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에 와서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력을 얻은 사람들, 물질
적인 모든 요구 조건이 다 확립된 사람들이 과연 행복하
냐? 사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인간이 생각하는 물질적인 외적 환경의 고지를 점령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은 끝없는 마음의 구렁텅이
인 것입니다. 이 마음의 구렁텅이를 메우지 않는 이상 인
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다가올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
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외적인 물질적 행복을 아무리 구
비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행복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내적
인 행복의 조건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외적인 것을 아무
리 태산처럼 쌓아 놓아도 이것이 오히려 더 불행해 질 수
있는 조건이 될지언정 행복하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 내적인 행복의 조건을 구비해
야만 비로소 돈도 행복하게 쓸 수가 있고, 지위도, 명예도,
권력도, 물질적인 환경도 우리의 삶의 더 많은 행복과 기
쁨을 위해서 사용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그러므로 여러분
에게 행복의 내적 조건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도
대체 행복의 내적 조건이란 무얼까요?
행복의 내적 조건은 마음속에 사랑이 있어야 되는 것입
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광, 공명을 다 갖다 놓아도 내 마
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이는 아무 효과도 없고, 내가 전혀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등의식과 좌절감,
자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자기를 학대
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이상 그런 세상에 어
떻게 많은 물질적인, 환경적인 것을 구비하여 놓아도 행복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
랑해야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행복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행복하고,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이 행복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행복합니다. 이웃을 미워하
면 자기 마음속에 행복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를 불구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야 됩니다. 이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올바르게 성립되지 아니하면 언제나
그 속에는 불안, 불행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
납하고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또 이웃뿐만이 아닙니다. 또 인간은 자기가 둘러 쌓여져
살고 있는 자연을 사랑하실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사
랑하고, 해와 달과 별과 물과 나무와 짐승들과 이웃 환경
을 우리가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무
관심하고, 미워하고 산다면 그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서 사람은 천지와 만물을 지어주신 하나님을 사랑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사랑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 없이 돈도 의
미가 없습니다. 지위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권력도 의미가
없는 하나의 폭력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환경도 사랑이 없이는 그에게 조금도 행복을 갖
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행복은 마음속에 사랑
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지, 사랑 없는 곳에는 이 세상 어
느 곳에라도 행복은 없습니다.
그 다음 행복은 마음의 평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안과 공포가 폭풍우처럼 소용돌이치는 곳에 부
귀, 영화, 공명이나 물질적인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
도 거기에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염려, 근
심, 불안, 초조, 절망이 꽉 들어 차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이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실제적으로
불안으로 꽉 들어찬 세계인 것입니다. 어느 때, 어느 순간
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하나도 안정되어 있
지 않은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 속에서 내 마음속에 넘치는 평화를 가지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평화를 갖고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그 마음속
에 죄책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죄책을 덮어놓고 있는 이
상 이 죄책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양심 속에 죄악이 마치 거품을 뿜어 올리는 바다물결
같이 늘 끓고 있는 이상 마음속에 평화는 절대로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책을 없앨 수가 있어요? 하
나님과 나와의 평화를 가져오고, 나와 이웃과의 평화를 가
져오는 이 죄책에서의 해방, 이러한 것 없이 마음속의 평
화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잠자리에 들어갈 때
두 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어가고, 내가 세상에
나와서 활동할 때, 마음속에 불안, 초조, 절망 없이 편안하
게 살기 위해서는 죄에서 해방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
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화목이 이루어지고, 나와 이웃과의
화목이 이루어져야 마음속이 평안합니다. 이 화목이 없는
이상 마음속에 평화가 없는 이상 행복은 절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또 나아가서 행복하려면 생활의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
입니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분
생활의 확신이 없습니다. 생활의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는 모두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제도
나 경제적인 질서나 사회적인 질서가 언제 흔들려서 무너
지고 깨어질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
다. 이렇기 때문에 흔들리고, 흔들리며 표류하고 표류하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확실히 부여잡고 이것이 기
반이라고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확신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정치권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금전도 흔들리며
지위나 명예나 권세도 일시적이요 언제 뿌리채 뽑혀갈지
모릅니다. 청춘도 흔들리며 생명조차도 흔들립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요동하고 무너지는 이
시대에 무엇 하나 마음속에 깊은 확신을 가지고서 요동치
않는 토대 위에 서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요동치 않는 토대
위에 서지 않고는, 모두 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들만
가지고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지위도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 명예도 순
간적인 것이며, 그 청춘도, 그 물질적인 환경도 오늘 있다
가 내일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내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
느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
다. 꽃은 시들고, 풀도 마르고,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곳에는 여
러분 행복이 다가올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내일의 희망이 없는 사람이 행복하겠습니
까? 여러분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로써 망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
는 것입니다. 내일이 없는데 오늘 먹고, 마시고 오늘 그대
로 포기해 버리자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어떠한 절망 상황에도 꿈을 간절히 사모하기를 원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내일이 있는 이상 사람들은 그 속에서 웃
을 수가 있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잃어
버린 절망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오직 절망할 것 밖에는 없
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데 어디에서 우리가 내일, 영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조건이 없는 이상 여러분
의 환경 가운데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갖다 놓아도 이것을 누릴만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행복은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을 소유할 수 있는 사
랑과 평안과 생활의 확신과 내일의 희망을 갖다 줄 수 있
는 것입니까? 이와 같은 것은 학교에서 교육을 통하여 절
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철학적인 수양을 통해서 얻을 수
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UN이 줄 수가 없고 어떠한
나라의 정치나 권력도 마음의 사랑과 평화와 생활의 확신
과 내일의 희망과 꿈은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얻어야 행복할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대개 이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옛날
보다 오늘날 얼마나 좋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명예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좋은 환경에서 좋
은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서, 좋은
생활을 하고 있어도 옛날보다 오늘날에는 더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더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더 많이 좌절하고
더 많이 범죄하고, 더 많이 감옥에 가는 사람들로 꽉 들어
차고, 더 많이 불행한 사람들로 꽉 들어찬 이유는 절대로
환경이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 줄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행복을 갖다 줄 수 있는 사랑과 마음
의 평화와 생활의 확신과 내일의 희망 이것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얻
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전도합니다. 이
러므로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갖다
주기 때문에 천국을 우리 속에 갖다 줄 수 있는 것이 예수
님인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
미암지 않고는 행복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다"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나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랑이란 여러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에로스 사랑. 이성간의 사랑입니다. 지극히 이기
주의적인 오늘날 에로스 사랑이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수많
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는 에로스 사랑으로는 안됩니다.
친구와의 사랑, 필레오 사랑, 오늘은 친구가 되었다가 내일
은 원수가 되는 국제 정치의 무상한 생활 가운데서 필레오
사랑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톨케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이것도 내 부모 내 자식만 사랑하
지 그것을 넘어서 그와 같은 사랑이 존재할 수 없으니 이
것도 이기주의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성간의 이
기적인 사랑도 초월하고, 친구간의 조건적인 우정의 사랑
도 뛰어 넘고, 부모 자식간의 한정적인 사랑도 뛰어 넘고,
무조건의 사랑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위대한 그 사랑의
근원이 어디 있을까요? 아가페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
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사랑인 것
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
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
하고 죄를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병든 그대로 인간을
바라보시고 수고하고 짐 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 책임져 주는 그 사랑. 이 사랑을 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의 자리에 대신 올라가셔서 우리 대신
못 박히고, 창을 받으시고,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고 죽으셨으면서도 우리를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아
버지 앞에 용서를 구한 그 사랑, 이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
건 용납된 사랑, 이 사랑을 받을 때 우리가 비로소 우리
스스로 나 같은 인간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는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
랑이 내 마음속에 부어질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같이 못난 인간도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내 스스로를 용납하고 사랑해야 되겠다. 나
를 미워하거나 자학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해 주시는데 왜 내 스스로 사랑하지 말아야 되
는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행복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가 못났어도 그 사랑
가운데 용납할 수 있고 부모와 자식을 용납할 수 있고 이
웃이 잘못해도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받았는데 저 이웃을
내가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웃을 용납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
님 만드신 세계를 사랑하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
을 쳐다보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비로소 그 사랑 가
운데서 얻은 것을 행복으로 누릴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어떠한 곳에도 시베
리아 벌판과 같은 얼음판만 있을 뿐이지, 고비 사막처럼
메마름만 있을 뿐이지 그 속에 생수가 넘쳐흐르는 사랑,
이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평안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평안이란 것은 죄책
이 있는 이상 평안이 없다고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화목
이 없는 이상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그 마음
속에 누구든지 절망을 느끼는 죄책과 정죄의식, 이것을 어
떻게 정결케 할까요? 이 세상사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 앞
에서 양심의 죄책을 갖지 않는 사람 누가 있으며, 자기 스
스로의 양심 속에 죄책에 움찔거리지 않는 사람 누가 있으
며, 이웃사람에게 범죄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있나요? 죄책
의 문제가 이 속에 감춰져 있는 이상 사람은 불안합니다.
누가 밤중에 대문만 두들겨도 간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수
상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나서 질문만 해도 간이 덜컹 내
려앉습니다. 죄책! 이 죄책에서 우리를 씻어줄 자가 누굽니
까?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
러분과 나를 죄책에서 용서해 주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
를 대신 짊어지고 그는 십자가에서 그 생명을 버리고 피를
쏟으므로 말미암아 그 피의 대가로서 여러분과 나를 하나
님 앞에서 영원히 죄책에서 해방을 주시고 말았습니다. 할
렐루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앞에 나와서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가 그 피로써 씻음 받고 하나님 앞에서 내 양심
이 부끄러울 것이 없게 될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떳떳한지
모릅니다. 내 뱃속에서부터 평안이 샘물처럼 솟아 오릅니
다. 그리고 난 다음 지금 죽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다. 온
세상이 다 나보고 손가락질해도 두렵지 않다는 평화가 마
음속에 넘쳐올 때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
켜 주고 내가 용서받았다는 그 기쁨이 있을 때 나는 내 가
족과 화목될 수 있고 이웃과 화목될 수 있고 심지어는 예
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주위의 자연환경하고도 화목
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화목한 가운데서 축
복이 다가오고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사는 것이 기쁨이 넘
쳐 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화목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 가운데서 넘쳐 나오는 우리의 용서와 화목의 능
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생산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또 생활의 확신, 흔들리지 않는 관습, 변
치 않는 주권과 같은 이러한 것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
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죄를 멸하고 질병을 멸하며 저주
를 파하고 죽음을 멸하며 영원을 손에 쥔 분이신 것입니
다. 예수님이야말로 홀로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
요 시작과 끝이 되신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이
죽음조차도 정복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므로 흔들리
지 않는 토대란 예수님 밖에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 이외
에 영원히 존속하는 나라를 세운 자가 누구며 예수님 이외
영원한 우주의 주권자가 누구며 예수님 이외 영원히 만유
를 소유한 자가 있습니까? 이러므로 변치 않는 우주의 주
권을 손에 쥐시고 변치 않게 만유를 손에 쥐시고 변치 않
는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 인류를 다스리는 예수님! 그를
우리 삶의 토대로 삼지 않고는 이 세상에 확신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지고 깨어지며 변
화무쌍해도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
는 이상 이 가운데서 우리는 마음의 토대를 튼튼히 하고
가치 기준을 힘차게 세워서 두려워하지 않고 진전할 수 있
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내일의 희망, 예수 안에서 얻지 못하는 희
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환경은 살아가는
동안에 폭풍이 다가오고 시련이 다가와도 우리는 낙심치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는 일은
하나님께서 내일에 좋게 해주시기 때문에 좋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지금 나쁘게 보이더라도
나중에는 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기 때문
에 우리는 절망에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병들어도 나을 희
망이 있고, 못살아도 저주에서 해방될 희망이 있고, 고통받
더라도 위대한 성공이 올 것을 희망할 수 있으며 죽음이
다가와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러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이
고 승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
의 희망! 이것이 오늘날 이렇게도 어둡고 캄캄한 역사적인,
세계적인 정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밖에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진취하시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셔서 어떠한 것도 올바르게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상
우리 마음속에 희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
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
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는가? 좋으신 하나
님을 모시는 사람에게 좋은 희망이 있지 아니할 수가 없습
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평화와 생
활의 확신과 내일의 희망을 얻으면 우리는 돈, 지위, 명예,
권세, 좋은 물질적인 환경을 손에 쥐고 이것을 요리해서
이것을 행복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마음속의 자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적인 이 행복의 자
원을 우리가 가꾸어야 됩니다. 이를 가꾸지 아니하면 없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한때 교회에서 은혜 받아서 오
두막집도 행복하고 부모 자식도 다 행복하고 좋았는데 어
느 정도 계속하다가 이것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그에게 행복의 이러한 조건들이 마
음속에 성령으로 주어진 것을 가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주어진 행복의 조건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양을 공급해야 내 속에 주
어진 행복의 조건이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주어졌
지요. 평화가 주어졌지요. 생활의 확신이 주어졌지요. 내일
에 대한 희망이 그리스도 안에 주어졌지요. 그렇다면 이
사랑과 평안과 생활의 확신과 내일의 희망이 하나님의 말
씀으로 영양공급이 되어서 이것이 가꾸어져야만 되는 것입
니다. 이 세상에 무엇하나 치고 사람이 가꾸지 아니하고
그대로 훌륭하게 자라지는 않습니다. 가재도구 하나라도
늘 우리가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윤을 나게 해야 그것이 빛
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 여
러분 내적인 행복의 조건이 가꾸어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
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양식이 될 때
여러분과 나의 속에 사랑은 자라고, 평안도 자라고, 오늘에
대한 확신도 자라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자라며 그래서
우리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릇이 30배, 60배, 100배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속을 정결케 해야 됩니다.
우물을 보십시오. 여러분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수돗물을
먹지 않고 우물물을 먹은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이 우물
물이란 것이 일년에 두세 번 청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여러분 보면 큰비가 오고 난 다음 우물에 물
이 다 올라오면 여러분께서 우물물 속을 들여다보면 불그
스름한 기름이 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
면 왜 기름이 떠 있는지 아십니까? 우물 속에 얘들이 쥐도
죽은걸 갖다 던져 버리고 고양이 죽은 것도 갖다 집어 던
져 놓고 신짝도 떨어진 것 갖다 넣어두고 이런 것들이 물
밑에 잠겨 있다가 비가 오면 이것이 전부다 우러나서 기름
이 되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맑은 우물물을
먹으려면 일년에 두세 번 반드시 우물 밑을 청소를 해서
올려야 맑고 깨끗한 물을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께서 맑고, 밝고, 환하고, 좋은 행복과 사랑과
평안과 확신과 희망을 얻으려면 마음속을 청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속에 미움이 들어올 수
도 있고 이기주의가 들어오며 불안과 공포와 좌절감, 절망
이러한 것들이 들어와서 여러분과 나의 중심을 더럽히고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가는데 이 뱃속에 이런 더러운 것들이 있어지
면 점점 마음이 답답해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소망이 없어
지고, 불안해지고, 미움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
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 앞에 엎드려서 성령의 도우심으
로 말미암아 죄를 회개해야만 회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
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하기 때문에 천국은 회개하지 않고
는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죄들을 매일 같이
회개하여 청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앞에서 축원
합니다.
셋째로, 마귀의 환경적인 부정적 공격을 받아들이지 말
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을 가져오는 것을
마귀는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길 원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주위 환
경에 있어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환경, 부정
적인 말을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안,
공포, 절망, 초조로 들어차서 환경 적인 노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서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귀에
는 아무소리도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삶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이것을 바라보고,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인정하여 환경의 포로가 되는 이와 같은 연약한 사
람이 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마귀의 모든 환경적인 사
주를 단호하게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리고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행복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이 우리 뱃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넘쳐
나면서 성령 안에서 사랑이 넘쳐 나오고 평안이 넘쳐 나오
며 성령 안에서 생활의 확신이 넘쳐 나오며 내일의 희망이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으로 충만할까요?
기도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해질 도리는 절대로 없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와서 의식적으로 형식적으
로 교회에 왔다갔다하면 성령이 충만해지는 줄 압니다. 그
냥 찬송만 많이 부르면 성령이 충만할 줄 압니다. 그냥 말
씀만 들으면 성령이 충만할 줄 압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성령의 힘만은 기도함으로 말미
암아서 다가올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성령과
우리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과의 대화가
끊어지면 멀어집니다.
우리 한국에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촌
이 좋아도 멀리 있어 대화가 없으니까 남같이 되 버리고
아무리 남이라도 이웃에 있어 매일같이 대화를 하니까 서
로 다정한 사촌이 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
화하는 것에서 친해지는 것처럼 성령과 친밀해지기 위해서
는 끊임없이 철야기도, 금식기도, 가정예배 기도에 힘써야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속에 느끼는 것
입니다. 행복은 마치 더운 날에 시원한 냇물처럼 마음의
깊은 곳에서 넘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이해가 아
니라 영적인 체험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행복은 체험
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늘 행
복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귀, 영화, 공명, 금전, 환경
이 다 있어도 이를 누릴 수 있는 힘인 사랑과 평안과 오늘
의 확신과 내일의 희망이 없이는 행복은 있을 수 없는데
이러한 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
멘
-신유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
님이여! 오늘 이 시간에 육신이 병들어서 아픈데 손을 얹
고 주를 앙망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있사오니 사랑하시
는 아버지여! 주의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서 이 병의 근원
을 도말시켜 주시옵소서. 이 병의 모든 악령을 도말시켜
주셔 버리옵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여! 이 지치고 고달
픈 육체의 질병을 주님께서 멸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아버
지여 주 앞에서 상쾌하게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주 앞에
서 치료함을 입게 도와 주시옵시고, 건강과 생명으로 채워
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주의 보혈로
덮어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으로 깨끗하고 건강하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에 병든 사람들을 고
쳐 주시옵소서. 심령이 상한 사람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시
고 아버지 가정, 개인, 생활, 자녀, 사업,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 문제가 주 앞에서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해결되고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치료하
시고 고치시며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 아버
지 감사합니다. 기적의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기적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고 감사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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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행복의 내적 조건
by 삶의언어 posted Oct 31, 2024 Views 2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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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마음/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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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1-06-28 |
오늘의 성구 | 빌립보서 4장 1절로 9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XAaV0I0Jy5U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