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폐결핵으로 요양하며 누워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 17살이었는데 그때는 폐병이 걸리면 요사이 암에 걸린 것과 같았습니다. 약이 없어요. 절대 안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꼼짝 안하고 누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돌보며 집안 살림을 보던 누님은 그때 시집갈 준비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제가 기억납니다만 겨울이 그렇게 날이 추웠어요. 방안에 불기는 없고 조그마한 이부자리를 제가 다 독차지하고 그런데 화롯불에 손을 녹여 가면서 누님이 제 옆에서 수틀을 놓고 수를 놓고 있었어요. 나는 수 뒷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누님이 수를 놓는 것이 참 바보같이 보여요. 빨강실, 파랑실, 노랑실이 좌우 양면으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아주 엉망이에요. 내 속으로 “참 실력이 없구나! 수를 뭐 저렇게 놓느냐?”
그런데 한 일주일 지나고 난 다음 수틀을 뜯어냅니다. 놓은 수를 앞면을 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꽃이 있고 나비가 있고 시내가 있고 아름다운 경치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습니다. 뒷편하고 앞편하고는 너무나 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우리 인생에 좋은 일, 나쁜 일, 밝은 일, 어두운 일, 성공, 실패, 건강, 질병, 행복했던 것, 불행했던 것, 모든 것이 우리 인생의 수틀에 하나님의 바늘로 놓아 주시면 나중에 가서 합동하여 유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손에 안 맡겨 놓고 사람의 손에 맡겨 놓으면 엉망이 되고 말 것이지만 하나님 손에 맡겨 놓으면 이렇게 하나님이 아름다운 수를 놓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이란 수를 놓아주시겠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일하심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에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안 하는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건지실리도 없고 주님을 높이지도 않는데 주님이 높여 줄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는 사람을 높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과연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여러분이 간단하게 매일같이 자기를 체크해 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열이 나는 사람은 온도계를 가지고 자기 열을 체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온도를 체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사랑을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항상 같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어머님이 어린 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린 아기하고 떨어져 있지를 않습니다. 어린 아기를 항상 등에 업고서 사십니다. 아침에 밥 지으러 나가실 때도 등에 업고 나갑니다. 요사이 아파트같이 방에서 나오면 그냥 부엌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방을 떠나서 뺑 돌아가야 부엌이 있는데 굉장히 추워요. 겨울에는 그래도 어린 아기를 반드시 등허리에 엎고서 나가서 밥을 짓고 설거지할 때도 어린 아기 업고 설거지하고 밭에 가서 김을 매는데 날이 더워서 햇빛이 쨍쨍 비춰도 어린 아기를 업고 어린 아기는 축 늘어져서 자고 있는데 그걸 업고 이렇게 김을 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갈 때도 어린 아기를 업고서 시장에 갑니다. 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기하고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항상 같이 있어요. 왜 사랑하기 때문에 아기를 항상 곁에 두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게 되면 몸으로 같이 있지 못하면 마음으로라도 늘 같이 있습니다. 정말 상대를 사랑하면 늘 마음속에 상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상대를 늘 머릿속에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사랑하면 결혼을 해서 10년이 되든지, 20년이 되든, 30년이 되든 늘 남편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생각하고 있으면 사랑하고 있습니다. 또 남편이 아무리 직장에 가서 일이 바빠도 부인을 늘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만 나면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고 잘 있냐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집 밖에 나오면 남의 사람이 되어 버리면 그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늘 마음속에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뭐 핸드폰이 있으니까 핸드폰으로도 늘 전화할 수 있고 옛날에 멀리 있을 때는 매일 편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몸으로 주님과 같이 있고 마음으로 주님과 같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몸으로는 주일날 교회 나와서 같이 있어야 합니다. 수요일에도 할 수 있으면 교회도 나오고 구역예배에 나가고 하는 것은 몸으로 직접 두세 사람이 모여서 주님을 섬기게 되고 또 하루 종일 마음속에 주님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주님께 기도드리고 말씀을 통하여 함께 있고 기도를 통하여 함께 있고 찬양을 통하여 함께 있고 또 감사를 통해서 하루 종일 마음속에 주님이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늘 함께 있으면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늘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면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렇기 때문에 늘 자기를 체크해보고 사랑의 온도가 식어지면 곧장 회개하고 사랑의 온도를 높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서 희생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갖 희생을 다 감내하고 자식을 기르지 않습니까? 사랑하지 않는데 왜 내 먹을 것 안 먹고, 내 입을 것 안 입고, 내 따뜻할 것 안 따뜻하고 자식을 돌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사랑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말만 그렇게 했으면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 당신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인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재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이에 더 큰 사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독생자를 주심으로 그 사랑이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도 희생적으로 사랑을 해야 사랑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증명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는 일생을 인도의 빈민굴에서 가난한 사람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는 말하기를 “주님이 나를 너무나 크게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나는 사랑의 빚을 지어서 이젠 그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었습니다. 테레사는 세상을 뜰 때 유언으로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줄뿐입니다.”
맞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계산하고 사랑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사랑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하면은 그 사랑의 대가를 받겠다고 계산하고 주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도로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위해서 몸 드리고 시간 드리고 물질 드려서 헌신하고 희생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희생적으로 섬기지 않으면 사랑은 문자에 불과하지요. 증명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반드시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증명되지 않은 사랑은 공기를 울리는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욕심으로 주님께 드릴 것을 스스로 빼앗는 일이 없는가? 내 스스로 사랑의 온도를 체크할 때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있는가를 여러분 알아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하나님을 늘 기뻐하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숨기지 못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재채기는 숨기지 못합니다. 절대로 숨기지 못합니다. 저는 재채기를 한 번하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한 열 번은 해야 됩니다. 재채기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재채기를 다 듣게 돼요. 그리고 사랑도 숨기지 못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싱글벙글하게 되고 즐거워하게 되고 성 잘내고 옹졸한 사람도 성도 내지 않고 마음도 넓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상대를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상대를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싱글벙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고 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저는 서대문에 있을 때까지도 최자실 목사님하고 저 둘이서 심방을 했기 때문에 교인이 만 명이 넘을 때까지 주의 종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심방을 했는데 그때 제가 늘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심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못났어요. 그런데도 코가 주루룩 흐르는데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손자보세요. 우리 손녀보세요. 잘생겼죠? 잘생겼죠? 뽀뽀해라 얘야. 목사님께 뽀뽀해라” 그 코 흘린 코로 내 뺨에 뽀뽀하면 징그럽습니다. 내 속으로는 자기새끼, 자기나 좋지, 왜 자꾸 나에게 사랑하라고 강요하느냐.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손자, 손녀가 그렇게 예뻐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자랑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 싫어해도 자꾸 합니다.
여러분, 처음 예수 믿고 어떻게 했습니까? 처음 예수 믿고 나가면 하늘도 나를 보고 방실거리고 꽃들도 그렇게 예쁘고 나무 잎사귀, 풀들도 다 나를 보고 찬양을 하는 것 같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늘 기뻐하고 휘파람 불고, 즐거워하고, 그리고 서나 앉으나 예수 자랑합니다. 이웃사람들과 친구들이 “돌았구나!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서나 앉으나 아주 진력이 나도록 예수 자랑만 하고 예수 생각만 한다.”
오늘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가, 안 하는가는 온도계를 한번 측정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인해서 기뻐합니까? 아멘 소리가 별로 크지 않아요.
과학자들이 연구결과에 보면 어린아이는 하루에 400번에서 500번을 웃는답니다. 어른은 하루에 15번에서 20번 밖에 웃지 않는답니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무뎌지고 감정이 둔해져서 어른들은 하루에 15번에서 20번밖에 웃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많이 들어요.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뼈가 마르는데 뭐 살이야 안 마르겠습니까? 그러니 자꾸 웃는 것은 우리에게 큰 건강의 약공장을 가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즐거워서 주님을 사랑하니까 즐거워서 늘 웃게 되고 또 주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느냐 않느냐 재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몸으로 같이 하고 마음으로 같이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희생적인 봉사와 섬김을 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예수 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느냐. 그것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 많이 달라졌어. 많이 식었다.” 그렇다면 빨리 회개하고 사랑하는 생활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것은 그 사랑이 식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곧장 회개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원상복구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에베소 교회에게 말하기를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깊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건져 주기를 원하고 우리를 높여 주기를 원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2.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야 함
둘째로는 성경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물론 주를 사랑하면 주의 뜻을 거역할 리가 없겠지만 그러나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역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수 주일하라고 했는데 주일날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 산행을 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등산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느냐? 참 선택하기 힘들지요.
어제 제가 어느 유명한 국회의원을 만나서 아침 조찬을 같이 하는데 그 국회의원이 “아~ 순복음교인 무서워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순복음교회에 나오는 여 국회의원하고 같이 여러 국회의원이 일본에 갔는데 주일날 일본국회인들과 함께 모여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출전을 해야 되는데 이 순복음교회의 여의원은 만사를 제쳐 놓고 교회에 가야 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그만 도망을 쳐버렸다는 겁니다. 어디 갔는지 보니까 동경순복음교회 김성수 목사님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면서 굉장히 똑똑한 분이 어떻게 그렇게 실례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분 여판사요, 여 검사도 했고, 변호사도 한 분이 왜 그렇게 하느냐?” 그래서 내가 “정말로 주님의 뜻을 두려워하고 받아들이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뜻은 “내 현실의 모든 욕심을 제쳐 놓고 받아 들여야 주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힘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고 교만해지고 불순종이 들어오면 주의 뜻을 거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게 만든 천사장이 루시퍼 아닙니까? 보통 천사보다도 그룹천사는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서서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룹천사인데 그룹천사 중에도 루시퍼는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하늘에 음악을 전담했습니다. 하나님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 중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그룹천사인 루시퍼가 왜 타락했습니까? 그가 탐욕을 마음에 품었었습니다. 탐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탐욕입니다. 천사 주제에 어떻게 하나님과 비길려고 합니까?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탐욕입니다. 천사는 천사로서 남아있어야지 천사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면은 욕심입니다. 탐욕이 들어오면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뛰어 넘어 교만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수를 지키지 않습니다. “아 나는 천사로 남아 있을 때는 너무나 내가 아름답고 너무나 장엄하고 능력이 있으니 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겠다.”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지 자기 스스로가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28장 17절에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부르신 뜻에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뜻은 그룹천사로 남아있고 하늘나라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직분을 지키라고 했는데 그 뜻을 거역하고 반역을 도모한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14절로 16절에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그 아름다운 천국에 탐욕을 갖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순종했으면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의 극치에 살아 있을 수 있는 루시퍼가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쫓겨났습니다. 똑같은 일이 우리 조상에게도 벌어졌습니다. 사탄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 에덴동산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상상을 초월한 궁전이었습니다.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했는데 마귀의 꾐에 빠져서 탐욕을 품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이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욕심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자기 욕심을 그렇지 않거든. 아담과 하와의 욕심은 뭐냐,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꼭 사탄처럼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욕심입니다.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지 사람이 왜 하나님이 되려고 욕심을 냅니까? 욕심을 내면은 그때로부터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자라면 사망을 갖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자기 분수를 뛰어넘어 교만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분수가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분수가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교만해집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에 말했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었으니 불순종 아닙니까?
결국 탐욕이 들어오고 교만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입니다. 애굽에서 이끌어내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데리고 왔지만 그들이 탐욕을 가지고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에 불순종하자 하나님이 더럽게 여겨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방 유다는 바벨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라도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이 있으면 천국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극치의 아름다운 아담과 하와도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이 들어오면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이 만백성 중에서 친히 내 백성이라고 선택한 이스라엘이라도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이 들어오면 가나안에서 쫓겨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를 충만히 받았을지라도 항상 경계해야 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오면 쫓겨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살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려야 됩니다. 탐심은 이기주의적 욕심이 아닙니까?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채워 놓으면 죄를 짓게 돼요.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성경에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는데 청결한 자는 뭐냐, 마음을 비운 자가 청결합니다. 탐욕의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으면 하나님을 못 봅니다. 마음에 탐욕의 쓰레기를 다 비워 버리고 마음이 비워지면 청결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을 밝히 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요, 믿음의 사람으로 불리는 조지 뮬러 목사님은 원래 독일인인데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갈 소망을 가지고 영국에 건너가서 영어를 배우려고 런던에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런던 거리에 거적때기를 덮고 먹고 자는 수많은 고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산업혁명이 전개된 영국에는 농촌에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구하러 런던에 와서 거지가 되어 어린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자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무관심했어요. 그저 그런가보다.
그런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시편 68편 5절 말씀에 가슴이 부딪혔습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 말씀이 갑자기 마음을 뒤엎어 놓았습니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이 마음을 뒤엎어 놓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감격했습니다. 울면서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죠지 뮬러야 너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갈 것이 아니라 런던에서 고아를 돌보아라. 내가 고아의 아버지니 너는 내 고아원의 총무가 되라”, “하나님 나의 어릴 때부터 꿈은 아프리카 선교사입니다. 내 소망은 아프리카로 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하러 왔는데 런던에 남아서 고아원 총무나 되라니요.”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성령이 말했습니다. “마음을 비워라. 네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면 네 욕심으로 채워 놓으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가 없다. 마음을 비워라!” 정말 마음을 비우기가 힘들었습니다. 자기의 젊을 때부터 꿈이 거기 있었습니다만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그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마음을 비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지 뮬러는 무릎을 꿇어 울면서 “하나님 알았습니다. 내 뜻을 비웁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자 이상하게 고아들이 조지 뮬러 목사가 있는 집으로 많이 구걸을 하러 왔어요. 고아들을 받아들이니까 사람들이 부탁도 안했는데 옷도 가져오고 양식도 가져와서 가정 고아원이 되고 그것이 점점 자라서 고아원을 시작하게 되고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3천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선가요, 고아원을 경영하는 죠지 뮬러가 된 것입니다.
그 죠지 뮬러는 늘 말하는 그의 좌우명이 “앞서지 말자. 결코 앞서지 말자.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 이것이 좌우명이었습니다. 자기 뜻을 세워가지고서 자기 욕심으로 하나님 뜻 제쳐 놓고 앞서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지 마라. 절대로 앞서지 마라. 기도하고 하나님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하지 앞서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욕망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받지 내 욕심대로 살면서 하나님 따라 간다구요? 어림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내 욕망을 비워 버릴 때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사명에 또한 충실해야 합니다. 내 현실에 하나님이 내게 주어진 사명에 불평하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 어떤 주인이 먼 길을 가면서 종들에게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한 사람은 한 달란트 주면서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먼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주인이 돌아오매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이 만면에 희색을 가지고 와서 “주인님, 다섯 달란트를 장사해서 열 달란트 만들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큰일을 맡으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님 두 달란트 가지고 장사했는데 네 달란트 만들었습니다.” “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큰일을 맡으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와서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라 내가 겁이 나서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놓았다가 가지고 왔으니 당신의 돈을 받으십시오.”
주인이 크게 노해서 “야 이놈아! 그렇다면 이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받아 놓아야 될 것 아니냐. 이 나쁜 놈을 묶어서 어두운데 던져 버려라. 이를 갈며 고통당할 것이다. 이 한 달란트는 열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어라.”, “아이고 저 사람은 이미 열 달란트 가지고 있는데요.”,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린다.”
여러분, 내가 맡은 사명이 적다고 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별 볼 일 없는 일을 한다고 해서 게으르게 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알아주던지 아니든지 큰일이든 적은 일이든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의 분량을 따라서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따라서 칭찬하는 것입니다.
열 달란트 만든 사람도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칭찬은 똑같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가 우리의 일에 착하고 충성되면 하나님이 상급을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우리가 맡은 자로서 즐거움으로 충성스럽게 일하면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우리가 아는 충성이 우주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뉴잉글랜드의 감리교단의 목사로 크게 쓰임 받은 스테픈 올린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은 안 오고 교회는 성장하지 않고 목회는 너무 힘들어서 고생 고생하다가 마음에 목회를 그만두려고 작정했습니다. “나는 도저히 실력이 없어서 목회를 못하겠으니 그만 두어야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잠을 자는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그는 큰 바위 앞에 서서 곡괭이를 들고 바위를 팝니다. 아무리 곡괭이로 바위를 찍어도 바위가 깨어지지 않으니까 “아무리 일해 소용이 없잖아. 이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테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꿈에 커다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이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일을 그만두려고 하느냐?”, “쓸데없기 때문입니다. 곡괭이로 바위를 쳐봤자 텅텅 튀어나오고 바위는 깨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바위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네가 알바 아니다. 너의 할 책임은 곡괭이로써 바위를 찍는 것이 너의 임무다. 깨어지고 안 깨어지는 것은 네가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가 꿈에 회개하고 다시 곡괭이를 들어 힘껏 바위를 치니까 바위가 꽝 소리가 나더니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잠이 번쩍 깼습니다. “내가 교회가 성장하든 안 하든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심방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구나! 내 맡은 달란트 책임을 내가 충실히 다하면 나중에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 책임을 다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고 회개하고 열심히 목회해서 나중에 대교회가 되고 크게 성공한 목사가 되었다는 간증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우리는 그저 순종하여 충성하면 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과는 친히 이루어 주실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하나님 뜻에 복종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꾀었습니까? 금식하고 나왔을 때 “네가 하나님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되고 너도 제2의 하나님이 아니냐? 하나님이니까 돌을 만들어 떡을 먹으라. 배고프니까 돌을 만들어 떡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하나님 아니냐?” 그럴 때도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 주님은 절대로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께 복종하지 자기의 하나님 된 권리와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었고 완전한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33세에 그것도 비참한 수치와 곤욕을 당하며 십자가에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을 당하는 것을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이면 잔을 옮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욕망입니다. 그러나 곧장 자기의 욕망을 비웠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자기의 욕망을 비우고 아버지 뜻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를 베풀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에 절대 복종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예 복종 안하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복종도 안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줄리가 있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마게도니아의 필립궁의 아들로서 30세 전에 벌써 중동일대를 다 정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적은 군대를 거느리고 아주 강한 성벽을 쌓고 대 군대를 거느린 도시국가를 공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국가 왕이 군대와 함께 성 위에 서서 웃었습니다. “알렉산더야 너 조그만한 군대를 가지고 우리 이 강력한 성을 공격하고 우리의 대 군대를 이길 수 있는 줄 생각하느냐? 멸망하기 전에 치워라!”
알렉산더 대왕이 “그 성에 서서 우리 군대를 한번 보라.” 그 성이 낭떠러지에 세워진 성이었습니다. “일렬종대로 군대를 쫙 횡대로 세워놓고 그 낭떠러지를 향해서 앞으로 가!” 그러니까 알렉산더 대왕의 군인들이 앞을 바라보고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착착착 제일 선두에 선 열 명이 그대로 낭떠러지에 낙엽같이 떨어집니다. 그럴 때 알렉산더 대왕이 “뒤로 돌아가!” 성 위에 있는 임금과 그 모든 병사들이 입이 벌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의 군인은 벼랑을 향해서 나가라 하는데 반드시 떨어져 죽을 것을 알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는 절대복종하는 군대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말했습니다. “네가 항복하고 나오면 너와 네 군대를 살려 주겠거니와 항복하지 않으면 너와 네 군대와 백성들은 멸망시키겠다.” 당장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왜? 이 알렉산더 군인들을 우리는 당할 수 없다. 절대 복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명령에 질문하지 말고 우리가 절대로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계산해 보고 생각해 보고 기분 좋으면 뜻을 받아들이고 기분 안 좋으면 안 받아들이겠다. 그것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탐욕을 비우고 교만을 던져 버리고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책임져서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잘난 것, 못난 것, 성공한 것, 실패한 것, 병든 것, 건강한 것, 자랑스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 다 합쳐서 하나님의 바늘은 여러분의 인생의 수틀에서 아름다운 수를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것 현재 여러분이 작정해서 받은 것 아닙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1장 4절로 5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는데 창세전에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여러분이 보시고 아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혜의 무궁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 뱃속에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시고 아시고 창세전에 하나님 백성으로 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입니다. 모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생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알고 하나님이 대책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제 대책 없다. 이제는 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책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나의 뜻을 따라서 살기 때문에 내가 미리 대책을 세워 놓았다. 너희가 대책이 없어도 나는 대책 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뱃세다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5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이 따라와서 말씀 듣고, 병 낫고 한다고 먹을 것이 없어 저녁 해거름에 전부 풀밭에 들어 누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중에 제일 지혜로운 빌립을 불러서 “빌립아,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은 이미 어떻게 하실 줄을 아시면서 빌립을 시험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빌립이란 사람이 “대책이 없어요. 광야지요. 떡을 살 곳도 없지요. 무리는 많지요. 돈은 없지요. 시간은 없지요. 주님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어떻게 할 줄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미리 대책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결국 안드레를 통해서 다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광야에서 대책이 없을 때도 하나님은 이미 만세 전에 미리 아시는 고로 벌써 대책을 세워 놓았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이미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아시므로 이미 대책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시편 139편 16절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여러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에 태어나서 하루도 되기 전에 일생이 이미 다 하나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대책을 다 세워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대책을 세워 놓고 합동하여 유익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저버린 사람에게는 네 인생 네가 살아라. 죽을 쓰든 밥을 쓰든 나는 모른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하므로 만족케 하며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에 대책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책을 세워 놓은 줄 알고 우리가 대책없이 어려울 때는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도저히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비밀한 대책을 세워 놓고 그 일을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은 악을 변하여 선으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 정말 낭패다. 절망이다. 정말 악한 일이다. 실패다. 그런 것을 한순간에 뒤엎어서 성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모든 유대인과 로마 사람들이 춤을 추고 박수를 치고 이제는 끝났다. 죽었다. 대책없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하나님이 탁 엎으시니까 위대한 부활의 영광과 승리, 우주 역사상 그보다 더 위대한 승리가 없는 부활의 영광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뒤엎어 버리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어서 13년 동안 종살이, 감옥살이한 요셉. 나중에 요셉을 따라 애굽에 내려간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다음 요셉이 보복할까 싶어서 겁이 나서 요셉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하고 간구했을 때 요셉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선으로 바꿨어요.
성경에는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원수가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원수 앞에서 진수성찬 차려 주고 기쁨의 기름을 머리에 부어 주어서 원수보고 용용죽겠지. 용용죽겠지. 이렇게 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30편 11절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역전의 하나님 아니십니까? 슬픔이 어떻게 춤이 되며 베옷이 어떻게 기쁨이 되겠습니까? 역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 당신의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더 디마스 장로는 미국 기독실업인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신앙과 경영과 재력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전에는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해서 쫄딱 망했습니다. 빚더미에 올라 앉았습니다. 그래서 그 빚을 갚으려고 더 애를 쓰고 노력할수록 점점 수렁에 더 빠졌습니다. 할 수 없어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여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네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다. 네 태도가 문제다. 왜냐하면 너 사업의 주인이 네 자신이 아니냐? 네가 주인노릇하고 하나님께 자꾸 불러서 도와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심부름꾼이냐? 너희 보좌관이냐?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하나님이 책임져 줄 것 아니냐?” 그는 크게 깨닫고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의 계획에서부터 결재까지 주님께 의지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주님과 의논했습니다.
이렇게 사업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 사업한다면 밤도 낮도 가리지 않고 동서남북으로 뛰어 다니면서 주의 사업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저놈 돌았다. 망하려고 하니까 힘껏 일해도 안되는데 주의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니까 영 망하고 말 것이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점점 사업과 생활이 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가 사업을 운영하면서 세워 놓은 원칙이 여섯 가지 있는데 첫째 주일성수하고, 둘째 하루의 첫 시간에 기도하고 시작하고, 셋째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넷째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주님께 드리고, 다섯째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여섯째 사업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주님이 해결하시도록 주님께 맡기는 것. 그렇게 해서 그는 큰 돈을 벌었습니다. 나중에 미국 CCC회관을 짓는데 거액을 헌금하고 생전에 자신의 유산을 정리해서 5,600억원을 선교재단에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간증하기를 “내가 망한 것이 유익이 되었다. 합동하여 유익이 되었다. 내가 망하지 않았었으면 내가 주인노릇하고 내가 나중에는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에 빠질 것인데 하나님이 나를 치셔서 망하게 하므로 내가 깨닫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욕심을 버리고 교만하지 않고 순종하므로 하나님도 모시고 재물도 얻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겸허히 순종하고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악을 선으로 바꾸는데 역전의 역사를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아름다운 천국에 수를 놓아 주십니다. 여러분 인생의 수틀에 아름다운 수를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이야기만 더 하고 이 설교를 끝마치고자 합니다. 유명한 찬송작가 중에 하나인 화니 크로스비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일생에 찬송가를 9천 곡이나 적었습니다. 이 9천 곡이 모두 다 온 세계 성도들에게 애창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찬송가에도 22편이나 기록되어 있는데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생명 되신 주, 오 놀라운 구세주, 나의 영원하신 기업’같은 곡들이 모두 화니 크로스비가 지은 찬송입니다. 그런데 화니 크로스비는 10대에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서 주사를 잘못 맞아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 된 사람은 모르겠지만 보다가 장님이 되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고 “하나님 안 믿는 사람도 눈이 밝아서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주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인데 이렇게 눈이 어두워서 이제 내 인생은 망쳤으니 나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너무나 야속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울고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크로스비야, 네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의 눈 어두워진 것 알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눈이 어두워진 것이 너에게 큰 복이 되게 하겠다. 너는 눈이 어두웠으니 사람이 못 보는 것 영안으로 보게 되고 사람이 못 듣는 것 영의 귀를 열어 주어 사람이 못 깨닫는 것 영의 마음을 열어 주마. 그래서 눈뜨고 네가 일생을 산 것보다 더 영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마.” 그 말을 듣고 화니 크로스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이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눈뜨고는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뜨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바빠서 못 깨닫는 진리를 그 마음속에 깨달았습니다. 한평생에 그는 찬송가를 9천 곡이나 적고 수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나의 눈이 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을 믿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움 때문에 나는 오히려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고 성전의 기둥으로써 주님 앞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을 산다 해도 눈뜨고 사는 것보다도 눈을 감고 살기를 원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실명이란 고통을 불행으로만 보지 않고 그 모든 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어두움도 밝음도 성공도 실패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행도 삶도 죽음도 다 합동하여 아름다운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린 인생을 살면서 우리 스스로 살 때는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습니다.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도저히 풀지 못하고 처참한 패배의 인생을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실패했고, 낭패했고, 좌절했고, 절망이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도 하나님은 아름답게 수로 엮어서 유익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울면서 웃을 수 있고 절망한 가운데 소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답답하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고 어두운 가운데 빛을 바라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꿈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 야웨 하나님이여 로마서 8장 28절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잊지 말고 가슴에 보석처럼 간직하며 믿음으로 이 말씀을 갖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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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by 삶의언어 posted Oct 31, 2024 Views 4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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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그리스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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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2004-12-05 |
오늘의 성구 | 로마서 8장 28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S7p-3MDVCQQ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