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께 업혀서 사는 삶’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생활문화도 많이 달라집니다. 그중에 하나가 어린 아기를 업어 기르는 문화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어린 아기는 으레 어머니 등에 업혀서 생활하고 자랐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서 자고 대소변도 엄마 등에서 보고 엄마 등에서 칭얼거리면 콧물, 눈물로 세계지도를 그려 놓습니다. 어린 아기를 기르는 엄마 등은 언제나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린 아기의 콧물, 눈물이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자녀들 간에 사랑과 친밀함이 그때는 뛰어났습니다. 오늘에 와서는 대게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기릅니다. 그러므로 엄마 등에서 느끼는 삶의 체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업고 기르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등에 업으시고 우리를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본론]
1. 이스라엘 백성을 업어 구원하신 하나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은 업고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에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애굽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올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업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업고 건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홍해수를 건널 수가 있습니까? 다리도 없고 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업고 홍해수를 건너니 홍해수가 하나님 발밑에서 갈라지지 아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업으시고 야웨께서 친히 애굽 바로왕과 그 군대와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손가락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9절로 30절에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업혀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항상 저의 마음속에 어릴 때에 경험한 잊지 못할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와 우리 집이 있는 삼남면 사이에는 언양개천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니까 조그만한 도랑 같은데 그때 어릴 때는 굉장히 큰 개천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개천에는 2차선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상당히 긴 다리였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철 장마가 오고 홍수가 나면 황토물이 그 다리를 넘쳐서 아예 집 돔같이 굴러 흘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도저히 건널 수가 없습니다. 언양국민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그 다리를 건너야 삼남면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는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어요.
그때는 제가 으레 언양 시내에 있는 저희 고모집으로 갔습니다. 고모부께서는 장정이었습니다. 아주 인품이 좋으시고 키가 크시고 몸이 튼튼하고 탁주를 좋아하는 얼굴이 늘 벌건 아저씨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때 굉장한 거인으로 보였습니다. 가서 고모부에게 부탁을 합니다. “고모부 집에 가려는데 언양남천내가 넘쳐 흘러서 못가니 날 좀 건너주세요.” 그러면 고모부는 아주 기분 좋게 “그래 가자! 그러면서 그 김에 논에도 가보고 물도 돌봐야 되겠다.” 가래를 들고서 남천에 나오면 홍수가 넘쳐 흐리고 많은 사람이 구경한다고 하천가에 와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업고 건넙니다. 딱 등에 업혀 있으면 온 천지가 물입니다. 천둥 치는 소리를 하고 물이 흘러가는데 발한 번 삐그덕하면 그냥 굴러서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모부등에 꽉 업혀 있으면 고모부가 천천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물을 헤치고 한참 만에야 그 다리를 건너서 “휴우~” 숨을 내쉬고 저를 어깨에서 내려놓을 때 정말로 구원받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항상 그것이 저의 마음속에 깊이 인상이 박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미 그 고모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기억은 저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업혀서 내가 건너갈 수 없는 하천을 건넌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우리 힘으로 건너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업어서 건너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도 하나님이 업어서 이스라엘을 건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짐을 지시고 저들의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9절로 12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업어서 광야를 지나게 했습니다. 사나운 광야, 태양이 활활타는 불길같이 내려 쬐이고 물은 어느 곳에나 찾아볼 수도 없고 바위는 불덩어리같고 그런 광야에 아무런 농산물도 없고 곡식도 거둘 수 없는 그 처지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업고서 그들을 지나게 했습니다. 그들의 일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들의 짐을 하나님이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기거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고 그 짐을 짊어져 주셨습니다.
신명기 29장 5절에 보면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78편 14절로 15절에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 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라고 했으며 24절에는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라고 했으니 온전히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업어서 광야를 지나게 한 것입니다. “아~ 그것 옛날에 기록한 신화지. 그런 것이 뭐 실제로 있을라고..”
1931년 중국 남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지역 주민들은 갑자기 찾아온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선교사가 와서 예수님을 전도해서 온 동리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급박하니까 선교사님을 찾아가서 “선교사님! 우리가 굶어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선교사님이 좀 할 수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선교사님이 “인간적으로는 별도리가 없지만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오늘날 업드려서 기도하면 구약의 이스라엘을 돌봐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안 돌봐줄 수 있겠습니까?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 선교사는 아주 담대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사람이 모여서 나흘 동안 기도를 했는데 기도 마치는 날에 큰 폭풍우가 불어오고 북쪽에서 검은 구름이 모여와서 비가 장대같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비가 그치고 난 다음 보니까 깜짝 놀란 것은 미리 삽으로 떠낼 만큼 많이 동리에 쏟아진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니까. 큰 폭풍우가 불어서 몽고에 밀창고를 넘어 뜨려 가지고서 바람이 그 밀을 가지고서 그 동리에 와서 퍼부어 버린 것입니다. 몽고 사람들은 손해를 봤지만 중국 남부에 있는 사람들은 아에 삽으로 떠서 채울 만큼 밀이 땅에 쌓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써 기근을 잘 보냈다는 실제적인 기사가 기록된 것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은 별난 사람들입니다.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신나게 별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0절로 33절에 보면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성경에는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업으시고 안으신다. 꼭 어린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와 같지 않습니까? 업고서 가시다가 어린 아이가 칭얼거리면 또 등에서 이렇게 앞으로 제켜서 안아서 젖을 먹이고 업고 안아서 기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를 업으시고 우리를 안으셔서 물을 건너고 광야를 지나면서 성공적으로 천국까지 올라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별난 사람입니다.
만약에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일을 하고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일을 맡기고 짐을 부탁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업으시고 일을 하시고 짐을 짊어져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별난 사람들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이 바로 그랬었습니다. 한번은 기업가들이 모여서 조지 뮬러 목사님에게 와서 “당신이 맨손으로 3천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기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 기업가들이 모여서 일정한 금액을 내어서 매달마다 당신에게 돈을 갖다 드릴 테니 그것으로 애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그러자 조지 뮬러 목사님은 “참 정성은 고맙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나를 돌봐 주시는 크신 어른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놀래서 “어떤 어른이시기에 그 많은 돈을 매달마다 주십니까?”라고 하니까, “내가 모시는 어른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부탁하고 기도하는 것마다 다 응답하여 주셔서 이루어 주십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자기의 기도실에 들어가면 크게 써 붙였습니다. 야웨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하므로 말미암아 한 평생 동안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고 3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후원을 요청하거나 아쉬운 쇠를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야웨 이레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기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한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랄 일들을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만세 전에 이미 예비해 놓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를 업고 우리의 일을 하시고 우리의 짐을 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친히 일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과 함께 한 삶도 꼭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과 다름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은 감격적인 말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태어날 때 홀로 태어나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홀로 삽니다만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좋아도 함께 좋아하고 슬퍼도 함께 슬퍼하고 괴로워도 함께 괴로워하고 짐을 함께 집니다. 부부는 함께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분리되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함께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꼭 부부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가 신부가 되어서 그리스도와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24시간 늘 같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조용히 기도하는 것 헛된 소리입니다. 하늘에 계셔서 조용히 기도하는 소리를 어떻게 들으십니까? 여러분이 찬송을 해도 주님이 어떻게 그 찬송을 하늘에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이 자리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조용한 기도도 들으시고 우리의 생각도 살펴보시고 우리의 찬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살면 어떻게 됩니까? 짐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와 짐을 질 능력이 없는 자가 함께 살면 짐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짐을 질 수 없는 능력 없는 자를 데리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능력 없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업혀서 사는 것입니다. 무능력자가 능력 있는 자에게 업혀서 살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가정에도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시면 이제 생활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녀에게 업혀 살아야지 별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생활능력이 없습니다. 돈 벌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자녀들은 젊으니까 돈 벌 능력이 있으면 부모님이 자녀에게 업혀 살아야 마땅합니다.
요사이는 그러지 아니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팽개쳐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이제 어려운 노년에 이르면 국가에 업혀서 살려고 하는데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지 않으면 노후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무능력자는 능력 있는 자에게 업혀서 살아야되는데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주님이 우리 신랑 되시고 우리와 함께 있는데 우리는 무능력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누구에게 업혀 살아야 됩니까? 예수님께 업혀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업혀서 살기를 원할지라도 주님이 원치 아니하면 안 되는데 주님이 자원해서 짐을 맡기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일을 할 수 있는 자와 일을 할 수 없는 자가 함께 살 때는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할 수 없는 자의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몸이 신체장애가 되어서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체가 건장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집안일을 다 맡아서 해야 되지요. 그래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살지 않습니까?
요사이 가끔 TV 대화에 나오는 것 보니까 남편이 전신마비로써 몸을 움쩍하지 못하는데 몸이 건장한 아내를 얻어서 그 건장한 아내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씻겨주고 목욕을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옷을 입혀주고 화장실까지 데려다 앉혀 주고 생활전체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일을 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업혀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께 업혀서 살아야 됩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엎드려서 기도만 하면 우리의 일을 맡아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에도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업혀서 사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어릴 때 어린아이를 어떻게 합니까? 일어나면 “자~ 어부바. 어부바.” 그러면 응애응애 기어와서 엄마에게 덜썩 업히잖아요. 엄마가 어린 아기를 업고 끈으로 묶고 그 다음에는 부엌 일하러 가고 밭에 일하러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오늘날 우리를 보시고 매일같이 어부바 어부바. 우리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여, 짐도 주님께 맡기고 일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업혀서 인생을 삽니다.’ 항상 그것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그것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믿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못할 것을 자기 힘으로 애를 쓰면 고생만 하고 아무 실속이 없습니다.
어느 종교의 유명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일생동안 참으로 대단한 고행을 한 사람입니다. 결혼 직후 처자식을 남겨 두고 수행에 들어가서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10년 동안이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외롭게 거하며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은 자세로 잠을 자며 수양을 쌓았습니다. 그는 16년간 솔잎 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남긴 시한수가 있는데 그 시의 한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미천죄업 과수미라“ 즉 하늘에 가득 찬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구나. 평생을 그렇게 뼈가 으스러지도록 피가 마르도록 살이 찢어지도록 고행을 하고 수도를 했건만 그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느낀 것은 미천 죄업 과수미라는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즉, ’내 죄가 하늘에 가득 찬 수미산보다 높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왜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고행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죄악을 청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빚은 사람의 힘으로 값을 없는 것은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갚으려면 죽어야 되는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결코 죄의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업혀서 죄와 허물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죄짐을 짊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이를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수 없는 일을 우리가 짊어지고 몸부림 처봤자 소용없잖아요. 우리의 죄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고 구원의 일을 주님께 맡겨 버리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모든 짐과 일을 벗어 버리고 얼마나 홀가분하고 상쾌하게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찬송가 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윌리암 카우퍼는 6살 때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에 평생에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여러분 자살을 시도했고 급기야 33살에는 1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요양을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말씀을 읽자 마음속에 굉장한 감동이 왔습니다. 항상 그는 죄책에 짓눌려서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히 버림받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고통을 당했는데 이 말씀이 태양빛 같이 비취면서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맑은 하늘같이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해지면 광명한 빛이 비취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일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의의 태양이 내게 비취었고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쁨과 감격에 겨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사랑과 경외감에 잠겨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고..” 그는 그날로 새사람이 되었고 정신병도 깨끗이 나아서 정신병원에서 퇴원해서 남은 여생 수많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많은 찬송 중에도 여러분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 있지 않습니까?
찬송가 190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할렐루야~
어떠한 사람은 평생을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죽을 때 내 죄가 하늘보다 높다고 탄식하고 처참하게 죽었는데 다른 사람은 죄책으로 말미암아 우울증에 걸려서 정신병원까지 갔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자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에 가득차서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한평생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는데 함께 살리는데 우리는 일을 못하니 주님이 일을 하시고 우리가 짐을 못 지시니 주님이 이를 지십니다. 함께 살면요.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업고서 사시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함께 사는데 부인이 일도 못하고 능력도 없으면 남편이 부인을 짊어지고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부인 대신 일하고 부인대신 짐을 짊어져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 주님은 무책임한 주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늘보좌를 떠나시고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33년간 땅에 사시며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구원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도 사양치 않고 내려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의지하면 주님이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고서 업고서 죽음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어떻게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사망을 철폐하고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붙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없잖아요. 사망과 음부는 주님께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신 주님의 등허리에 탁 업혀 있으니 사망과 음부의 홍수의 강을 주님이 우리를 업고 건너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업혀서 공짜로 은혜로 사망의 강 음부를 건너서 천국영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앉히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혔다고 말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러므로 죽으나 사나 끝까지 주님과 함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우리들을 책임지고 주님은 우리를 업으시고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와 결단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어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주님께 업혀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는 현재에 사는 우리들을 보시고 두 손을 활짝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주님이 쉬겠다고 하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 실력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면 우리가 비웃을 수밖에 없지만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요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손을 내미시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초청할 때 우리는 주의 말씀을 믿고 따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주인 아더 캔들러는 원래 알콜중독자였습니다. 항상 술에 취하여 곤두레 만두레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술을 끊겠다고 몇 번이나 큰소리쳐도 결코 술을 끊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서 귀가하는데 갑자기 벼락같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죄의 본능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느니라.” 깜짝 놀랐습니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그 시간이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서 “주님 우리 남편이 술 중독에서 고침을 받게 하옵소서.” 눈물로 그날도 기도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고 아더 캔들러는 크게 깨닫고 “하나님 내 힘으로 내 수단과 방법으로는 이 술중독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여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내 삶 전체 나의 술중독을 주님께 맡기니 내 짐을 저주시고 나의 일을 해주시옵소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그날 저녁에 부인과 함께 기도했는데 희안하게 그 이튿날로부터 술맛이 딱 떨어졌어요. 술을 보고도 싶지 않아요. 완전히 알콜중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일한 결과에 그는 코카콜라라는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것입니다. 아더 캔들러가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자 자신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던 술을 끊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일해 주시므로 그의 인생에 크게 성장했다는 그의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지시고 우리의 일을 행하시겠다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데 이 초청을 우리가 거부할 수가 있겠습니까? 왜, 짊어지지도 못한 짐 짊어지고 하지도 못 할 일을 가지고 낑낑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시는데요.
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뒷걸음을 치고 주님을 거역하겠습니까? 예레미야가 탄식하기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사오니 그 첫째가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둘째 스스로 연못 우물을 팠는데 물을 저장하지 못할 터진 우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켜 놓고 자기 스스로 아무리 일을 한들 터진 우물을 물을 채울 수 있습니까?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야웨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 일을 왜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는데 기쁘게 우리가 주님앞에 뛰어나가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업혀서 살기 위해서는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나도 어릴 때 우리 동생들을 많이 업어 봤는데 어떤때는 “자 업혀!” 하면 덥썩 업히면 내가 쉽게 업는데 막 버티고 안 업겠다고 하고 발버둥을 치고 강제로 업어 놓으면 발로 서가지고 뒤로 자빠지고 그러고는 업을 도리가 없어요. 아무리 업어 주려고 해도 뒤로 자빠지는 놈을 어떻게 업습니까? 함께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업히는 것도 주님이 업자고 어부바 할 때 덥썩 업혀야지 그냥 발버둥을 치고 뒤로 자빠지고 옆으로 비뚤거리고 하면 주님이 업어 주시려고 해도 업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여 업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과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도 하나님께 업혀서 일생을 살았는데 우리가 예수님께 업히기 위해서는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여러분 복종할 때 주님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신명기 3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면 주님은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복을 언제나 체험하고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저버리고 버티고 반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주님께 복종해서 업혔으면 등에 바짝 붙어서 절대 믿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모부가 나를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중간쯤 가서 “나 고모부 못 믿겠다. 나는 내려야 되겠다.”고 버텨 버리면 내가 물에 떠내려갈 수밖에 없지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일단 주님께 업혔으면 절대 믿고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를 업으시는 주님은 무장을 하신 주님인 것입니다. 빈손 들고 업지 않습니다. 주의 손에는 지팡이가 있고 막대기가 있습니다. 지팡이는 인도하시는 주님의 전지전능하신 지혜요, 막대기는 주님께서 원수를 치고 우리를 보호하는 전능한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주님은 무장한 주님인 것입니다. 빈손 든 주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등에 업혔으면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무장하고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고 지켜줄 것을 절대로 믿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합니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환경을 바라보면 어둡고 캄캄하고 음산하고 두렵습니다. 인생을 사는데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의심스럽고 두려운 것이 홍수와 같이 다가오고 바람소리같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주의 등에 엎드려서 눈 딱 감고 주님만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흑암을 광명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가난을 부요로 추를 미로 변화시켜 줄 기적의 하나님인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님께서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르다의 집에 와서 그들을 이끌고 오라버니 나사로의 무덤에 갔습니다.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마르다를 보시고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십니다. 상식을 초월합니다. “주여 오라버니가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이미 썩은 냄새가 납니다. 비이성적이고 비경험적이고 비과학적이고 이것 옮겨 놓을 수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벼락같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우리가 믿음이란 것은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체험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과학이나 체험이나 이성을 초월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믿고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여러분 일단 주님을 믿었으면 주님께 다 맡겨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업혔으면 여러분 십자가는 여러분 우리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혈로 우리를 씻으시고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울 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거룩함과 성령충만도 주시고 치료와 건강도 주시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도 주시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 한 택시기사가 신혼부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시골길을 달리는데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지고 바람에 옷이 날리고 물이 흐르니까 눈을 자꾸 닦아 가면서 한쪽 손으로 짐을 지고 이리저리 허덕이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택시 기사에게 자기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 할머니 곁에 택시를 댔습니다. “할머니 타세요.” “나는 안타요. 나 아무 죄 지은 것 없어요.” “아니 죄지은 것이 아니라 빈 택시로 가는 택시입니다. 타세요.” “왜 기사님 난 돈 없는데 사람 왜 억지로 태우려고 합니까? 난 돈 한 푼도 없어요.” “아니요. 공짜로 타세요. 공짜로.” “공짜가 어디 있어요?” “진짜요. 공짜로 타세요. 돈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그래서 내려가서 택시문을 열고 억지로 태웠습니다. 그래서 태우고 기분 좋게 달려오면서 백미러를 보니까 그 할머니가 택시 안에서 짐을 머리에 이고서 안 자빠지려고 죽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덜커덩거리니까 안 넘어지려고. 그래서 “아이고 할머니! 그 짐을 왜 머리에 이고 있습니까? 내려놓으세요.” “아이고 몸을 태워준 것도 고마운데 짐조차 내려놓으면 얼마나 미안합니까?” “아이고 짐을 지고 머리에 이고 있으나 내려놔도 택시는 똑같이 무겁습니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래도 끝까지 “벼룩도 낯짝이 있지 내가 어떻게 짐을 내려놓나?” 끝까지 짐을 머리에 지고서 오더라는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할머니가 공짜로 탔으나 마음에 미안해서 짐을 못 내려놓는다고 머리에 짊어진것처럼 오늘날 너무나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천당 가는 것도 미안한데 짐조차 내려놓을라. 주님께서는 “병의 짐도 내려놓으라. 저주도 내려놓으라. 가난도 내려놓으라. 죽음도 내려 놓으라.” “아이고 주님이여 영혼을 구원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짐을 내려놓으면 체면이 어떻게 됩니까? 미안해서 못 내려놓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아 십자가를 탔으면 나는 이미 너를 위해서 다 짊어졌다. 죄짐도 질병도 저주도 절망도 죽음도 내가 다 짊어졌는데 왜 나를 믿으면 전적으로 다 믿지 반쯤만 믿느냐?”
여러분, 삼대재앙으로 아담과 하와가 우리에게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영혼의 죽음의 재앙, 저주를 말미암아 가난과 고통의 재앙,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과 죽음의 재앙을 남겨 놓았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죄를 용서와 의로 저주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으로 죽음을 치료와 건강과 영원부활로 삼중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인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택시를 탔으면 오늘 여러분의 머리에서 죄짐도, 세상짐도, 병짐도, 저주의 짐도, 사망과 음부의 무거운 짐도 다 내려놓고 기쁘고 즐겁게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이제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돈을 섬기고 지위를 섬기고 권력을 섬기고 쾌락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완전 방향을 바꾸어서 주님을 섬기고. 자도 깨도 먹어도 마셔도 모든 일에 우리 주님을 섬기며 살 때 주님께서 한없는 하늘의 영광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할 것과 나중하는 순서를 바꾸어서 사는 삶은 절대로 안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지막 이야기 하나 더하고 설교를 마치겠어요.
1912년 보스턴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작은 돈을 벌어 꼬박꼬박 십일조를 꼭 드리고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절대로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드리고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살겠다고 이 소년은 결심했습니다. 자기는 가난하고 공부도 못 했지만 주님만은 섬기고 살겠다고 각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부어 주셔서 10대에 이미 사업가로서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얼음을 팔고 공장이나 건설현장 노동자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아 제법 돈을 모으게 되니까 30세에 모빌 런치 서비스라는 회사를 세워서 점심을 안 싸오는 사람들에게 점심을 배달해 주는 그런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던킨 도너츠라는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했습니다. 그가 바로 던킨 도너치 창업주인 로젠버그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던킨 도너츠 상점이 있잖습니까? 던킨 도너츠는 지금 각국에 퍼져 미국에만 해도 1,700개의 지점이 있고 세계의 100여개 나라에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72세를 맞이하는 생일 축하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고 못 배웠어요. 초등학교도 못 나온데다가 그리 좋지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제가 성공한 것은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섬기는 것을 저의 삶의 목표로 삼았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 대신에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불안 대신에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패배 대신에 승리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좋은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별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의식주 생활을 하며 모든 생활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결국 종국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에 갈 것을 바라보고 주님께 업혀서 사는 별난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스스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님께 업혀서 삽니다. 지금도 주님은 여러분에게 등을 내놓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어부바. 어부바. 절대복종하고 절대 믿고 의지하며 섬기면서 주님께서 업혀서 일생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힘이없고 연약한 우리 무능한 우리를 업어서 주님께서 강을 건너고 광야를 지나며 원수를 헤치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주님께 업혀 살지 아니하고 자기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고 하다가 많은 상처를 입고 고통 가운데 내둥그려 집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등을 내미시고 두 손을 활짝 내밀고 내게 업히라고 하실 때 주님께 업혀서 일을 주님께 맡기고 짐도 주님께 맡기고 은혜로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하신 주님은 우리의 죄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이제 오늘 주님께 업히기만 하면은 용서와 구원을 받고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구원 못 받아요. 스스로는 죽음의 강을 못 건넙니다. 업혀서 건너가야 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시고 함께 일으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업히지 않고는 함께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주님께 업혀서 인생을 살기를 원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과 텔레비실과 기도실과 그리고 일본 여러 교회와 국내 주변교회와 각 기도처와 TV와 방송을 통해서 인터넷 앞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주님께 믿음으로 업히십시오. 주님께 모든짐을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의지하세. 의지하세. 곧 의지하세. 구하겠네. 구하겠네. 곧 구하시네.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을 향해서 두 손을 활짝 내밀고 어깨를 내밀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 기도하고 맡기면 주님은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책임을 저주시는 것입니다. 일어나신 여러분은 이 기도를 소리 내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결신카드를 적어서 연보함에 넣어 주시고 예배가 필한 후에 환영회에 꼭 출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유기도]
몸이 아프신 분 아픈데 손을 얹으십시오. 문제를 가지신 분 가슴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이미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서 이미 짊어지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믿음으로 주님께 다 맡기고 업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이여, 주의 능력의 손으로 병을 다 고쳐 주시고, 모든 육체적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건강과 축복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모든 짐을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강을 건너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2004
주께 업혀서 사는 삶
by 삶의언어 posted Jun 24, 2024 Views 66 Replies 0
?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