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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도덕성

by 삶의언어 posted Jun 25, 2024 Views 1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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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축복과 도덕성"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샤마니즘과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샤마니즘이란 간단히 말하면 자기의 이기적인 복과 영달을 위하여 미신의 힘을 빌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오직 주술적인 면이 있을 뿐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의무가 부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샤마니즘에는 유일신으로부터 계시된 경전인 성경이 없고,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도 없고, 도덕법이나 행위에 대한 내세의 심판도 없습니다. 샤마니즘은 오직 복을 받고 화를 면하기 위하여 행하는 민간 신앙행위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복을 구하는 것을 샤마니즘과 동일하다고 비평하는 소위 사이비 신학자와 목사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가 부족하고 성서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어떤 누구를 막론하고 축복이 필요합니다. 축복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하고 무속적으로 구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기독교는 축복을 주는 종교인가?
이 사실을 우리가 물어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난 다음 제일 처음 하신 행위가 축복을 주시는 행위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행하신 행위는 축복을 주신 행위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 받은 에덴동산에서 살았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처음 출발부터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저주와 죄악과 절망과 죽음과 전쟁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이 세상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동산 모든 실과를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 했는데 마귀 꾀임을 받아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 하나님 반역하고 마귀의 말을 먹고 선악과를 따먹었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서 그들 영혼이 죽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버리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 결과 또한 육체가 죽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자 하니깐 쇠약해야 되고, 병이 들게 되고,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리고 사람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의 모든 저주도 자연히 온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하고, 너희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 값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인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이 모든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제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일생을 바라볼 때 마음속에 감격이 없이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의 죄를 용서해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앓는 자를 치료해 주시는 넘치고 놀라운 축복을 주셨으며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을 허락하시고 자유를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환경에서도 자연을 지배하셨습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잠잠케하사 폭풍우 속에서 절망에 처한 제자들을 주님 건져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배고픈 사람에게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게 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위대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죽어서 나흘이 지나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도 불러내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자연환경을 다스려서 축복을 가져오는 주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하여 그 몸이 찢기고, 그 피를 쏟고 죽으셨다 부활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대속의 열매 가운데 아무리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축복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도 없이 다 청산되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하나도 없이 다 청산되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용서와 의로움을 얻고 아버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이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무능한 사람을 유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씀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은 지혜의 영이요, 총명의 영이요 그리고 여러분과 나에게 모사의 영이 되어서 여러 가지 카운셀링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며, 여호와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이런 능력의 영으로서 여러분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하면 여러분 자신은 능력이 없으나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므로 말미암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유능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린 비록 연약하지만은 연약함을 극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주께서 채찍에 맞으므로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다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 질병을 짊어지고 이를 대속해 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신실한 믿음으로 주에게 나와서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믿음을 계속하면 기적과 이사로써 오늘날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치료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과 저주에서 해방을 얻는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다 속량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 아담이 가져온 율법의 저주로 말미암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것, 예수께서 그 가시관 머리에 쓰시고 그 가시처의 모든 저주를 다 제하여 버리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저주가 사라지고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주 의식, 패배 의식, 절망 의식, 가난 의식 같은 것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제껴버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여러분과 나에게 죽음과 지옥을 다 멸하고 영생과 천국에 들어갈 확실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축복으로 안 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축복을 안 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폐해 버려야 해요. 오늘날 기독교는 기복신앙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이비 신학자나 사이비 목사들을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독교의 십자가를 철페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공로를 없애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왜, 대속 공로 앞에 있을 때 영혼에 축복이 있고, 무능력자가 능력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축복이 있으며, 질병에서 치료받는 축복이 넘쳐나고 저주에서 해방을 얻는 축복이 넘쳐나고, 영생복락의 축복이 넘쳐나는데 이 기복을 없애버려라 한다면 우린 예수 십자가를 없애버리라는 말이요,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사탄이 뒤에서 사주하여 그래서 우리 기본적인 기독교 십자가 보혈 공로로 말미암아 주신 공로를,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을려고 하는 소위 사이비 신학자나 그 목사들의 엉터리 없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축복을 받는 근원인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그러는데 우리의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겼으니 믿음의 기도를 할 수밖에 없고, 기도를 할 때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요, 우리 예수 믿는 이방인들의 조상이라고 그랬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조상에게 시발점부터 축복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거대한 축복의 약속을 받고서 인생을 출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 창세기 22장 15절로 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재물로 드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양을 잡아서 재물을 드리게 해주시고 난 다음에 큰 축복을 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만 복을 받을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받겠다고 했는데 기독교에서 복을 구하지 마라, 복은 기복 신앙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을 철폐해야 되고,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철폐해야 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천하가 다 복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여러분 또한 창세기 24장 35절로 36절에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밧다마람에 가서 자기 주인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여기에서 아브람의 종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을 평해서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창성케되어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9절을 여러분 다 같이 따라서 한번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성경은 폐하지 못합니다. 제 아무리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믿음이 있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겠다고 했는데 오늘날 복을 구하지 말라니 이것은 성경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럼 둘째로, 기독교의 신앙은 복만 구하고 과연 기독교 신앙속에는 윤리와 도덕성이 없나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이 샤마니즘과 다른 것은 샤마니즘은 미신적으로 가서 복만 받겠다고 기도하는 것이지만은 우리 기독교 신앙은 천지와 만물을 지은 유일한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아가서 심판을 받을 것을 성경은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위나 사는 모든 것이 장차 심판을 받을 것을 언제나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의 생활 가운데 비윤리적으로 살고 파륜적으로 살며 비도덕적으로 산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고 반드시 심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기독교인 치고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반드시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린 언어, 심사, 행동에 윤리적이요 도덕적으로 살려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없이 주님을 거역하고 믿지않는 사람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두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비윤리적으로 비도덕적으로 살 수 있나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반드시 윤리와 도덕적으로 살려고 회개하고 기도하며 노력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샤마니즘은 절대 이기주의이나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도 거룩하고 의롭게 살려고 주야로 노력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자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 기독교 신자들을 공격해서 축복만 구하고 기복만 하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그리고 파륜적인 생활을 한다고 이렇게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거룩하고 참되게 살려고 주야로 회개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축복은 반드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적은 글을 제가 읽었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하루속히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기복 신앙은 없애버리고 오직 교회는 윤리와 도덕적인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나는 내 속으로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것을 교회에서 던져버리고, 오직 교회는 윤리와 도덕의 강연장만 되라고 하면 교회에 올 필요없이 학교에 가서 스승 도덕 교육이나 받고 말지 교회에 왜 옵니까? 소위 신학자라는 사람이 교회에서 복을 구하는 것을 이제는 철폐해야 된다. 한국은 기독교 2세기에 접하여 들어가므로 이제는 백년동안 복을 구하는 것을 버리고 오직 교회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인 것만 가르쳐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내가 보고 이 사람은 신앙의 근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신학을 공부했으나 헛되게 공부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깨달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것이 특권이요,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인간의 문제가 있는 이상 인간은 하나님 앞에 해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문제의 해답을 찾으러 올 때 이것이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윤리와 도덕적인 훈련을 받으러 오는 것은 학교가 받아야 할 것이지 교회까지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문제의 해답이신 하나님을 찾아오게 되고 하나님을 찾아오게 되니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게 되고 응답하니깐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려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저희를 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을 해주시니 응답받고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 것입니까? 어떻게 해서 교회가 축복에 대한 설교를 버리고 교회가 기복 신앙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신앙이 무엇이며 종교가 무엇인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비 목사사이비 신학자들의 헛된 소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문제의 해답을 받기 위해서 나오고 하나님의 문제의 해답을 받고 축복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성령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 의식을 가져옵니다. 자나깨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느끼게 하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의로운 것처럼 의롭고,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고 참되게 살려고 늘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속에 서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 우리 교회가 기복 신앙만 추구하고 윤리와 도덕성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여러분, 예수 믿고 성령이 우리 속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매일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이끌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죄를 지을 때 우리를 꾸짖어 주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므로 일종의 종교나 철학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회개시키시고 훈련시키시고 깨뜨리시고 연단시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 주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그런 신앙생활을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언제나 극단적인 신앙 생활속에 서면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극단적인 상황속에 서면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사 모든 일에는 극단적인 생활 속에 서지 말고 중용의 도를 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신앙인 이상 항상 기복적인 면이 강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때, 복을 받을려고 미문제를 해결점을 얻을려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를 구할려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찾는 이유 그 자체가 벌써 문제의 해답을 구하고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복이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 상에 제껴놓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와 도덕의 근원이신 절대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인 이상 하나님의 윤리적 도덕적 요구를 무시하고 축복을 받을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윤리와 도덕으로 돌아오라 그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삶을 살았었으면 이것을 다 버리고 이것을 씻어내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 것입니까? 천국이 여러분 복이 없으면 무엇 때문에 천국 들어갈려고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구하는데 기독교가 복을 구하지 마라면 천당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국에는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이 넘쳐 흐리고 잇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소위 저 사이비 신학자나 사이비 목사들의 조그만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괴변을 말하기 위해서 기복 신앙은 나쁘다, 교회에서는 복을 구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복을 구하지 말라. 오직 도덕성. 윤리성만 주장해라. 이렇게 말하는 어리석고 철없는 소리에 여러분께서 추호도 동의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며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신앙과 종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문제의 해결을 얻기 위해서 찾으십시오.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오중복음이 넘쳐나는데 이 오중복음을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십시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데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사함 받았다, 능력을 주신다, 치료해 주신다, 축복 주신다, 영생을 주신다는 말을 듣고 믿었으니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 구할 밖에 없고, 구하여서 축복을 받으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을 받고 이 축복과 함께 우리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섬기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며 이 하나님의 받은 축복을 나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 축복을 가지고서 천하 만국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 사업에 사용하며 나보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못난 사람들에게 나누어 갖기 위해서 우리는 축복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가 흩어 널리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은 즉 그 의가 영원히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 여러분과 나는 어느 곳에 가나 축복을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두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축복을 구할 수가 있고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 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는 그 축복을 가지고서 온 천하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들이 다 될 수 있습니다.

- 기 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교회는 기복하러 올 수 있으니 감사하옵나이다. 복을 구하러 오고, 우리는 복을 받고 이 복을 또 온 천하만민과 나눌 수 있사옴을 생각할 때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사이비 신학자나 목사들은 아버지 복을 구하러 오지 말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는 어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너를 쉬게하리라고 하시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복을 구하러 오신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옵시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그들이 복을 구할 때 하나님이여 들어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께 부르짖는 사람들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주님께서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참여할 때 오중의 축복이 강물같이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한 사람도 저주아래 사는 사람이 없게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성도들 생활속에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께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올리옵고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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