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2004

방언 기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by 삶의언어 posted Jun 23, 2024 Views 58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방언기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이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방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50일 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있더니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베드로가 이탈리아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자들 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 후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그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 오순절 사건은 1901년 1월 1일 미국 캔사스주 토페카시에 있는 벧엘성서신학교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학교의 학장이었던 찰스 파함이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에 대한 증거를 성경적으로 논문을 적어내라고 했습니다. 전교생들이 열심히 성경을 살피고 성령세례받은 증거가 무엇인지 논문을 적었는데 모두 다 똑같이 성령세례 받은 증거로써는 사도 시대에는 방언을 말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학생들은 성령이 오시면 성령받은 증거로 방언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기도한지 3일이 지난 1901년 1월 4일 아그네스 오스만이라는 여학생이 맨 먼저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자 전교생이 모두 다 연이어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이 뜨거운 불길 가운데 나가 전도를 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령운동이 미국전역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5년 후인 1906년 4월에 아주사거리에서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벧엘신학교에서 공부했던 시무어 목사님이 LA의 보니브레스트리트에서 설교하던 중에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교회에 마룻장이 다 내려 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넓은 장소가 있는 아주사거리에 나와 마굿간을 빌려서 그곳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이 집회는 온 세계 사람들이 와서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매일 계속해서 3년 연속했습니다. 그 불길이 구라파, 남미, 아시아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토페카의 성령의 역사와 아주사거리의 부흥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방언을 말하므로 시작되어서 그것이 오늘날까지 100여년이 넘도록 온 세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론]
1. 방언은 성령충만의 확신을 준다.
첫째로, 방언은 성령충만의 확신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도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감화, 감동하고 우리 마음에 임하신 것과 성령 세례 받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인 것입니다. 성령 세례 받으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증거로써 나타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 제가 대만성회를 할 때 성회 위원장을 맡았던 대만에서 가장 큰 침례교 목사님 주연아 목사님께서 이런 간증을 제게 해주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중국 본토가 공산당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상해에서 신학교를 다녔는데 피난할 때는 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만 중국이 공산화되기 시작하자 신학생들은 위기감에 처해서 모든 신학공부를 그치고 강단에 모여서 하나님께 성령의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님 우리를 이 위험에서 건져 주옵소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이 난관을 능히 극복하게 힘을 주옵소서.”하고 간절히 합심해서 기도를 했는데 전교생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상해신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성령충만하고 모두 다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길같은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난 다음 중국이 공산화 되었으나 그 무시무시한 핍박 중에도 지하에 내려가서 끊임없이 복음을 증거하여 복음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 중국이 이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온 중국 전체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제가 들었습니다.
여러분 왜, 방언을 말하느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 대답은 방언을 말하게 되면 내가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확증이 마음속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저도 성령세례 받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날은 성령이 충만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다가 어떤 날은 기운이 스산하고 괴로울 때는 ‘아~ 성령 안 받았구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성령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받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제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마음속에 확증이 생겼습니다. 사도들이 성령받고 방언 말한 것처럼 나도 방언을 말했으니 ‘기분이 좋든 나쁘든, 날이 맑은 날이나, 날이 흐린 날이나 나는 성령받은 사람이다. 왜, 그 증거가 내 입에서 나오는 방언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방언을 말하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방언은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둘째로, 방언은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4장 14절에도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방언기도는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내가 방언을 해도 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내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성령으로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비밀이란 누가 알아들으면 비밀이 안 됩니다. 공개된 것입니다. 방언기도만은 내 마음도 알아듣지 못하고 사탄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비밀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젊은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사실 못 알아듣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비밀스러운 말입니다. 젊은이들은 선생님을 요사이 ‘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다. 최고다’라는 표현으로는 ‘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얼굴이 예쁘면 ‘얼짱’ 몸이 좋으면 ‘몸짱’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요’ 하는 말은 ‘방가’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썰렁하다’하면 재미없다는 말입니다. ‘얄딱꾸리하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열받는다. 뚜껑이 열린다’는 것은 화가 난다는 말입니다. ‘초딩, 중딩, 고딩’하면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라는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채팅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글자는 하나도 없고 기호나 그림 같은 것을 서로 주고받는데, 나 같은 사람이 보면 그게 글인지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끼리는 서로 잘 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들만이 주고받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방언을 말하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만 통하는 말이 됩니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게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사탄이 알면 미리 가서 다 방해를 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우리가 말로 하면 마귀가 알아듣고서 미리 훼방을 놓을 수 있지만, 우리의 영이 마귀도 알아듣지 못하고 우리 마음도 알아듣지 못하게 우리의 속사정을 하나님께 방언으로 다 아뢰면 하나님이 알아들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역사해 주기 때문에 마귀도 속수무책이고 훼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비밀적인 언어로써 기도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 비밀의 언어가 바로 방언인 것입니다.


3. 방언은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셋째로, 방언은 자기 신앙의 덕을 세웁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덕이란 말은 헬라어로 ‘호이코스 데모’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두 단어로 되어 있는데 ‘호이코스’라는 말은 ‘집’이라는 말이고 ‘데모’라는 말은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신앙의 덕을 세운다는 것은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자기 신앙의 집이 점점점 더 강하게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방언을 많이 말하면 마음속에 믿음의 기운이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개인의 체험으로 언제나 부흥회 나가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30분 내지 1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음속에 기가 꽉 들어찹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기가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가 빠진다는 말 있잖습니까? 기가 빠지면 완전히 녹초가 되지 않습니까? 또 너무 답답하면 기가 찬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기찬 일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방언으로 기도하면 믿음의 기가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가 꽉 들어차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서 선교할 때 대중 앞에서 귀신도 쫓아내야 되고, 많은 병자를 고쳐야 되는데 그때 방언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찹니다. 두려움이 들어차기 때문에 말씀이 있어도 실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30분 내지 1시간 기도하고 나면 내 신앙에 덕이 쌓아집니다. 내 신앙의 집이 지어져서 신앙의 기가 꽉 들어차게 되고 믿음이 담대하게 되어서 대중 앞에서 두려움 없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치료의 역사를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목회하는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절실한지 모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러 오기 전에도 30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방언기도는 내가 다 아는 하나님 말씀, 내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꽉들어차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기도의 역사를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방언을 하면 자기의 신앙의 덕이 세워지고 예언을 하면 교회의 덕이 세워집니다. 예언은 오늘날 설교의 말씀을 말하는 것인데 설교를 깊이 있게 은혜롭게 하면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마음속에 믿음이 쌓아지고 힘이 있어지지 않습니까? 좋은 설교를 들으면 믿음이 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해지고 믿음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은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기도하지만 방언은 자기의 신앙의 집이 쌓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 마귀는 우리의 신앙의 집을 자꾸 허물려고 합니다. 마귀를 통해서 신앙의 집이 무너지고 문드러지지만은 방언을 말하면 신앙의 집을 자꾸 지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어려운 세상에 살면서 매일매일 방언 기도를 함으로써 자기 신앙의 덕이 꽉 들어차서 자기도 신앙에 튼튼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신앙을 전달할 수 있는 믿음의 기가 꽉 들어찬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방언은 마음의 곤비함에서 해방시켜 준다
넷째로, 방언을 하는 것은 방언은 마음의 곤비함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절 우리 다같이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소한 입술을 영어로는 “스테머링 립스”라고 하는데 ‘푸~우’ 하는 이것이 생소한 입술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사람은 방언한다고 하면서 ‘따따따따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냐. 저게 무슨 방언이냐?” 그러나 생소한 입술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방언을 말할 때 그렇게 우리가 듣기에는 입술 떠는 어린 아이의 소리 같지만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일종의 방법인 것입니다.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우리에게 상쾌함을 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여유와 기쁨을 잃은 채로 살아갑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음에 병이 들어차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가득 들어찹니다. 아무리 해도 마음에 다가오는 불안과 공포,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내일을 바라볼 수 없는 불안에 싸였을 때 모든 사람은 스트레스에 처해 있고 즐거움이 없습니다. 슬픔이 꽉 들어차고 조금만 잘못하면 서로 분쟁을 하고 논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마음속에 깊이 있는 스트레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에서 해방되어 마음에 상쾌함을 가지고 평안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6.25사변 당시 우리 집에서는 우리 어머님 아버님께서 건어물점을 했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미역도 있고 그곳엔 명태도 있고 멸치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 건어물장사를 하셨는데 우리 집 다락에 그 건어물을 많이 쌓아서 쌓아 놓았습니다. 미역도 멸치도 명태도 그리고 다락문을 닫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내 친구들을 청해다가 내 방에 왔는데 얘들이 들어오자마자. “구린내가 난다. 이상한 생선 썩은 구린내가 나는데 왜 이러느냐?” 저는 코에 익숙해서 전혀 냄새가 안 납니다. “무슨 냄새가 나는 거야? 아무 냄새 없는데..” “아니야~ 너희 방에 무슨 쿵큼한 냄새가 난다.” 그런데 방에는 안보이지만은 벽장 다락에다가 그런 것을 넣어가지고, 문을 꼭 닫아놓으니까, 눈에는 안 보여도 벽장 속에 그것이 있어서 냄새가 났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사람들은 가슴속에 벽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는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의식 10분의 9가 잠재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을 현재에 감당하지 못하니까 전부 잠재의식 속에 밀어 넣습니다. 마음의 다락 속에 모두 다 밀어 넣어 놓고 있습니다. 마음의 다락 속에 밀어 넣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 괴로움이 냄새를 풍깁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냄새가 납니다. 마음에 슬프고 고통스럽고 혹은 머리가 아프고 관절염이 다가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소화가 안 됩니다. 그런데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다락 속에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부패하고 썩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우물물이 아주 맑고 좋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난 다음 우물물을 들여다보면 기름띠가 올라와서 누렇게 기름이 물에 둥실둥실 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통 때는 안 그런데 비가 와서 물이 많이 차여오고 우물물이 높아지니까 우물 밑에 있는 것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우물을 청소해보면 애들이 고양이 죽인 것도 우물에 던져놓고, 강아지 죽인 것도 던져 넣고 신발도 던져 넣고 이런 것이 다 가라앉아서 보통 때는 없는 것 같지만 물이 불어나니까 이것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다락 즉, 잠재의식 속에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이 어떻게 청소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현재 생각하기 싫은 것은 전부 다 밀어 넣고 있습니다. 나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잊어버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밀어 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소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요사이는 정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를 찾아가서 꿈 해석을 해주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속에 감추인 것을 풀어내 주어서 마음을 고치고 마음으로 말미암아 다가온 질병들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방언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로써 우리 영이 우리 마음의 다락 속에 들어가서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방언이란 빗자루를 들고 들어가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잠재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다 쓸어서 청산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쾌쾌한 냄새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하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날이 갈 듯이 기뻐지는 것은 아주 어두컴컴한 방에 썩어져가는 것이 잔뜩 있던 것들을 청소하고 나면 방안이 상쾌해지고 즐거워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내 마음의 다락이 청소가 되고 깨끗해지면 마음속에서 향기가 나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종교단체에서 발표한 것을 보니까 방언을 말하는 사람 중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를 하므로 정신병을 유발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가 다 치료되고 소재 되어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기도는 개인의 마음을 청소하고 내 마음에 감추어진 상처를 치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 방언을 말하는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을 왜 하느냐?
여러분, 우리 진공청소기로 청소 같은 것 할 때 어떻게 진공청소기가 작동하는지 모릅니다. 요란한 소리가 나지만 소재가 됩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몰라도 기계가 돌아가서 소재가 됩니다. 방언하는 이유가 뭐냐,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왜 하느냐? 몰라도 우리 마음속에 소재가 되니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숨은 곳이 소재가 됩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이 목욕을 하고 소재가 되고 청소가 되고 건강하게 되고 치료에 대해서 우리가 상쾌하고 평안하고 즐거운 긍정적인 신앙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5. 방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이다
다섯째로, 방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한치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날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죠. 너무나 연약한 존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불확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죠. 그런데 이런 연약함을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와서 친히 도와주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므로 미래에 불확실성 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합니까? 성령의 기도는 방언기도인 것입니다. 방언을 통하여 아주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권사님 한 분이 종로구 역에서 구역예배를 인도하러 종로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해야 되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생기는데 종로 길바닥에서 어디서 기도를 합니까? 할수 없이 길거리 구석에 앉아서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무슨 기도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갈급하여 기도해야 되겠는데 무슨 기도를 할지 몰라서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방언으로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기도를 하니 마음이 평안해져서 눈을 떠보니까 사람들이 쫙 둘러 서 있습니다. 미친 여자가 이상한 말로써 야단법석을 하고 기도를 한다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털털 털고 일어나서 그는 빨리 구역예배에 출석했습니다. 구역예배를 인도하고 돌아오면서 “주님이여 내가 왜 이렇게 간절히 방언으로 기도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에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셨는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기에 성령이 기도하셨습니까?”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그만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없는 동안에 도둑이 들어와서 집을 털었는데 옷가지가 마당까지 흩어져 있었습니다. 방안을 보니 농장을 다 뒤져서 흩어 놓았습니다. 귀중품, 귀금속하고 얼마간에 모은 돈을 농장에 넣어 놓았는데 이것 다 가져갔습니다.
이제 큰일 났습니다. 남편은 경찰관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 예수에게 미쳤다. 돈 있는 것 교회 다 갔다주지?” 그랬는데 이제 도둑이 와서 금, 은, 패물하고 돈을 다 가져갔으면 이제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죽게 됐다. 그는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 “아이고 하나님! 이제 남편에게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남편은 ‘너 돈하고 귀금속 교회 다 갖다 주었지?’ 그럴 것이니 이것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여 날 살려 주십시오.” 하고서 울면서 허둥지둥 농장을 들춰 보니까 옷가지를 다 들춰 내놓았는데 돈은 그대로 있고 귀금속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적의 눈을 막은 것입니다. 도적이 집에 들어와서 훔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적이 오는지도 모르니까 얼마나 연약합니까? 하나님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길거리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하게 해서 기도를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천사가 도적의 눈을 막아 버렸으니 눈뜬 장님이 되어서 전부 옷가지만 들춰 놓고 돈도 귀금속도 손대지 못했습니다. 그 권사님 내게 와서 너무나 고맙다고 너무나 감사하다고 그 간증을 보고 난 다음 그 남편도 회개하고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한다. 여러분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다. 갈급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연약하니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김락형 장로님이 월남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육군중령으로서 월남전쟁에 참전했는데 아주 치열한 전쟁을 한 앙케전투에 참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 때에 여미자 권사였는데 여미자 권사님이 아들 때문에 밤새도록 엎드려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집에도 안 가고 교회에서 “우리 아들 월남에서 살아 돌아오게 해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루는 아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제게 왔어요. 여미자 권사님이 “목사님 내가 마음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기도할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들이 어느 전선에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기도를 할 수가 없어요. 기도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권사님,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여미자 권사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내 아들 김락형 중령 지금 일선에서 싸우고 있으나 어느 처지에서 어떤 환경에서 싸우는지 모릅니다. 성령께서 아시니 성령이 나를 통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방언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께 맡기면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래서 밤새도록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가 우리 한국군이 앙케전투에서 어마어마한 전투를 할 때였습니다. 나중에 김락형 장로님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그때 앙케전투에서 포탄이 떨어져서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지가 찢어져서 죽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자기는 안 죽고서 무사히 보호를 받고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 기도 덕분이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을 사지에 보내놓고 난 다음에 어찌할지 몰라서 발버둥 치는 부모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와서 “목사님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마음이 답답합니다.”
성경은 약속해 주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구 간구하시니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24시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성령께 맡기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므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6. 방언은 통역이 따르면 예언과 같다
여섯째로, 방언은 통역하면 예언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3절에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라고 말했고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방언을 통역하면 예언과 같습니다. 방언을 하면 성경에는 통역하기를 간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언을 직접 통역 안 해도 그 나라 말로써 알아듣게 할 때도 있고 또 통역을 통해서 예언처럼 알려 드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제가 복음 증거 할 때 일본 여성도 한 분이 제게 와서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난 다음 방언이 나오는데 어찌나 유창하게 나오는지 이거 정말 가짜 아닌가? 그래서 마음에 겁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늘 하나 있는 동생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동생은 이태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생이 구원받게 해달라고 늘 기도를 했는데 하루는 동생에게 무슨 일로 전화를 하는데 예약해놓고 난 다음 방언기도가 쭈~욱 나오는데 마치 중지도 못 시키고 전화를 두고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난 다음 그다음 방언이 뚝 그쳤어요. 그러니까 동생이 “누님! 뭐라구요? 뭐라구요?” “얘야 미안하다. 그걸 방언이라고 하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냥 성령받고 난 다음 내 입에서 나오는데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너에게 전화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전화에 방언이 나왔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아니 미안할 것 없어요. 누님이 분명한 이태리 말로써 나보고 뭐라고 말씀했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너희 죄를 용서하고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니 더 지체하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 분명하게 이태리어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누님은 이태리어를 한글자도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태리어를 이렇게 잘합니까?” 그래서 “얘야~ 내가 이태리어를 알수가 있느냐? 그걸 방언이라고 한다.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서 방언으로 말한 것인데 나는 못 알아들어도 네가 알아들었으니 좋구나” 그 일 후로 동생이 그 누님께 일어난 기적을 보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그런 간증을 그 누님이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오순절 날에도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할 때 이방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의 말로 알아들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방언은 직접 통역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채플에 가서 저녁에 기도를 하는데 방언이 나옵니다. 방언을 하고 난 다음 통역이 나오는데 ‘네 앞에서 지금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는 저 여자는 예수 믿는 여자가 아니라 삼각산에서 내려온 무당이다. 무당 귀신을 쫓아내라!’ 얼토당토 안 하게 그런 통역이 입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실에 불을 켜고 앞에 보니까, 어떤 여자 한 사람이 나와서 웃자 웃자고 손을 흔들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쳐!’ 딱 그치면서 아주 뱀눈을 가지고 나를 쳐다보는 겁니다.
“네가 누구냐?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 그러니까 “삼각산에서 내려온 귀신이다. 어쩔래?” 그러더라구요. 정말 전 처음 체험했습니다. 그때 방언을 하다가 방언통역이 나오면서 “저 앞에 앉은 여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전부 귀신이 들려서 하고 있는 것이므로 나를 욕하고 있다. 중지시켜라.” 그래서 내가 중지시켜서 그 여자를 쫓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방언의 통역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준 체험을 저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방언기도를 하고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방언통역을 주시는 것입니다.


7.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일곱째, 방언기도를 하는 것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바울선생은 많이 기도하신 분입니다. 기도란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신령해지고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합니다. 여러분 바닷물도 찰랑거리는 해변가에 있는 것보다도 자꾸 깊이 걸어 들어가면 나중에 깊은 물 속에 헤엄을 치잖아요. 에스겔의 환상에서 보면 그가 강을 건너는데 제일 처음에는 발목에 채이고 그다음에는 무릎에 채이고 그다음에는 강물이 허리에 채이고 그다음 헤엄치게 되었다 했습니다. 오늘날 성령이 충만한 것도 발목에 충만한 정도는 교회에서 끌려다닌 사람이고 무릎까지 충만한 사람은 꿇어앉아 기도하는 사람이고 허리까지 충만한 사람은 이제 주님께 맡긴 사람이고 헤엄치는 사람은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지려면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한 5분 10분 기도해서는 성령충만할 수 없습니다. 오래 기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아는 말로만 오래 기도할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아는 말로 기도하고 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찬송하고 영으로 방언으로 찬송한다. 방언기도를 하면 내가 알아듣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여기에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방언기도를 하라 그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3시간 이상씩 기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뜹니다. 3시간 이상 할 말이 없지 않는가? 세계 여러 곳에 가서 제가 기도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적어도 하루에 1시간 이상 3시간 가까이는 기도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 내 자신을 위한 기도와 가족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는데 많이 했다고 시계 보면은 5분밖에 안 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30분 이상 1시간, 3시간을 기도하느냐. 그것은 방언으로 기도 안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할 말이 없으면 또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한참 기도하면 또 은혜를 받아서 또 아는 말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또 지치면 또 방언으로 기도하고 밤새토록 할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할 수 있습니다. 며칠이고 계속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래서 방언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써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저는 저의 46년간의 목회를 돌이켜 볼 때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 안 했으면 이 목회를 계속할수 있었을까 지치고 피곤하고 영감이 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레마를 받지 못하고 할 때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변화받고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1시간 이상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
방언은 놀라운 기도의 언어입니다.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방언을 많이 말함을 감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선생은 고린도 교인들이 다 합쳐서 하는 방언보다 더 많이 방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들어있으면서도 방언을 하고, 여행하면서도 방언을 하고, 그리고 천막을 만들면서도 방언을 했습니다. 우리 아는 기도는 아는 말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지만 방언기도는 내 마음이 하지 않고 내 영이 성령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설거지 하면서도 방언하고, 걸어가면서도 방언하고, 일하면서도 방언하고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자동기계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숨을 쉬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심장이 뛰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방언으로 늘 기도하게 됩니다.
저는 밤에 자다가 깨어나면 혼자 방언을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잘 때 아무것도 모르는데 혼자서 성령이 폭풍우처럼 불어와서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가 신령하고 긴 기도를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언어입니다. 아는 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언어인 것입니다. 우리 한 구역장님은 성령 세례받고 방언 말하고 싶어서 “하나님 나에게 성령세례 주시고 방언을 달라고 굉장히 기도를 많이 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아침식탁을 차리는데 남편도 와있고 애들도 와있는데 식탁을 차리자 그 자리에서 뛰고 구르고 방언을 하고 밥도 못 먹고 밥상이 다 날라 가 버리고 남편과 애들이 눈이 휘둥그레지고 왜 이러냐고 엄마를 붙잡고 그런데 그만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제 성령을 충만히 받을지 모릅니다.
제가 오키나와에서 집회를 하는데 오키나와 군인 한 사람이 이런 간증을 합니다. 이 미군이 자기도 성령받고 방언을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어서 주일날 기도도 하고 잠자리에서 기도도 하고, 그리고 몇 달이고 계속 기도를 했는데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노는 시간에 길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성령이 임해서 자전거를 타면서 방언을 하고 그냥 야단법석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언제 임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면 언제 올지 모르게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또 성령이 방언기도를 주시면 방언기도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유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방언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왜 하느냐? 왜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충분히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시기 때문에 주님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의심도 많이 들어오고, 마귀의 공격도 많이 들어올 때 신앙의 확신이 필요하고, 신앙의 체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우리 아버지 비밀의 병기인 방언으로 말하고, 기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방언기도를 통해서 성령충만의 확신을 갖게 되고, 내 아버지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과 비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방언이 우리를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해주시고, 방언기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 마음이 정결하게 되고 소재 되고, 평안과 안심을 가져올 수 있게 되고 방언을 통해서 길고 깊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성령충만받고 사도행전에 오순절날 주의 제자들이 성령받고 방언 한 것처럼 우리도 다 성령충만하고 방언을 말하므로 이 악한 세대에 성령의 능력으로 깨어서 신앙생활할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