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1984

십자가와 믿음

by 삶의언어 posted May 17, 2024 Views 48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십자가와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셨고,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믿음의 약속을 해주셨고, 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재료인 풍성한 성경의 말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는데,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해서 여러분과 저에게 제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코 1984년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으로 넘치는 삶을 반드시 살아야만 되겠고, 이 넘치는 은혜가 우리 조국과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역사로써 나타나야만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이 믿음의 위대한 생활을 머리로서는 다 알면서도 실제적인 생활에 나타나지 않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의 위대한 역사는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서야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은 절대로 믿음으로써 역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시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으며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 나무를 나게 하시고, 진실로 극락같이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에덴 동산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먼저 십자가를 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이 동산에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의 약속에는 반드시 그 약속을 누리기 전에 십자가를 먼저 걸머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가 하나님의 금기의 말씀이며, 그 다음 사탄이 와서 시험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나무 밑에 서서 있을 때 사탄이 뱀의 형상으로 와서 하와에게 말을 걸었었습니다. "정말 동산에 있는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와가 "아니라,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따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셨나이다" 하니까 뱀이 말하되 "아니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이 실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까 하나님이 두려워함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그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 여기에서 그들은 십자가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시기를 "이 실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사탄은 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쫓아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게 보이게 하여서 이것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기로에 서서 아담과 하와가 만일 십자가를 걸머질 각오를 하고 자기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더라면 마귀의 시험은 떠나가고 그 때 이후로 청춘 만대로 아담과 그 후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전쟁과 피 흘림이 없는 영원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들은 십자가를 걸머지기를 거부하고 만 것입니다. 그들 자신을 부인하고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따를 것을 부인 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의 역사는 죽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그 아름다운 동산이지만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만이 소유할 수 있는데, 십자가를 거부해버린 그들에게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결국에 그들은 실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십자가를 내던진 그들은 하나님의 예비한 믿음의 세계에서 쫓겨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일체의 모든 것은 모두다 믿음으로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믿음은 십자가를 걸머지는 사람에게만 역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부인한 사람에게는 믿음의 역사는 사라지고, 믿음이 사라질 때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서 쫓겨나 버리고, 가시와 엉겅퀴를 밟으며 저주를 지고 죽음을 걸머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보게 될지라도 이 사실을 뼈저리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굉장한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고,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서 나가면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 막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이루어지기 전에 아브라함은 먼저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인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이 사실이 아브라함에게는 십자가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축복은 얼마나 듣기에 좋은지 모릅니다. '큰 민족이 되고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며 너희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저주하리라' 하셨으니 이 은총과 축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과정을 지나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과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꾄 마귀는 역시 아브라함을 꾀었었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필요 없다. 그러한 십자가 걸 머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약속 그대로 믿기만 하고 나가면 될 것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만 믿어라, 십자가는 절대 버려라, 십자가 없는 믿음을 가져라,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믿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믿음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십자가를 배척해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토를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본토에서 얻은 모든 오곡백과와 모든 재산을 하나도 남김없이 수레에 실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본토에서 얻은 노비, 남녀 종까지도 다 거느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비 집을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친척과 아비 집을 안 떠난 것은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그리고 자기 아내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걸어갑니다. 그는 믿음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말씀에 의지해서 갑니다. 가나안 땅에 가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을 비와 같이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창대하게 되고, 그리고 거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보니 축복은 커녕 천지가 저주로 꽉 들어찼었습니다. 태양은 불같이 활활 타오르고, 하늘은 놋같이 되어 있고, 온 천지는 빨갛게 불타고, 짐승들에게 먹일 풀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양식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오직 기다리는 것은 절망뿐이었었습니다. 축복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앉아 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이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나님 약속을 믿습니다"해도 하늘에서 아무런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그 마음 속에 믿음의 역사는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섰습니다만,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아무런 능력도 나타내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십자가를 내어 던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도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어찌할 수 없어 밥 달라고 부르짖고 그는 조카의 손을 잡고 그 아내와 함께 이제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도 아니하신 애굽 땅으로 목숨이 원수가 되어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그 다음 생활은 오직 닥쳐오는 것은 처절한 절망과 심취 밖에 없었습니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해서 바로에게 시집을 보내는 비극적인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제 복을 주었나요? 언제 아브라함의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나요? 그가 하나님께 꾸중을 받고 다시 그 아내를 찾고 가나안 땅에 돌아왔었을 때,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고 난 다음에, 진실로 이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이 다 아브라함을 떠나고 난 다음에, 혹심한 시련을 통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을 배우고 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아 너는 고개를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머졌을 때 비로소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서 창대케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1984년 새해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고, 이 새해에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성령께서 나를 돕는 보혜사가 되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잔뜩 가지고 있어도, 우리가 십자가를 내동댕이 쳐버리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천지를 변화시켰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어서고 앉은 곳마다 위대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나이 삼십이 되셔서 요단강에 세례 받으신 다음에 일어나셔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40주, 40야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제 마귀의 시험을 당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당한 그 마귀의 시험, 아브라함이 당한 그 마귀의 시험을 예수님도 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받아들일 것이냐, 십자가를 제쳐 버릴 것이냐, 이 문제를 마귀가 와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전력을 기울여 사람에게 와서 십자가를 걸머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만 안 걸머지면 여러분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마귀는 말하기를 "십자가 걸머지지 말고 말씀 그대로 믿어라. 그러면 된다. 말씀 믿어라. 십자가 같은 것은 걸머질 필요가 없다" 십자가만 제쳐놓으면 정통이 되든, 자유주의 신앙이 되든, 무엇이 되든, 아무리 믿어 봤자 믿음의 능력의 역사는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 와서 마귀가 십자가를 부인할 것을 종용합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께 와서 말하기를 "배고프지. 나는 사탄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일보다도 먼저 구복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그러므로 먼저 배부터 불어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 사업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로 떡 덩어리가 되게 하여 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 사업을 생각하라" 십자가가 걸려왔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마귀는 "말씀으로 살 것이 아니라 떡부터 먼저 먹어라. 말씀은 차후에 믿어도 좋다. 떡부터 먼저 먹고 난 다음에, 차후에 말씀을 생각하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로에 섰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자기를 부인할 것이냐, 그렇지 안으면 십자가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내 구복부터 채우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말씀을 따를 것이냐' 여기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십자가를 택한 것입니다. 사탄을 보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기록되었다" 십자가 앞에 마귀는 절대로 못 섭니다. 마귀를 보고 아무리 큰 소리로 고함을 쳐도 그 소리를 듣고 마귀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철야하고 금식한다고 해서 마귀가 그것보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마귀는 십자가 앞에 견디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정과 욕을 못박아 버리는 십자가 앞에서 마귀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험의 장면에서 마귀는 떠나갔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다음 시험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은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러 올 때 "네가 뛰어 내려라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사 네 발이 부딪치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 사탄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자기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여 뛰어 내렸다고 말해 보십시오. 만일 자기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쓰지 않고 자기 인기를 위해서 썼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부인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의 구복을 채우고, 자기의 인기를 채운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부인해 버렸으므로 그때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생애 속에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상황에서 단호하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 단호하게 예수님은 십자가를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의 인기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에 데리고가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만일 네가 내게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네게 다 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인간인 이상 십자가 권한 없이 온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소유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배척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 얻지, 십자가 없는 그러한 사탄의 유혹에 의한 영광은 예수님께서 배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주 너의 하나님께만 절하고 주만 섬기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만 섬기지, 너희 사탄의 수작을 통해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얻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예수를 떠나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속에 마귀는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은 예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모두다 십자가를 걸머졌기 때문에, 그 다음 예수님이 광야에서 나올 때 성령의 권세와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나오셨고, 그 믿음의 말씀으로 죄인이 용서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파도가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믿음으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조건인 성경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새해 하나님의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려면 여러분의 생활 전반에 걸쳐 십자가를 걸머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은 절대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어떠한 면에서 우리가 십자가를 걸머질까요?

 

첫째로 우리는 육신의 정욕에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내 자신을 부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하나님 나라보다 먼저 앞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은 종교다. 종교라는 것은 다 내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해결해 놓고 난 다음에 종교를 믿는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기도 치고 탐관오리 노릇도 하고 적당히 해서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난 다음, 악세사리로써 교회 나가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부인해버리기 때문에 오늘날 기도해도 힘이 없고, 전도해도 힘이 없고, 말씀을 믿어도 아무런 능력도 안 나타납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살았다가 죽는지 압니까? 왜 교회 와서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아니하며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 문이 열리지 아니하고 변화의 역사가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압니까? 그것은 교회가, 성도들이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것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주일도 범하고, 십일조도 도둑질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지도 아니하고, 신앙을 하나의 악세사리로 붙여 놓았기 때문에, 오늘 십자가를 져버린 그와 같은 신앙에 아무리 "믿습니다" 라고 고함을 쳐도 목만 터졌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께서 '얼마나 고함소리를 크게 치는가'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여러분께서 '자기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는가'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새해에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보다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을 앞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앞세우면 그 다음 하나님께서 믿음의 역사를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시고,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역사할 수 있으면 믿음은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켜놓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길도 있지만은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우리의 영원한 삶의 자원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세상의 법에 따라 살지마는 영에 속한 사람은 하늘 나라의 신령한 법을 쫓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믿음의 법을 사용한다면 이 세상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능히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새해에는 기필코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십시다.

 

둘째로 안목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해를 살아야 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자기 인간, 개인 자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점점 우리의 삶이 향상되고 수입이 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집을 지으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자동차를 사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텔레비전 세트를 사 들이며, 어떻게 하면 전기 기구를 더 많이 사며, 이런 일에 더 마음의 관심이 기울여져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말씀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등한시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짓고 선교사를 보내고 말씀을 찍어서 해외로 내보내며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이러한 것은 마음속에서 빼앗아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를 받드는 것은 푼돈으로 가지고 받들고, 내가 혹시 시간 있으면 그때 나머지 아무것도 쓸데없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몸 드리고, 먼저 시간 드리고, 먼저 나의 생활에 귀한 것을 가지고서 첫 열매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목의 자랑에 잡혀서 세상의 호화스러움과 사치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뒤로 제쳐놓는 이와 같은 십자가 없는 믿음의 생활을 할 때, 그 기도는 아무런 효과를 발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외치고 아무리 믿습니다 라고 말해도 그의 기도에는 힘이 없고, 그 믿음에는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에 가장 안목의 정욕이 무서운 유혹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이것을 제쳐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세상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의 자랑은 이 세상의 지위, 명예, 권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위,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해서 우상에 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 나라를 헌신짝 같이 던져 버리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치적인 권력이나 지위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타락한 이 세상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저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내면적으로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공공연하게 정초에 일본 신사에 가서 절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찌 신사에 가서 절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정치적인 지위나 명예나 권세 때문에 십자가 질 것을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신앙에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살았다 하나 죽은 것이며, 그 신앙은 형식과 의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치적인 권력이나 지위나 명예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이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먼저 세워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이 일정 30년 동안에 교회가 죽어버린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압니까? 교회가 십자가를 부인했기 때문에 6.25사변 같은 비참한 공산주의의 침략이 있을 때 교회는 기도해서 이 공산주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일본 경찰들의 압력에 못 이겨서 일정 36년, 초기에는 저항을 잘하다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저항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당 안마다 가미다나를 세웠었습니다. 교회당 안에 일본 가미다나 신을 갔다놓고 난 다음에 예배 보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가미다나 신 앞에서 합장해서 절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으니 그 교회당에 무슨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겠습니까? 하나님 여호와의 신을 일본 가미다나 신 밑에 굴복시켜 놓은 다음에 우리가 예배를 봅니다. 이 결과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한국교회가 사분 오열되었고, 그 결과로 한국에 6.25와 같은 전쟁이 생기고, 그 결과로 교회가 부르짖어 기도해도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인간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 때문에 타협해서 하나님 말씀을 져버리고, 십자가를 져버리고, 인간 스스로 탐욕을 먼저 앞세운다면 그의 신앙생활은 아무런 능력과 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1984년도에도 우리는 성경을 읽을 것입니다. 우린 철야도 하고, 우린 금식도 하고, 우린 주께도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내어 던져버리고 아무리 그런 행동을 해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가정이나 조국이나 세계를 변화시킬 위대한 능력은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전 오늘 1984년 정월 초하루 새벽부터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거든 자기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구하리라"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입니다. 십자가를 걸머지면 망할 것 같지만 십자가를 걸머지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오히려 자기가 구하고 찾던 것을 30배, 60배, 100배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지극히 우리 작은 생활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크나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십시다. 하나님 말씀 위에 서고, 우리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십시다. 육신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 세상 자랑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 말씀 먼저 가지고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든, 걸쳤다고 하든,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고 나아갈 때, 십자가를 걸머진 그 사람의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보좌가 진동합니다. 이런 사람이 부르짖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환경이 변화되고, 그리고 영혼들이 살아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능력이 있는 신앙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십자가를 걸머지는데 있는 것입니다. 내먹을 것 다 먹고, 내 즐길 것 다 즐기고, 내 탐욕스런 구할 것 다 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여유 있는 시간에, 여유 있는 돈으로, 여유 있는 힘으로, 이젠 하나님 섬겨 보겠다고 나오는 이런 사람들은 모두다 아담과 하와와 같이 이미 하나님의 예비한 동산에서 쫓겨나온 상태요, 이것은 처음 아브라함처럼 이미 그런 하나님 앞에서 축복이 아니라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십자가는 여러분과 저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진실로 믿음의 위대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어떠한 믿음의 역사를 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에는 십자가를 지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여러분 스스로를 청산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리 부르짖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는 요행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미신이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고 반복한다고 해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오직 십자가만 걸머지면 오늘 이 자리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에 능력과 영광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이 새해에 여러분 중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위대한 기도 용사가 되고, 믿음의 용사가 되어, 부르짖음에 하늘이 진동하고 하나님의 보좌가 흔들리며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나타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여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아니하며, 우리의 조국과 세계 복음화에 앞장서서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여러분 다같이 가슴에 손을 얹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아버지, 우리는 주님 앞에 가슴에 손을 얹고 주를 앙망합니다. 아버지, 과거에 십자가를 걸머지지 못하고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를 먼저 추구하여 살아온 생애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조상 아담과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십자가 없는 믿음의 역사를 하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한 그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린 모두다 십자가에 우리인간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먼저 따라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위대한 승리자가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흑암에 앉은 백성들을 구출하고, 절망에 처한 자에게 소망을 주며, 미움으로 꽉 들어찬 세계에 사랑을 전파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보혜사 성령이여, 십자가를 걸머질 성도들의 생애 속에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자신 한사람,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입니다. 주여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믿음이 오늘부터 활성화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축복하고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