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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도전과 응전

by 삶의언어 posted Oct 19,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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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십자가의 능력
예배드린 날 2011-09-25
오늘의 성구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w_dlC8vnRPE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10절

 

 

인간의 삶과 역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이뤄짐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는 폭발적 성장
예수님과 모세처럼 우리도 삶과 신앙 승리해야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다가오는 수많은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전을 피하거나 쉽게 항복합니다. 그 결과 환경의 노예가 되고 비참한 파괴를 당합니다. 다른 사람은 도전에 대하여 인간적인 힘으로 응전해 많은 상처와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도전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전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로마제국의 10명의 황제가 연속적으로 기독교를 핍박해 기독교인들을 잡아 짐승들과 싸워서 죽게 하고, 나무에 달아 기름을 붓고 횃불로 태우기도 했습니다. 네로 황제로부터 근 300년 간 로마 제국은 어마어마하게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고 로마 통치아래 있는 모든 나라들이 예수님을 믿는 나라들로 변화됐습니다. 잠시 동안은 세상 마귀의 힘이 이기는 것 같으나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로마를 점령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대원군 시대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6명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일가친척의 6촌까지 처형돼 8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30년 동안 200여 교회를 폐쇄하고 2000여 명의 성도들을 투옥시키고 죽이고 고통을 가했습니다. 북한에 공산당이 들어 왔을 때, 공산당은 북한에 있는 교회를 불태우고 30여 만 명의 교인들을 죽이고 교회를 말살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없어졌습니까? 오히려 5만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의 성도가 있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나라가 됐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그 어떤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서 전 세계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이 올 때 도전하지 않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뒤로 물러가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기도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언제나 고난이 있고 난 후에야 영광이 다가오지 영광이 먼저 찾아 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그와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영광을 항상 자신의 뒤에 대동하고 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그릇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 이후에 영광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제가 고난의 때마다 늘 마음에 두고 입술로 암송하는 말씀이 바로 시편 91편 1∼7절 말씀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살아가면서 겪는 엄청난 일들 앞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가거나 포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를 통해 도전을 극복하고 응전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당한 도전과 응전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 300만 명이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나왔을 때 그냥 쉽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2장 40절로 4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야훼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야훼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야훼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유월절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그들이 모두 애굽에서 겨우 나왔는데 애굽의 바로왕이 쉽게 포기하고 놔준 것이 아닙니다. 430년 동안 300만의 인구로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종인데 이러한 무상의 노동력을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바로왕이 “도로 잡아라. 전부 다시 사로잡으라”고 명령하며 도망간 이스라엘 노예들을 다시 사로잡고 반항하면 모조리 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훈련된 군대도 없고 무장도 안한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에 처했습니다. 진퇴유곡의 절망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0∼11절은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야훼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고 이스라엘 자손의 상황을 기록합니다. 고난당하면 원망과 탄식이 나오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차라리 항복하고 도로 종으로 돌아가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종살이하는 것이 낫겠다!”고 자포자기하며 모세를 원망하며 소리쳤습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응전한 모세

 오로지 유일하게 모세만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이 도전에 응전해 극복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서 14절은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모세의 결심을 기록합니다.

 우리도 언제나 고난을 당할 때면 모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플러스해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인생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같이 하리라.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주님을 의지하고 도전에 응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렵고 힘듭니다. 현실에 원수는 눈에 보이고 현재 어려운 환경은 눈에 보이고 체험되는데 예수님이 눈에 보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앙은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억척같이 어려운 곳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모세는 홍해를 향해 전진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부터 22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 기적은 모세가 도전에 응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두려워서 항복하든지 물러섰다면 기적은 사라지고 이스라엘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응전했고, 그 현상을 일반적인 자연현상으로 알고 애굽 군대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진 곳의 한 가운데 오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4:28)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응전하는 생활에 믿음도 없는 사람이 멋모르고 따라왔다가는 이처럼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이 홍해도 가르고 요단강도 가르는 것이지 자연현상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에서도 얼마나 많은 도전이 일어났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써 응전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려움이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어려움이 우리의 생활에 항상 다가오지만 기도로써 하나님께 의지하면 기도의 능력으로 도전에 응전하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라고 시편 105편 39절로 41절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시험과 도전을 주셨을까요? 신명기 8장 14절로 16절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야훼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복을 주기 위해서 이 도전이 다가와서 시험하고 고통을 당하게 하고 회개하게 합니다. 낮추셔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주님이 반드시 고통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우리들의 삶의 도전

 우리들의 삶도 광야와 같아서 끝없는 도전을 당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시련을 당합니다. 무엇보다 죄가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세속의 유혹이 도전해 옵니다. 병이 도전하고, 가난이 도전해 오고, 실패와 죽음, 염려, 근심, 걱정, 미움, 분노, 좌절, 절망 온갖 부정적인 세력이 우리에게 달려들어서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야고보는 도전이 다가오거든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시련과 도전을 겪을 때마다 기뻐할 수 없습니다. 고통스러워합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신앙이 어릴 때는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를 왜 버리십니까?”하고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좀 성장하고 나서는 원망을 멈추고 이제는 고통과 시련 다가오면 그저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며칠을 굶어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 밤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니 지진이 일어나서 해방되었다는 기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그것이 응답의 지진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광야에서 도전 당할 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대속과 도전을 극복한 은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과 마귀의 도전을 극복한 은혜를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온몸으로 마귀의 도전을 받아들여 청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구원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인생에 대한 도전을 당신이 앞장서서 받아들여서 그것을 고난으로 응전해 이긴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6절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입니다. 자기 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하고 피와 물을 다 흘리시고 난 다음에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하시며 그 도전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감당하고 부활로서 다 이기신 것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능히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려고 주님께서는 마귀의 도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게 된 것은 예수님이 고통을 받아들여 도전에 응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다가오는 모든 도전을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 십자가 네 십자가로 걸머져라. 그러면 예수님 부활의 생명도 네 부활생명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항상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삶을 살면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의지하면 성령님이 항상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고 주님이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자입니다. 오늘도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49절로 50절에 보면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주의 말씀은 고난 중에 위로가 되고 주의 말씀이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항상 곁에 두고 항상 묵상하고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좋을 때는 말씀이 별로 필요 없지만 고난 당할 때는 말씀 밖에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말씀만이 우리와 끝까지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9절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문학작품이 어디 있으며 서정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이러한 짙은 표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사랑받고 있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안버린다는 증거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희생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다가오는 각양각색의 도전을 피하면 안됩니다. 피하거나 항복하면 죽거나 환경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응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피투성이 나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큰 승리와 축복을 가져오는 길은 예수님의 대속과 은총과 성령과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변호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돼 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힘과 능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주를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수많은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환경에 도전을 당합니다. 도전에 응전하지 못하면 파탄과 절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있고 말씀이 있고 성령이 계시므로 우리는 도전해서 응전을 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응전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아버지 다윗과 같이 담대하게 믿음으로 골리앗을 대적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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