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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기쁨의 샘

by 삶의언어 posted Jun 22, 2024 Views 1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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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쁨의 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선생은 로마의 칠흑과 같은 어두운 감옥에서 그의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 희미한 촛불 밑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간절한 편지를 썼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선생의 그 지칠 줄 모르는 복음증거의 열정은 그 마음속에 분수처럼 쏟아 오르는 기쁨이 그 원천이요. 그 때문에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환경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편지하면서 그것이 가장 안전한 신앙상태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 매일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근원적인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삶의 활력소가 무산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환희를 체험하려고 몹시 애를 쓰고 있습니다. 혹은 육체적인 쾌락으로 또는 권력으로 금전으로 예술로 학문으로 마음에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확실한 기쁨의 길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길입니다.

첫째, 그 길이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우리는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재미가 없고 두렵고 우리에게 멀리 떠나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기 밝히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화합될 때, 우리 생활 속에 말할 수 없는 영광된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지음을 받고 난 다음에 큰 기쁨가운데서 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직접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쁨이 넘치고 우편에 즐거움이 충만하므로 천국에는 슬픔과 우울증이라는 것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에 살면서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화합만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속에 부귀 영화 곡명으로 살수 없는 그 영원한 기쁨이 속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가 화합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악의 담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자 슬픔이 그 가정에 가득해지고 기쁨을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그 자녀 중에서 맡아들 가인이 둘째아들 아벨을 쳐서 죽이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인생은 늘 슬프고 염려 근심이 끊이는 날이 없고 우울하고 좌절되고 절망했었습니다. 사람 속에 언제나 슬픔의 그림자가 깃들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합시켜 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아니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면 인간은 참된 기쁨을 맛보고 살수 없으며 참된 삶의 활력소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죄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게 하시고 33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펴시고 마지막에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와 우리의 불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형벌의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바로 여러분과 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가 질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여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십자가의 형틀에 높이 달려서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쏟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악을 다 청산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다 헐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고 무죄로 해방시켜주므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다 없어지고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합함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 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화합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화합의 증거는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거듭나야한다고 하는데 여러분 중생의 신자의 내적 증거는 기쁨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마음속에 전혀 기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직 중생의 체험을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 마음에 가장 깊은 속에 말로써 형원할 수 없는 평안과 함께 기쁨이 그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라고 말하니까 여기저기 다니면서 웃고 다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가짜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참 기쁨이란 이 배속에서 언제나 그곳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심산국에 가면 그곳에 안개가 서려 있고 그 안개가 떠나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과 내 영혼 속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이 먹은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여러분 진실로 거듭난 자는 기쁨을 체험한 사람이요. 기쁨 속에 들어간 사람이요. 기쁨의 하나님이 그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있고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대외적인 홀 마크는 기쁨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늘 우울증에 빠져있고 얼굴의 슬픔의 그림자가 거칠 날이 없고 슬픔으로 꽉 들어찬 삶을 산다면 이 사람은 기독교라는 종교는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과 형식은 가지고 있지만 중생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거듭남의 가장 큰 내적 증거는 기쁨인 것입니다. 마음에 슬픔 구름이 사라지고 우울증이 떠나가고 기쁨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화합. 이것만이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외적의 자극을 받지 않고도 속에서 쏟아나는 기쁨인 것입니다. 권력으로 가진 기쁨은 10년 이상 가지 못합니다. 권력이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집니다. 부귀로써 오는 기쁨은 부귀가 몸에 입혀 버리면 기쁨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적인 향락으로 기쁨이 오는 것은 얼마있지 않아 중독이 되어 더 깊은 향락을 추구하게 되고 폐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속성이 그 기쁨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면 그 기쁨이 마음에 넘쳐나고 사람이 기쁨이 있을 때 삶의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는 주부는 생활이 어려워도 가정을 잘 꾸려갑니다. 기쁨이 넘치는 주인은 그 사회생활이 힘들고 괴로워도 이를 능히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이 사라지면 그 모든 환경이 젯빛으로 변화고 마는 것입니다. 호의 호식을 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아름답게 치장한 집에 화려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쁨이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은 젯빛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판자 집에 산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면 저 하늘이 나의 정원이 되고 이 넓은 산천이 바로 나의 초원이 되고 정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보는 것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고 기쁨으로 율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쁨은 행복의 원천이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기뻐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소에 별로 용감하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성령 충만함 받아 기쁨이 가슴속에서 폭발하듯이 넘쳐나면 인격이 변화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 여학생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은 그가 자라난 과정이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는 모 방직회사에 공장에 직공으로 있다가 정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학을 해서 그래서 신학교까지 왔는데 그것이 짓눌려 가지고서 언제나 혼자 앉아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발표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 동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말자 그만 그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기쁨이 충만해져서 마치 그가 기쁨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가 북을 메고서 저는 파고다 공원에 주일마다 복음 증거를 나갔습니다. 파고다 공원에 나가면 여러분 참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엔 말쟁이들은 다 모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면 막 달려들어서 꼬집고 온갖 조건을 가지고 토를 달고 달려들고 그러다가 안되면 멱살을 잡고 달려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생 때 파고다 공원에서 멱살을 여러 번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하루는 따라 나오더니만 날 보고 자기가 설교 한번 하겠다고 합니다. 앉아서 말도 하지 않고 남에게 와서 입도 못 열고 기도도 못하는 애가 성령 받더니만 그 남자들하고 여러 가지 논팽이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서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가지고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도를 하는데 옆에서 야유를 해도 아랑곳없이 용감하게 전도합니다. 내가 보고 감탄을 했어요. 어디에 저런 사람이 들어있었는가. 그는 성령 충만함 받자 말자 성령의 기쁨이 쏟아 오르니까 그 기쁨이 삶의 활력소가 되어서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해 버리고 전도자가 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보아요. 별로 큰 기쁨이 없어 활력이 없던 사람이 오산리 기도원 가서 철야기도회에 그만 성령으로 충만 받자 말자 굉장한 기쁨을 가지고 조장이 되고 구역 장이 되고 열심히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사도행전 2장 46절에서 4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 교회 오순절 날 이후에 성령의 충만함 받은 성도들이 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기쁨이 충만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하도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힘차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람들을 돌보고 봉사하기 때문에 온 백성들이 다 칭찬을 하고 그리고 거기에 감동되어서 예수 믿고 나오는 사람이 날로 더하여 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언제나 얼굴을 삐죽하게 하고 언제나 우울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고 말붙이기 바쁘게 신경질을 내고 그렇게 하면 누가 그 사람 보고서 친송 하고 여러분 예수를 믿겠습니까.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마음속에 주의 사람이 넘쳐 나서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가지고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더라도 기분이 좋고 얼굴에 광채가 나고 상냥하고 웃음이 들어앉았는가 하면 그러한 사람들과 같이 있길 원하고 그런 사람 칭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억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속에서 그런 기쁨이 쏟아나야 하는데 그 기쁨은 여러분께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이 마음가운데 부은 받음과 동시에 기쁨의 샘이 쏟아 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 받지 못한 교회들은 기쁨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를 보고 왜 성도들이 모여서 찬송할 때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고 통성기도를 하고 요란스럽고 사람이 그렇게 경박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기쁨이 충만해서 기쁨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는데 박수를 안 칠 수 있고 몸을 흔들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기쁨 사람들이 하나님께 고함쳐서 찬미하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기쁨 사람들이 기쁨을 나타낼 수밖엔 없습니다. 교회 하나님 성전에 나오면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기쁨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기쁨의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교회가 공동묘지처럼 우울하고 정막한 곳이면 성령이 떠나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그 속에서 기쁨의 생수의 강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로써 신앙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쳐나야 됩니다. 기쁨이 생기면 철야를 해도 피곤치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기쁨보다 더 위대하게 여러분과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서 15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여기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받아먹으니까 그 말씀이 내게 기쁨이 되고 내 마음에 즐거움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불러지고 사탕을 먹으면 혀가 달아지지만 주의 말씀은 받아먹으면 내 마음이 기뻐지고 즐거워진다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공자님도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깨닫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었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속에 기쁨이 와요.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런 간증을 많이 합니다. 그날은 자기가 교회도 오기 싫고 마음이 짓누르고 우울하고 슬픔이 꽉 들어차서 하나님께 나가기도 싫은데 억지로 끌려서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구름이 걷어지고 마음이 상쾌하고 기뻐져서 밖으로 걸어나갈 때는 발걸음도 가볍게 나가게 되었다는 이러한 간증을 종종 듣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진리에 말씀을 우리가 들으면 그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마음에 기쁨과 마음에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옛날에 몸이 많이 약하고 그래서 몸 속에 축적된 에너지가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저는 피로를 빨리 느낍니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하고 조금만 일을 해도 빨리 피로가 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금식기도를 하기 전에는 나는 자꾸 먹어야 되요. 설교를 하고 나서도 먹고 또 올라와야 되고 또 두 번째 설교를 하고 나서 조금 먹고 올라와야 하고 자꾸 먹어야 되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예민합니다. 저희 집 사람이 늘 보고 웃는데 나는 피곤할 때, 우리 집사람이 피곤할 때 비타민을 먹으라고 비타민을 내 놓으면 눈으로 보고 있어도 기운이 생겨요. 속에 들어가기 전에 보기만 해도 기운이 생겨요. 그래서 날 보고 굉장히 사람이 너무 예민하다고 그러는데 여러분 우리 속에 에너지가 없을 때 음식을 먹으면 힘이 생겨요. 나는 요사이 여행할 때 꼭 무엇을 가지고 가냐면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왕식이라고 있어요. 왕식. 저는 왕식을 꼭 여행하는 가방에 넣어서 다닙니다. 그런데 그 왕식이 참 좋은게 제가 여행하다가 호텔에 짐을 넣고 허기가 생겨서 눈이 들어가고 배가 움추려 있을 때 갑자기 먹을 시간이 없으니까 왕식 봉투를 찢어서 세 봉투만 먹고 나면은 두시간을 설교해도 끄덕 없어요. 제가 왕식 장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도 내 몸에 좋아서 나는 항상 그것을 가지고 다녀요. 왜냐하면 저는 정시에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선교 나가면 그것을 가지고서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제가 저번주일날 여기에서 설교를 못했습니다. 일본 선교를 하고 CGI 대회를 하고 토요일날 제가 롯데 호텔에서 마지막 파티를 열고 난 다음 집에 들어가서 아파서 누웠는데 얼마나 토하고 토했던지 밤 3시정도 되니까 이제 사람이 죽겠어요. 온몸에 탈수증으로 인해 몸이 오물어 들고 숨을 쉴 수가 없고 진땀이 나고 맥이 빠져요. 그런데 밥을 먹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이들이 있는데 깨울 수는 없고 그래서 제가 여행 짐을 꾸려서 왕식을 내어서 제가 세 봉지를 먹었습니다. 세 봉지를 먹고 난 다음 하나님이시여 이대로 내버려두면 내가 죽겠으니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께 손해가 더 많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얼마나 여러분 녹아 떨어졌던지 제가 27년 동안 아파서 주일날 교회 못 나온 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이를 깨물고 나옵니다. 그런데 전번 주일은 주일 아침인데 침대에서 못 일어나겠어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제는 교회도 다 지어놓고 50만 성도도 차고 CGI 세계 대회를 했으니 이제 너 쓸데 없다하고 버리나이까.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야. 이 자식아 일어하는 것만 배우지 말고 노는 것도 배워라. 오늘은 외국사람이 다 와서 알아서 설교해 주는데 뭐하러 나가려고 하노. 가만히 드러누워서 쉬는 것도 배워라. 내가 그 하나님 음성이 들러오니까 내마음 속에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편안히 쉬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번 주일날 편안히 쉰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몸이 허약할때는 긴급히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여러분 신속히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무엇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슬픔이 있고 마음에 위로가 없을때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십시오. 설교를 듣던지 하나님 말씀을 읽던지 성경을 공부하면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그 성경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마음에 기쁨과 마음에 즐거움이 쏟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신앙이란 기쁨을 읽어버린 신앙입니다. 말씀은 없고 자꾸 산과 들로만 뛰어다니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근실하게 매 주일마다 나와서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회 나오고 난 다음에도 신자라고 말할 수 있나요. 여러분 그러므로 여셋 동안 일하고 이레 째는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먹는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또 구역예배에 가서 조장 구역장님에 인도를 인해서 말씀을 먹고 그리고 자기 스스로 매일같이 성경을 연구하므로 말미암아 기쁨을 먹고 즐거움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은 기쁨과 즐거움을 먹는 것이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때 삶의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바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뻐서 신바람이 나면 힘이 쏟아 올라요. 그러나 기쁨이 사라져 버리고 우울해져버리면 사기가 떨어지고 이러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언제나 깨달아서 기쁨으로 충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번째로, 기도생활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 시간이라는 것은 자기를 청소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내 마음에 비춰질 때 내 속에 있는 죄를 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 불 신앙을 다 청산하고 회개합니다. 그러게 되면 내 생활 속에 막힌 담이 다 헐어지지 않아요. 이 세상 살더니 염려, 근심, 불안, 절망, 죄악이 자꾸 들어와서 기쁨의 샘물을 막아버리는데 회개 기도를 통해서 이 막힌 것을 다 씻어서 예수그리스도 보혈로 다 청산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없이 마귀에게 눌립니다. 마귀는 진딧물 붙듯이 붙는다구요. 그래서 성경에 보니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귀신이 소리치며 나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은 많은 귀신이 여기저기 붙어서 혹은 어깨에 앉고 등어리에 붙어서 여러분의 심령을 짓눌려버리므로 말미암아 마음에 불안 초조 절망 공포 우울증이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의와 평강과 희락과 사랑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마음속에 불안 공포 절망 우울증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개인의 신앙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압니다. 내 마음속이 갑자기 우울해지고 인생이 잿빛같이 보이고 사는 것이 별로 즐거움이 없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절망적으로 채워지면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즉각 압니다. 이것은 기쁨의 샘을 막는 죄를 지었던지 마귀가 와서 들러붙었다. 그럴때는 곧장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나아가서 내 생애를 살펴서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보혈로 씻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있으면 얼마 있지 않으면 죄악이 용서받고 마귀가 쫓겨나고 갑자기 이 배속에서 푹푹푹.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쏟구쳐 올라오면서 삶이 그렇게 좋아지고 기뻐지고 즐거워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요.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수 없습니다. 요번 CGI 대회 때 세계 각 국에서 온 천 오백 여명의 대표들을 모시고 제가 마지막날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난 다음 그들보고 말했습니다. 이제 2시간 나하고 앉아서 소변도 보지말고 카메라도 찍지 말고 여기에 앉아서 기도하자. 그러니까 미국사람이 2시간은 너무 길으니까 30분만 줄여달라고 해요. 1시간 반만 하게 해 달라. 그 사람들은 늘 걸상에만 앉아서 바닥에 앉아서 기도하기 힘들거든요. 그러나 그냥 기도하자. 그래서 제가 딱 버티고 앉아서 1시간 반 동안 기도를 하는데 죽으려고 해요. 나중에 한시간 더 기도를 하자고 하니까 모두다 뒤로 넘어져요. 다리가 아파서 앉지 못하니까. 그래서 앉아서 기도하나 누어서 기도하나 기도는 계속해야 하는데 내가 보니까 제일 끝까지 고함치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나이지리에서 오는 흑인들이 기도를 제일 잘하더군요. 그것을 보니까 생활이 어렵고 답답한 사람들이 기도를 잘하고 생활이 유복하고 행복한 사람일수록 기도를 못해요. 그러나 강제로 내가 기도를 시키니까 한시간 반 동안 강제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기도를 끝마치고 찬송을 부르니까 기쁨이 얼마나 충만한지 우리 모인 자리에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고 찬송을 부르고 박수를 치고 굉장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미국 워싱턴에서 온 장로교 목사님인데 70이 다된 목사님입니다. 내게 와서 눈물을 줄줄 흘려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목사님 내가 1시간 반 동안 기도하고 난 다음 굉장한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 생겼냐고 하니까. 사십 년 동안 안 들리던 귀가 딱 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 보고하는 말이 40년 동안 절벽같이 안 들렸는데 갑자기 귀가 들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보고 그래요. 어떠하긴 어떠해요. 나았으니까 좋아하지. 40년 동안 들리지 않다가 들리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자 기쁨의 샘이 터져 올라서 나중에 저들이 다 나보고 하는 말이 이번에 한국에 와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한가지 가지고 갑니다. 강제로라도 1시간 반 동안 기도한 그것이 가장 추억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정말로 기쁨에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아침에 일어나 최소한 1시간이라도 기도하십시오. 아침에 다 못하겠거든 아침에 30분하고 저녁에 30분하더라도 하루에 1시간 이상 여러분께서 집중해서 기도하고 그렇게 나갈 때 죄가 씻어지고 마귀가 쫓겨나가고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여러분이 기쁨으로 충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성도와의 교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혼자 살수 없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쫓겠다고 했으니까 사람이 많이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성도의 교제를 할 때 그 속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장작불도 하나 가져다 놓으면 검은 연기를 내며 타다가 꺼지지만은 장작을 여러 개 올려놓으면 검은 연기는 사라져 버리고 찬란한 불꽃을 내면서 잘 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자기 혼자는 약하지만 그러나 한 두 사람의 신앙을 합쳐놓으면 성도의 그 일을 통해서 신앙이 뜨거워지고 성령이 더 충만해 지고 그 속에 기쁨이 넘쳐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도의 교제 없는 신앙은 혼자 있다가 얼마 있지 않아서 식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이기를 피하지 말고 열심히 모이고 또한 여러분 지역사회에 나가서는 이 구역에 반드시 출석해야 됩니다. 구역 예배에 출석해서 조장, 구역 장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짐을 나누면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많아지고 슬픔은 나누면 나눌수록 적어집니다. 이래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서로 미워해서 교제가 끊어지면 불행이 다가옵니다. 부부간에 미움이 들어와서 부부간에 즐거운 교제가 끊어지면 그 가정이 아무리 부귀영화가 있어도 지옥과 같이 되고 맙니다. 부모 자식간에 미움이 들어온다든지 형제와 이웃 간에 미움이 들어와서 교제가 끊어지면 그때로부터 슬픔과 절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하고 용서받고 난 다음에 여러분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교제를 하게 되면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싫어서 나는 혼자서 외롭게 살겠다고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살면은 지극히 고독한 절망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 오실 때까지 삼삼오오로 늘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짐을 나누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가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주님의 사업을 해야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우리 예수 믿으면서 주님의 일을 하지 아니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를 보면 50만 성도 10%의 5만 성도 밖에는 조장 구역장이 없어요. 사람들마다 자기 몸 드리고 물질 드리고 시간 내어서 하나님 일을 해야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 와서 설교나 듣고 그대로 가버리는 것보다는 여러분의 가정에서나 이웃에서나 사업장에서나 어찌하든지 주님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십시오. 성경에는 주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먼길을 갈 때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게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주인이 없을 때 열심히 일을 했는데 한 달란트를 가진 자는 겁이 나서 숨겨놓고 일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왔을 때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네 달란트를 내 놓고 다섯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열 달란트를 내 놓았습니다. 그럴 때 주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사람들보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하였은 즉 아버지 큰 기쁨에 찬미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가지고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보고는 뭐라고 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사람은 밖의 어두운 곳에 내어쫓아 이를 갈며 슬퍼함이 있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의 사업을 하지 아니하면 슬퍼함이 있지만 주의 사업을 하면은 아버지의 기뻐하시고 찬미하시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을 제쳐두고 여러분께서 주의 사업을 하십시오. 하나님 사업을 하십시오. 정 할 것 없으면 이웃을 정해 놓고 전도라도 하십시오. 그래서 내 인간을 위해서만 살지말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 하루하루 생활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일하면서 살게 될 때 여러분에게 기쁨이 끊이지 않고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 되고 마음에 근심은 뼈의 썩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즐거움을 가지고 살면 병도 들지 않고 빨리 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슬픔이 있으면 빨리 병들고 빨리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단에 서서 사람들 보면 시험에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 얼굴을 보면 압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쁨이 충만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은혜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들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얼굴이 어두캄캄해지고 색깔을 잃어버리고 누렇게 떠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어깨가 축 늘어져서 힘이 없어 보입니다.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시험이 들어섰습니다. 여러분께서 내 신앙이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는가 알고 싶거든 내 마음에 기쁨이 있냐. 없냐를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그 로마의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감옥 속에 습기가 축축한 곳에서 쇠고랑이 묶였어도 내가 네게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가 안전한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 속에는 기쁨이 용수 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매를 맞고 짓밟히고 헐벗고 굶주리고 감옥에 들어가도 그를 중지시킬 수 없는 것은 속에서 기쁨이 쏟아나니까 그 기쁨이 힘이 되어서 그가 맡은 일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 기쁨을 구하십시오. 기쁨은 여러분의 삶 속에 큰 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삶은 가뭄에 메마른 산과 들처럼 모든 것이 불타고 잿빛으로 변화고 마는 것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은 단비를 맞은 산천초목과 같이 푸르 청청하고 삶이 넘치고 힘차게 뻗어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 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에서 오는 반딧불 같은 기쁨이 아닌 속에서 쏟아 오르는 영원한 기쁨. 그 누구나 다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기쁨. 그 기쁨이 바로 예수를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합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강물같이 넘치게 하십시오. 말씀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기쁨과 즐거움을 먹으십시오. 기도 생활을 하므로 말미암아 기쁨이 배가 되게 하십시오.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이 사리지지 않게 하십시오. 주의 사업을 열심히 하므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기쁨에 찬미하여 일생을 기쁨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당은 영원한 기쁨의 처소입니다. 그곳에서는 슬픔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우울증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천국은 기쁨으로 날이 세고 날이 지며 영원토록 기쁨으로 충만한 행복의 초소가 천국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은 논과 밭의 허수아비와 같습니다. 아무리 찬란한 옷을 입고 있어도 속에는 지푸라기 밖에는 없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기쁨이 없는 삶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 그는 살았다고 하나 죽은 삶이요. 아무 의미도 없는 삶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기쁨을 받고 속에서 넘쳐나는 기쁨을 가지고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이 기쁨으로 흑암을 이기고 역경을 극복하고 이기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그것은 다 외면적인 것이고 영원하지도 않고 내면적이지도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얻는 기쁨만이 참된 기쁨이요. 금세 안심하고 내세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기쁨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다가 타락한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여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과 화합하여 성령으로 주는 기쁨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참 기쁨을 가지고 활기차게 인생을 살다가 천국까지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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