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의식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격이라든지 그 행동은 그 의식을 따라서 나옵니다. 그 의식이란 그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그 한 사람이 죄 의식에 잡혀 있으면 그 인격에 행동이 불안하고 자학하고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을 피하려고 하고 또 심하면은 좌절감에 빠져서 자포자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식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열등의식에 잡힌 사람, 피해의식, 가난의식, 패배의식 등 수 많은 부정적인 의식이 인격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부정적인 의식이 우리를 점령하면 그 사람의 인격적인 삶이 부정적이 되고 그 행위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고 이러한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정말 내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 받고 번영하고 성공하며 행복과 기쁨으로 살기 위해서는 의식의 혁명이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은 다가와서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지마는 우리 기독교의 의식혁명은 수많은 노예를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의 의식이 어떻게 혁명이 일어나서 의식구조가 완전히 변화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좇아서 우리의 의식을 좇아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역사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저 바다 건너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 삶은 보이지 이고르가 추구하는 저 우주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 가운데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기도하는 것과 우리의 변화된 의식을 통해서 역사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아무리 우리 속에서 역사 하려고 해도 역사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성령으로 와서 계시지마는 변화된 생각을 통해서 밖으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간에 의식변화 의식혁명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길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의식의 혁명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회개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내가 과거에 잘못 살아온 모든 죄와 불의와 추악 또 저주와 절망적인 삶 이러한 것을 모조리 다 토해 놓는 것을 말합니다. 내 밖으로 다 씻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은 나의 잘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잘못한 것 나의 실수한 것 하나님을 거역한 것 이와 같은 것을 전부 다 토해 놓는데 이것만 가지고 사람들은 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이것은 반밖에 아닙니다. 회개는 이와 같이 토해 놓았으면 그 다음 빈 그릇에 이제는 새롭게 된 것으로 채워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빈 것을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그 빈집에 우환이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이럼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쫓겨 나아갔어요. 귀신이 쫓겨 나아간 다음 이 사람은 그 마음의 집을 깨끗이 소지하고 정비해 놓았습니다. 귀신이 나가서 물 없는 사막으로 두루 다닐 때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하매 바로 자기가 쫓겨났던 집으로 찾아 와서 보니깐 집이다 소지하고 정리됐는데 주인이 없거든 그래서 그 귀신은 가서 자기 보다 악한 일곱 귀신을 청해 가지고서 습격을 해서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점령하고 나니깐 사람의 나중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빠지더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회개만 하고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청산하고 정리하고 난 다음 그 다음에는 의식이 변화되어서 천국의식 십자가의식으로 변화되지 아니하면 빈집에 우환이 다가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정죄 의식, 절망의식, 패배의식, 저주의식으로 짓눌려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사는 이유는 그 사람 회개 안 했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회개는 했으되 빈집에 의식을 변화시켜서 천국으로 채워 놓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채워 넣기 안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 의식을 바꾸라 천국이 손 닫는데 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국이 아무리 손 닫는데 와 있어도 의식이 바꾸어지지 아니하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도 못하려니 천국은 바로 너희 안에 있나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이미 임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손 닫는데 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서 회개 "메타노이아" 진실로 의식을 변화시키면 천국은 여러분과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회개 할 줄은 내가 압니다. 회개는 내가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의식으로 혁명은 가져올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두 번째로 내가 그것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천국의식으로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거기에서 일어난 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식이 변화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의식을 변화시킬 장소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어떻게 의식이 변화되나요. 죄 의식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치는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가려면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가시관 쓰고 높이 달려서 피를 흘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을 하시기를 저가 찔림은 너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너희 죄악을 인함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의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매달려서 이를 다 청산하셨다면 나는 그 예수의 보혈을 믿고 나의 생각을 바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식을 이제는 죄인이다. 정죄 받는 사람의 의식에서 나는 용서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바꾸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라고 돌아다니지 말고 용서받은 의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일체의 과거의 죄가 다 청산 나고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청산 받고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난 의롭게 된 생각을 바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꾸만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이 죄인 자식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나는 아작 의식이 바꾸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 예수 믿고 나아올 때는 죄인 자식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그 공로로 의롭게되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었은 즉 가난과 화평을 누리고 생명을 얻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의 의식 중에 죄인이라는 의식을 뽑아버리고 예수로 말미암아 나는 의롭게 되었다는 의의 의식을 갖게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의식 혁명인 것입니다. 주님 십자가 밑에 나와야 철저히 이런 의식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또 질병의식과 연약 의식을 가진 사람을 보십시다. 질병이 들고 연약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우리가 병을 약을 먹고 고칠 수도 있고 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나 이것은 항구적인 치료는 되지 못합니다. 참으로 항구적인 치료는 의식가운데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의식가운데 이제는 병과 연약에서 놓여남 받은 사람이라는 그 의식이 마음 속에 충만할 때 그 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면성령이 와서 치료하고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왔다 갔다고 해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도 이와 같이 치료의식, 건강의식이 들어오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식을 좇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역사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치료의식, 건강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역시 십자가 밑인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밑에 가서 그렇게 의식을 바꿀만한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군인들에게 채찍에 맞아 등허리가 골처럼 밭고랑처럼 파헤쳐지고 살점이 떨어지고 선지피가 줄기줄기 흘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믿음으로 너희가 병 나음을 입었다고 말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저로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 했다고 말하고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하셨으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고 의식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는 연약하다 나는 병자다 나는 허약하다는 질병의식으로 꽉 들어차 있는데 이것을 이제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왜냐하면 예수께서 내 연약을 짊어지고 가셨고 예수께서 내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면 예수께서 짊어진 것 내가 또 왜 짊어져야 되는가? 나는 이것 안 짊어져도 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안 짊어지겠다. 예수로 말미암아 나는 연약과 질병에서 해방을 받았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이러한 의식 변화가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변화는 여러분이 못 가져옵니다. 의식의 변화는 여러분이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의식변화를 가져오면 그 의식변화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의식의 변화가 오고 난 다음 그 변화된 의식을 좇아서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의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의식변화라는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의식변화를 가져와야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대신 의식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고 엄마가 대신 가져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 한 사람한 사람이 십자가 밑에 서서 내 마음에 의식변화가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 의식에서 병 의식에서 치료의식으로 건강의식으로 십자가로서 내 마음이 달라지면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을 좇아서 성령은 내 육체 속에 달라진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보십시다. 가난의식, 저주의식을 보십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재 의식적으로 무서운 가난의식과 저주의식과 실패의식으로 차 있습니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저주가 온다. 그래서 가정에도 사분오열이 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망하고 하는 일마다 전부다 길이 막히고 처절한 저주와 가난 실패가 다가오고 그러면서도 주여! 주여! 하고 다니며 이만 주님 어디 계시나이까? 도대체 우리를 왜 떠나시나이까? 왜 나를 안 돌보시나이까? 주님이 돌보려고 해도 주님은 여러분의 의식을 통해서 돌보는 것입니다. 가난의식과 저주의식에 꽉 막혀서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못한다고 했는데 주께서 아무리 여러분 곁에 있어도 의식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팔이 짧아 여러분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그가 둔하여 여러분의 기도를 못 들어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가 생각이 달라지지 아니하니깐 어떻게 넘치게 합니까? 생각이 가난으로 꽉 들어찼는데 어떻게 부요를 가져오며 생각이 실패로 꽉 들어찼는데 어떻게 성공을 가져오며 생각이 패배로 꽉 들어찼는데 어떻게 승리를 가져옵니까? 십자가 밑에 나와서 역시 의식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 밑에서 나무에 달린 예수를 한번 바라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 아담의 후예들이 저주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에서 해방을 시켜주기 위해서 저주의 가시 체를 머리에 쓰시고 가시 쇄가시에 박혀서 저주의 상징으로 나무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고 의식변화가 안 올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날 위해서 날 위해서 저렇게 저주를 받으셨으니 난 저주 안 받겠다. 예수께서 지불한 것을 내가 왜 지불해. 그러므로 나의 생각에서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은 내 것이다. 나는 예수를 통해서 성령도 받았으니 아브라함의 복이 내 것이다. 나는 이제 저주와 상과니 없다. 그리고 나는 가난하게 안 산다. 내 주 예수를 위해서 자진해서 모든 것을 다 받쳐서 가난한 것은 좋지만 내가 그렇지 않고 가난하고 저주 있게는 살지 않는다. 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장 9절.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했는데 왜 내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현재 환경은 가난한 것은 내 손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은 내 마음의 의식은 이를 통해서 부유한 것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의식, 축복의식, 승리의식으로 의식이 바꾸어지면 바꾸어진 의식을 좇아서 하나님께서는 바꾸어진 환경을 여러분 운명에 가지고 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나아가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절망 이런 것이 두려워서 죽음 앞에는 누구도 비열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볼 때 의식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은 죽지 않습니다. 죄의 값이 사망이라 죄를 지어야 죽는데 죄 없는 사람 안 죽어요.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까? 그것은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사흘 동안 지옥에 내려가 우리의 사망을 다 청산하고 주께서 음부와 지옥을 다 파괴하고 열쇠를 빼앗아서 들로 나오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서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이제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예수를 바라볼 때 나도 예수와 함께 이제는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예수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내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될 때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바울 선생처럼 사망아 너의 서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우리 의식변화를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의식변화를 위해서 오신 분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셔서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므로 말미암아 십자가 밑에서 우리 의식이 변화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은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성령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의지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래서 십자가를 쳐다보고 여러분의 과거의 모든 것을 십자가 밑에 다 청산해버리고 십자가에서 새로운 의식의 옷을 입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진실로 의식이 새로워지면 그 사람이 새로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의식이 새로워지면 성령께서 오셔서 새로워진 의식은 통해서 새로운 운명과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미신적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연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의식을 통해서 변화된 가정, 변화된 사회, 변화된 사업, 변화된 내일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도 아니요, 의식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 생각의 혁명인 것입니다. 생각의 혁명이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나는 찢어진 성소의 휘장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참으로 재미있는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지 여섯 시간이 되었습니다. 피를 다 흘리고 땀을 다 쏟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인간의 그 거칠고 괴로운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을 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청산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에 청산할 때 여섯 시간만에 그는 하늘과 땅이 쩡쩡 울리는 생명의 기운을 다하여 외쳤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자--------희한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의 지성소와 성소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쫙 찢어지고 말은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게 찢어질까요?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에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었을 때도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그 속에 하나님이 와서 저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솔로몬이 지은 대리석 성전 속에 하나님이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성전 뜰에 와서 제사와 예물을 드리고 용서도 받고 축복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성소 속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성소와 그 뒤의 지성소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큰 두꺼운 휘장이 쳐져 있었습니다. 휘장이 얼마나 두꺼웠던지 황소 두 마리를 묶어서 서로 잡아 댕겨도 안 찢어지는 휘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뒤의 휘장 뒤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뒤에 아무나 들어 갔다하면 즉사합니다. 그러나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양푼에 담아다가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그 피를 뿌려서 죄를 속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들은 죄가 있는 이상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휘장이 있어 휘장 뒤에 건너갈 수 없었는데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자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예수께서 다 청산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 일루 와서 칼로서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버려라. 젖혀버려라. 이제는 사람과 나와 막혀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는 내 아들 예수가 나와 사람들의 막힌 담을 헐었다. 이제는 이것을 찢어라. 하나님께서 휘장을 찢어버리고 지성소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은 밖으로 걸어나오고 말은 것입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이 밖으로 걸어나오셔서 여러분과 내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여러분과 내 가운데 밖에 걸어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지성소나 하늘 지성소에서 사람을 피하여 계시지 아니하시고 이제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그 막힌 담의 휘장을 찢어버리시고 주님은 이 자리에 직접 와서 여러분과 나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와서 계시며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죄 짐을 진자여 병의 짐을 진자여 저주와 가난의 짐을 진자여 절망과 죽음의 짐을 진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찢어진 휘장을 통해서 지성소에서 나오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시는데 이제 여러분과 내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앞에 막힌 휘장을 찢었는데 이제는 여러분과 내가 휘장을 찢을 차례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아담의 후손으로써 우리는 짙은 휘장을 치고 삽니다. 그 휘장이 먼지 압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의 휘장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의 의식 속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휘장을 덮어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 같은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 죄악이라는 죄인이라는 휘장을 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휘장을 찢어버리고 나와서 여러분 앞에 서서 나와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으나 여러분은 휘장을 치고 나는 죄인이라는 휘장을 치고 하나님의 손길을 잡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께서는 의식을 바꾸어 치고 여러분께서 말씀의 검을 들고서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죄인이라는 휘장을 찢어서 쳐서 없애버리고 우리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서 여러분께서는 죄가 한번도 없는 사람으로써 용서받은 의인으로서 마귀에게 참소를 당하지 안은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사랑 받고 용납 받는 여러분의 모습을 마음으로 영롱하게 꿈꾸어 보고 마는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하나님과 함께 포부도 당당하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그 불 신앙의 휘장을 믿음으로 찢어야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께서는 나는 언제나 병자라는 그 질병의식의 불 신앙의 휘장을 찢어야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고생하는 이유는 불 신앙의 휘장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무리 치료해주신다고 하더라도 나는 병자다. 나는 병들었다. 지금 시방 병들어 있지 않느냐? 이 질병과 연약의 불 신앙의 휘장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여러분이 찢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찢어주지 않아요. 말씀의 검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불 신앙의 휘장을 내어 찢어버리세요. 그 다음 내 앞에 기다리는 나는 너의 병을 치료하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내 마음 속에 영롱한 그림을 그려봅니다. 나는 영과 마음과 몸이 완전히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치료함을 받아서 연약도 사라지고 질병도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대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의 변화된 모습을 내 마음 속에 영롱하게 그려보고 꿈꾸어 보고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보장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여러분의 손을 잡고서 건강한 사람으로써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낭패와 실망, 패배와 절망 가난과 저주의 그 휘장도 하나님은 안 찢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하나님의 휘장을 찢고 나가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휘장은 여러분이 찢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은 여러분이 찢어야 합니다. 저는 저가 성경의 진리는 알고 난 다음에 나는 내 마음에서 철저히 가난의식, 저주의식, 절망의식, 실패의식의 휘장을 찢었습니다. 나는 옛날에 그 휘장을 찢고도 가난할 대도 많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낭패와 실망도 다가왔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가난의식, 저주의식, 낭패와 실망의식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마음을 덮어놓은 이 생각의 휘장을 찢어서 젖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게 하는 우리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아 들였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으며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는 그래서 그것을 꿈꾸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내가 저주받은 것을 꿈꾸지 않았었습니다. 내가 가난해서 헐벗고 굶주린 것을 꿈꾸지 않았었습니다. 실패와 낭패를 당한 나를 꿈꾸니 않았었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 안에서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얻어 내가 사람들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아니하고 축복을 받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나의 모습을 영롱하게 내 의식 속에 꿈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는 예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 나는 성공적인 사람, 나는 승리 적인 사람,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를 기다리는 하나님 앞에 이 저주의 휘장을 찢어버리고, 가난의 휘장을 찢어버리고, 의식을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미하고 오늘 이 25년의 생활을 목회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 내가 돌이켜볼 때 내가 일어서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삼박자의 축복이 따라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스스로 휘장을 찢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휘장을 찢고 나와 계시는데 왜 여러분 자신은 교회에 왔다갔다하면서 마음에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휘장을 짖지 않고 그대로 왔다갔다합니까? 오늘 이 시간에 나는 이러한 생활을 더 이상 안 한다.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는 이미 저주에서 놓여남 받았으니 가난에서 속함을 받고 낭패와 실망에서 구속을 받았으니 말씀으로 휘장을 찢고 일어나서 이제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꿈을 꾸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음과 절망과 공포의 휘장도 여러분이 찢어야 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지옥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영상을 우리가 모두 찢어버리고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이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이 육된 몸이 신령한 몸으로 이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가지고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상속으로 받아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모습을 내 마음 속에 영롱하게 꿈꾸어 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지 죽고 절망하고 지옥에 떨어질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정적인 영상을 내가 찢어버리고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되 영상을 가지고서 내 앞에 기다리는 하나님과 손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다시 말하면 죄의식의 휘장을 열어 젖혀 버리면 질병의 의식의 휘장을 열어 젖혀 버리면 저주와 가난의 의식의 휘장을 열어 젖혀 버리면 죽음과 절망의 공포의 휘장을 열어제치고 누구든지 나에게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신 주님이 여러분과 나와 일생생활을 같이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휘장을 찢고서 성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성소에서 나와서 지금 여러분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내가 우리의 휘장을 찢을 차례입니다. 그냥 교회 왔다갔다 교회의 뜰만 밟지 말고 위의 미음의 생각의 휘장을 찢을 차례인 것입니다. 죄의 휘장, 질병의 휘장, 저주와 가난과 실패의 휘장, 죽음과 절망과 공포의 휘장을 낱낱이 예수 이름으로 말씀을 가지고 찢어버리고 이제는 입을 넓게 열 때가 온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채우시기 위하여 우리 앞에 계십니다. 그런데 채우시는 그릇이 바로 우리의 마음의 생각 즉 마음의 의식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천국의식으로 변화를 받고 믿음의 입을 넓게 열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친히 오셔서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형통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시고 생명은 얻되 넘치게 얻는 좋은 하나님이요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오늘도 죄를 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죽은 자를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먹여주고 입혀주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 영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활동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오늘 이 시간 우리의 퇴고에 묵은 이 저주받고 절망에 처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패배의식을 오늘 쫙 찢어서 확 열어 젖혀 버리고 이미 지성소에서 성전의 휘장을 찢고 나와서 여러분과 나를 기다리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인생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오늘 여러분과 나를 기다리고 손을 내밀고 계신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휘장을 찢고서 우리에게 나와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와 더불어 마시며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왔다갔다할 때 종교적으로 왔다갔다하지 마음에 덮여진 휘장을 찢어 버리지 못합니다. 아버지여, 죄책의 휘장 가난과 실패의 휘장 절망과 죽음의 휘장들을 오늘 이 시간에 찢어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밑에서 우리의 의식이 완전히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각이 거듭나고 생각이 완전히 변화가 되어서 혁명이 일어나서 아버지여, 새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하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여 변화된 의식을 따라서 하나님은 변화된 운명과 환경은 만들어주신 것이오 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식변화를 가져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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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
by 삶의언어 posted Jun 02, 2024 Views 1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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