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신분

by 삶의언어 posted Nov 14, 2024 Views 14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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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마음/생각
예배드린 날 2005-09-18
오늘의 성구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FQaEakJre8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확실한 신분 이해 토대 위에 굳건한 믿음 생겨
예수 보혈로 의롭다함 얻고 고귀한 신분 얻어
달라진 신분에 합한 생각, 꿈, 자화상, 믿음 가져야


 저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습니다. 그들의 가난과 후진적 사회상을 보고 가슴이 저며 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저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길이 아득하게 멀어만 보였습니다. 과연 아프리카도 잘살 수 있을까? 결단코 일시적 생필품의 원조로는 잘살게 할 수 없습니다. 신분을 변화시켜 주어야만 저들이 잘살 수 있습니다.
 신분의 변화는 교육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신분상 변화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많은 돈을 들여 교육에 힘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같이 다인종 사회에서 소수민족의 생활향상은 교육을 통하여 신분을 상승시켜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고 온 세계에 흩어져 2천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들이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금융계, 교육계, 과학계를 주름잡는 상층신분을 갖고 사는 이유는 훌륭한 자녀교육 덕택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결사적으로 자녀들의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로 유대인 자녀들은 사회에서 높은 신분을 얻게 되고 신분에 따라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 예수님 안에서 자기 신분을 깨달아 알아야만 합니다. 자기 신분을 모른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시험과 바람과 창수가 부딪혀 오면 그냥 무너지고 쓰러져 버립니다. 굳건한 믿음은 확실한 신분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서 가질 수 있습니다.

 

 1. 인간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

 

 우선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신분으로 왜 오셨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처음 신분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는 말씀대로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형상을 좇아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천사와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그 고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지상 만물의 지배자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스리는 자의 신분과 죽지 않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는 자로 만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첫 아담의 신분은 정말 고귀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을 보면 타락한 첫 아담의 두 번째 신분은 죽음의 신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와 마귀의 종 된 삶을 사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결국은 병들어 죽고 죄와 마귀의 종이 되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생하며 사는 이유는 이런 비천한 신분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은 그 신분에 따라 삶이 결정됩니다. 고귀한 신분은 고귀하게 살게 되고 비천한 신분은 비천하게 살게 되어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우리의 운명과 환경은 신분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고상한 신분,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졌을 때는 에덴의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 신분에 합당한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타락하여 죄와 마귀와 죽음의 종이 되었을 때는 낮아진 신분대로 비천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저주받고 병들고 고통당하고 가난하고 비극적인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써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간의 비극적인 신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야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시고 인간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로마서 8장 3절부터 4절까지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 이신데도 죄인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시고 죄인의 신분을 덮어쓰신 것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인간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병들 수도 없고 병을 알지도 못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는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말할 수 없는 신음을 하신 것입니다. 병 없는 그분이 병 있는 인간의 신분을 책임지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저주받지 않은 신분이었으나 인간의 저주와 하나 됨으로 저주받은 신분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원천이요,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분인데 그분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셔서 인간의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저주를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신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분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 값으로 인간의 신분을 덮어 쓰시고 인간의 죄를 책임지시고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덤에 들어가시고 죄를 다 청산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2. 예수님 안에서 부활한 우리의 신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죄인의 신분으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청산하시고 다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 승리의 신분에 함께 참여하는 신분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오셔서 죄인 된 우리와 연합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이제 승리하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한 신분에 연합해서 함께 값없이 승리와 영광을 선물로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의롭고 영광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석하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우리가 용서받은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더럽고 추하고 세상과 마귀의 노예 된 신분을 가지고 끌려 다녔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을 선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이런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 말씀에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을 얻어 하나님 아버지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료받고 질병에서 해방된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병의 노예요, 병들고 고통당하고 괴로움 당하고 죽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료받고 병에서 해방된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신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써 저주받은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조상이 저주받았으니 우리도 조상 따라 저주받은 신분을 가지고 태어나서 삶 전체가 저주였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을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신분이 저주받은 신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저주받은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신분을 덮어쓰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의 모든 값을 청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가난을 짊어지시고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청산하시므로 이제 우리는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게 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옥은 영과 혼이 불타는 곳입니다. 그런 지옥에 가야 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은총을 힘입어 값없이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귀하고 귀한 자녀’라는 신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3. 달라진 신분으로 살아가는 신앙자세

 

 자기 신분이 달라졌는데 달라진 신분에 따라 살지 못하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법적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용서받고 의인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을 얻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사도바울 선생이 간청하고 있습니다. 종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우리는 새로운 신분의 자유와 해방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진 신분으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달라진 신분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이 ‘나는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달라진 신분으로 살 수 없습니다. 생각이 달라지지 않고는 새로운 신분으로 살 수 없습니다. 달라진 신분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 침례교 목사였던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ey,1826∼1899)는 남북전쟁이 터지자 전사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위해 전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더미 속에서 수많은 부상자들이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로우리 목사는 장례식보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이 일에 집중했던지 나중에는 그 자신도 탈진해서 시체더미 속에서 신음하며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의 귀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로우리 목사야, 내가 살아 있다. 나는 어둠을 이기고 살아났다. 지금 내가 부활의 능력으로 네 속에 살아 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자 죽어가던 로우리 목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지은 찬송이 바로 찬송가 150장 ‘무덤에 머물러’입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맞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음과 지옥에서 벗어나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의 신분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으로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꿈이나 자화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를 보고 삽니다. 자기가 못났다. 능력이 없다. 실패자라는 열등의식과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승리한다. 성공한다. 복 받았다. 희망차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소수뿐입니다. 대게 사람들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이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화상이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화상이 달라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삼대재앙에서 우리를 건져내서 삼중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육체가 병들어 죽어 멸망받겠다고 선언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서 죽은 영혼을 살려 주시고 저주를 청산하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부활시켜서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 삼중축복이 우리의 것이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자화상으로 바꿔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를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사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내 자화상을 갈아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납니다. 가난과 저주와 원망과 불평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이어받은 신분이 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신분이 달라졌으니까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낭패할 것을 믿고 가난해 질 것을 믿고 패배할 것을 믿고 저주받을 것을 믿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많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신분이 달라졌으므로 긍정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마음에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어두울 때 빛이 있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 평안이 올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시밭길을 걸어갈 때 평탄한 길이 올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신분을 알면 내가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내 신분을 모르면 정체불명의 사람입니다. 정체불명의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분명히 알면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을 바꿔야 됩니다. 자기 신분에 맞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말을 하면 말은 씨가 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했고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그리고 잠언 21장 23절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잘못하면 큰 불행이 다가오고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르게 하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신분이 됩니다. 마땅히 우리는 믿음과 말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달라진 신분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흑인도 백인도 서양사람도 동양사람도 없습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열등의식이나 좌절감이나 구겨진 자기의 이미지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말을 하든지 뇌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 육체의 오장육부, 사지백체가 말하는 것에 따라 변화합니다. 우리 사지백체뿐 아니라 우리 환경도 변화가 다가오게 됩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부활하신 신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그에 합당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사용하도록 늘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종의 신분에서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변화되어서 신분이 달라졌으므로 달라진 말을 해야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이후 불확실한 신분으로는 세계여행도 숙박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체불명의 사람은 비행기도 못 타게 됩니다. 신분이 불확실하고 정체불명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자기 신분을 확실히 모르면 결코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처처에 가시와 엉겅퀴가 있고 돌밭이 있고 철책이 있고 험한 산 깊은 계곡이 있습니다. 내 스스로의 신분을 확실히 모르면 이런 것에 걸려서 우왕좌왕하고 뒤로 물러가고 두려워하고 떨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통곡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알고 내가 다스리는 사람이 된 줄 알게 되면 강하고 담대하게 “사단은 물러가라! 마귀야 떠나라! 질병은 떠나가라! 저주는 길을 치워라! 사망아 물러가라!”고 당당하게 소리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신분에 합당한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꿈과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신분에 합당한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우리가 신분을 알고 정체성이 확립되면 거기에 서서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강하고 담대하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꿈과 자화상, 새로운 믿음, 새로운 말의 선언을 가지고 나아가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났고 저주의 멍에를 짊어지고 허둥대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신분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종의 멍에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이를 다 꺾어 버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부활의 신분에 연합하게 만들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았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신분이 변하면 운명도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