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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by 삶의언어 posted May 28,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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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 3주간동안 저는 우리 교회를 떠나서 유럽과 미국에 복음 전도를 하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것은 제가 제일 먼저 성회를 인도하러 간 곳이 불란서 파리에서 였었습니다. 파리에서도 가장 중심가인 샹제리아가 바로 그 근처에 있는 큰 공지에 만 명에 들어가는 천막을 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하자마자 구라파 특유의 가을날씨에 날이 흐리고 궂은 비가 내리고 추웠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추운 날에 불란서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포도주나 마시고 있지 절대로 성회는 안 나온다. 300명 모이면 많이 모이는 성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 위원회 측에서 전혀 광고지 하나 찍지 않았습니다. 성회를 한다는 광고 한마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불란서에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전부 구경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아무도 광고를 못하는데 해적 라디오 방송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지하에다 방송국을 세워 놓고 난 다음에 이리 저리 옮겨가면서 복음을 증거 하는 해적방송국인데 그 방송국에서 한달 내내 순복음 중앙교회 조용기 목사가 파리에 와서 설교를 하니까 성회에 참석하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나는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만 해적방송이 늘 방송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첫날에 가니까 4천 5백 명이 모여들더니만 병이 낫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니까 이튿날에 6천 명 사흘날에 8천명 그 다음에는 만 명이 넘어서 인산인해가 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불란서 역사 이래로 파리에서 그만한 대중이 한 곳에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온 구라파 전체에 복음으로써 다시 한번 깨우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신 증거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구라파는 우리의 복음 무대입니다. 오랜 깊은 잠 속에 빠져서 기독교의 신앙이 완전히 퇴폐하고 쇠퇴해버린 그 곳에 순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처처에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병이 낫는 기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기도의 힘이 지구의 저쪽까지 미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 백림에서 80여명 우리 순복음 선교사들이 모여서 연예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북미, 남미, 구라파 각지 아시아에서 대양주에서 아프리카에서 우리 선교사들 80여명이 와서 놀라운 선교대회를 했습니다.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순복음 중앙교회에서 보내준 사명과 긍지를 가지고 목숨을 바쳐 현지에서 복음증거를 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하고 각각 인지로 떠나고 난 다음 저는 뉴욕에 와서 뉴욕 순복음교회 김남수 목사님과 그 당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놓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대성회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한, 미 합동 성회로써 제가 영어로써 설교를 하고 한국에 와 있는 장로교 선교사인 로스 목사님이 내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을 하고 아주 희한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4천명에서 5천명의 대군중이 모여서 놀라운 성회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우리 미국의 텔레비전 방영은 뉴욕에서부터 로스앤젤레스까지 미국의 코스트 투 코스트로 매주일 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복음을 듣고 감격하고 기도 받기 위해서 하루에 백통 이상의 편지들이 사무실로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명실 공의 순복음 중앙교회에서 전 지구를 어깨에 걸머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번에 뉴욕의 버클리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주일 아침 종교프로를 보고 있는데 거기에 희한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왜 나는 기독교를 떠났는가? 라는 제목으로써 인터뷰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데 이것은 옛날 교회 나오다가 이제는 완전히 타락해서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왜 나는 기독교를 떠났는가? 이러한 인터뷰를 만들어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당사자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반 신앙적인 단체에서 어찌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의 신앙을 파괴하기 위해서 프로를 만들어 가지고서 방영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듣고 난 다음에 너무 기가 막혀서 이러한 잘못된 프로그램은 철저히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되겠다. 이런 각오로써 여러분 앞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는 제목으로 오늘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니까 첫째, 질문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 반 교회 단체에서 한 사람에게 가서 마이크를 대고 질문을 합니다. 왜 당신은 기독교를 떠나고 교회를 떠났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 앉아서 고개를 쳐다보고 하는 말이 "내가 교회와 기독교를 떠난 것은 소위 목사와 장로들 교회 중직들 성도들의 행위를 보고 낙심하고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깊이 실망을 주는 어느 행동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부딪쳐서 나는 실망해서 예수도 보리고 교회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듣고 긍정을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지금 10억이 넘습니다. 10억이 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잘못된 목사도 많고 전도사도 많고 장로도 많고 평신도도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교회는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란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있는데 가라지를 보고서 낙심해서 타락해버렸다면 그 자신의 영혼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교회에서는 여러분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님이나 중직들이 언제나 마귀의 가장 공격의 대상이 많이 되고 또 상처를 입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일이 많으냐.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투와 일선 병사의 사상 율을 비교해보면 아는 것입니다. 후방에 있는 백성들은 여러분 전투를 당해도 별로 사상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선에 서서 직접 총포를 쏘고 싸우는 병사들은 적탄에 맞아서 죽는 확률이 대단히 많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제일 일선에 서서 마귀와 대결해서 싸우는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님들 교회에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최일선에 서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원수 마귀의 적탄에 맞아서 쓰러지기 가장 좋은 자리에서 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들이 원수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치료해주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폐일언하고 이와 같은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교회는 왔다갔다하고 종교는 가질지 몰라도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그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고 그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 그 깊은 체험을 하게 되고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된 사람은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절대로 타락할 수가 없습니다. 타락이 안됩니다. 왜? 예수께서 나의 생명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셨으니 예수와 나와의 관계지 이제는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권사 때문에 평신도 때문에 눈에 아니꼬워서 교회를 안나간다. 이런 말은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하여 깊은 영혼의 변화를 받고 감격을 입고 그 사랑에 깊이 마음속에 잡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다가와도 그것을 뚫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진, 전진을 하고 설혹 목사가 넘어지고 장로가 넘어지고 권사나 평신도가 넘어지는 것을 본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들을 부축해주고 그들에게 비교해서 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저렇게 넘어지지 말아야 되겠다고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목사나 교회 중직들이 행실에 실망해서 교회 안나간다는 사람의 그 증거를 들을 때 내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딪쳐오는 파도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교회는 옛날에 나갔지마는 중생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교회는 알고 종교는 알아도 예수는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정말 예수를 만나서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이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은 절대로 교회 때문에 목사, 장로, 중직들의 행위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를 버린다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왔다 갔다 하면 교회 뜰만 밟고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갖지 못하고 종교적으로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환경 적인 어려운 시련에 부딪치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여잡고 내가 예수께 잡히고 중생의 체험을 한 사람은 죽는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결코 떠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어떤 젊은 사업가 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니까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교회 다니다가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왜?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의 설교와 현실에 우리가 매일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면서 살아가면서 사는 현실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가서 앉아있는 것이 시간소모입니다. 교회 가서는 현실과 전혀 무관한 말만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나는 월남 전쟁의 해병대원으로써 파송되었는데 그때도 교회 열심히 나갔습니다. 교회 나가면 군복 목사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살생하지 말라고 하는데 총을 두고 교회 밖으로 나오면 우리 사령관은 원수를 미워하라. 원수를 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합니까? 교회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고 밖에 나오면 사령관은 원수를 미워하라 보는 데로 쏴 죽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도 다르다. 교회와 현실은 이렇게 판이되 있기 때문에 나는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결심을 하고 그리스도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 현실의 문제성의 원인을 성서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현실을 죽여야 합니까? 왜 현실을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 현실에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슬픔과 고통과 저주와 이런 것들이 횡행합니까? 그 이유를 우리가 알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면 현실과 교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현재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슬픔과 고통이 강물처럼 넘쳐나는 이유는 우리 조상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인간 중심으로 살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추구하면서 살겠다고 하나님께 반역을 하고 마귀와 손을 잡고 나왔기 때문에 그는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과 배반당하고 그 다음 그 심적으로 마음속에 불안, 공포, 절망, 좌절감, 미움의 폭풍우가 불어닥치게 되고 육체는 병들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 당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살상이 일어나는 오늘날의 세계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오늘날의 세계를 인간은 정치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군사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타계하려고 해도 죄를 인간의 힘으로 없앨 수도 없으며 심령 속에 일어나는 그 폭풍우를 잠잠하게 할 수도 없으며 육체의 질병을 고치고 천년, 만년 살게 할 수도 없으며 세상에 있는 살상과 미움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해답을 제시해 놓았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늘과 땅 사이에 십자가에 높이 매달림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헐어 제껴버리고 그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다 철폐해버리시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저주와 가시와 엉겅퀴를 다 철폐해버리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질병을 피하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영생을 가져오셔서 이제 예수 안에서 진실로 인생 문제의 근원적인 해답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당장 예수 믿는다고 해서 현실에 밥에 생기고 떡이 생기고 옷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예수 믿는다고 해서 부자 방망이로 이것을 나오라 하면 금 나오고 떡 나오라고 하면 떡 나오고 밥 나오라고 하면 밥 나오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지고 내 속에 영생이 들어오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로 가슴속에 미움, 불안, 초조, 절망, 좌절감, 죄책의 회오리바람이 잠잠해지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고 우리의 육신의 질병이 낫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을 얻게 되고 우리의 환경의 저주가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다가오는 믿음을 얻고 그를 가지고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그리고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삶과 영혼의 문제, 마음속에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폭풍우의 문제, 육체의 건강의 문제, 삶과 저주의 문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하나님의 해답을 예수 안에서 받음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매일매일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당장 교회에서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 현실의 생활에 당장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를 떠났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신앙에 대해서 잘못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고 말하고 밖에 나오면 죽여라, 살인하라고 말한다. 불일치이다. 불일치가 아닙니다. 현재 원수를 죽여라. 살인하라. 미워하라.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타락한 현실의 그 비참을 극복하고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는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 사랑하라.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하나님 안에서 이 사랑과 이 은혜와 이 축복을 받고서 그래서 현실에 나가면 쓸데없는 살상을 하지 않게 되며 또한 원수를 무조건하고 짓밟아 죽이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2차 대전을 통해서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를 믿지 않는 나라들이 포로를 어떻게 학대했다는 것을 압니다. 일본 제국주의나 저 히틀러나 소련이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나라들 포로를 잡아 가지고서 얼마나 무참하게 포로를 살상하고 학대하고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라인 미국이나 영국이나 연합 서방 연합군들이 포로에게 얼마나 인도적인 대우를 했다는 것을 여러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것은 왜?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전쟁과 미움과 살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치료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이 은혜가 그들 가운데 넘쳐 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과 무관한 복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현실의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혼의 죄사함을 받고 육체의 치료함을 받고 부활의 약속을 얻으며 현실의 모든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가져올 수 있는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그것에 믿음으로 서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현실에 다가오는 파도를 극복해서 파도를 밟고 걸어갈 수 있으며 폭풍우를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부인 한 사람이 실내 장식 전문자인데 거기에 마이크를 갖다 대고 "당신은 왜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까?" 하니까 그가 하는 말이 "나는 처녀 시절부터 오랫동안 교회에 나갔는데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를 한 11년 듣고 나니까 이제는 배울 것 다 배워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강단에서 목사님이 아 하면 가나다라 까지 다 안다. 그러니 모 교회 가서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다 아는데 나 혼자서 집에 앉아서 그것 옛날 들은 것 묵상하고 생각하면 되었지 교회 뭐하려고 나가. 이제는 다 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내 마음속에 찡하고 부딪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교만에 꽉 들어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성경은 말한 것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안다고 하나 실상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말씀을 일생을 두고 어떻게 다 알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일생으로 공부를 해도 성경의 진리를 다 꿰뚫어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이미 다 알기 때문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교회란 단지 설교를 들어서 지식만 얻는 장소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란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내가 성경의 지식이 한없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성경의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교회는 그곳에 와서 성령이 임하여 계신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래서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제를 떠나서 그 심령이 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생수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 곳에서 같이 찬미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설교하고 같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성령을 마셔들이고 하나님과 교제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깊어지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의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나 혼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세 사람 모여서 예배하는 그 자리에 와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교회란 것은 성도와의 교통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신앙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나보다 신앙이 많은 사람과 교제함으로 내 신앙이 강해집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신앙 속에서도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서만 살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삽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 라고 말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라는 다리는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찬미하고 함께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미운 사람이나 고운 사람 할 것 없이 강한 자나 약한 자 할 것 없이 함께 모여서 서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서로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이와 같은 장소가 교회인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하여서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란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므로 여러분이 구역예배도 모이고 그리고 교회 예배에도 모여서 함께 신앙생활을 정진하는 것입니다.
또 왜 우리가 교회 나오냐 하면 교회에는 대외 선교의 본산입니다. 나 혼자서 선교가 안됩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서 함께 계획을 세우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금하고 해서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의 지역사회에 그리고 우리 전국에 그리고 이웃 나라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인 것은 나만 구원받으면 되었다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구원받았으면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대외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선교하는 그러한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는 이제 설교를 듣고 충분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교회 갈 필요 없이 집에 혼자 남아서 있다는 이와 같은 오만된 말은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병들고 잘못된 신앙이 돼 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네 번째로 또 마이크를 갖다 대는 사람 보니까 부부간에 중년인데 조깅 복을 입고서 서로 뛰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따라가면서 당신은 왜 교회를 떠났습니까? 하니까 그가 하는 말이 뭐냐하면 이 세상에 시간이 없어서 세상의 쾌락을 누리기도 바쁜데 교회가지 가 앉아 가지고서 시간 보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일날은 늦잠 자고 일어나서 우리 마누라와 조깅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술도 마시고 세상 재미를 보기 위해서 교회 같은데 가서 따분하게 앉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충격을 느꼈습니다. 왜? 오늘날 교회를 나오지 않고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겠다고 세속적으로 앉아있는 이 세계가 그렇게 행복하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만큼 세상에서 이혼율이 많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이나 구라파 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도 오늘날만큼 이혼율이 많고 가정이 많이 파괴되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옛날보다 더 좋은 집에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서 세상의 모든 쾌락을 누릴 수 잇는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쾌락이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들이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된단 말인 것입니까? 나는 요번에 뉴욕에서 저명인사 한 분과 아침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침울하고 우울해서 내게 앉아서 말했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목사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무슨 수입니까?" "내 조카가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 "몇 살인데요?" "나이 12살입니다. 내 쌍둥이 형제의 아들인데 그렇게도 인물도 잘나고 학교에서는 공부할 때 올A입니다. 그래서 아주 머리도 좋고 훌륭한 아이인데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했냐 하면 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스케이트 대회에 일등을 하고 상을 탔습니다. 이런데 이번에 또 시카고에서 스케이트대회가 있는데 그 스케이트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하기에 엄마가 말했습니다. 너는 지금 공부하는 학생이다. 공부를 하지 않고 시카고까지 스케이트를 타러 가다니 그런 수가 어디 있냐? 가지 마라. 그랬더니 암말도 하지 않고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서 아버지 서랍에서 권총을 끄집어내서 머리에 대고 꽝 하고 쏴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이 " 우리 조카를 위해서 우리가 뭘 못해줬나? 옷 사달라고 할 때 옷주고 밥 먹여 달랄 때 밥 먹여주고 좋은 사립학교에 보내주어 돈 달랄 때 돈 줘 스케이트 사달랄 때 스케이트 줘 좋은 방을 다 준비해 줘 책 다 사줘 도대체 부모로써 못해줄 것 없이 하나도 없이 다 해주었다. 무엇이 불만족이 되어서 시카고에 가지 말라는 그 한마디 충격을 견디지 못하여서 권총으로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 할 수가 있겠는가? 탄식스럽다." 그리고선 그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나는 그럴 때 그 분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요. 사람이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외적 환경으로 아무리 부유하고 풍성하고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놓아도 내부적으로 텅빈 심령을 가지고서 무엇을 위해서 살며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삶의 가치를 모르며 내적인 생명이 결실을 얻지 못하면 충격이 오면 조그만 충격에도 견디지 못해서 자살해버리고 가정을 파괴해버리고 배반하고 팔고 조급하고 원수가 되고 이러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당신은 잘못했습니다. 조카에게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교육은 해주고 세상의 좋은 것은 주었지만 예수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진실로 그가 예수를 믿고 그 속에 성령이 충만했더라면 어머니의 꾸중을 들었으면 자기 방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꾸중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내 마음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몇 마디 기도만 했으면 해결돼버리고 말았을 것인데 그런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할 정도가 된 것은 얼마나 사람들의 내적인 세계가 오늘날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즐거움과 행복이란 것은 외적인 생활 환경을 아무리 보유하고 풍성하게 되어도 그것으로 오지 않습니다. 내적으로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래서 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갈 때 이 사람은 외적으로 적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리밥을 먹고 좋지 않은 옷을 입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 세상에 살면서 이 세사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러한 말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서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반대론 자들의 근원적인 문제가 그들이 교회에는 다녔지만 예수님은 만나지 못했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깊은 만남을 통한 성령님의 체험과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때 천지가 변하는 지진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결단코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신앙과 사랑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어 예수를 구주로 모시게 된 것을 감사 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예수께서 우리 속에 와서 계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을 부여잡고 영생을 얻었으니 우리는 이 한 길로 끝까지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