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관심과 무관심’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뉴욕의 어느 주택가 한 밤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여인의 비명소리가 온 주택가를 뒤흔들었습니다. 잠자리에 이미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들도 다 놀라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길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가로등이 찬란하게 비취고 있는 가운데 한 여인이 목숨을 걸고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에는 한 남자가 여인을 죽이기 위해서 손에 칼을 들고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그 주위의 사람과 동네 사람들을 향하여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그 여인의 일을 영화 장면 바라보듯 보기만 할 뿐 아무도 그 여자를 도우려 나오지 않았고 경찰서에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처절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창문의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악한의 손에 잡히어 칼에 찔려 죽어 다음날 피가 흔건이 고인 채로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일은 2-3년 전에 일어나 미국의 매스컴이나 유명한 잡지에서 대서특필로 다룬 실화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무관심의 세계에서 살고있는지 그 처참한 상황을 마음 속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어느 뉴욕의 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상황입니다.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관심의 늪에 빠져 사는지 감히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과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조차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쫓아 정신 없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육체의 정욕을 쫓아 이러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동안 속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를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고 죄와 마귀와 죽음과 절망의 피투성이가 되어 부르짖고 있어도 여러분은 그러한 외침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겉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 절대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과 몸과 노력과 금전을 드리면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자신의 속 사람, 영혼의 사람, 영원의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 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피투성이인 채로 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으나 영혼에 대해서는 처참하리만큼 무관심하고 살았던 사람의 운명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도시에 부자가 살았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부자는 고운 베 옷과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베옷이란 거부가 입는 고운 베옷입니다. 자색 은 권세 있는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색이므로 이 부자는 돈도 많고 권세도 있는 사람입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매일같이 친구를 불러 주지육림 속에 살았습니다. 이 사람의 절대적인 관심은 돈놀이와 권력의 획득, 친구들과의 교제에 있었습니다. 주지육림 속에서 육체의 쾌락을 도모하며 사는 것이 그의 전적인 관심사였습니다. 이 이외의 것에 관해서는 그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그가 육체와 향락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 그는 하나님께 무관심했습니다. 그의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마귀의 종이 되고 죽음에 처절하게 짓밟혀 영혼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도 그는 이러한 영혼의 외침에 무관했습니다.
사람들은 관심과 무관심 사이를 왕래하며 삽니다. 이 부자도 육체의 일에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혼의 일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 속에 살고있습니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권력과 금전과 쾌락을 위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이에 시간과 노력과 청춘을 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있을 속 사람,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몸 찢고 목숨을 내어 쏟아 죄를 사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는 영혼에 관해서 얼마큼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까?
부자가 밤낮으로 그렇게 사는 동안에 주 관심사가 전혀 다른 한 사람이 부자의 대문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거지였고 병들었고 아무도 그를 사랑하거나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개들이 와서 그의 아픈 상처를 핥아주고 개들과 함께 지내고 먹고 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외면적으로는 거지였으나 이 거지 나사로의 관심은 부자의 관심사와 달랐습니다. 이 거지의 관심사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점심에, 저녁에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에 비록 그는 거지이고 병들었으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부자가 육체에 온통 관심이 있는 것과 같이 거지 나사로는 영혼의 일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자가 영혼의 일에 완전 무관심한 것처럼 거지는 육신의 걱정, 즉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에는 지나쳐 버리는 관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문제에 운명과 목숨을 내어 걸어 시간, 돈, 청춘을 바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든지 세월은 흘러갑니다. 사람은 어린 아이로만, 혹은 젊은 청년이나 장년, 노년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알지 못하니라.” 고 밝히 말씀하십니다. 젊은 청년이 백발이 성한 노인이 되고 곧 인생의 객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후 심판이 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오는 세월의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의 관심사에 흠뻑 빠져 사는 동안 손살같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세월은 흘러가고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은 쉬지 않고 다가옵니다. 여기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월이 흘러가서 이 부자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남을까요? 부자의 죽음이 다가올 때 그의 관심사가 남아 있을까요? 아닙니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하고 죽음이 다가올 때 그가 목숨을 걸고 가지고 있던 관심사는 그의 손에서 떠나갑니다. 그의 권력, 돈, 친구, 주지육림의 환락도 떠나갑니다. 그가 세상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목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하나도 그를 붙잡아 놀 수 없습니다. 돈이나 권력, 친구, 환락이 죽어 가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주마등같이 지나가고 그를 구출해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픔입니다.
그래서 이 부자는 세상의 물질과 쾌락을 붙잡아 놓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세월은 그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그가 무관심했던 세계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영혼의 세계에는 처절한 무관심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이 부자에 관해서 전적인 무관심으로 대하십니다.
사람이 보배는 집안에 넣어두고 귀하게 돌보지만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린 것은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여기는 것들뿐입니다. 지옥은 바로 쓰레기 처리장입니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소금 쳐져 영원토록 고통과 고민 속에 몸부림치는, 아무리 부르짖어도 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무관심의 세계입니다. 부자는 자신이 하나님과 영혼에 대해 무관심으로 심은 것처럼 그는 하나님과 영혼의 버림받은 무관심의 세계로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합니다.
저는 이러한 그림을 본 것이 항상 마음 속에 기억나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여 큰 빌딩을 짓고 수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계속 많은 사업을 계획하고 그에 취하여 정신 없습니다. 몇 번이나 그 그림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이 세상의 일에만 분주해 하지말고 나하고도 이야기하자. 나는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이다. 십자가에 목 박혀 피 흘려 죽었다가 부활했다. 현실의 너의 생명에 관해 서가 아니라 영원한 너의 생명에 대해 관심이 있다. 내게 관심을 기울여 다오.’ 이럴 때마다 그는 그림에서 예수님을 밀쳐버렸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 큰 사업, 돈벌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일이므로 시간이 없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없습니다. 장차 시간이 나면 당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번이고 그에게 오셔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셨으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림에서 그의 머리가 어느새 백발이 되고 얼굴은 쭈글쭈글해 지고 허리는 굽었는데도 열심히 서류를 들여다보고 사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또 한 분이 와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여보시오, 갑시다.’ 그는 ‘아닙니다. 지금 시간이 바빠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 일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손길이 너무 얼음장같이 차갑습니다. 돌아보니 그는 사망의 사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어깨를 끌어당기는 사망의 사자에 의해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과 그의 모든 관심사를 모두 던져버리고 끌려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부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하지만 나사로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의 전적인 관심사는 하나님께 있었고 영혼의 일에 있었습니다.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실까보다는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에 관심의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죽음이 와 이 거지도 육체를 떠났는데 그는 이 육체의 세계에 대해 전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떠나 영원한 관심사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동안 하나님과 영원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섬기고 개발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선 영원한 관심을 가지고 나사로를 맞아 주셨습니다. 나사로가 육체를 떠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찬사가 나사로를 받들어 천국 아브라함의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은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시는 곳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기 시작할 때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과 소망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까지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그 아들 예수께서 목숨주어 죽기까지 관심을 가지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하늘 보좌를 떠나 우리와 의와 심판과 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꾸짖으시고 건지기를 원하시고 관심을 가지신 그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집중적인 관심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천국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그 관심과 사랑과 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는 부자가 지옥에서 버림받아 불꽃 가운데 괴로워 하다가 멀리 낙원을 바라보니 아브라함의 품에서 나사로가 위로함을 받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서 그의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고 영광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보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 괴로워하나이다.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에 물방울을 찍어 내 혀를 서늘케 하소서.’ 하고 외쳤다고 기록합니다.
누가 그 부르짖음에 관심을 기울입니까? 울어도 외쳐도 불러도 대답 없는 외침이 되고 아무도 그 부르짖음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하늘 나라와 영생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에 대해 무관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는 또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 세상에 가면 제 형제 다섯이 있습니다. 그 다섯이 헛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고 있으니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어 그들에게 경고하여 나처럼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지 않게 하소서.' 그 기도에도 무관심합니다. 세상에서 안한 기도 지옥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저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모세의 율법도 있고 선지자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서 전도하여도 그 사람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닙니다. 죽은 자가 나가면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천만 해요. 사람은 그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든지 그 관심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다. 나사로가 나가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소원인 저 세상에 있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한 부르짖음 조차도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지옥에 가면 기도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성경에 보니 지옥에 내려간 부자가 다섯 형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무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무관심으로 대했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관심을 가지실 리가 없습니다.
지옥에 내려간 사람들도 자기의 형제, 자매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믿는 형제 부모들, 이 사람들이 천국에 올라가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세상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과 일가 친족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보면 그 식이 끝나기 전에 그 가족이 구원을 받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그 죽은 자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의 시간이 있습니다. 내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냐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과 나의 영혼에 관해 관심을 가질 것이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먹을까 하는 썩어질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 것인가를 선택할 70년 내지 80년의 기간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합격할 것인지 낙제할 것이냐 이것은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돈을 잘 버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병원 일은 잘되어 많은 환자들로 붐볐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생겼습니다. 라디오와 TV에 인터뷰도 하고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삶의 극치의 즐거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조카가 예수님을 믿는데 조카가 수없이 와서 전도를 해도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왔습니다. 그는 진실로 신뢰하고 믿고 의지했던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하여 돈과 명예를 손상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로 인해 받은 영혼의 상처는 무엇보다 컸습니다. 그의 인생은 잿빛이 되고 삶의 의욕도 잃고 병원도 싫어졌습니다.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입원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가족을 만나지 않고 먹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의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가 심한 외부적인 충격을 받고 나니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헛되고 모두 거짓 되 보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조카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찾아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주고 찬송을 불러주고 성경책과 제가 저술한 책들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가 고통가운데 있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의 병상 뒤에 와서 서서 그에게 큰 숨을 내 쉬어주었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지나가더니 일시에 그 큰 고통과 괴로움이 그 숨소리에 씻겨나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의 방을 찾아오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뛰어 나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 후에 눈이 열려 보니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친구는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이었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병원을 전도지로 삼았습니다. 그는 전도지와 저의 책과 성경책 등을 쌓아놓고 오는 사람에게 마다 전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전도하고 기도해 주고 그리고 난 후 병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는 나를 만나면 ‘목사님, 이 세상에 사는 이유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절대 관심사요, 그분을 모시고 섬기고 전도하고 사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명예를 따라가 보았으나 한 번 충격을 받으면 깨어지고 하나 남는 것이 없는데 저는 일찍 깨어져 참된 삶을 얻은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네가 환란 당한 것이 네게 유익이라. 내가 환란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더니 환란 당한 이후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이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혼의 중대한 관심사에서 세상의 관심사로 흘러 들어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기를 원하시면 손을 드셔서 여러분이 세상에 짓는 그 사상누각을 쳐서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계란 깨뜨리시듯 모래사장에서의 성을 무너뜨리시듯 주님께서 무너뜨리셔서 세상 관심이란 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그것은 무너지고 남는 것이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의 구원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시어 영원한 관심을 손에 쥐고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관심을 받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까? 천국입니까? 영혼입니까? 썩어질 육신입니까? 둘 중의 하나에 여러분의 태도를 분명히 해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마다 관심과 무관심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것을 떠나 살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자랑과 안목의 자랑, 육신의 정욕에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영혼의 문제에 무관심했다가 부자처럼 버림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이 세상에 살면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살며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중심으로 살며 이 세상 모든 부귀, 영화, 공명에는 일시적인 과정으로서의 관심만을 가지고 살다가 주님 오시는 그 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무궁한 관심을 나사로처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예배드린 성도들은 영원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을 받는 자리에 들어서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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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관심과 무관심
by 삶의언어 posted Oct 28, 2024 Views 3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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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재림/종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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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1-07-26 |
오늘의 성구 |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RVjN9wjv1FM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