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인생의 유라굴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
자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여름에 풀들과 군불을 모아서 마당에 쌓아놓고
거기에 불을 놓아서 모닥불이라는 불을 놓았습니다. 그러면 불이 타고 연기
가 온 마당에 자욱해집니다. 그러면 모기가 연기에 쫓겨가고 돗자리에 앉아
서 편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름 초저녁을 즐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연기가 나고 불이 붙으면 불티가 상승기류를 따라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욥이 말하기를 불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
해서 태어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서 일생을 살면서 한번도 고난을 격지 않고 살 사람은 없
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한 사람 내 놓았습
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죄 없이 잉태되시고 죄 없이 태어나셔서 33년
을 사시고 남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
셔서 승천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은 죄 없이 태
어나셨시지만 그분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니 고난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같이 겪는 고난이지만 어떠한
사람은 고난의 파도에 부딪치면 산산조각이 나고 주어담을 수 없을 만큼 낭
패를 당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그는 그 위대하고 찬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삼아서 고난이 다가
오기 전보다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 더 크고 찬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와 같은 재료로 삼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인생고난 풍파 자연고난 풍파를 통해서 어떻게 사도 바울
선생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나갔는가 그 사실을 설명해 드리고 이로 말미암
아 우리 한사람 한사람도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능히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주님
이 택한 제자 중에 가장 위대한 제자입니다. 주님 생존시에 주님이 택한 열
두 제자에게 들어가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주께서 바
울을 택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눈부신 활약
으로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체포되어 로마
사람에게 넘겨졌고 그 길로 전전하면서 가장 수모와 고난을 당하시다가 이
탈리아에 가서 시장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 그는 체포되어 압송 당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아구사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이 많
은 죄수들을 거느리고서 로마로 가서 로마의 법정에 넘겨주려고 했던 것입
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죄수의 무리 속에 수갑을 차고 바울 선생은 끌려가
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율리오가 탄 배는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게 마침 이탈리아로 직행하는
알랙산드리아라는 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기뻐하고 이 백부장 율리오
는 다른 죄수와 바울을 그 알랙산드리아 배에 태워가지고 출발했는데 바람
이 잘 불지 않으니 그 옛날에는 범선이라 배가 겨우겨우 그저 배가 기어서
건너가듯이 가다가 나중에 미항까지 왔습니다.
미항에 도착하자 바울 선생이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서 죄수이지만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수족을 묶인 죄수이지만 그러나 그 마음은 묶이지 않
은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미항에 왔었을 때 하나
님의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미항에서 이 배가 출발하면 큰 풍랑을
만나서 화물을 물론 다 잃어버리겠거니와 사람들의 생명에도 크나큰 장애가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래서 바울 선생은 곧장 백부장 율리오
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율리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건대 이 배가 미항에
서 출발하면 풍랑을 만나서 화물도 잃어버리고 사람의 생명에도 장애가 있
을 것인즉 그러므로 내 말을 믿고 이 겨울을 미항에서 지나는 것이 좋다"그
렇게 말했습니다. 율리오가 이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선장과 선주와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여기 내가 데리고 가는 죄수 중에 아주 지식이 많고 기독
교의 지도자인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기도 중에 하나님께 묵
시를 받았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말이 아니라 풍랑을 만나서 배가
파손되고 화물은 다 잃어버리고 사람의 생명에도 위험이 있으니까 미항을
떠나지 말고 여기에서 겨울을 지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당신들은 어떻
게 생각합니까? 선장이 대소하고 웃습니다. 도대체 내가 뱃사람으로 지중해
연안을 평생을 이 배를 가지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인데 바다 물길은 내가 알
지 소생인 그 바울이란 그 종교인이 어떻게 바다 형편을 안단 말이요. 그 우
스운 소리하지 마시오. 계시가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 과학적인 세상에 해
류를 따라 경험 많고 과학적인 지식을 가진 내가 알지 그런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러자 선주는 선주대로 하루 속히 하물을 싣고 이탈리아로 가
야 물건을 팔고 자금의 순회가 잘되므로 돈을 한푼이라도 많이 벌겠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겨울을 미항에서 보낸다는 것은 상당히 물질적인 손해가 가
므로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백부장 율리오에게 단호하게 말한 것입니다. 선장
과 선주가 합쳐 가지고서 여기에 미항에 있을 것이 아니라 좀더 가면 이탈
리아와 가깝고 항구도 좋은 베닉스에 가서 베닉스에 가면 얼마나 좋아요. 항
구도 좋고 시설도 좋고 거기 과동하기도 좋고 봄철이 오면 곧장 이탈리아로
건너가도 좋으니까 베닉스로 가자. 그래서 백부장 율리오가 그 말을 들으니
바울 선생의 말은 어리석게 들리고 선장과 선주의 말이 타당하게 들리는지
라 그래서 그들은 선장과 선주에게 명하여서 높이 돗을 달고 돗을 올리고
배를 출항하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벌써 그들이 무서운 시련을 항해서 출항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꿈에도 모르는 선장과 선주와 죄수들과 거기에 타고
가는 모든 승객들은 모두 의기양양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남풍이 순하게
불어오니 모든 것이 자기들의 의지대로 된 줄하고 출발하다가 얼마 있지 않
아서 내륙지방의 유라굴로라는 무서운 폭풍의 바람이 휘몰아쳐 바다를 때리
니 얼마 있지 않아서 순식간에 바다는 지옥같이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파도
는 산더미같이 다가오고 그리고 바람은 천지를 변화시킬 만한 거센소리를
내고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장과 선주와 선원들이 전력을 기울여
배를 보존하려고 하나 그 거센 파도와 바람에 배는 인력변조로 어떻게 도저
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할 수 없이 사람이 거센 풍랑을
만나 목숨이 위험하니까 하루 견디다가 이튿날에는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서 그렇게 선주가 자기 목숨처럼 아끼는 화물을 모두다 바다에 던집니다. 돈
보따리들을 전부다 바다에 던집니다. 선주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모든 화물
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흘째 계속해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천지가 칠흑같이 어둡고 온 세계가 뒤 업혀진 것 같으매 이제는 배의 기구
조차도 무거우므로 선장과 선원들이 자진해서 이 배의 기구조차 다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래서 배에서 오직 배와 사람들만 타고서 목적도 방향도 없이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파도에 밀리면 밀리는 데로 하늘로 솟는가 하면 지
옥바다에 떨어진 것 같이 파도의 출렁임에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토하고 처참한 풍경이 그려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옥의 비극적인 상황 속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라굴로
를 만나서 이제는 사경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왜 이 알랙산드리아호가 유라굴로를
만나지 아니하였으면 안되었습니까. 유라굴로의 풍랑이라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유라굴로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잠자기도
한 것입니다. 왜 구태여 알랙산드리아 호가 유라굴로를 만났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이 선장의 교만 선주의 탐욕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사도 바
울 선생의 말을 듣고 하나님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귀를 기울리고 그
래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지혜나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오만을 버리
고 인간의 교만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켰더라면 유라굴로의 풍랑은 피할 수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내가 환난과 시험과 풍랑을 당해서 처
참히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모로 저모로 미리 그것을 경고해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 인간의 탐욕이 스스로 유라굴로를 향
해서 걸어들어간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알랙산드리
아라는 배가 처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고 천지지변을 원망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선장의 선주의 탐욕 때문에 그들만 스스로
절망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배에 탄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가
장 처참한 절망으로 휘몰아치고 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만과 탐욕이
유라굴로를 부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유라굴로의 풍랑에 휘몰아칠 세상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죄가 없는
곳이 없고 미움이 없는 곳이 없으며 사람과 공포에 떨고 처절하게 좌절하고
서로 살생하며 오늘날 세계가 언제 다시 한번 세계 제3차 대전의 비극적인
전쟁에 휘몰아쳐 들어가서 잿더미가 될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있
는 힘을 다하여 백성들이 굶주릴지라도 총과 칼과 대포와 비행기와 폭탄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고 세계는 또다시 무서운 유라굴로를 향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풍파들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최근의 가장 비극적
인 유라굴로의 풍랑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인간은 이렇게도 지성적이라고 말하고 이지적이라고 말하며 인격자라
고 말하면서 세계에 다가오는 유라굴로의 풍랑을 눈앞에 보고도 이것을 피
할 수 없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이 세상의 유라굴로를 가져올 때도 우리는
단적으로 그 결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방에 에덴을 지으시고 보
기에도 아름다우시고 먹기에도 좋은 나무로 다 실과를 맺게 하였습니다. 거
기에는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고 진선미의 아름다운 곳에 아담과 하와를 두
고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 동산을 가꾸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유라굴로를 가져오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 유라굴로 인생풍파를 가져
왔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교만과 탐욕을 넣어줌으로써 죄악과 사망
의 유라굴로가 불어와서 그들을 침몰시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
귀는 때를 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모든 실과를 따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 이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권자가 아니요, 주권적 소유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
나님의 대리자로써 일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해야합니
다. 선악과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 좋으니까 내가 선택하고 나쁜 것은
내가 버린다는 주권적인 행위 이것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의 주권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것을 마귀가 악용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마귀가 하와에게 말을 걸
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의 모든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
부정적인 방향으로 벌써 말을 찔러 놓았습니다. 하와가 대답하기를 "아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되 동산의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지도 못했습
니다. 그럴 때 마귀가 하는 말이 정면으로 "아니다.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교만입니다. 하나님처럼 주권
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하와가 그 열매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
혜를 얻기에는 탐스럽게 생겼습니다. 탐욕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에
교만이 심어지고 자기 분수를 넘어서 벌써 교만해지고 탐심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 시작해서 유라굴로의 풍랑을 향해서 돌진합니다. 하와가 그 실과를
따먹고 그 남편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마귀는 기뻐 뛰고 춤을 추었고 그
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유라굴로의 풍랑을 향해서 정면으로 뛰어들어가고 말
았습니다. 무슨 유라굴로의 풍랑인 것입니까? 교만과 탐욕으로 가져온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죄악의 유라굴로의 풍랑이 이들에게 몰아쳐 왔으며
죄악의 결과로 다가오는 사망의 폭풍우가 몰아쳐 왔으며 그 뒤에 저주와 질
병과 고난을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에서 일어난 유라굴로의 폭
풍우는 오늘날 인류 6000년의 역사를 통하여 세계 역사를 피로 물들리고 피
의 강과 피의 바다로 만들었으며 역사를 피로써 물들인 유라굴로 풍랑의 희
생자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교만과 탐심을 버렸다면 그
들은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유혹은 어디가나 있어요. 유
혹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난다는 것은 바깥 유혹 때문
에 그런 것도 아니고 환경이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 속에 교만과 탐욕
이 들어오면 어느 곳에나 유라굴로의 폭풍우는 휘몰아쳐 오게 됩니다.
오늘날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탄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25여년의 목회
생활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정말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던 가
정이 처참한 시련이 다가와서 일시에 파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남편의
마음속에나 아내의 마음속에 교만과 탐욕이 들어오자 유라굴로의 풍랑이 가
정을 산산조각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업가들이 사업을 잘해 나갑니다. 이
런 상태로 나가면 얼마 있지 않아서 참 훌륭하게 사업도 잘되고 기쁜 뿌리
가 박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람 마음속에 유혹이 들어와서 스스
로 교만해저서 머리를 내어 흔들기 시작하고 그 다음 탐욕이 들어와서 자기
분수를 넘어서 손을 내어 밀고 빚을 가져다 놓고 차관을 가져오고 투자를
하고 야단법석을 해서 제일 처음에 흥청망청합니다. 그러나 벌써 운명은 결
정되었습니다. 왜 교만과 탐심이 넘쳐서 유라굴로의 풍랑이 벌써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있다가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서
부도가 나고 파산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 다가오고 금주간 뉴스
거리가 되고 처참한 파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
지 죄가 교만과 탐욕인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성공이요, 멸망의 앞잡이요,
탐심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교만과 탐욕 이 두 가지를 용
납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바로 교만과 탐욕이 완전히 뭉쳐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시간의 여러분과 나의 미래에 관해서 우리가 점쳐볼 필
요가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장차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서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연속적인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서 박살이 날것이냐 하는
것은 내 속에 교만이 있느냐, 탐욕이 있느냐, 이것을 따져보고 교만과 탐욕
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엎드리면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할 수가 있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면 나는 유라굴로를 극복한 바울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랙산드리아 호에서 절망했을 때 유라굴로를 만났으나 그 유라굴
로 속에서 바울 선생은 홀로 승리자로 일어나서 풍랑을 만난지 약 14일 이
후에 바울은 일어나서 위대한 그 말씀으로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위로하고 삶의 길로 이끌어 준 것입니다. 거기에서 바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서 하는 말이 무엇이냐면 여러분이 여기 앉지 말라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
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내게 말씀하기를 이 배는 잃어버리나 너희에
게 생명의 손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한 그대로 믿노
라. 이 말속에 유라굴로를 극복한 바울 선생의 위대한 신앙철학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선생은 당신의 소속이 분명했습니다. 나의 승리는 나의 속한
바 하나님에게 있다. 오늘날 아담과 하와의 자손은 하나님께로부터 쫓김을
받고 버림을 받고 나온 이후로 자기의 소속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디
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소
속된 것을 모르므로 그저 자기 중심으로 살아서 자기의 지식, 자기의 지혜,
자기의 수단, 자기의 방법, 자기의 주먹을 믿고 교만을 떠는 것입니다. 소속
이 분명해지면 교만을 떨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께서는 하늘과 땅
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 나는 속해 있으며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그 값으로 나를 사셨기 때문에 나는 그 값 주고 산 하나님께 소속한 하나님
의 노예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일한다. 이러므로 그
소속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바울의 마음속에 교만이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앉으라 하면 앉고, 가라면 가고 오라
면 오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선하고 나쁘다는 결정
을 따라서 행하는 소속이 분명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여
러분과 나의 생애가 소속이 분명하면 잘못되었다가도 곧장 되돌아오는 것입
니다. 나침반이 있으면 길이 잘못되어도 다시 돌아와요. 우리의 생활이 하나
님 중심으로 마음속에 잡혔으면 우리가 조금 방향을 잘못 잡아서 교만과 탐
욕으로 갔다가도 즉시 회개하고 깨닫고서 본부로 돌아오기 때문에 약간 유
라굴로를 당했더라도 그대로 돌아와서 안전한 항구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
다. 이러므로 소속이 분명해야 되요.
둘째로,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
분 오늘날 왜 탐심이 생깁니다? 권력을 하나님으로 섬기니까 권력에 탐심이
생깁니다.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니까 돈에 탐심이 생깁니다. 육체의 쾌락을
하나님으로 섬기기 때문에 육체의 쾌락을 하나님으로 섬겨서 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탐욕이란 것은 무엇을 자기가 섬기느냐에 따라서 탐욕이 되는 것
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 모두 다 잘못된 것을 섬기
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은 지식 만능, 과학만능, 환경만
능, 쾌락만능으로써 이 세상은 완전히 유라굴로를 향해서 걸어가기 때문에
이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어찌할 수 없이 삼차 전쟁의 유라굴로에 부딪
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전쟁의 코스는 유라굴로를 통해
서 직행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나의 섬기는 하
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가는 것을 알았습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다리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시
간내어 하나님을 섬기고 몸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고 물질 드려서 하나님 섬
기고 목숨 바쳐 하나님 섬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
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는 정신, 바른 마음을 가진 그러한 사람이었습
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유라굴로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유
라굴로가 바울을 멸할 수가 없습니다. 왜? 바울은 탐심이 아닌 정심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 유라굴로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그 거센 유라굴
로가 다가와도 바울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는 유라굴로에 소속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
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무엇을 섬기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입
니까. 안목의 정욕입니까. 이 세상 자랑입니까. 권력입니까. 돈입니까. 철학입
니까. 여러분께서 탐심을 섬기고 나가면 그 결과는 부지불식간에 유라굴로의
풍랑 속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 선생은 말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인간
의 지식, 인간의 과학, 인간의 체험,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선주나 선장이 말
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지식이란 하나님께로 받은 계시를 바울은 가
지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는 과학
적인 지식, 인간의 역사적인 지식, 인간의 철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성경 말
씀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분별
력과 하나님의 판단력인 것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월은
가고 인류는 오고 가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
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이라도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의 수만권의 장서가 세월이 지나가면
다 없어지고 새로운 책이 나오지만 성경이 기록된 다음 아직까지도 한번도
고쳐 적을 수도 없고 고쳐지는 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에
서고, 하나님의 지혜에 서고, 하나님의 판단력에 섰기 때문에 이는 망할 수
없고 패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
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가
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
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
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하늘이 먹장같이 어둡고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아도 바울은 그것을 믿지 않고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은 유라굴로에 속하지 않았습니
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탐심이 없었고 말씀에 서서 그는 유라굴로를 능히
극복하고 그와 함께 탄 사람들도 다 구출하여 섬에 도착하고 로마까지 바울
선생은 그들을 안전하게 이끌어 가는 영의 지도자가 되었고 마음의 지도자
가 되었으며 그들의 생명의 은인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인생을 살면서 유라굴로의 혹독한
풍랑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고 이를 피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인생을 살아갈 동안 유라굴로 같은 풍랑을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풍랑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
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탐욕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면 유라굴로의 풍랑은 잠잠해
집니다. 여러분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해서 여러분은 안전한 항해를 하고 영
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간에 모두 다 바울과 같은 성도 되시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우
리의 소속이 분명하고 우리의 섬기는 것이 분명하고 말씀에 대한 믿음이 확
실하여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하고 이기고 나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게 도
와 주시옵소서. 인생 풍파 유라굴로에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는 자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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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인생의 유라굴로
by 삶의언어 posted Oct 27, 2024 Views 2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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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고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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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1-07-12 |
오늘의 성구 | 사도행전 27장 1절로 26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RVjN9wjv1FM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