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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참과 거짓

by 삶의언어 posted Oct 14, 2024 Views 3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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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5-01-13
오늘의 성구 요나서 2장 8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uFA2uHX9NY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참과 거짓'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거짓은 언제나 외면적으로 찬란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들을 유혹하나 그 종말은 독기 서린 처절한 절망과 고통으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마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 항구 부산은 그야말로 인산인 이였었습니다. 그때 우리 먼 친척 일 아주머니 한 분이 부산에서 살았는데 그 남편은 외항선을 타고 이 항구 저 항구로 돌아다니면서 무역을 하는 분 이였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씩 그 부인이 월급을 회사 본부에 와서 타가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월급을 타서 자기의 집으로 오다가 철길 가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하고 있었습니다. 가보니깐 사람들이 모여서 아주 비밀리에 팔고 사는 것입니다. 그 무엇을 하는지 보니까 일본제 재봉 침이라 하면서 이것은 극히 희귀하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그 당시에 이 미싱 바늘을 못 만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제 미싱 바늘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서 팔기만 하면 굉장한 돈을 벌 수 있는데 경찰이 뒤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팔지 못하고 숨어서 판다고 서로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사기꾼입니다. 거기에 그만 현혹이 되어서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파도를 헤치면서 일해서 벌은 남편의 돈을 다 주고 그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공업용 미싱 바늘을 잔득 사서 의기 양양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뭐 희색이 만면해서 이제 부자가 내놓는데 보니깐 이것은 그냥 줘도 쓸 수 없는 공업용 미싱 바늘 이였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알자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당장 물리겠다고 뛰어 가보니 철둑 가에 있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네다바이에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영혼을 네다바이 하는 원수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다 찬란하고도 매혹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거짓이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는 칼 막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통한 자본론의 옷을 입고 매혹적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잘 살게 해준다고 했지만 그러나 인류 역사상 공산주의만큼 무섭고 추악한 노예 제도를 만든 적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도 계시지 아니하고 인간은 물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인간의 죽으면 영혼도 사라져 버리고 만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간을 신으로 격상시킨 인본주의, 황금 만능주의, 쾌락주의, 권력 제일주의 등 우리의 영혼을 내다봐야 하려는 마귀는 쉬지 않고 거짓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수한 거짓의 세계 속에서 오직 진리를 밝히 앎으로 우리 인생을 네다바이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매일 매일같이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어떠한 원수들이 있나요? 어떠한 것이 참이고 어떠한 것이 거짓일 까요?

첫째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죄악 관을 가지고 이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죄란,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으로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종파 중에도 크리스천 사이에 난 종파는 죄란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죄라고 생각하니까 죄지 실제로 죄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란 없다고 생각하면 죄는 있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정신병 환자들도 죄 책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고통 가운데 오는 사람들 보고서 당신은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하면서 죄란 없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죄 책도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 진실로 죄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할까요? 또 소위 말하는 상황 윤리 주장 자들은 죄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 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 아무리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부부간에 산다고 할지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고 사는 사이면 그것은 강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남의 유부녀를 탈취한다고 할 지라도 진실로 사랑해서 두 사람 눈이 맞아서 서로 합쳐진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상황 윤리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런다고 죄가 아닐까요?
여러분 성경은 죄란 하나님의 법을 어긴 행동인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든지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어기고 사는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한 죄는 죄인 것입니다. 그 죄의 대가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요 그리고 사망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무리 아름다운 의복을 입고 매혹적인 설명을 가지고 온 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 죽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할까요? 죄를 버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길이 참된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저버리고 우리의 죄를 대 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몸 찢고 그 피를 다 흘리신 나사렛 예수 앞에 나가서 죄를 청산하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길 이외에는 여러분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명말 시키는 이 가장 무서운 죄악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길은 천하에 없습니다. 아무리 없다. 죄가 아니라고 해도 죄가 아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방에 가서 여러분과 내가 먹으면 즉사할 수 있는 쥐약에다가 이것을 사탕이라고 ???를 붙여놓았다고 해서 그 사탕이라는 ???가 치명적인 쥐약을 달콤한 사탕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는 죄입니다. 그리고 죄의 값은 동양에나 서양에나 사망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는 우리가 처절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 님을 받아서 성령 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며 의지해서 의와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의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좁은 길이요 괴로운 길일지 몰라도 이것이 참의 길이요 이것이 후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죄악으로 가는 길은 넓고 거기로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간 사람은 최후에 처절한 절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 거짓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된 자아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으면 자아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것밖에는 생각할 것이 없다.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고 안목의 정욕을 찾고 이 세상 자랑을 취하여 살다가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실컷 어떻게 하는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그럴까요? 이것이 참 말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살 동안 그가 무엇을 행했던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육체가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죽지 않은 영원한 영혼이 육체를 입고 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땅에 있는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장막 집은 잠시 세상동안 7,80년 우리가 오가는 천막입니다. 이것은 찢어지고 썩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 영혼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혈로 씻음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생을 얻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로 사는 것은 여러분 나중 7,80년 죽음에서 우리는 결판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영광이냐 영원한 수치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광이냐 절망이냐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결정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또다시 인본주의는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사용해서 무안한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 하나님 같은 것 필요 없다.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이성과 자유를 통하여 거대한 문화와 문명을 개발시켜 놓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이 세상에 지상 낙원을 만들었나요? 인간은 그 마음속에 미움과 공포가 있고 불신과 죄 책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미움이 있는 이상, 인간의 마음속에 공포가 있는 이상, 상호간 불신이 있고 죄 책이 있는 이상, 인간은 내적으로 병든 존재요 포로 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인간이 만든 이성으로서 짓는 방대한 문화나 문명이란 것은 자멸의 무덤을 파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보십시오. 20세기의 찬란한 인간의 과학 문명은 인간이 일시의 잿더미 속에 자멸할 수밖에 없는 무기를 생산해 놓고 상호간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군비 축소 회담을 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미움이 있고 공포가 있고 불신이 있고 죄 책이 있는데 그 군비 축소 회담이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까? 이제는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서 저 공중의 별들의 전쟁까지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인간은 자기들이 만든 이 인간 자랑 인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파멸을 겪고야 말 것입니다.
또 다른 잘 못된 것은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란 것입니다. 고로 인간은 고등동물에 불과하며 역시 동물이란 것입니다. 저가 예수 믿기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참으로 존경하는 어른이 계셨습니다. 그 어른이 말씀은 정말 내가 신중히 듣고 아주 마음속으로 존경했는데 하루 저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왔습니다. 그것은 그 분이 자기의 아내를 두고 새파란 젊은 여인을 첩으로 삼았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 어른을 찾아갔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본 부인이 있는데 딸 같은 여자를 취해서 첩으로 삼아서 같은 집에 사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첩으로 삼았으면 당신이 집이라고 따로 살아야 될 것인데 한 집에 같이 살다니 이것은 동물적이 아닙니까?" 내가 그러니까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이 사람아 인간은 아메바에서 출발해서 고등동물로 간 것으로 인간은 동물이야. 그러므로 본능을 따라 사는거야. 세상에 무슨 윤리 도덕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이야." 그래서 나는 일어나면서 내 속으로 말했습니다. '동물이면 동물하고 교제할 필요가 있겠는가? 동물보고서 내가 선생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그 때 소년 시절이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등지고 난 다음 다시는 그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었습니다. 왜? 동물을 찾아가서 뭐합니까? 여러분 과연 우리가 고등동물에 불과해서 무엇이든지 음란하고 방탕하고 음향하며 자기 멋대로 해도 괜찮다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동물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 결과로 그 영혼이 영원히 버림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거짓을 우리가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아 수련으로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 예수 그리스도 같은 것 믿을 것 없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수양하여 도덕과 윤리를 닦아서 훌륭하게 되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서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능히 알리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었을 때 그들이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다시 인간의 신앙과 도덕으로 회복할 수 없게 부패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썩을 대로 썩은 것을 인간의 수양과 도덕으로 어떻게 복구한다는 말입니까? 복구한다는 인간의 심령은 도저히 인간의 노력으로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과 나의 마음을 복구시켜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섬게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여러분과 내가 죄와 허물에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수양과 도덕으로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셋째로, 또 여기에 거짓이 있습니다. 질병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것은 달게 받아야 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선물이 안 달지 병원으로 뛰어가서 수술을 받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습니다. 만일 병이 하나님의 선물이면 여러분 하나님의 선물을 버리고 병을 없애버리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보면 병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아담의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심판한 것입니다. 이 흙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병이 들어서 육체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말하는 병이라는 것은 바로 죄의 대가를 말미 하는 심판이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로 이것을 미끼로 삼아서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명말 시키는 이 질병의 일을 계속 합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병을 실제로 우리에게 가져와서 우리를 파괴하는 것은 마귀가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였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해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쳐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심판이요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우리가 병들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직접 내 개인의 죄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 내가 병들 수가 있고 내 개인의 죄로 인해서 병들 수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짓지 않고도 병들 수가 있습니다. 병은 타락된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오염된 공기, 오염된 물 그리고 식품의 첨가제 이런 것을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벌써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손발이 없이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죄를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이 타락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오염된 세계를 만들어서 환경을 통해서 이런 질병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참 뜻은 병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사역의 3분의 2는 병 고치는 데 보냈었으며 12제자와 70인의 제자와 그 다음 모든 신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병든 자를 고치라'고 주님께서 신신당부했었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8장 17절에 '저가 우리 언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4절에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치료는 하나님이 뜻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 거짓을 우리는 던져버리고 우리는 치료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헐벗고 굶주리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거짓이 있습니다.
여러분 헐벗고 굶주려서 뼛골이 앙상하여 영양실조가 되어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러면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기근으로 말미암아 ??? 온 전신이 앙상한 뼈만 남아 죽어가고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 것입니까? 여러분께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셨지요.? 사진을 통해 보셨지요? 젊은 청년의 다리가 우리의 새끼손가락 만하게 적어져서 뼈만 앙상하여 죽어 가는 것을 보셨지요? 여러분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렇게도 무자비하게 사람을 굶주려서 건포가 되어서 죽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 것입니까? 성경어디에서 그런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오늘날 이세상의 가난과 저주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반역하자 그들이 에덴에서 쫓겨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너희는 이마의 땀을 흘려야 먹고 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온 이 굶주림과 저주이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가난을 신앙으로 극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지만 가난 그 자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난은 여러분 질병의 온상이요 범죄와 인간 비극의 온상인 것입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도둑질 안 할 도리가 없습니다. 거짓말 안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난 그 자체는 인간의 그 존엄성까지라도 파괴하는 저주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서 가난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미워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정신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많은 시련을 겪고 인격적인 교정을 당했지만 그들이 헐벗고 굶주려서 죽은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말하기를 그는 금과 은과 짐승 떼가 많았다고 말했었으며 이삭은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었으며 야곱은 한 떼, 두 떼의 양 무리가 바다 모래같이 많은 거대한 짐승의 주인 이였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변혁치 아니하신다고 말씀했는데 그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나를 헐벗고 굶주려서 영양실조가 되어 건포가 되어서 죽는 것이 뜻이라고 말한다면 이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태어나시고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산새도 들 집이 있지만 난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다녔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모금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대 속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금을 따른 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올라가서 못 박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여러분과 내가 죄에서 용서받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구유에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사신 것은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가난과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 그것은 저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 점 일획도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8장 5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희가 부유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너희가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여러분과 나의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서 일가 친척이나 사회나 국가에 손 내밀고 얻어먹는 것이 축복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가 ???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은즉 그 의가 영원히 있다고 말했었으니 여러분께서 나누어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헐벗고 굶주리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원하여 청빈함은 무방합니다.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는 재산 다 바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지에 들어가서 가난한 생활을 자처해서 일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칭찬할만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스스로 가난해 져서 이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가정의 짐이 되고 이웃, 친척, 나라, 세계에 부담이 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은 없다고 말하는 이 거짓에 우리는 또한 속아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최후의 심판이라던 지 지옥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인데 사랑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하고 지옥으로 사람을 보내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요 거짓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한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곧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육체로 죽는 것은 첫째 사망이고, 영혼이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짐을 받은 것은 두 번째 사망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 사람들이 두 번째 사망으로 심판을 받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림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베드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3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말씀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한다'이렇게 기록한다고 베드로는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에 뭐라고 말했었습니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역사의 종말에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여러분께서 하늘이 진동하고 그리스도 영광이 나타나고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듣게 되실 것입니다. 이날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날은 우리 앞에 곧 목전에 도달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서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활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있느냐? 사람이 죽으면 화학적으로 분해버리고 말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데 부활이 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고리도 전서 15장 51절로 54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됨 말씀이 응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망아 너희에서 오는 것이냐 사망아 너희이기는 것이 어디 있냐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재림과 부활, 심판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이 거짓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나는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버렸사오나 라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대한 진리로 우리에게 축복해주신 축복을 거짓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빼앗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에 속아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은혜를 버리고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루속히 회개하고 돌아서야만 합니다. 우리는 천지간에 영원 무궁하신 참 되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굳세게 서므로 거짓에 속아 인생과 영혼을 네다바이 당하는 비극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이 세상의 짧은 인생과 저 세상의 영원한 인생을 다 네다바이 당하고 이 세상에서 산 것이나 제 세상 영원이나 가장 처절한 절망에 떨어지게 하는 거짓에 속아넘어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진리 대신 예수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버리고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예수 앞에 나와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을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병 고침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저주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쟁취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게 하여 도와주시옵소서.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손을 내밀어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거짓에 속아 절망의 나라로 떨어지지 말게 하여 도와주시옵소서. 오 보혜사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운행하여 주셔서 오늘 혹시 거짓에 속아 절망에 사는 사람들이나 타락한 사람들의 눈을 밝혀 주시고 마음의 깨달음을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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