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하나님을 믿으라

by 삶의언어 posted Sep 10, 2024 Views 3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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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중략)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중략)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12∼14절, 20∼25절

공허와 혼돈과 흑암의 삶속에
주를 믿음으로 꿈을 가질 때
태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나

 예수님이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제자들이 그 곳을 지나갈 때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시며,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체험하는 위대한 신앙법칙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을 믿으라

 미국 사람들은 국민의 90%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텍사스주 베일러대학 종교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로 국민일보 9월 19일자에 나온 사실입니다. 가히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31.4%가 악한자를 벌하는 권위적인 하나님을 믿고 있고, 23%가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비로운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인들의 16%는 ‘우주 질서를 창조하고 자연의 법칙을 유지하는 힘’으로서 세상일에 개입하지 않는 무관심한 하나님을 믿고, 24.4%가 심판을 준비하는 비판적인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성경은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자손들은 전부 멸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고 마귀의 종된 인류를 건지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멸망에 처한 인류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청산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시며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으신 분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 아니라면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또한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8절로 10절에 “야훼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야훼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야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천당에 가므로 세상에서는 고생하며 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아 잘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범사도 잘되고 건강하기를 간구한다고 말씀하시므로 주님은 전인구원을 이루시는 사랑의 하나님, 좋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상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간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령충만의 삶도 주시고 우리의 생활에 축복도 상으로 허락하여 주시고 치료와 건강의 기적도 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넘치는 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이란 저수지 물을 집으로 끌어다 주는 수도관과 같다. 즉 하늘의 보물을 지구에 날라다 주는 수송 파이프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을 저수지와 같은 하늘의 저장고에 예비해 놓았는데 우리가 믿음의 파이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상을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상주시는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에게 사랑과 선함과 상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국적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전인구원의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위대한 꿈

 하나님은 우리가 위대한 꿈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산을 바다로 던질 수 있습니까? 이것은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식으로는 산이 바다로 옮겨지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도 사람에 의해서 산이 바다로 옮겨진 적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과 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큰 꿈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과 과학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 꿀수 있습니다. 꿈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학문이 깊고 가문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부자였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을 통해서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위대한 꿈을 마음에 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로 18절에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으며 꿈을 꾸었습니다. 100세나 된 자신과 90살이 된 사라를 통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산을 바다로 옮기는 것과 같은 위대한 꿈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게 하시므로 그 꿈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이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꿈을 꿀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해서 꿈을 꾸는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꿈을 꾸면 아무 유익이 없는 허탈한 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꿈을 꾸도록 도와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꿈은 현실이 아닙니다. 장차 이루어질 것을 오늘 잉태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가진 사람은 눈에는 안 보여도 어린 아이가 태어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꿈을 잉태한 사람은 당장에는 보이지 않아도 내일에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내일을 잉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으면 그 꿈대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꿈을 반드시 우리의 마음속에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우리의 소원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시지 않고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꿈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인한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오늘날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잘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당신이 만일 어떤 것을 오랫동안 열심히 상상하고 마음속에 그리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꾸며 의심치 아니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우리는 위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리신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받고 의롭게 된 내 자신을 꿈 꿀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와 마귀에서 해방되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해지는 것을 꿈 꿀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하여 병고침 받고 건강하게 되는 것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될 것을 꿈 꿀수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꿈을 꾸고 믿음으로 바라볼 때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의지하므로 크고 위대한 꿈을 꿀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을 때에 담대히 입술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선언

 천국의 능력은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바라고 믿은 것은 입술로 담대히 선언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실 때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생겼고 “궁창이 생겨나라” 하니 궁창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바닷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육지가 생겨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육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입니다.시편 33편 6절에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으로 구원의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귀신 들린 자가 고함을 치므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말씀으로 쫓아내시고 병든 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병이 나았습니다. 말씀은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매어 오는 것을 중지시키고 관뚜껑을 여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 14절로 15절에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가서 썩은 냄새가 날 때도 주님께서 무덤문을 열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 죽은 나사로가 걸어나왔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3절로 44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사역은 모두다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의 사역도 말씀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로 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쳤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과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베드로가 가졌던 믿음과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담대함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그 말씀으로 담대하여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용감한 선언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담대함과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기적을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더 많은 담대함을 가지고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선언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담대히 선언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언하는 믿음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의인이다. 나는 성령충만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천국 백성이 되었다.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선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를 파괴적으로 사용하면 파괴가 오고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유익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을 말하면 사망이 오고 생명을 말하면 생명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축복을 말하면 축복이 오고 저주를 말하면 저주가 오게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열어서 풀면 하늘에서 풀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혀를 통하여 담대한 선언을 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의심하지 않는 믿음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는 미래형으로 기도합니다. 장차 구원해 주실줄 믿고 병낫게 될 것을 믿습니다. 또한 장차 축복해 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미래형 기도는 언제나 의심을 일으켜 마음에 불안과 초조를 야기합니다. 의심을 일으키는 또다른 기도의 형태는 현재형 기도입니다. 주님께 지금 당장 복을 주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할 때 마귀는 언제나 의심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형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죄를 용서해 주셨으므로 나는 용서받은 사람이니 이것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2000년 전에 이미 내게 성령을 주셨으므로 그것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00년 전에 이미 복을 주셨으므로 주신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때 의심은 다가올 수 없는 것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지금 이루어 달라고 기도한다면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자 사력을 다해 의심을 일으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말한다면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의심을 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제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고쳐주신 병에서 놓여나 강건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복을 주셨으니 받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 2장 6절로 7절에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야훼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요나는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이미 건지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 물고기 뱃속에 있을지라도 이미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셨다고 기도할 때 마귀가 의심을 갖다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건짐 받았는데 건져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응답했는데 응답하지 않았다고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나가 과거에 이루어진 사실을 놓고 기도한 것과 같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그대로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시인하는 과거형 기도를 통해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의심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할 때 들어오므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4장 20절로 21절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실 것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자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할 때 의심을 주는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면 마귀가 들어와서 의심을 심어놓게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아담 이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예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없는 사랑으로 용서받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용서하고 서로 화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고 화목케 하신 그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화목을 이루지 못하면 마음에 생기는 죄책감을 통해 의심이 들어오게 되지만 이웃을 용서하고 서로 화목할 때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5절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기대하고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위대한 꿈과 믿음을 통해서 입술로 고백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의 깊음 속에 있을지라도 찾아오셔서 우리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기 원하십니다.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가난은 부요로, 질병은 건강으로, 패배는 승리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은 오늘날도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큰 꿈을 품고 믿음의 입을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믿음의 선언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또한 언제나 용서하고 화목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없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