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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

by 삶의언어 posted Oct 10, 2024 Views 4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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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사랑
예배드린 날 1988-11-20
오늘의 성구 로마서 8장 29절로 3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CH_L-gJEEIo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사람들은 금이 값지다. 은이 값지다. 보석이 값지다. 다이아몬드가 값지다. 혹은 권력이 값지다. 부귀와 영화가 값지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값으로 형언할 수 없이 값진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다이아로 치장해놓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사랑이 없는 곳에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며 부귀와 영화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인간과 동식물 및 무생물까지라도 사랑을 하면 변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란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자꾸 받으려고 하고 사랑을 해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게 희생이 따릅니다. 내가 적게 사랑하면 내게 적게 희생이 따르고 내가 많이 사랑을 하려면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희생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 사랑이고 진실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부모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생각합니까? 그것은 부모님이 위선적인 사랑을 베푼 것도 아니고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나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다 달토록 수고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불순종하고 반항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해도 오래 참아가면서 고쳐 주셨기 때문에 그 희생이 그 사랑을 증명하므로 부모의 사랑을 평생토록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한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 세상에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자기 목숨인 것입니다. 가장 값진 자기 목숨을 친구를 위해서 버린다면 그 희생이란 극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넘치는 사랑으로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으니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한 사랑이란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과 한번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음미해보십시다. 에베소서 1;3-4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창세 전에 사랑안에서 택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창세 전에 우리를 택했다는 것은 이 육지도 생기기 전에 이 바다도 생기기 전에 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생기기 전에 태고 영원한 저 옛날에 여러분과 내가 우리 어미니 뱃속에서 형질이 생기려는 꿈도 꾸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미리 보시고 사랑 가운데에서 여러분을 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오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앉아 계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게된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해와 달과 별들도 생겨나기 전에 영원 무궁한 저 옛날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이미 바라보시고 택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 할 때 정신이 아찔하고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50억 인구 가운데 어찌 하다가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택하신 것은 그냥 무조건하고 그대로 택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였으면 우리가 기분이 나쁘면 또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지도 모릅니다만 변치 않는 우리 하나님께서 억만년 전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러분과 나를 보고 택해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바울 선생은 빌립보서 3;12절에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잡아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지금 믿게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잡혀서 믿게 된 것이므로 기왕 잡혔으니 우리도 더 잡아보자 그리고 뛰어가는 믿음이 나의 믿음이라고 바울 선생은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에 깊이 감격을 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이 잘났기에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영세 무궁한 그 옛날에 벌써 나를 택하여 주었는지 하나님이 택하여 주지 아니했는데 내 발로 걸어서 교회에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50억 인구가 모두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 그리고 성경은 또 말합니다. 에베소서 1;5-6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실 뿐 아니라 또 해와 달과 별들도 생기기 전에 저 영구한 그 옛날에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점을 딱 찍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옛날에는 어린 자녀들을 낳으면 그 어린 아이들이 좌우를 분별하기 전에 부모님들이 미리 서로 사돈을 삼자고 해서 마음을 딱 정해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자라면서 서로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나 나중에는 서로의 약혼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미 미리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억만 년 전에 택해놓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다 미리 정해 놓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의 정함을 받아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번 정하시면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로 예수 믿고 중생한 사람은 타락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았는데 누가 하나님의 정한 그 쇠줄을 끊고서 내 마음대로 타락을 합니까? 하나님의 예정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교회 구경왔다가 타락하는 그런 일은 있지마는 하나님의 정함을 받고 미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점찍어 놓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타락은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정해 놓았는데 누가 그 하나님의 예정을 끊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억만 년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이미 미리 정함을 받고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들들이 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8;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주 만물을 우리에게 후사로 주시려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만물을 후사로 주려고 하는데 아무나 불러다가 너도 가져라. 너도 가져라. 이렇게 할 턱이 없습니다. 우리도 아들딸이 있으면 며느리 감도 택하고 사위 감도 택합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덥석 잡고서 우리 며느리하자. 우리 사위하자. 그렇게는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상속으로 주려고 하는 자녀들을 주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무작정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원 무궁 전에 이미 주님께서 택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우주를 상속으로 받게 하려고 미리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 예정해 놓은 것이 이제 때가 오매 우리 시대에 와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고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여기에 들어왔지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셨는데 혼자서 "예" 대답하고 나온 줄 아십니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서 대답하고 나오면 그것은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용기야 나오너라." 하신 것입니다. 저는 30년 전에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조용기야. 이제 때가 왔다. 오너라." 부르셨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안 갈래요. 내 멋대로 살래요." 하나님께서 저 눈이 어둡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녀석을 어떻게 하나 하시다가 정히 오지 않으려면 내가 혹사 시켜서라도 나오게 해야겠다. 그러셔서 제가 폐병이 걸려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가지고 죽게 되었을 때 그때야 제가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그냥 처음에 나오라고 했을 때 그냥 나왔으면 좋았을 터인데 대개 사람들은 그냥 오라고 하면 안 오고 한 대 얻어맞아야 그때 나옵니다. 그러나 그 때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때려서 끌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경에는 버린 자식은 부모가 채찍을 대지 않아도 부모가 바로선 사람들은 자식들마다 채찍을 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직접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와 모양으로 우리를 부르신 그 사랑. 하나님이 끈질기게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놓고 난 다음 죄 있는 우리를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켜 예수님이 몸 찢고 피를 흘리셔서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 죄를 다 청산하게 하시고 그 예수를 믿어서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용서받은 의로운 옷으로 입혀서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금 보실 때 이미 우리는 영화로운 자식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이미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또,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하늘에 올라가서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은 그 모습을 바로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그 영화로움이란 말은 하나님이 장차 영화롭게 하겠다고 하는 말아 아니라 이미 영화롭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여러분이 이미 천당에 올라가서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구원이 확정적인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벌써 천당에 영화를 얻고 가서 앉아 있는 것이 확정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것을 여기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에 보면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 가문이 좋아서 인물이 잘나서 실력이 있어서 좋은 행실을 해서 그 대가로 구원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셔서 선물로 주셨는데 선물 받는데도 무슨 자격이 필요합니까? 이제 크리스마스 때가 오면 각 교회에서는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선물을 줍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우리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아니요. 선물을 주고 싶어서 우리가 갔으니 주고 싶은 사람 마음에 따라서 주는 것이지 무슨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므로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셔서 만세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여러분을 하나님이 벌써 보시고 택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미리 정하시고 이제 때가 와서 여러분이 태어남에 여러분을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의 보혈로 씻으시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영화롭게 만들어서 천당에 올라가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공짜로 주는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자랑할 것이 없어요. 내가 무슨 잘라서 행위로 된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해서 받아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구원이 얼마나 큽니까? 그럼 길거리에 가는 사람이 다 구원이 되나요? 안됩니다.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열심히 전도하지마는 우리가 전도한다고 다 예수 믿나요? 안 믿지요!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찾는 것이 우리의 전도하는 목적입니다. 택함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전도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안 믿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을 받고 미리 정함을 받고 부르심을 입고 의롭다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받는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얻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힙니다. 감격하고 감사하지 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가? 그것은 우리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니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서 말씀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지극히 사랑 받고 있습니다.

둘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랑이 가져다 주는 내적 변화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면 내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 중에 하나가 대적이 겁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해와 달과 별들도 하나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저 대양과 이 육지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는데 이 전지전능 무소부제 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주셨는데 누가 나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나님 허락 없이 누가 나를 과연 대적해서 넘어트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의 머리털 숫자조차 센바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참새 한 마리도 떨어뜨려지지 않는 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억겁 만 년 전에 이 사랑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로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송사가 겁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33-34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자! 하나님이 나를 자격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셔서 택해 미리 아들로 정하시고 부르셔서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셨는데 누가 날 보고 "너는 자력이 없다. 너는 무능하다. 너는 죄인이다. 너 같은 사람은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의롭다 만들어 놓았는데 누가 이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온 세상이 날 버려도 하나님이 안 버린다고 했는데 내가 왜 버림을 당합니까? 더구나 날 위해서 죽고 장사지냈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보좌우편에서 지금도 날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누가 나를 송사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안 버렸는데 세상이 나를 발길로 이리저리 찬들 내가 차일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가져다주는 마음에 큰 확신이 우리의 내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필요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마음에 생깁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은 날 별 가치도 안주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들이 생기기전에 이미 나를 택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쓰레기를 하나님이 택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택한 만큼 여러분은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야! 내가 가치가 있다. 내가 필요한 존재이다." 사람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그때 신바람이 납니다. 무용지물이 되면 인생에 버림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필요한 존재이구나. 그리고 사랑이 삶의 의미를 확실히 해줍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도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 부인이 어려운 가정생활을 해도 그 고통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짓밟고 발길로 차고 욕을 하고 생활은 가난하고 집에서 고생하면서 삽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삶에 의미가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멸시당하고 천대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하면 그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아나갈 힘이 없습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이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난 다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자기 물질을 드려도 아깝지 아니하고 시간을 드려도 아깝지 아니하고 몸을 드려도 아깝지 아니하고 희생을 해도 아깝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고 보니 모든 하는 일에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을 해도 그 고생에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으면 여러분 고생이 고생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젊을 때 흉내를 내고 거들먹거렸으나 이제는 제가 젊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삼십대, 사십대 그냥 계속 해외 여행을 하고 토요일 날 돌아와서 설교를 하고 또 나가고 그래서 그 스타일로 제가 일을 했다가 이 주일 전에 일본 나고야에서 한 사나흘 굉장히 몸살이 나서 아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서울에 와서 일주일 있다가 또 미국으로 갔는데 주일날 한 주 안 빼먹으려고 미국을 강제로 갔다가 오랄 로버트 대학에 가서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모였는데 이틀동안 밤새도록 아픈데 말로다 할 수 없어요. 온 뼈가 다 쏘고 아침에는 벌벌 기어나갔어요.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우황청심환을 셋 통이나 잘라서 물에 타서 마시고 그냥 기어나갔어요. 그래 설교하고 오늘 스크린을 보니까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 것 같지요? 그러나 사실을 내가 아파서 속으로 죽어가면서 설교했다고요..... 그러니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평시도 같으면 아프다는 말이라도 하겠는데 목사가 되어서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끙끙 앓아가면서 이러다가 죽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날 정도로 심각한데 설교하고 그리고 좀 쉬어가라고 붙잡는 것을 요번주일날 비우면 안된다고 그냥 그 길로 뛰어 왔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죽으려고 그렇게 하느냐?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가 마음에 느끼기 때문에 아무리 앓고 아무리 고생을 하고 해도 그 일에 보람이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이렇게 가치가 있기에 하는 것이 참 보람차다. 보람이 있으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보람이 없으면 일을 해도 그렇게 힘이 들고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남녀선교회 회원들이 주일, 수요일, 금요일 날 이렇게 와서 월급도 안 받고 다리가 아픈데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 누구도 고맙게 여깁니까? 오히려 신경질 내고 짜증을 냅니다. 그래도 아주 활기차게 일년 열두 달 변함 없이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 하나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보람이 있습니다. 그 보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고생도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기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의 사랑 비출 때에 기쁨이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이 온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부은바 되면 내 마음속에 한량없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 없이 마음에 큰 기쁨이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이 찹니다. 하나님 사랑을 깨달으면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이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질 소망이 마음속에 차 오릅니다. 사랑이 바로 소망 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요 그리고 자신이 생깁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자신이 없나요? "나는 사랑 받고 있다. 야!!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온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해도 겁날 것이 없다. 나는 사랑 받고 있다." 마음에 자신이 생깁니다. 기도에 자신이 생깁니다. 찬송에 자신이 생깁니다. 전도에 자신이 생깁니다. 삶에 자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느끼게 될 때 큰 힘이 생깁니다. 삶에 이제 좌절되지 않고 용기와 힘이 생겨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은 우리 내적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벌써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해 주셨지만 사람들이 그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버림받은 심정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여기 바울 선생은 이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에 큰 변화를 받고 그는 사랑의 선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세 전에 나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사랑의 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붙잡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묶으셨기 때문에 이 사랑을 누가 끊을 수 있느냐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냐? 와 보라. 환경의 풍파는 더욱 하나님의 사랑에 가깝게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못하도록 환란을 가져오면 오히려 그 사랑에 부채질을 하는 것이 됩니다. 더욱 사랑이 뜨거워집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양가에서 못하게 하면 점점 더 불타게 사랑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환란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더 불타서 우리 마음속에 부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환란이여 와 보라.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나 곤고여 오라. 곤고는 마음의 고통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위로가 능히 이기게 합니다. 곤고가 오면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위로를 해 주시기 때문에 그 위로가 마음에 넘침으로 어떠한 마음의 곤고도 우리를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핍박이여 와 보라. 이 세상에서 핍박이 와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하면 핍박이 올수록 더 믿음이 분발됩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가장 처절한 기독교 박해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교회가 왕성하게 자라나고 온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이라는 것은 오면 올수록 더 사랑을 뜨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근이여 와 보라. 여러분, 이 세상에 기근이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것 같지만 속에 있는 사랑은 밖에 있는 기근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쪽박 하나 차고도 하루 한끼를 먹어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니까 낙심이 되는 것이지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기근이 다가와도 극복할 수 있어요.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그 기쁨이 넘쳐나기 때문에 세상의 배고픔을 이겨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신이여 오라. 발가벗겨서 옷을 다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영광의 옷이 되어서 우리를 입히고 있기 때문에 적신이 온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꺾이지 않습니다. 위험이여 오라. 여러분, 아무리 위험이 온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데 그 위험이 우리를 어떻게 협박합니까? 천지 만물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이 겁나지 안습니다. 칼이여 오라. 때가 와서 칼이 와 우리를 죽인다고 겁날 것 없는 것은 칼은 우리 육신의 겉 사람을 죽이지만 우리 속 영혼은 손대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 몸은 죽이나 영혼을 손대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동시에 지옥 불에 던질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칼이 와서 우리 육신을 죽이는 것. 아무 어려움 없습니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육신의 다가오는 칼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바울 선생의 입을 통해서 말하기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환경적인 어려움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승리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사랑을 찾기 위해서 금을 주고 은을 주고 보석을 주고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주고 발버둥을 치지마는 이러한 것은 남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다 사라지고 말아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져오라고 천사를 보내니까 한 천사는 꽃이 아름다워 꽃을 잔뜩 꺾었습니다. 다른 천사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아이의 웃음을 가졌습니다. 또 다른 천사는 어머니가 정성을 다하여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사랑을 취했습니다. 세 명의 천사가 이 세 가지를 가족 천당에 올라가는 동안에 시간이 오래 걸려 꽃은 다 시들어서 흉해지고 어린아이는 다 자라서 흉악한 놈이 되어있는데 오직 변치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시간이 흘러가도 변치 않더라는 것입니다.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편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기 그 옛날에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깊이 감사하게 되고 헌신하게 되고 충성하게 됩니다. "야!! 이런 사랑을 내가 받고 있구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때는 항상 형식과 의식의 포로가 되고 신앙 생활에 즐거움보다 고통스러워지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만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신바람이 납니다.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찬송도 즐겁고 기도도 즐겁고 마음속에 큰 은혜가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미리 아시는 고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정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의롭게 하시고 그리고 천국 백성으로 영화롭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을 우리는 깊이 감사하고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라도 더 택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부르짖으며 열심히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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