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영적으로 함께 하는 삶

by 삶의언어 posted Oct 24, 2024 Views 4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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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그리스도인
예배드린 날 2007-06-17
오늘의 성구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JE1HXuWgY4w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장 13∼14절


아담의 범죄 후 죽었던 우리 영혼
예수 그리스도 의지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두려움·불안·절망 극복한 승리의 삶 살수 있어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죽었습니다. 마귀의 영과 연합하여 육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죽은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성령이 연합하여 육체 속에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나 믿는 자나 그 속사람이 영적인 사람은 홀로 사는 법이 없습니다. 동물은 영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육혼이 사라지지만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영과 함께 살고 주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아 성령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1. 아담의 후손들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타락한 사람들은 모두 마귀가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나자마자 마귀의 종이 되어서 죄, 세속, 질병, 저주, 죽음의 사슬로 묶여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벌써 속은 것입니다. 자유롭지 않습니다. 속에 마귀의 영이 와서 죄와 세속과 질병과 저주, 죽음의 사슬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죄와 사망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마귀와 더불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 속에 마귀의 영이 와서 함께 산다니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면 대노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마귀의 영이 내속에 들어와 있냐?’고 할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의 영이 불순종의 자녀들 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불순종의 영은 사람들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차단합니다. 끊임없이 믿지 않는 사람의 영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교통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하나님에 대한 말도 못하게 하고 하나님 근처도 못가게 분열을 시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영속에 마귀의 영이 동거하기 때문에 동거하는 마귀의 영이 힘을 다해서 막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3절로 4절에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취지 못하도록 세상의 신이 차단을 하고 방패막을 세워서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속에 들어와 있는 마귀의 영은 세상적인 관심사에 마음을 끌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관심사는 전혀 없게 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살도록 세상일에만 아주 분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 있는 이 악령은 사후세계에 전혀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래는 신속히 현재가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미래가 순간순간 현재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순식간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현재 살아있지만 죽음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항상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예비하고 있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올 때 쉽게 그것을 건너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관심이 없어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완전히 침몰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내일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 그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장차 다가올 것이니 그때 관심을 가져도 좋다’라며 지금 사후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고 히브리서 9장 27절로 28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후의 세계에 무관심하면 반드시 죽음과 심판을 면할수 없고 처절한 절망을 영원히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주인 바꾸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마귀의 영을 쫓아내고 주인을 바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빌미로 해서 마귀가 우리를 종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죄의 빚을 청산하면 빚쟁이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 일생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기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위에 부어져서 우리의 모든 빚이 청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빚이 청산 되었으니 빚쟁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빚 때문에 마귀가 우리의 주인 노릇 했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빚에서 청산되므로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혈의 능력이 큰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이 주인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느 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학생들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쉽게 이길 수가 있었습니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 사탄이 내 마음의 문을 자주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칠 때가 있다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가셔서 문을 열어 주시지. 그리고 마귀가 ‘이 집에 루터가 살고 있지요?’하고 물으면 예수님은 ‘그래. 과거에는 루터가 살았지만은 이제는 내가 살고 있어’ 그렇게 대답하면 마귀는 기절초풍을 하고 대경실색해서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만다네”

 내가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바로 이 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주인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주인 예수님께 의지하고 마귀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우리에게 돌아오려고 할 때 주인 예수님 뒤에 숨어서 예수님과 함께 나가면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더불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이제는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머니와 같은 영이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따사로운 손길로 자상스러운 마음으로 자녀를 돌보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로 우리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를 붙들고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우리 눈에 안보여도 바람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뜻하고 사랑하는 인격을 가지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통을 끊임없이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관심사를 하나님 아버지에게 두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고 계시를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통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거처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들어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에 살고 물질 속에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영원한 고향인 하늘나라 생각으로 마음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세상 일 밖에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지만 성령이 오시면 우리 마음을 점령해서 우리가 장차 들어가야 될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생각하게 하고 언제나 이 땅에 살면서 의로움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의로움이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고 14∼15절에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고 끊임없이 전파하는 사람들을 보내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가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주인이 바뀌어졌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 말씀처럼 우리가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흑암의 권세가 우리 주인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셨으니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마귀가 우리 주인일 때는 마귀를 따라 정욕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이고 죄악을 즐겨 했지만 주인이 바뀌어서 예수님이 들어왔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진리와 거룩함을 좇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보는 것이 새로워지고 듣는 것이 새로워지고 생각하는 것이 새로워지고 마음에 느끼는 것이 새로워지고 말하는 것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주인이 되었으므로 24시간 주님과 함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은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 아닙니다. 형식과 의식이 아니고, 우리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아니하면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한 관심 속에 살게 하십니다. 언제 예수님이 재림할지 모릅니다. 주님은 가실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재림하는 것을 못 볼지라도 우리 속에 언제 재림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고 무너진 우리 영혼을 영접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실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떠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와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재림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든지 영으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든지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나그네같이 지나가다가 주의 나라로 들어갈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로 27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재림하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한데로 갚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재림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항상 천국 관심사 속에 살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영이 하는 일과 우리 속에 들어온 성령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다릅니까? 주인이 다르니까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와 방향과 가치와 철학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3.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보혈로 값주고 산 성전인 우리 속에 성령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반면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함께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계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고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는 와서 거처를 같이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를 같이 하는 하나님의 지성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멀리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더듬어 찾으려고 애를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폐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영혼 속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멀리 떠나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 나와 같이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 어떻게 살아갈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부족할지라도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도할 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모략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지식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겠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길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는 것이니 수많은 경쟁자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의 밥상을 차려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허락하여서 승리의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샘솟듯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여 주셔서 올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망을 극복하고 평안과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부르짖고 믿으면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크므로 일어나서 스트레스를 물리치고 믿음, 소망, 사랑, 용기와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어 모든 바깥의 스트레스를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넘쳐나서 모든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초조, 절망을 극복하고 평안과 용기와 힘을 얻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 의지해서 육체적인 허약과 질병을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육체적인 질병이 다가오고 허약함이 다가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께 의지하면 원수보다 강한 능력을 주시므로 원수를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여 강하고 담대하고 원수를 물리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놀라서 뒤로 물러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에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내가 나를 보는 눈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성령의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맘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마귀의 사람, 마귀에게 점령당해서 마귀의 영이 이끄는 대로 썩어짐과 사망과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구출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옛날에 다 마귀의 영에 잡혀서 이 세상을 따라 살고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해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고 마귀의 영이 쫓겨 나가고 성령이 들어와서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속에 살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항상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고 마귀를 이기고 연약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