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죽음이 왜 두려운가

by 삶의언어 posted Oct 04, 2024 Views 3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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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사후 세계를 두려워 하는 인간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명확히 언급
예수님 의지하면 두려움 극복하고 천국 소유


 살아 있는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좀 더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오래 살고 싶어 할까요?

 

 1. 죽음이 생존의 끝이요 그 이후는 전적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경계선 저편은 전혀 모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는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집이 있고, 살던 세상이 있는데 이것을 다 잃어버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간다는 것은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잠깐 사는 세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죽음 건너편의 세상은 영원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내과의사 모리스 롤링즈 박사는 죽었다가 살아난 많은 환자들을 병상에서 인터뷰한 것을 모아 「죽음의 문 너머」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죽음이 임박하여 의식이 흐려져도 방안 전체의 모습이 보이고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육체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 순간 육체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고 무언가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간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빛의 천사, 사랑이 넘치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황금 빌딩, 수정같이 맑은 도로, 아름다운 동산과 같은 곳을 방문하고 거룩한 존재 앞에 서는 경험을 한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환자들은 알 수 없는 흑암의 존재들에게 끌려 불구덩이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가 돌아왔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했던 모든 일들과 말들이 천사들과 심판자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같이 한 의사가 수많은 환자가 임상적으로 죽었다가 기이하게 살아난 간증 등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이처럼 죽음 이후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난 다음에 반드시 심판이 있는 것을 의사가 체험한 사실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살 때도 천국과 지옥을 체험할 수 있는데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여 마음이 한없이 기쁠 때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이 모두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면 가정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미움, 원한, 분노, 질투, 시기가 꽉 들어차고 고통과 괴로움이 있으면 사는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 속에 벌써 천국과 지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천국과 지옥이 없을 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산 사람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불로써 소금치듯 하는 지옥으로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899년 복음 선교사이던 D.L 무디에게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그 해 12월 22일 그의 아들은 무디가 방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지가 물러간다. 내 눈앞에 하늘이 열려 있다” 아들은 급히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들을 본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아들아, 정말 아름답단다. 정말 황홀하구나!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니 나는 가야만 한다” 그리고 잠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사는 다급히 응급조치를 했고 응급치료를 받고 난 다음 깨어난 무디는 이 세상 바깥에 갔다왔다며 그 내용을 증거했습니다. “나는 천국의 문 앞에 갔는데 그 곳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며 애들도 만났다”라고 말하면서 먼저 간 자녀들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디는 “무엇으로도 나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다. 마차가 방 안에 와 있다”고 말하며 밝은 천국을 향해 평안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증거를 통해서 우리는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계신 사람은 영생이 있고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는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천당행이냐, 지옥행이냐’라는 것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2.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 이외에는 사후의 세계를 모른다

 철학자들은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같이 만인이 지켜보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 분 이외는 참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 된 대로 주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도망친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모두다 목숨을 버리고 피를 흘렸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용감하게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는 것도 눈으로 직접 보았고 부활도 직접보았기에 변화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장사지내고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셔서 함께 식사도 하고 가르치시고 축복도 하셨으니 안 믿을래야 안 믿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인 것 입니다. 죽는 것을 분명히 눈으로 보았는데 분명히 눈앞에 살아나서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여 주시고 손등에 못자국을 보여 주시고 ‘의심 가거든 만져 보라’고 하시니 안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거기에서 “야!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는구나. 대표적인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갔다가 살아나는 것을 보니 우리도 예수 안에서 죽었다가 살아나겠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참말이구나. 그러므로 죽음,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두려워할 것이 못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을 전혀 개의하지 않게되는 확실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순교를 당할때 거부하지 않고 피를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는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아무리 죽여봐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고 나는 살아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과 삶에 대한 증거를 가장 정직하게 하신 분입니다. 체험적으로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이 있는 것도 사실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차라리 이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고 바라는 바는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간절히 소원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이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왔기 때문에 하늘의 일을 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2장 2절로 4절에서 보면 자기가 천국에 올라간 체험이 몸으로 올라갔는지 영혼이 몸에서 빠져 올라갔는지 분별할 수 없을만큼 뚜렷하고 확실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영생은 분별할 수 없이 뚜렷합니다.

 인도의 선지자 선다싱이 쓴 책에 보면 자기가 입신해서 하늘에 올라가 보니까 많은 사람이 죽어서 천당에 올라왔는데 자기가 죽어서 올라온 줄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3차원의 말로써는 4차원의 영광스러운 천국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이 그런 곳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 4장 1절로 3절에 천국은 이 땅과 분명히 거리를 둔 곳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보니까 하늘에 열린 문이 있고 올라오라는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천국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도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다고 말하고 요한도 하늘에 열린 문이 있어 하나님이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매 그리로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죄악이 들어차고 죽음과 멸망이 꽉 들어찬 이 세상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고 성령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못 올라가지만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 성령이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은총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목사님 내가 죽을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제일먼저 예수님이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아직 우리가 천당에 안 들어 가고 여기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거처를 단장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거처가 단장되면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데리러 오기 때문에 우리는 근심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갈까요? 낙원으로 데려간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실 때 좌·우편 강도가 있었는데 그 중 강도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로 43절에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강도는 세상에 나가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살아온 생활은 험악한 강도요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이름만 부르니까 주님께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당은 예수님의 공로로 가는 것이지 우리 공로로 가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인 것입니다. 어떠한 죄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주님의 이름을 진실로 부르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낙원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이 지극히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은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은 우리가 표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길로이’에서는 해마다 ‘갈릭페스티벌’이 열릴 정도로 마늘로 유명한 지방입니다. 그런데 갈릭페스티벌보다 더 유명해진 아기가 생겼습니다. 엄마 로리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는데 어느 해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 중 한 아기는 석 달 반 만에 숨지고 한 아기만 살아서 ‘샤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샤논도 건강이 좋지 못해 세 살이 조금 지났을 때 암 진단을 받았는데, 그것도 암 환자의 1퍼센트 밖에 안 걸린다는 생식 세포 암이었습니다. 샤논은 아기였지만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서 어른도 힘들어 하는 골수 채취 검사나 척추 수술 등을 잘 참아냈습니다. 성격 또한 명랑하고 쾌활하며 긍정적이어서 가족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5살이 되던 해에 샤논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렸습니다. 가족들은 아기의 침대 주변에 모여서 기도하며 아기가 빛의 터널을 향해 가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다섯 살로 죽음을 앞에 둔 아기가 입을 열었습니다. 큰 소리로 “아, 빛이 너무 눈부셔요. 빛이 너무 눈부셔요 천사들이 저렇게 소리높여 노래를 불러요. 걱정할 것 없어요. 무섭지 않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신문과 방송에 나고 사람 입을 통해서 전달되고 온 동네 일대에 퍼지게 되자 갈릭페스티벌 보다도 더 유명해져서 샤논 페스티벌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이 어린 아기의 천국가는 모습의 이야기가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5살 짜리 아기가 지어서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울고불고하지도 않고 갑자기 큰 소리로 “얼마나 빛이 찬란한지요. 빛이 보여요. 천사들의 노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요”라고 말한 다음 세상을 떴으니 그 부모들도 위로를 받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얼마나 큰 힘을 얻었겠습니까? 이 어린 아기도 새 예루살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집은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천당에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로 7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했습니다. 눈물, 근심, 탄식, 고난이 다 지나가고 기쁨과 소망과 사랑의 원천되시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어서 5절부터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모든 것을 이길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말하기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우리들은 사망과 영원한 심판을 이겼습니다. 믿음 이외에는 이길 자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이기게 해주심으로 그 득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이깁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지옥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이 영광스러운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시고 사람의 새로운 조상이 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표적으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다 이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면 천국이 우리 앞에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도 예수요, 둘째도 예수요, 셋째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보화가 무엇입니까? 마음속에 계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돈도 떠나갑니다. 지위도 떠나갑니다. 명예도 떠나갑니다. 아름다운 우리 모습도 다 시들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떠나가지 않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만 붙잡으십시오. 예수님만 의지하십시오. 지상에서 천국까지 우리를 품에 품어 인도하여 주실 분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큰 은총을 받고 약속을 얻었으므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마음에 위로를 받고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천국을 향해 나가는 우리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