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전능하신 하나님

by 삶의언어 posted Sep 03, 2024 Views 5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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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이사야 40장 12절


전능하신 하나님 그 형상대로 우릴 창조하셔
하나님 사랑받는 자녀로서 정체성 지킬 때
주님 주신 사랑, 이웃과 나누며 살 수 있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2절에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놓고 손으로 퍼보아도 얼마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실 정도로 능력이 많으시고, 손바닥 뼘으로 하늘을 재어보실 수 있을 정도의 전능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15절에는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며,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하십니다. 또 이사야 40장 26절에는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바라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1.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진화론자들은 아메바에서부터 진화되었다고 하고, 눈에 안보이는 벌레에서 진화되어서 여기까지 왔다고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메바나 벌레에서 사람이 되었다면 사람을 죽여도 벌레 하나 죽인 것처럼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메바나 벌레 한 마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어떤 유물론자들은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며,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주장들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이 질문에 대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분명한 해답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성경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만드셨기에 우리들은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담아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또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되 덩치는 작지만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땅을 정복하고 그리고 모든 산천초목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으로 지음을 받고 왕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하늘과 땅과 세계와 만물을 짓기 전에 이미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품어 그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주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기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일생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뛰놀고 하나님 앞에 춤추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하는 사람으로써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과 21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찬송케 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는데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기에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하기 위해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생활은 하나님이 다 돌보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살아보면 이 말이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고 했습니다. 악한자라도 자식이 좋은 것 가지기를 원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하며 기도를 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넘치도록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시고, 찬송하는 자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우리에게도 죽음은 다가옵니다. 사람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요, 죽고 나면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병들지 않고 잘 죽으면 좋은데 병들어서 고통당하다가 죽으면 그 괴로움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주님께서 죽음을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기 위해 하늘나라에 가신 것입니다. 2천년전에 이미 우리의 쓸 것을 다 완성해 놓으셨고, 주님의 때가 오면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주님 계신 곳에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부흥회를 다니던 시절 대전에 있는 아름답게 지은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 부자 장로가 전액을 헌금하여 이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축을 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이 장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하늘나라에 가보니 청소하던 할머니의 집은 엄청 좋은데 자신의 집은 너무나 초라한 화장실 같더랍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세상에 있을 때 십일조는 했느냐? 건축헌금은 했느냐?” 하나님이 물으시더랍니다. 뜨문뜨문 했다고 했더니 “그러니 하늘에 쌓은 것이 없어서 초라한 것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장로님이 교회를 짓고 올테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었던 장로님이 살아나셔서 회개하고, 재산을 털어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교회가 완성되자 다시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거처를 예비해 놓았으나 이 땅에서 우리가 주를 어떻게 섬기는가를 반드시 시험해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다음 생애는 아름다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천사들이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20세기 중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유난히 마약과 알코올 중독과 폭력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에릭슨 (E.H. Erikson) 교수가 그 보호구역에 들어가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통해 보니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자신들이 누군지를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을 보호하고, 문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특별구역을 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시켰는데 가르치는 선생들은 전부 백인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인디언 고유의 문명은 버리고 백인의 문명을 가르치고, 배우게 했습니다. 자신들의 언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영어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교육된 인디언들은 결국 자기를 잃어버렸고, 미국 사람도 아니고 인디언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디언들은 그때부터 마약을 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인디언 촌은 마약중독과 알코올중독으로 황폐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무력감을 갖게 되고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서도 어디서 와서 내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품에서 태어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예비하신 천국으로 간다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로 부르시고, 예배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부모의 사랑을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몸찢기고 피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해야하고 그 다음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소용이 없고, 사랑이 없는 의식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에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얻어맞고 옷도 뺏기고 재산도 다 뺏기고 먼지투성이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혀를 차며 ‘이런 정신 차리고 살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제사장은 유대인의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의식과 형식을 집행하는 레위인이 지나가는데 보고 고개를 흔들고 피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나 의식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지나가다가 보고서 자기 말에서 내려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자신의 긴 옷을 찢어서 붕대를 만들어 감아주고, 짐승에 태워 주막집에 데려다 주고, 주인에게 “내가 사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들릴 것이요. 비용이 더 들면 내가 갚아줄테니 돌봐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예화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누가 이 강도 맞은 사람에게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종교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레위인이 되기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종교도 없고 의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욕을 할지라도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이 알고 하나님이 인정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며, 사랑이 없는 의식 역시 필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한 것 처럼 아무리 말을 잘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고, 온갖 지식과 학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보다도 우리에게 사랑 속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랑을 느끼고 살게 하시고,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 돌보시고 계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상처는 사랑으로 밖에 고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훅 불어서 끄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우리는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우리 인생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걱정 없게 하려고 애쓰시는데 우리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에는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하셨습니다. 또 시편 121편 5∼8절에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금지옥엽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신 것을 알고, 보배로운 존재인 스스로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28∼31절에 보면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십니다.

 또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두려워하면 마귀가 쳐들어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와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스땅의 욥은 동방사람 중 가장 훌륭하고 온전하며 정직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 딸 셋이 있었고, 소유는 양이 칠천 마리요, 약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겨리요, 암나귀와 종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마귀가 늘 와서 두려움을 심어 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상관없다. 하나님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다. 너 자신도 훌륭하지 않다’하며 두려움과 걱정 가운데 빠지도록 만들었습니다.(욥 3:25∼26)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고 했는데 욥은 자기를 잘 간수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려움을 내어쫓고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간수하는 것이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 주신 보화를 보존하는 중요한 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고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감사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인생이 끝날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 우리의 마음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우리를 잘 보존하고 지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다가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천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멸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며, 우리가 천국에 가기까지 이 몸을 잘 간수해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일을 이루도록 노력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그 사랑을 받는 소중한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자녀 된 자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