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자유와 해방공간

by 삶의언어 posted Sep 21, 2024 Views 1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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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요한일서 5장 19절


마귀의 지배아래 있는 타락한 세상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와 해방 얻어야
믿고 선포하면 축복 누릴 수 있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주거공간이라고 말합니다. 휴식할 수 있는 곳은 휴식 공간이라 하고, 모두가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곳은 사회적 공간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공간은 휴전선 이남의 반도와 거기에 속한 도서들인데, 그 안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법치주의로 통치되는 공간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은 공산주의 아래에서 당과 수령이 다스리는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신앙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사는 공간과 믿는자의 사는 공간 역시 다릅니다.

 

 1. 타락한 아담의 자손인 인류의 생활 공간

 

 아담과 그 자손들이 사는 삶의 공간은 버림받은 공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아니하시는 공간에 인류는 살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저주받은 공간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생활공간은 땅이 저주를 받아 생명체의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번개로 인해 무려 25곳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기습폭설로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가 2000여건 이상 발생하여 140여 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12월에는 인도에서 집중호우로 21명이 사망하고 22만 여명이 집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으며, 아프리카 대륙 또한 만성적인 빈곤과 기아로 수백만명이 생명을 잃었고 종족간의 싸움으로 지역적 인종 청소라는 참사까지 일어났습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하여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더 이상 생명을 존속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공간은 땅이 저주 받았을 뿐 아니라 영적생명을 잃어버린 공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게 되었는데 죄를 지음으로 영원히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공간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어 온전한 것이 하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의 공간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망의 공간입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좌우를 살펴봐도 죽음이 가득차 있는 사망 공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 아래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9절에는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이 악한자 안에 있습니다. 마귀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 공간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세계는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 숭배하고 무신론, 인본주의를 따르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로마서 1장 28절로 31절에도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정신적인 타락 공간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바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한 공간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교회성장 11월호에 범죄발생빈도에 대한 연구결과가 보고 되었는데, 1970년에는 우리나라 범죄발생 간격이 1분 32초였는데 1980년에는 51초, 1990년에는 27초마다 범죄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2000년에는 18초마다 한건씩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경찰청이 조사한 2000년 범죄시계에 의하면 2000년 한해동안 살인은 9시간 18분만에 한건씩 일어났고, 강도는 1시간 36분만에, 강간은 1시간 37분 간격으로 일어났습니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 범죄건수는 총 186만 7882건으로 지난 20여 년간 3.14배나 늘어났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인 인류의 생활공간은 마귀의 지배 아래에서 불의, 추악, 탐욕, 살인, 분쟁, 악의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타락하고 마귀가 지배하는 삶의 공간을 하나님이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에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망 세계의 형벌공간이 이들을 위해서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로 10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있고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공간, 부패공간, 마귀의 지배공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전체가 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며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2. 자유와 해방 공간

 

 그러나 이 세상에 절망과 죽음의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수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도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나라가 들어와 그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했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됩니다.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개신교 신학의 뿌리를 내린 어거스틴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죄의 노예상태로 빠져들었음으로, 죄의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노예는 더 강한 자가 와서 대가를 지불하고 사주어야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예상태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루터도 “죄인의 능력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칼빈 역시 “죄속에서 인간은 부패되고 무력할 수밖에 없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은혜의 나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죄에 대한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과 성령을 통해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로 구원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삶의 공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으며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을 제하시고 우리를 지배하는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 하시고 구경거리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종국적인 승리와 해방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와 해방 공간이 있습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공간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교회를 박해하면 처음에는 교회가 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교회가 항상 승리했습니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초대교회는 무서운 박해를 받았습니다. 일제시대때 한국교회의 모습도 박해당하는 모습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일본은 패망하고 교회는 더욱 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이 그렇게 없애려던 한국교회에서 수많은 선교사를 일본 전역에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 2월 26일 조선일보 국제면을 보면,‘중국 공산당 종교인 입당 허용’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 역시 교회가 거둔 승리입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 당국은 교회를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1979년 중국이 개방정책을 택한 다음에 조사해 보니 박해 30년 동안에 교인들의 숫자가 무려 4배 가까이 늘었다는 놀라운 통계 자료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결국 우리가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고 세상에서 승리하고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 같으나 살고, 지는 것 같으나 이기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하게 되는 신앙의 원리를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마귀의 최대 무기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로 18절에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했듯이, 주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죽음과 음부를 완전히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 공간을 얻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36년 동안 일제의 압박에서 고난 당하던 우리들이 광복을 맞이했을 때 그 해방 공간속에서 마음대로 태극기를 휘날리고 애국가를 부르고 얼싸안고 춤을 추던 것이 지금도 저의 기억속에 생생합니다. 해방 공간이 다가오자 모든 압제는 사라지고 자유와 해방과 승리와 기쁨만이 충만하게 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에서 살아야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해방 공간을 믿음으로 성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셨으므로 자유와 해방공간에서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의의 공간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그 여자를 처형하려고 예수께 끌고 왔습니다. 그 여자는 율법과 죽음의 공간에 처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이 여인을 죽이려고 서있는 모든 정죄자들과 떨고있는 여자 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와 여자를 막아섰습니다. 예수님 뒤에는 해방과 자유의 공간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정죄와 심판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 사이에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서서 여자를 정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음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율법의 심판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리므로 우리에게 정죄와 심판의 매서운 돌이 날아오는 것을 주님의 몸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찢고 피흘려 의의 옷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의 공간속에 살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거룩함과 성결한 공간속에 우리를 살수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씀했듯이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쳐서 멸하시고 세상을 이기시고  거룩한 성령충만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귀와 세상에서 해방되고 주님안에서 성결함과 성령충만의 옷을 입어서 성결과 성령충만의 공간속에서 살수있게 된 것입니다.
 한때 범죄의 도시로 불리었던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는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 운동과 전 세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로 인하여 현격한 범죄율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과테말라의 소도시 알모롱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도시는 20여년 전만해도 폭력이 난무하고 가난하고 대부분의 성인 남자들이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깨끗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 되었는데, 이렇게 된 배경에는 마리아노 목사님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의 위력은 토지를 비옥하게 하여 수확량이 무려 1000배 이상 늘어 남으로 경제적 풍요로 열매맺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기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뿐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치료와 건강의 공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질병이 꽉들어찬 세계이지만 우리는 치료와 건강의 공간 안에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을 눌러서 병들게 하지만 예수님은 마귀를 밀쳐 내시고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도“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는 치료받은 공간에 살고 있다. 질병의 세계속에 살고 있지 않다. 치료받은 공간에 살고 있다 ’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물리치고 자유와 해방 공간을 누려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공간에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 축복과 형통의 공간에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돈 슈나이더라는 유능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수재였고 졸업 후에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인정받아 대학 교수가 되었던 그는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고 월급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1991년도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을 하게 되었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백방으로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절망가운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한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취직한 곳이 페인트 공으로 빌딩에 칠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빌딩에 매달려 칠을 하면서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그는 날마다 기도하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잘나가는 대학교수였던 그가 졸지에 빌딩 페인트 칠을 하면서 한가지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되었고,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배웠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간한 책이 ‘절벽산책’이라는 책인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나게 수입이 들어오게 되고 경제적인 부를 얻게 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도 받고 이제는 교수로 지낸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결국 형통한 삶을 살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간은 고난과 저주의 공간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종국적으로 우리는 부활과 영생 천국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사망안에 꽉 들어찼지만 우리는 그 세상 안에서 영생과 천국의 공간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교회 공동체가 바로 자유와 해방 공간이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유와 해방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유명한 미국 목회자 피터 마샬은 미국 상원의원이자 목사였습니다. 그의 임종시간이 다가오자 동석했던 부인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이었던 캐더린 마샬 여사는 남편의 죽음을 목도하고 크게 용기를 얻어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라는 책을 출판하고 이후 많은 신앙서적을 집필했습니다. 그녀는 목사의 사모로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그때까지도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음 앞에서 너무나 평안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죽음이란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죄와 마귀가 다스리는 공간과 예수님 안의 자유와 해방 공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이 주어진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바라보며 꿈꾸고 믿고 기도하며 강하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시인하고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공간 속에서 죄를 짓고 마귀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므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 공간을 허락해 주셔서 오늘날 그 자유와 해방을 가슴속에 품고 믿고 누리며 살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 공간에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