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6∼24절
탕자의 삶과 같은 우리의 인생
십자가 용서 통해 회개하고 과거청산 하면
절대긍정 절대승리의 삶 살 수 있어
봄은 긍정의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산불로 타버린 언덕과 눈사태로 무너지고 얼어붙었던 강산에 다시 따뜻한 생명의 손길이 나타나 모든 무너진 과거를 용서하고 새로운 생명의 푸른 꽃동산을 만들어 가는 계절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겨울을 지나면서 낭패를 당하고 상처를 입고 잃어버리고 절망한 삶을 그대로 방치하면 인생이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아와 과거를 용서받고 훌훌 털고 일어나 내일의 꿈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은 바로 긍정의 삶인 것입니다. 이 긍정의 삶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탕자의 삶입니다.
1.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했다
탕자가 그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어서 미래가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그는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지난날 아버지는 울면서 집을 나가는 그를 말리고 붙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 상속을 줄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거역을 하고 행패를 부려 아버지의 재산을 강탈하듯 집을 나갔습니다. 그는 그 죄책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2절로 13절에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과거를 돌이켜 보니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모은 재산을 자기가 모두 음란과 방탕과 도박과 술취함으로 없앴다는 그 죄책이 그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그 죄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자기 스스로 용서해 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의 죄는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둘째로, 아버지를 거역했으니 아버지께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해 주고 받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나와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버지께 용서를 받아야 되고 자기 스스로에게 용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죄의 용서는 세가지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그 다음 내가 직접 상처를 입힌 자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용서를 해주든 안 해주든 내가 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사과를 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스스로 정죄하고 미워하는 그것을 용서해서 자신과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로 21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배워야 될 것은 우리도 모두 크든 작든 탕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와 혹은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한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죄책이 크게 소리치고 머리를 듭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 죄책을 눌러 놓으면 이 죄책이 내 마음속에 아무 소리 안할 것 같아도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이 우울하고 좌절되고 절망스러워 상쾌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내 마음속에 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감춰 놓은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믿음이 생겨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감추인 죄악을 청산해야 됩니다. 탕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다 고하고 내가 기억나는대로 죄를 지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자기 죄를 자기가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자기를 향해서 말해야 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이웃에게 용서를 구했으니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하라. 나도 내 자신을 용서한다’ 스스로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는 보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남녀노유, 빈부귀천할 것 없이 큰 죄를 지었든, 작은 죄를 지었든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가 떠난 그날부터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다 받아 죄를 청산하셨으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고하면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들어오면 용서를 받고 아버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는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깨끗하게 용서를 해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용서를 받았으면 그 다음에 우리는 담대하게 이웃에게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특별히 내가 이웃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있으면 그 상처 입은 이웃에게 가서 죄를 사해달라고 요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어떠한 사람은 용서를 안 해 주겠다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용서한 열매로써 이웃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죄를 스스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함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살면서 자기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었는데 왜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습니까? 내가 거울을 들여다 보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 받았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 네가 옛날에 못되게 굴어서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너를 용서한다. 그러므로 용서받으라’고 풀어 놓아야 수렁에서 건져냄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짐을 벗어 놓지 아니하면 수렁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죄는 우리를 항상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 죄의 늪에서 벗어나야 긍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믿음을 행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그 쥐엄열매를 먹는 돼지굴에서 나올 수 있는 결단, 즉 하나님과 아버지께 회개를 하겠다고 작정을 한 그날부터 그는 그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크고 작은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의 죄를 용서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할 때 수렁에서 나올 수 있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첫발을 디딜 수가 있습니다.
2. 지난날을 잊어버려라
탕자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집착하게 하는 것은 전에는 엄청나게 부자였는데 내가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탄식입니다. 그는 현재 돼지굴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옛날에 부자였던 과거를 잊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어 버리고 던져 버려야 그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지 과거에 잡혀있는 사람은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과거에 잡히고 집착해서 늘 탄식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수렁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은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재물과 지위나 명예 이런 것이 과거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떠나간 이후에는 집착하지 말고 다 훌훌 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환경에서 떠나갔는데 내 마음속에 그것이 남아 있어 과거처럼 행세하면 아무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으스대며 살았던 그 행실을 그대로 하려고 하면 그는 과거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시편 52편 7절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다가 망했으면 과거 행세를 하지 말고 과거를 다 내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해도 이미 지나간 과거는 그를 대접해 주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과거를 떠난 사람입니다. 과거에 미웠던 일이나 분노 시기와 질투도 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은 잊어 버려야 됩니다. 과거를 훌훌 털어 버리고 미래를 향해서 날개를 치고 날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뒷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고 말했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아무리 원통하게 여겨도 안돌아오는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우리들을 잡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좋았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나빴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원망스럽던 과거도 다 하나님께 맡겨서 잊어버림으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뛰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놀라운 점은 과거의 죄책에서 회개를 해서 놓여났을 뿐 아니라 과거의 잘 살던 것도 다 포기해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께 나갈 때 나를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며 나갔던 것입니다. 품꾼이란 것은 하루하루 일용직인 것입니다. 과거에 아들로서 당당하여 재산 3분의 1을 가져갔던 그가 큰소리 치고 수많은 종을 부리던 그가 종 밑에 부림을 당하는 품꾼으로 자기를 낮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자기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위치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현재는 품꾼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잘살던 부자의 행세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빈손 들고 앞에 나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잡혀서 주님 앞에 빈손 들고 못나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비워 버리고 이제는 손 털어 버리고 수렁에 빠진 내가 빈손 들고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주님 앞에 나오는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긍정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17절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말씀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기를 인정해야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자기 가난한 현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의 하나로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이 된 자기가 되어야 주님이 받아주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살던 오만하고 교만한 자리를 떠나보내고 회개하고 낮은 품꾼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면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요엘 2장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찢고 야훼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진 자는 주님이 찾아 오셔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탕자의 위대한 점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탕자는 오만하고 교만하여 도도했던 과거를 청산했습니다. 그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용서하며 낮아짐으로 품꾼의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절대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와 같이 현실을 직시하고 일어섰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부정의 생활은 떠나가고 긍정적인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를 향해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품꾼의 하나로부터 출발해서라도 희망을 찾자. 살길은 여기밖에 없다. 살길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희망을 향해서 전진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은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평안을 주고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고 만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부정적인 삶속에 빠져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의 수렁에서 벗어나서 긍정으로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도 아버지에게 회개하고 나오면 아버지가 죄를 용서하시고 씻어 주시고 그 여파를 가지고 이웃에 회개하고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초청하십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마음이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를 다 진토에 내던져 버리고 훌훌 벗어 잊어버리고 품꾼의 하나가 될 각오를 하고 출발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활짝 두 손을 내밀고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빈손 들고 품꾼이 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우리의 긍정적인 삶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로 7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교만을 깨뜨리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십자가에 다 못박아 버리고 교만과 오만을 깨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오만을 버리고 빈손 들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고 하시며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내가 도로 얻었다고 말씀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팔로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 입니다. 성령의 반지를 끼워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주어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의 잔칫상을 베풀어 하나님 앞에서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들어와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진 삶이 재기하는 길은 긍정적으로 나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 앞에서 용서로 새롭게 되고 철저히 과거를 떨쳐버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품속에 뛰어 들어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노력하는 인본주의로 삽니다. 그러나 주님께 죄를 회개하고 깨어져서 탕자가 변화되어 돌아온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앉아도 은혜요, 서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성령 충만의 잔칫상을 베풀고 살다가 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렁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든 크든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수렁에서 나오기 위해서 그 좌절과 절망에서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구하고 자기 자신도 정죄하지 말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용서해 주고, 현재를 직시해서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현재는 과거에 예수 믿지 않고 죄악에 살던 시대에 내가 아닌 것입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떠나갔습니다. 현재 품꾼의 하나로 제로가 되어서 주님 앞에 빈손 들고 ‘하나님이여,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이시니,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삽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따라갑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주님께서 은혜로 품어 주시고 은혜로 인도해 주시며 은혜로 살려 주셨다가 은혜 중에 천당에 올라가서 영원한 은혜로 말미암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모두 다 크고 작은 탕자입니다. 우리가 수렁에 빠져 허덕일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의 길을 열도록 만들어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 과거를 다 청산하고 빈손 들고 아버지께 나가 은혜받아 살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이 현실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없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 다 깨어지고 낮아지고 회개하는 품꾼이 되어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