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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2)

by 삶의언어 posted Aug 04, 2024 Views 3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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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서 6장 7∼10절


하나님의 말씀 심으면 행복 거둘 수 있어
불평과 탐욕 심으면 사망의 열매 거둬
고난 중 감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큰 길


 땅은 정직합니다. 농부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반드시 팥이 납니다. 우리 인생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생사도 우리가 심은 대로 반드시 거둡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심고 거두는 법칙과 에덴동산

 

 심고 거두는 법칙은 에덴동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밭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사람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든지 사단의 유혹을 심든지 그 결과는 심은 것으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일에 걱정하지 않게 하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영광을 누리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 심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과 복을 누리고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악의 씨앗 즉, 마귀의 유혹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심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마음속에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 영이 죽고 에덴동산을 상실하고 이 세상에서 죽음과 낭패와 절망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을 보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비극적인 결과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심으면 생명을 거두고 마귀의 유혹을 심으면 낭패와 저주와 실망과 죽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인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도 시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 광야에서 40주야를 금식하시고 주렸을 때 마귀는 탐욕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심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3절로 4절의 내용을 보면 마귀가 찾아와서 굶주린 예수님을 쳐다보고 “정말 측은하고 불쌍하군요. 하나님이 왜 섭섭하게도 아들을 굶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안 돌봐주니 당신이라도 직접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렇게 굶주리는데도 먹여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섭섭함이 들어오면 그 다음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 위에 데리고 가서 세워 놓고 “하나님이 유명하게 안 만들어 주시니 아들의 능력을 사용하여 기적을 연출하여 유명하게 되라. 섭섭하게도 하나님은 당신을 유명하게 안 만들어 주신다. 그러니 자력으로라도 유명하게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넣어서 타락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 주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안주시나 나는 주겠으니 내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고 해서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속에 섭섭한 감정을 심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존 하갈은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려고 하던 1950년에 아들이 갑자기 뇌성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마귀는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일하려고 하는데 왜 네 아들이 뇌성마비로 쓰러지느냐? 하나님이 안계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한 하나님이다” 이러한 섭섭한 감정을 목사님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뇌성마비를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병을 인하여 오히려 감사합니다. 저 아들로 인해 주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드셨고 남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또한 내 아들처럼 병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귀가 섭섭한 감정을 넣어 주려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오히려 아들의 뇌성마비로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받아 주셔서 그 후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와 찬양으로 심으면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며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말이 긍정적이 되어 그 결과 젖과 꿀이 흐르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 무엇으로 심는지 조심하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 밭에 감사와 찬양을 심어 풍요로운 삶을 거두게 하지만 마귀는 우리 마음에 탐욕과 불평 등을 심어 멸망의 열매를 맺으려고 합니다.
 탐욕을 심으면 죄의 싹이 나고 사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탐욕의 대가는 언제나 사망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탐욕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욕심을 가지는 탐심이 우리를 파멸케 하는 씨앗을 심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 10명중 4명이 복권대박을 꿈꾼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복권을 한번 사볼까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복권에 대한 유혹은 강합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가 10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20억원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 70명을 대상으로 5년 후 그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80%에 달하는 56명이 ‘당첨이후 더 불행해지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집과 차를 바꿔서 좋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 가정이 파탄되고 만 것입니다. 반면 ‘복권 당첨 후 행복해졌다’고 대답한 소수의 사람들은 ‘당첨금의 상당부분을 교회에 헌금하거나 사회단체에 기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는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탐욕을 심으면 악의 싹이 나게 되고 그 결과 파탄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과 원망을 심으면 불행과 실망과 실패로 거둡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평 좀 하고 원망 좀 했다고 무슨 큰 대수냐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씨앗입니다. 원망도 씨앗이요, 불평도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나의 마음의 밭에 심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심어 놓으면 우리 삶은 광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를 떠나지 않고 광야에서 전부 소멸되고 만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해서 큰 환난을 당하게 합니다.
 민수기 11장 1절로 2절에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심으면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고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말이 긍정적이 되고 그 결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있게 만들어 주시고 있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꾸 없는 것으로 불평을 하면 있는 것도 하나님이 모두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의 유래는 미국의 청교도에 의해 시작했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돈독한 신앙으로 신생 미국의 기반을 다진 인물입니다. 그는 1789년 상하원 의원들로 구성된 연합위원회가 상정한 감사절과 기도절 제정을 인준한 뒤 이런 역사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그의 뜻을 따르며 그의 자비에 감사하고 겸손히 그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간구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의무다. 영원 전부터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원까지 지켜 주시도록 예배드리자. 그러면 우리를 굳게 지켜 주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온 국민 앞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감사를 심을 줄 아는 지도자들을 통해 미국은 번영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이 이 땅에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적인 인간으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여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기준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감사와 찬양을 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특별히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워서 하나님께 인정받을만한 자격자가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사울 왕과 다윗 왕은 둘 다 그렇게 행위로 훌륭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울을 미워하셨습니다. 사울은 시기, 질투, 분노에 가득한 왕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는데 그는 일생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시 한수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시기와 분노와 질투로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파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수많은 시와 찬미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1절로 22절에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 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입니까?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신약에는 바울선생이 많은 시험과 환난을 겪었음에도 불평을 안했습니다. 바울선생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고 그것을 실천한 분입니다. 바울같이 헌신하고 전 생애를 바쳐 하나님 사업을 하면서 그만큼 고생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쯤 되었으면 하나님께 원망이나 불평 한마디 할 만한데 바울은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선생은 복음 증거를 하다가 많은 고생을 했는데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9절에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 하지 않더냐” 이처럼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바울선생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했습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매 맞고 옥중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양손, 양발이 묶이고 실라와 함께 밥도 굶고 매를 맞아 피가 흐르고 몸은 쓰리고 아픈데 밤중에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쇠고랑을 철렁철렁하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데 그 감사와 찬송이 얼마나 진실했던지 흉악한 죄수들이 같은 방에 있으면서 시끄럽다고 소리 안하고 그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찬송에 장단을 맞춘다고 한번 두들기니 지진이 일어나고 만것입니다. 빌립보 시가 뒤흔들리고 감옥문이 열리고 차고가 다 풀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게된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감사와 찬양을 드린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린 것입니다.
 칼 힐티는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를 하면 늙어져 가는 길도 중지시킬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 탄식은 얼굴을 어둡게 하고 주름살을 많이 만들며 빨리 늙어지게 합니다. 감사와 기쁨은 인생에 기름칠을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감사와 찬양을 심으면 우리 삶에 생기가 돌고 기쁨이 충만하여서 범사에 긍정적이 되고 결국 그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헤아려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할 제목이 없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동안에 은혜를 받은 것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것으로 감사를 하면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다. 어제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오늘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내일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거듭거듭 감사하면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늘 드려야 합니다.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볼 때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과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큰 대로가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나가는 큰 대로가 바로 감사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면 하늘에 들어가는 문이 열립니다. 찬송하면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하고 찬미하면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대로가 열리고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니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죄에서 해방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삼아 주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환난 날에 주님이 함께 하여 건져주고 영화롭게 해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하나님은 감사를 좋아하시고 원망과 불평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원망과 불평하는 자는 광야에 방황하게 팽개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이되어야 할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광명한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와 찬양을 하는 자가 형통과 축복의 씨앗을 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삶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일이 있으나 감사하고 찬미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아담에게 섭섭한 감정을 넣어서 탐욕을 갖고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아무리 섭섭한 감정을 넣어 주려고 해도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격했습니다.
 사람은 하루에 2만 3000번 숨을 쉬고, 심장은 보통 10만 4000번 뜁니다. 우리 몸속에 혈액이 하루에 달리는 거리만도 1억 6800만 마일로 환산하면 2700억 미터입니다. 또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두뇌 세포만도 700만개가 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정말로 기기묘묘한 기계가 사람이라는 기계입니다. 이 복잡한 기계가 질서있고 조화있게 움직여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악과 불의를 심는 것이 일시적으로 흥하는 것 같으나 종국적으로 파멸을 거두게 됨은 역사와 인류의 경험이 증명합니다. 악과 불의를 심어놓고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에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기 때문에 파멸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선함과 사랑, 감사와 찬양, 헌신과 충성으로 심으면 또 그와 같은 복으로 결국에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시고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꼭 감사절기가 되어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너무나 많고 원망과 불평할 조건을 찾아도 많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그 씨를 심는 자는 축복과 영광으로 거두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심은 자는 낭패와 실망과 파멸로 거두게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이 마음 밭에 무엇을 심든지 종국적으로는 그것을 거두고 산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찬양드립니다. 좋은 씨앗을 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