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by 삶의언어 posted Jul 25, 2024 Views 5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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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로마서 4장 17절

이성과 감각주의로 사는 육의 사람
예수님 믿고 신앙주의로 살려고 할 때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이룰 수 있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살 때는 인간의 이성과 감각을 통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는 더 이상 이성과 감각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이론적으로는 광야에 살 수 없고 감각적으로 볼 때는 절망이기 때문에 이성과 감각을 의지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믿음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거대한 삶의 원리가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성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살던 세계는 뒤로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한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기 이전 세상에 살 동안에는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감각적으로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는 애굽의 세상인 홍해수를 건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믿음으로 사는 세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습니다.

 

 1. 육의 사람이 사는 방식

 그런데 이 세상사람, 육에 속한 사람이 사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볼 때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있고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육신으로는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영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습니다.

 

 2. 영의 사람이 사는 방식

 육의 사람은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지만 영의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 즉,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역사, 천국, 지옥 등은 모두다 감각으로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세계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통해서 영적 세계를 깨닫고, 보고,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실상은 마음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은 마음을 보지 못하므로 환경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근본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인데 우리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속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 마음의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꿈꾸어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할 때 마음속에 아버지를 꿈꿔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꿈꿔보고 성령님이 마음에 같이 계신 것을 꿈꿔 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입을 넓게 연다는 것은 마음의 꿈을 넓게 연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마음 속의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있는 것처럼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성령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안 보입니다. 예수님이 은혜 베푼 것도 안보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압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것은 눈으로 안보이고 귀로 들리지 않고 인간의 감각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생각과 꿈속에서, 믿음으로 우리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고백하는 입술의 말 속에 하나님도 역사 하시고 안 보이는 마귀도 우리의 말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생명의 살리는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사망의 패배적인 말을 하면 마귀가 그 말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도 말씀을 통해서, 눈에 안보이는 마귀도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말을 통해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 꿈, 믿음, 말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생각도 안보입니다. 꿈도 눈에 안보입니다. 믿음도 눈에 안보입니다. 말도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안 보이는 세계 속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손으로 만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감각으로는 영의 세계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감각에 의지하면 불신자가 되고 낭패 하고 마는 것입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이희아 양은 두 손을 다 합쳐도 손가락이 네 개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 기형1급 장애우입니다. 그녀는 열 손가락이 다 있는 사람도 치기 힘들다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감미롭게 연주하며 국내외 장애, 비장애인 모두에게 온몸으로 희망을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지난 2005년 9월에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에서 이희아 양을 인터뷰 한 내용중에 어떻게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자 그녀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네 손가락 밖에 없는데 손을 가지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희아 양은 하나님이 가능케 하는 믿음을 주셔서 피아노를 친 것입니다. 믿음이 그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과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녀의 부모는 늘 성경 비디오를 보여주며 복음을 묵상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희아 양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늘 자신과 함께 하시며 그녀의 꿈과 소망을 이뤄줄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이처럼 하나님, 말씀, 성령의 역사 등을 생각하고 꿈꾸며 믿음으로 바라보는 삶인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현실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세계는 3차원의 세계지만 영적인 세계는 4차원의 세계입니다. 4차원의 세계가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면 환경인 3차원의 세계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희아 양은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여아로서 결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이 피아니스트가 되게 해준다고 꿈꾸고 소원하고 믿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기적이 3차원 육체의 생애 속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는 신앙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있는 것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만져본다면 육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있는 것 이상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 영적 세계는 생각으로 보고 믿음으로 보고 꿈으로 보고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신앙세계를 사는 사람이 오늘날 현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3.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다스림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적인 세계는 영적인 세계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세계는 영적인 세계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세계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역사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마귀는 뒤에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처참한 파괴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환경은 부정적인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부정적인 일, 불행, 사업의 고통, 육신의 질병, 여러 가지 혼란, 괴로움이 현실에 나타나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일들이 우리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못산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되고 안 되고 불행한 일들이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꿈이 부정적이면 안 됩니다. 늘 못사는 자기를 바라보고 못사는 자기 자녀들을 바라보고 안 되는 사업을 바라보고 부정적인 꿈을 가지면 파괴적인 일이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정적이면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무서워 했더니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말이 부정적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이것이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싸우더라도 저주의 말은 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꾸짖을 때 부정적인 말로써 꾸짖지 마십시오. 그것이 큰 세력이 되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이 “나는 강하다. 나는 힘있다. 나는 장골이다. 나는 튼튼하다”라고 말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도 “나는 약하다. 나는 병든다. 나는 허약하다. 나는 못한다”라고 하면 점점 그렇게 흘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내일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환경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긍정적이고 희망찬 꿈을 꾸며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현실적인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세계를 생각하고 긍정적인 세계를 꿈꾸고 긍정적인 세계를 믿고 긍정적인 세계를 말하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복된 삶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복된 사람이 환경의 복을 받습니다. 복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은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샘물인 것입니다. 마음이 흙탕물이면 온인생이 흙탕물로 꽉 들어차게 되고 마음이 맑은 물이면 온 인생이 밝고, 맑고,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항상 주님을 통해서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고 희망적이 되고,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복된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아브람이 85세 되어 자식이 없어 탄식하고 낙심하고 좌절했을 때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장 자손을 준 것이 아니라 없는 아들을 별들처럼 많게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라고 했습니다. 많은 자식이 있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문제해결은 3차원에 있지 않고 4차원에 있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생각하고 보고 믿고 입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별들을 보고 헤아리고 난 다음에 없는 아들을 별들처럼 많게 생각하고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고 마음에 그 자식이 있다고 믿고 그 다음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도록 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에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어서 창세기 17장 15절로 16절에도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중에 없는 아들을 있는 것같이 불렀습니다. 100세가 될 때까지 아브람을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많은 자식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로 부른 것입니다. 이름은 매일같이 부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긍정적으로 시인할 때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처럼 꿈꾸는 것을 이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적으로 살다가 영적 믿음으로 살 것을 명령 받았을 때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내내 육과 영, 감각과 믿음의 갈등 속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래서 항상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하나님을 의지했다가 의지하지 않았다가 원망, 불평, 탄식하며 육으로 살고, 영으로 살지 않았다가 버림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과 감각주의로 세상에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주의로 살려고 할 때 많은 마음의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삶은 믿음에서만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지라 명하여도 그대로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낙심했을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게 하심으로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얻을 수 있습니다. 없는 용서와 의를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치료와 건강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축복과 번창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천국과 영생을 있는 것처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 없지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 내가 느끼지 못하지만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것은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도록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육신으로 안보입니다. 육신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들어가면 성령을 통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안 보이는 세계의 수많은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육신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체험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보고 말씀을 따라 믿고 말씀을 따라 입으로 시인하면 영적인 세계가 역사하기 시작해서 우리가 변화 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낙심합니다. 현실은 현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계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세계가 나타나면 삶과 영광과 축복이 오고 마귀의 세계가 나타나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 나타난 것을 알고,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고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생활 속에 넘치도록 나타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