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나는 누구인가

by 삶의언어 posted Jul 16, 2024 Views 3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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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장 30∼31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마음
세상에서는 방황으로 고통받지만
예수안에 있을 때 진정한 정체성 찾아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항상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바람에 날리며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처없는 인생도 아니고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다가 우연히 살다 죽는 것도 아닙니다.다윈의 진화론처럼 아메바에서 성장하고 장성하고 변화되어서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셔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고, 지혜롭고, 거룩하고, 구속받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지 않고 내 신분이 뚜렷해 지는 것입니다.

 

 1. 지혜로 사는 존재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므로 지혜로운 사람, 깨달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고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버리고 만다면 인간은 너무나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땅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예비한 영원한 천국으로 간다는 확실한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밝고 맑은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신 것은 지극히 큰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로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1장 15절로 16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되므로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이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또 인생의 생사문제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시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안개구름같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죽으나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살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예비해 놓은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어 우리 인생을 살 때 어느길로 가는 것이 바른길이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학식과 지식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통해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9장 10절에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예수님을 앎으로 얻어지고 또한 하나님을 섬김으로 명철하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삶은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안에 모시면 우리는 지혜로운 자, 지식있는 자가 되고 깨닫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을 구하지 말고, 은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지혜의 근본을 마음속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통하여 우리는 사물을 깨달아 알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이 인본주의적으로 인생을 산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다 깨닫지 못하고 캄캄한 흑암 가운데 방황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남부를 농경사회에서 농업산업사회로 전환시킨 농업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는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목화밭의 흑인노예 후손으로 어릴 때부터 “오늘도 새로운 지혜를 주시옵소서”라며 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해충 피해가 갈수록 심해져 목화밭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목화밭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 땅콩을 심게 했습니다. 그리고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무려 300가지 제품을 발명해 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마와 포도의 산업적 가치를 발견해서 남부에 농업혁명을 일으켜 헐벗고 굶주린 남부의 빈민지역들을 부유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한번은 국회에 초청을 받아서 강연을 하였을 때 국회의원들은 “당신은 어떻게 그 놀라운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들고 “그 모든 아이디어들은 이 성경 속에서 다 얻었습니다”라고 했고, 의원들이 “성경에 어디 과학적인 것이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을 때 그는 “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아버지를 알게 되고 아버지께 기도하므로 내게 모든 발명과 발견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은 예수를 구주로 모시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없고 또한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삶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 문제해답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의를 덧입은 존재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습니다.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의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벌거벗었을 때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을 벗겨 의복을 만들어 입힌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이전의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영광이 떠나자 순식간에 벌거벗었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은 불쌍히 여기셔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시고 가죽을 벗겨 영구한 옷을 입혀 내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의 양심이 벗겨져서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피를 흘리시고 의로운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린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죄과를 지불하시고 당신의 의로운 옷을 벗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부끄러움의 수치를 가득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지식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일시적으로 잊어 버리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이 모든 옷은 다 필요가 없습니다. 벌거벗은 자기를 발견하게 되고 지옥으로 자기 스스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장마가 진 이후에 해가 번쩍 났을 때 마당에 나가 거적자리를 들춰 보십시오. 밑에서 많은 벌레들이 어두운 곳을 찾아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그 벌레들은 어두움의 산물입니다. 어둠속에 있다가 햇빛이 비취니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어두움을 향해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인들이 지옥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죄에 대한 수치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에 지옥의 어두움으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의 수치를 가리 울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그 의로운 옷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가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음으로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셨으며,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홍수 이후로 온 세계에 퍼져 살았지만 피흘림이 없이는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족속들도 그 우상을 대한 제의식에 나갈때는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고 행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인간학자 알렉산더 그리골리아(Alexander Grigolia) 박사는 “세계 인구의 95%가 피로써 신에 대한 제사를 드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신에게 죄를 짓거나 악을 행했을 때에 어떤 종류든지 반드시 피를 의지해서만 속죄 받는다고 믿는 것이 원래부터 타고난 인간의 성품”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벌거벗었을 때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입힌 것처럼 타락으로 인해서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인류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청산하시고 그 의로운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므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3. 거룩하게 하신 존재


 셋째로, 예수는 하나님께로써 나서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이요, 마귀의 종입니다. 세속이란 부패하고 오염되고 썩어진 것을 말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오고 부패하게 되면 온갖 벌레가 그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이 죄를 짓고 죽었으므로 그 죽음 가운데 모든 더러운 벌레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음란, 방탕, 시기, 분노, 질투 온갖 더러운 것이 영의 죽음으로부터 나와서 인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오염이 공기, 물, 음식, 생활, 환경을 부패시켜 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것처럼 영혼이 죽음으로 일어나는 오염은 수많은 사망의 더러운 것을 토해내어 인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출애굽기 23장 25절에는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 그리하면 야훼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말미암아 다가온 죽음을 인간의 지식과 총명, 제도와 노력으로 철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이 죄를 없이 하고 그 보혈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중국에는 “종록자 불견산”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사슴을 따라가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눈 앞의 작은 이익과 즐거움을 구하는 자는 인생 전체를 볼 수 없고, 현실의 만족과 성공만 추구하면 결국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도망하는 사슴 한 마리를 잡으려고 쫓아가는 사람에게 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눈에 보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따라가다 죽을 것을 모르고 자기가 죽을 자리로 들어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은 탐욕이란 본능입니다. 이 탐욕이라는 것이 바로 죄의 썩어짐의 산물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면 탐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의 오염을 제하시고 성령께서 사망을 제하시고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4. 구속 받은 존재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에게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죄의 종, 질병의 종, 저주의 종, 죽음의 멸망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값을 지불하시고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6절에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말씀하시고, 요한계시록 5장 9절로 10절에는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으셔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 중에 가장 귀한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시편 103편 3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병의 종살이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비정상적인 것에 오셔서 정상적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을 정상적인 마음으로, 육체를 정상적인 건강으로, 사회, 국가를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치료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비정상적인 곳에서 예수를 모시고 기도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저주의 종살이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주님은 우리가 저주로 고통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일을 넘치게 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저주의 종이 된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저주를 다 청산하심으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멸망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하나의 커텐을 펼치고 저 건너편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저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예비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사망의 권세를 무찌르시고 부활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로서 죽음의 어두운 길은 예수의 부활로 광명한 대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로 58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율법과 사망을 철폐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심으로 천국에 광명을 이미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네 가지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내가 어디에, 누구에게 소속되어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본능처럼 알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속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소속감은 분명합니다. 둘째는 한계성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 있고 또 그러할 때 그 한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된다는 한계를 알기 때문에 저 건너편에서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속에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인정할 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유일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독특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유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평가절하하거나 폄하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넷째는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바르게 가질 때 값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혜있는 사람이 되어 깨닫게 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죄를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영광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이 되며 세상의 죄와 부패를 벗어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종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자유인이 되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었다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신분,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예정가운데 태어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을 받은 당당한 신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체성이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처해있지 않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부평초 같은 인생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지혜를 얻어 깨닫게 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속받아 해방과 자유를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체성이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