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하나님이 보시는 나

by 삶의언어 posted Jul 14, 2024 Views 4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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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시편 103편 8∼17절

 

하나님은 사람의 장점을 보고 격려하지만 마귀는 사람의 단점을 보고 공격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예비하는 것은 사랑 때문 하나님 아버지도 동일한 심정
십자가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채찍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어

 

 자녀들은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동안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나 마음을 쓰고 관심을 기울입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나 신경을 늘 쓰게됩니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나를 어떻게 보나 살피게 되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며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중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고 계실까?’ 그것이 우리에게 최상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1. 자신에게 낙심될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 볼 때 자신에 대해서 실망한 경험이 한두번 이상은 다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저 자신에 대하여 대단히 낙심한 적이 있습니다. 마귀의 무시무시한 참소가 내 마음속에 덮쳐 왔습니다. 마귀가 비참하게 참소를 하는데 내 스스로가 나를 볼 때도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듯 영혼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 많은 결점을 하나님이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점을 보지 아니하시고 내속에 장점을 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내가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용기백배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단을 물리치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좌절하여 비참한 심정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좌절케 하는 일만을 생각하여 낙심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장점들을 보고 우리를 평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잘못한 점을 꼬치꼬치 캐어서 비평하지 않습니다.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장점을 보고 평가해 주십니다.
 마귀는 하루도 쉬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우리의 결점을 들춰냅니다. 우리의 잘못을 들춰내고 우리를 참소하고 낙심시키려고 합니다. 마귀가 보는 눈으로 자신을 보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 하고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시편 103편 8절로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와 긍휼의 눈으로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저주와 심판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과 자비로 보시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2. 야웨 이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보십니다. 내가 보잘 것 없어도 우리 삶을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며 돌보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예비한다고 말합니다. 아담을 지으시기 전에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아름다운 에덴을 예비하셔서 아담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돌보심입니다.
 사람들이 다 패역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단의 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와 그 여덟 식구를 하나님은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홍수가 와서 땅을 엄습할 때 거기에서 피할 수 있도록 방주를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은 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차 하나님이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환난을 통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환난을 통하지 않을 것은 홍수 속에 노아를 위해 방주를 예비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주의 백성들이 피할 곳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에서 피난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야곱과 그 자손들을 위해서 요셉을 먼저 애굽 땅에 보내어서 하나님은 그 아버지와 형제들을 봉양하도록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큰 기근이 온 세계를 엄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 자손들을 위해서 고센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시고 모세를 통해 인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돌보시고 예비해 놓으십니다. 사랑은 돌보고 예비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돌보아 주지도 아니하고 예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입에 발린 사랑이요, 실제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돌보시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돌보시고 우리의 미래를 다 예비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고생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곳을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감히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일을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3. 우리 이렇게 살자

 

 이런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을 모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환경이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사랑하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믿지 않고 환경만 바라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하루는 마귀가 자신의 작전용 도구를 경매에 붙인다고 광고를 냈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마귀의 무기들을 보기 위해 구매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경매품은 죄짓게 하는데 사용될 무기인데 탐욕을 품게 하는 무기 등으로 분류되어 잘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비매품이라고 표시된 도구가 있어 구매자의 눈을 끌었습니다. 마귀는 이 도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다른 도구는 다 팔 수 있지만 이것만은 팔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강력하고 비밀스러운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기의 이름은 낙담인데 낙담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면 인격과 생활을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신앙이 가져오는 낙심은 마귀가 가장 즐겨 쓰는 도구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과대 포장하여 비난하고 공격하므로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약점이 아닌 장점을 보고 우리를 세워주기 원하시고 계십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깨어져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우리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많이 길러도 그중에 특별히 부모를 좋아하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부모는 그 자녀에게 더 애정이 갑니다. 제자를 길러도 선생님을 더 좋아하고 감사하는 제자에게 더 애정이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이 그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 과제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여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사실로 증명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아무리 좋은 것도 세월이 흐르면 다 꿈같이 헛되어 우리 곁을 떠납니다. 오직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십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부모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선생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상사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이웃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보시고 계신 것인가’를 올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자비와 긍휼로 보시며 사랑으로 보시며 돌보시고 예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늘 마음에 익히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인생은 들의 풀과 같으며 우리의 영화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 의는 자자손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장점을 들춰내어서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상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사단의 참소를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신앙이 자라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며 순종하고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