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믿고 확신한데 거하라

by 삶의언어 posted Jun 19, 2024 Views 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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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의심의 틈을 주지 말고 늘 깨어 마귀를 대적하라 
영적 진리는 오직 성령님을 통해 믿음으로 받아들이자
창조적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우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두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시간, 공간, 물질인 3차원의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없으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영적인 세계 즉, 4차원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므로 3차원적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그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4차원도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갖는 지식도 두 근원에서 나옵니다. 3차원적인 지식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적인 수단과 지적, 이성적인 과학적 지식 등 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서 오는 4차원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이 지식은 감각이나 이성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의 지식, 이 지식을 통해서 삽니다. 이 계시적인 지식은 인간 이성으로는 알 수 없고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속에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참된 진리를 알아야 함

 

 똑같은 사물을 볼지라도 그 사물에 대한 참된 진리가 있고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보십시오. 그 선악과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진리요, 참된 정보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똑같은 선악과를 보고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정보를 흘렸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마귀가 주는 거짓으로 포장한 진리인 채 가장하는 그 말 사이에 끼어 방황하다가 마귀의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패가망신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바른 지식에 굳세게 서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와 세상이 주는 말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언제나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삶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쓰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몸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용서와 의를 받게 하시고 세상과 마귀를 버리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질병에서 치유 받고 건강을 얻게 하시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얻게 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는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계시적인 지식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뭐라고 말합니까? 그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개혁가요, 정치적 혁명을 주장하던 사람으로서 실패하여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참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적인 지식입니까? 세상이 주는 인간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입니까? 우리가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지식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세상이 말하는 대로 유대인의 혁명가요, 정치가요, 이상주의자요, 철학자로 실패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생각하면 예수는 아무 관계도 없고 구원도 받지 못하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대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에는 하나님이 보시는 눈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보는 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정보가 있고 세상과 마귀가 주는 정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올바르게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스라엘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의 호령소리에 겁먹고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다윗은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이 대장군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은 사자나 곰을 내가 친 것처럼 내손에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정보, 두 가지 지식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담대한 믿음의 지식과 믿음의 정보입니다. 하나는 세상과 마귀에서 오는 패배적이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그러한 지식과 정보입니다. 어느 것을 믿어야 됩니까? 사울은 세상과 마귀가 주는 지식과 정보를 믿어서 위축되고 뒤로 물러갔으며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서 물맷돌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을 대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세상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이 가르치시는 삶의 길로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환경과 다릅니다. 감각과 다릅니다. 이성과 지식과 다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역사를 지으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는 계시로 받아 들여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감각이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이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보다 위대하고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을 보고 뒤로 물러가고 감각을 느끼고 뒤로 물러가고 인간적인 지식이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론하고 뒤로 물러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굳세게 서서 믿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성과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위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고등수학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지요. 공식은 외우라면 외우지만은 그 공식을 도출해 나가는 고등수학을 어린아이들은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의 원대함을 인간이 어떻게 평론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고 평론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체가 진리이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지식은 허위 날조된 거짓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주님이 계시로 주신 이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든 일들은 마귀의 허위 날조된 거짓된 지식입니다.
 미국 FBI 존 애드가 후버는 21세에 법무부에 들어가서 29세에 FBI의 국장이 되어 무려 48년 동안이나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당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한 말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인 범죄학자요, 미국 FBI 국장이 되어 48년 동안 범죄 세계를 들여다본 사람이 한말입니다. 그는 체험을 통해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아닌 이 세상의 허위 날조된 지식으로 살다가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바른 지식과 삶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음

 

 영적진리는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최고등의 지식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갔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무덤에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더운 지방이라 빨리 부패가 된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 “무덤 문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와 마리아가 울부짖는 얼굴로 “주님 오라버니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째 되므로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환경이 주는 정보를 받아 들였습니다. 죽어 썩은 냄새가 난다는 감각적인 정보를 받았습니다. 절대로 죽은 오라버니가 살 수 없다는 인간적인 지식이 주는 정보를 받아 들였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무덤 문을 열어 젖히면 어떻게 하냔 말입니까? 환경과 감각과 인간적인 지식에 완전히 잡혀서 부정적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얼굴을 붉히고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쳤습니다.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않았느냐!” 인간적인 것은 다 3차원적인 것입니다. 환경과 감각과 지식이란 차원이 낮은 3차원입니다. 하나님은 4차원이상 영원차원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감각이나 이성으로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을 하고 그 두 사람이 나아가서 무덤의 돌을 옮겼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마리아여, 마르다야 그런 이상한 짓을 왜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무덤의 문을 옮겨 놓으니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창조적인 말씀입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말씀입니다. 이것은 바로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있었고 “궁창이 생겨나라” 할 때 궁창이 생겨났고 “물이 모이고 육지가 생겨나라” 할 때 육지가 생겨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라” 할 때 생겨나게 한 창조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죽은 나사로가 수의를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거짓이 아닌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믿음에 서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적인 지식과 환경과 감각을 통하여 거짓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항복하도록 압박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온갖 방법으로 마귀는 우리에게 압력을 가합니다. 마귀가 그냥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하려면 달려 들어가서 우리 어깨를 잡고 흔들고 귀를 잡아당기고 마음속에 속삭이고 ‘환경을 봐라.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안돼. 감각을 느껴봐라. 하나도 느낄 수 없지 않느냐? 이성적으로 지식으로 생각해 봐라.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라. 안된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공격을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고 마귀의 말에 항복하면 그때부터는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귀의 거짓된 지식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결단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도 믿고, 죽어도 믿는다. 흥해도 믿고 망해도 믿는다. 성해도 믿고, 패해도 믿는다. 일단 우리가 하나님과 팀이 되어서 하나님 가는 길로 갈 때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함께 믿고 나가야합니다. 중간에 가다가 이것도 의심하고 저것도 의심하고 이리도 요동하고 저리도 요동하면 순복음의 신앙에 설 수 없습니다. 한번 우리가 한길로 갔으면 끝까지 가야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부부간에 결혼하면 이혼이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일단 결혼하면 무덤에 갈 때까지 가야지 헤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젊은이들은 무덤에 갈때까지가 아니라 너무나 쉽게 헤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좋아도 가고, 나빠도 가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경기 할 때 발을 묶어서 함께 뛰는 것처럼 자빠지면 끌고라도 가야합니다. 함께 뛰어야합니다. 주님과 함께 뛰기로 작정했으면 끝까지 함께 뛰기로 결심을 하고 마귀가 아무리 꾀어도 말씀의 띠를 풀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의 띠를 묶고 주님과 함께 뛰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로 24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확신한데 거하라

 

 이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확신한데 거하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확신합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해가 서쪽에 지는 것도 확신합니다. 우리는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압니다. 확신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의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확신한데 거하면 아무리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마귀가 흔들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변함없는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적으로 오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 확실히 거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강원도 산골에 허술하게 집을 짓고 문풍지를 붙여 놓으면 조금만 구멍이 떨어져도 바람이 불면 조그만 구멍을 통할때 속도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겨울에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처럼 들어와서 밤새도록 벌벌 떨고 얼어 잠을 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바늘구멍을 막아야합니다. 바늘구멍만한 작은 의심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마귀가 그것을 통해서 황소바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단호하게 의심은 막고 말씀으로 굳세게 서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단호하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해가에 왔을 때 최강대국인 애굽이 전군을 동원해서 병거를 거느리고 질풍노도와 같이 쫓아 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모두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아비규환의 절망에 처했었습니다.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홍해가에 데리고 와서 다 죽게 만드는가”라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흔들렸습니까? 모세가 “아이고 어찌할꼬!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이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단호하게 믿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요동을 하고 혼돈을 하고 부르짖어도 동요하지 않고 그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는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신앙고백을 보십시오. 얼마나 단호한 고백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그는 의지하고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요동치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의 싸우시는 것을 보라. 오늘 내가 본 저 거대한 애굽의 군대를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앙 그대로 하나님이 홍해를 열어 가르고 이스라엘로 건너가게 하고 뒤를 따라오는 애굽 사람을 전부 수장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것이 확신하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도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거짓과 확고하게 대결하십시오. 조금이라도 의심의 틈을 주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아무것에도 정함이 없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을 격파하고 모든 감각을 격파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다 격파하고 예수 중심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사막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서서 승리만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살아간 것처럼 말씀을 먹고 살아야 됩니다. 신령한 세계에서 신령한 지식을 갖고 믿음과 확신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성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지나칠 수 없다고 마르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나의 성실성 존경심, 봉사심은 어려서 성경 말씀을 듣고 얻은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는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는데 그 성경 때문에 오늘 내가 백화점 왕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사람,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읽고 확신한데 거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마귀는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세상과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소원하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서서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천국 영생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 영생을 얻었고 천국 가는 길에 섰사오니 말씀에 서서 요동치 말고 흔들리지 말고 확고하고 단호한 신앙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