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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by 삶의언어 posted Jun 25, 2024 Views 6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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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9∼10절





하나님의 뜻을 알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극복할 수 있어
말씀·꿈·환상·마음의 소원·주위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 알 수 있어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께서는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님! 형제님 주위에 있는 이 많은 사람들 중 얼굴이 똑같은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60억 인구의 얼굴이 다 다르고 과거에 산 사람의 얼굴도 다르고 장차 태어날 사람의 얼굴도 다 다릅니다. 불과 손바닥 두 개만한 넓이의 얼굴 면적에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얼굴 형상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해결법이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인간의 해결책은 불과 몇 개지만 하나님께는 무한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천상천하에 어떠한 기적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만 알면 한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구하고 믿고,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1. 모세의 강하고 담대한 믿음

 

 모세는 어떻게 두려움 없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에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또 출애굽기 3장 17절에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낮과 같이 환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까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길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가는 것이라고 확신한 모세는 아무리 홍해가 앞을 막고 바로의 군대가 뒤에서 질풍노도와 같이 쳐들어와도 해결책이 있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담대한 신앙고백을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같이 담대한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어떠한 절벽 같은 절망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모세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길을 내셨습니다. 홍해에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같이 건너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수루광야에 들어가서 사흘 길을 가다 마실 물이 없어 기갈에 처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마침 연못물을 만났는데 마셔보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마신 사람마다 물을 토하며 배를 잡고 뒹굴었습니다. 그들이 다 원망하며 “모세야, 이제 우리 목이 말라서 죽게 되었다. 우리와 짐승들이 다 죽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즉, 아무리 물이 없고 또 만난 물이 쓴 연못이라도 하나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성령께서 지시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어떤 고난이나 장벽이 다가와도 길은 있었습니다. 신명기 1장 29절로 31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어떠한 광야를 지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혹은 업고 강을 건너시고 안고 광야를 지나시더라도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알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앞길이 캄캄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뜻만 알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열립니다. 사람은 그 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크고 비밀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만 알면 길은 열리는 것입니다.
 1787년 28세의 영국 하원의원이었던 윌리엄 월버포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노예해방에 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노예무역은 국가 수입원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영국식민지 산업의 기둥이자 근간이었습니다.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월버포스는 노예해방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노예제도를 폐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왕족과 귀족, 재벌같은 기득권층에서 어마어마하게 위협을 하고 중상모략을 했습니다. 그러나 월버포스는 “하나님의 뜻이 노예를 해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 영국에 모든 왕족과 귀족과 재벌이 총합세하여 협박하고 공격을 하더라도 노예해방은 하나님의 뜻이다. 영국의 노예는 해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아침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고 오히려 믿음을 돈독히 했습니다. 그는 시와 노래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며 노예를 통해 생산된 설탕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의 여론을 형성해 나갔을 뿐 아니라 하원의원으로 입법활동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국 노예해방이라는 하나님의 뜻은 그로부터 46년후인 1833년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0일후 윌리엄 월버포스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환희와 감격 속에서 생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노예해방인 것을 알았습니다. 46년간 뒤로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믿고 노예해방을 추구한 윌리엄 월버포스의 믿음으로 영국의 노예해방이 합법화되었던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비록 한 사람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에 대한 확신은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뜻을 알면 길은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은 다양한 형편에 처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이 되고 빛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가 기도하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5만번의 기도응답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 목사님은 30세에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시편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이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변호사라는 말씀에 빛이 비췄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다’ 수많은 고아들이 런던 길거리에 방황하는 것을 보고 그는 가슴 아파했지만 이 말씀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몰랐는데 하나님이 고아의 아버지라는 것을 읽자마자 ‘자식을 먹이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고아들을 먹이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아원 총무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평생을 엎드려 기도만 했습니다. 30세에 고아원을 시작한 후 93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63년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그 생전에 기도응답으로 받은 금액만 무려 150만 파운드, 현재 금액으로 400억 원을 한번도 사람들 앞에 손을 내밀지 않고 오직 엎드려 기도만 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아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3000여 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습니다. 400억 원의 돈이 오직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뮬러 목사님이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내용이 성경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를 꼭 찾아 확인한 후에 기도했지 막연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말씀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 전에 며칠동안 성경을 찾을 때도 있었습니다. 며칠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기도하는 이 제목이 하나님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성경을 잘 상고해서 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뜻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인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꿈이나 환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환상 중에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와 정혼한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낙심해서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꿈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로 21절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마리아에게는 환상으로 요셉에게는 꿈으로 하나님이 뜻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꿈과 환상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다메섹 도상에 사울에게도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로 7절에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모든 꿈이 다 하나님의 계시는 아닙니다. 꿈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씀하든지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든지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꿈이나 환상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여행 중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아주 놀라운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루이빌에 가서 미국 교역자 600명을 대상으로 교회성장 세미나를 한 후에 한인교회에 가서 한시간 강의를 하고 주일 아침에는 2부예배를 인도하고 다시 오클라호마 에서 비행기를 타고서 텔사로 가서 2000여 명의 성도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몸이 너무 지쳐서 솜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 달라고 몰려든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목사님 사무실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한 한국분이 그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폐암으로 죽어갈 지경으로 기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 어떻게 내가 여기에 온 것을 압니까?” 그는 시카고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는 목사님이 미국에 오신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가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에 교역자 수양회를 인도하러 오니 찾아가 안수를 받으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목사님의 행적을 수소문해서 시카고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나는 그 분을 만나본 적이 없는 초면입니다. 꿈에 하나님이 계시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하게 안수기도를 하고 돌려보냈는데 그 다음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안수받기 전에 숨이 답답해서 큰 고통을 당했는데 안수받은 저녁에 기침을 하니까 폐암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와 깨끗이 나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 것입니다. 때때로 성령께서 꿈에 나타나서 여러분을 인도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과 환상뿐 아닙니다. 마음의 묵시와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가장 평범하게 하나님 뜻을 아는 길은 마음의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시편 107편 30절에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마음에 기도할 때 끝없는 소원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저녁에 사라지는 소원이 아닙니다. 불길같이 소원이 일어납니다. 잘때도 그 소원, 깨어나도 그 소원, 마음속에 소원, 머리 속에 일어나는 소원이 아니고 배꼽 밑에서 올라오는 소원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그 소원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인 것입니다.
 또 소원이 일어남과 동시에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종종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몸담고 있는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9절로 20절에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인인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난 다음 그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환상 본 것과 자기 환경에서 일어난 것이 일치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는 그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증거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이방인의 오순절 운동이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성경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말씀과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묵시나 깨달음을 통하여 마음의 소원을 통하여 우리 주위 환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뜻을 알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뜻만 알면 어떠한 어려운 여건이 다가와도 길은 열리는 것입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을 행하는 야웨,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웨, 그 이름을 야웨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겠노라”  하나님의 뜻만 알면 크고 비밀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행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다음에는 믿음으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는 이제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길은 하나님이 여는 것입니다. 내가 여는 것 아닙니다. 내가 방법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알면 길이 열립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성이 높고 대장부들이 살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밀고 나갔습니다. ‘들어가자!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에게 밥으로 주셨다. 들어가자!’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무조건하고 믿고 들어간 그들은 후손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8절에도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능력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안 믿으면 행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8장 25절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믿고 행해야 됩니다. 안드레를 보십시오. 안드레는 빌립과 같은 제자인데 예수님의 질문을 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 주의 뜻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떡 살 곳도 없고 돈도 없지만 예수님의 뜻이 먹이는데 있으면 길은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가서 어린 아이의 점심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부끄럽게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주님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만 그러나 주님 뜻이 있는 곳에 기적이 일어날 줄 알고 가지고 왔습니다” 주님은 기뻐하사 안드레가 갖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 축사했습니다. 그러자 떡을 떼어주면 생기고 떼어주면 또 생기고 고기는 나누어 주니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된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주님이 엽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불가능 가운데도 길이 열립니다. 뜻이 있는 곳에 홍해수도 열리고 뜻이 있는 곳에 쓴물이 달게도 되고 뜻이 있는 곳에는 만나도 내려오고 메추라기도 오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안됩니다. 뜻이 있으면 믿음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성과 감각적인 판단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로 4절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말했을 것 아닙니까? 무장도 안된 군중을 거느리고 잘 무장된 가나안의 칠족이 있는 땅을 어떻게 점령합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길이 있지만 그 길을 가는데는 고난과 시련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극히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믿음으로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기도-


 

 전능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고 놀라운 인내력을 가지고 기도하고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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