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

행복과 마음의 작정

by 삶의언어 posted May 14, 2024 Views 6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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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행복과 마음의 작정"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그 기간 동안에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울며 불행하게 인생을 산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 헛되이 왔다 헛되이 돌아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말하면 여기에 대한 대단한 신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마치 신비한 것으로써 운명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행복하도록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불행하도록 태어난 사람도 있다고 미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행복이란 것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으로, 마치 하늘에서 별똥이 떨어져서 그 생애 속에 우연히 행복이 떨어져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실상은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똑 같습니다.
농부가 밭을 가꾸고 씨를 뿌려서 잡초를 제거하고 가꾸어 농사를 지어 열매 맺는 것처럼 행복이란 것은 여러분 반드시 여러분 생활 속에 행복의 씨앗을 심어 가지고서 행복의 생활이라는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간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은 남녀 노소 귀천을 불구하고 오늘 제가 시키는대로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서에서 행복을 얻는 비결을 배우고 있고 또 내 자신이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행복이 아닌가를 먼저 말씀드리고 난 다음 그 다음에는 참된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거기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된 행복이 아닐까요?

첫째로, 좋은 환경은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에 플러스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 그 자체는 행복으로 오지 않습니다. 혹은 좋은 집을 가진다. 혹은 좋은 옷을 입는다. 혹은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 혹은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얻는다. 혹은 좋은 직장을 얻는다. 이런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플러스 요인이 될지 몰라도 그 자체가 절대로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여러분 거대한 나라를 세워서 위대한 안건으로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소유하고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위대한 왕이었던 갈립 에브다할람은 거의 50년의 통치를 끝마치고 난 다음 그는 이렇게 기록했었습니다. "나는 50여 년의 세월동안 승리와 평화로 이 나라를 다스려왔다. 나의 신화들은 내게 존경을 받고 적들은 나를 보고 두려워하였고 동맹국들에게는 존경을 받았고 부, 명예, 권력, 쾌락 그 어느 것이나 내게 없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복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지상의 축복 중 부족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활 중 내가 체험한 진정한 행복한 달수를 부지런히 헤아려 보았다. 결과 결국 오십년 세월 중에 행복했다고 생각한 날은 열 나흘밖엔 없었다" 하늘의 새라도 내가 명령하면 떨어지고 그 당시에 구라파 거의 절반을 점령하고 호령했던 세라세의 대왕도 오십년을 통치한 생활 속에서 거의 행복한 날을 헤아려 보니 열나흘밖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행복이란 그 굉장한 생활의 무대장치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환경과 부귀영화 권세와 공명이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솔로몬을 세워서 그 모든 것을 체험해 보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것을 다 체험해 보고 난 다음에 전도서 2장 4절로 11절에 이렇게 탄식의 시를 적었습니다. 솔로몬의 탄식을 통해서 보면 행복은 환경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으며 나는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 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무대 장치를 다 하고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국적으로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는 헛됨과 불행의 절망 가운데서 몸부림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러분 환경이 좋아지면 행복이 꿀물같이 넘쳐 흐를 것이라는 망상에 찬물을 껴얹고 만 것입니다.
나는 20여년의 목회 생활에서 진실로 환경이 좋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을 지금까지는 별로 보지못했습니다. 왜냐? 환경은 행복한 사람에게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플러스 요인이 될지 몰라도 환경 그 자체가 사람을 행복하도록 변화시켜주는 일은 나는 못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아무리 비가 쏟아진다고 할지라도 내가 비를 담아낼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비는 그대로 쏟아져서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그 마음속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환경적인 행복한 장치를 해 놓아도 그 장치가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은 행복이 아니다.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둘째로, 무엇이 행복이 아닌가? 미래에 행복이 다가올 것을 기대하고 사는 것은 속아서 사는 것이요, 행복 속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유명한 과학자요. 신앙인이었던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참으로 현재에 살지를 않고 장차 잘 살 것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언제간 미래에 행복하게 되겠지 하고서 기대하고 있고 그러나 필경 알게되는 것은 미래가 다가와도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진실된 체험이 아닙니까? 자식들을 다 길러 놓고 나면 행복하겠죠. 그러나 자식들을 다 길러놓아도 여전히 행복은 없습니다. 아들 딸 다 좋은 데 시집 장가 보내면 행복하겠지. 아들, 딸들이 다 시집, 장가들어도 역시 기대한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좀더 좋은 집을 사면 행복하겠지. 좀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겠지. 그곳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 같으면서도 역시 공허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내가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고 차관이 되고 장관이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때 행복이 있겠지. 그러나 올라가면 그곳에 지나가는 공허한 바람소리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장차 어떠한 일이 생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장차를 기다리지만 그 장차에 가보면 거기에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 산너머 있다기에 그 산너머에 가보니 또 행복은 저 산너머에 있다더라. 미래에다가 행복을 주면 행복은 언제나 미래에 있지 절대로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 해결되면 행복이 다가올 줄 알지만 여러분 그 문제를 해결하면 인생을 사는 동안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인간은 문제에 부딪쳐서 살고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로 말미암아 행복이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행복이란 현재 누려야지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순복음 중앙교회 3부 예배이 자리에서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금년 1981년 12월31일이 되어도 절대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이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세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은 여러분 마음의 작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누구든지 행복하겠다고 마음속에 작정한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도록 작정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 잘못된 발언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행복이 뭡니까?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을 행복이라고 정의합니까? 집이 행복입니까? 옷이 행복입니까? 지위가 행복입니까? 돈이 행복입니까? 훌륭한 남편과 이쁜 아내가 행복입니까? 자식들이 행복입니까? 그런 조건이 행복이 아니란 것을 우린 알고 있지요. 
유명한 의학박사였던 존에이 쉰들러가 정의한 행복의 정의는 아무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행복이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우리 생각이 기뻐하며 지내는 마음의 상태가 행복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24시간 주어졌으면 24시간의 대부분을 우리의 생각이 기뻐하면서 지날 때 그 마음의 상태가 행복의 상태인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지 아니하면 그게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의 상태가 기쁨 속에 있을 때 이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다른게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 선생이 빌립보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로 보아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가 로마에서는 바울이 갇혀있던 감옥에 가 보았는데 나 같으면 1시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땅속에 파낸 감옥으로 지하 동굴입니다.
햇빛은 비추지 않습니다. 위에 조그마한 구멍을 파서 뚜껑을 열고 밥을 내려줍니다. 그는 깜깜한 동굴 가운데서 손발이 착고에 채워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거기에 촛불하나 켜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바울은 감옥생활 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서 편지하기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세상에 그 감옥의 동굴 속의 습기 척척한 어두운 곳에서 자기도 기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할수 있겠어요. 그러나 바울의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대다수 시간에 바울의 생각과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가운데서 행복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행복이란 여러분의 마음의 사고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대개의 사람들은 행복해지고자 마음에 작정한 정도에 따라 행복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많이 행복해지겠다고 마음속에 작정하면 많이 행복해지고 적게 행복해지겠다고 하면 적게 행복해지고, 행복하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마틴에놀 초펠박사는 그의 책에서 기록 하기를 행복은 순수 내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물에 의해서 생성되지 아니하고 이념이나 생각 및 삶의 태도 등에 의해 이룩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은 환경에 관계없이 개인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발전되고 이룩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복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왜. 환경으로 말미암아 이룩되지 아니하고 행복이란 것은 내 이념이나 내 생각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채워 놓을 때는 행복해지고 부정적인 것과 슬픔으로 파괴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슬퍼지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환경 때문에 나라 때문에 세계 때문에 하고 우리가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나는 여러분에게 진실로 어떻게 하면 1981년 주어진 한해를 행복되게 살 수 있을까. 그 길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첫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진실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 현실적인 환경을 초월한 삶의 목표와 가치를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삶의 가치를 상실해 버리면 인간은 어떠한 일에도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살아갈 목표가 있고 내가 살아있는 가치가 있고 내가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영화 공명 지위 권세 같은 것이 여러분의 삶의 목표요 가치이면 어느 순간에 이와같은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나 가치는 이것이 허물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다 허물어진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적인 목적과 세상적인 일에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어느 때인가 이것이 다 무너져 없어져 버리고 말할 수 없는 공허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떨어져 불행에 몸부림 칠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빼앗기지 않는 터전 위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목표와 가치를 얻어야 됩니다. 이 가치가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예수 안에서 이가치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다 청산하 부활하셔서 이제 누구든지 수고하고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는 그 발 앞에 엎드려서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여러분 가슴속에는 살아가야 할 영원한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을 내 소유로 만들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영원한 목적이 생기고 그 다음 삶의 가치가 마음속을 점령하면 내일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그리스도의 신부된, 그리스도의 아우된 자격으로서 매일 매일 살아갈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미하고 전도하고 살아갈 때내 인생의 가치가 넘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정해 주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은 나는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고 하나님께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가운데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살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잃어버리고 깨어지고 흔들려 버릴 그러한 목표나 가치로 삶을 살아간 사람은 절망이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나의 속에 진실로 행복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현실적인 환경을 초월한 삶의 목표와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두고 있을 때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지진이 나고 나라가 변해도 역사가 변천되어도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 목표와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심지가 꽉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의롭게 하심과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속에 지금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믿음을 가지고서 마음만 열어 놓으면 하나님의 용서에 사로잡히고 용서와 사랑에 사로잡히고 의와 성결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여러분 참으로 삶의 근원적인 목적과 가치가 여러분 속에 주어지면 환경이 좋을 때도 할렐루야, 환경이 어려워지고 깨어질 때라도 나는 동요하지 않고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둘째로, 여러분은 행복해지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란 여러분 행복은 마음의 자세이기 때문에 마음에 행복해지기를 결심하고 생각의 씨앗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어옵니다. 미운 생각, 분노, 원한, 질투, 시기, 분쟁, 살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또 우리 생각속에 좋은 생각도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좋은 생각도 들어옵니다. 우리는 농부와 같이 마음의 바탕에 생각의 씨앗을 심어서 그 결과를 추수해서 결과를 누리는 것인데 마음속에 불행한 생각, 슬픈 생각을 집어넣고 그 결과 기뻐지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마음에 기쁜 생각을 심어 놓고 난 다음에 그 결과 불행과 슬픔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행복이란 뭘까요?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놓은 마음 상태가 행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은 내가 좌우하는 것이지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머리의 생각 속에 이제는 과거의 추억도 기쁜 추억으로 심어놓고 슬픈 추억이란 뽑아버려야 합니다. 어릴 때 자랄 때 부모와 자식간에 슬픈 일이 있었으면 슬픈 그 씨앗을 뽑아버리고 즐거운 것으로 생각 속에 심어야 합니다. 즐거운 생각으로 마음속에 심어 놓습니다. 현실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도 즐거운 생각들로 내 마음속에 심어 놓고 아주 슬픈 생각, 파괴적인 생각은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속에 고의적으로 일부러 기쁜 생각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자랐습니다. 불행해질 필요도 없는데 내 나이 올해 45세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30년의 생활은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늘 생각하기를 우리 아버님이 돈을 잘 벌었으면 행복했을 것이라고 늘 원망을 했습니다. 내가 더 많은 고등 교육을 받았더라면 더 행복해 졌을 것인데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늘 원망을 했습니다. 그 다음 신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개척하러 나가서 천막을 칠 때는 좋은 건물이 있으면 행복할 것인데 천막을 치니까 불행하다고 늘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이 삼십이 되어야 장가를 들었는데 그때는 가난하고 어렵고 형편이 없어 장가도 못들어서 늘 26, 27세 될 때 장가를 못들어서 불행하다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이러니 하루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주님께 기도도 하고 설교도 하고 했지만 내 마음속에 기쁜 생각이 아니라 늘 불행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 그리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서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늦게 내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자 요사이 와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좋은 가정을 가졌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아내를 가지고 좋은 자식들을 가지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성도들을 모시고 아주 좋은 것만 꽉 들어차 있는데 요사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 불광동에서 그 천막을 치고 바람불고 비오고 쓰라리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워서도 그때 참 행복했다" 이런 생각이 납니다. 자 그때는 지극히 환경이 나빠서 불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사이는 그때 추억을 생각하면 순수하고 참되고 참 그때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내가 깨달은 것은 "아하 행복이란 것은 내 생각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구나"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결심하고 그때부터 나는 내 생각 속에 즐겁고 기쁜 생각으로 채워놓고 슬프고 괴로운 생각이 오면 그저 처리하고 떠나 보낸다. 나는 그것을 오래 마음속에 심어버리지 않고 뽑아버린다. 그때부터 나는 기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내에 대해서도 기쁜 것만 생각합니다. "하나님 좋은 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쁜 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아내 주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것만 생각하고 나쁜 것을 생각하려고 하면 이것은 지나갔다. 소용없다. 그것을 괜히 마음속에 생각해 봤자 나도 불행하고 마누라도 불행하니 소용없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여러 가지 결점 많고 내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가집니다. 어떤 때는 공부도 안하고 게으른 것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했다가 없애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그래도 몸 건강하니 참 좋다. 그리고 맏아들은 나를 닮았으니 더 좋다.
둘째 아들은 엄마 닮았으니 좋고 셋째 아들은 둘을 공평하게 닮았으니 좋다. 좋은 것만 생각을 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기뻐하고 할렐루야 하니까 마음 속에 행복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슬프고 어려운 것이 안 다가올 수 없지만 그런 일을 처리하고 난 다음 이제 머물러 놓지 않아요. 그것은 곧장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없애버리고 난 다음에 기쁘고 좋은 일은 차곡차곡 마음의 곳간에 채워놓고서 그것을 끄집어내어서 그것을 기억해 보고 그 다음 현실적 관계에도 기쁨의 생각으로 자꾸 마음속에 채워놓고 있으니까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기쁨의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나의 생활이 행복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기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기쁨의 생각을 먹지 아니하면 행복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환경이 기쁜 생각을 채워놓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로 결심을 하고 마음속에 끊임없이 기쁜 생각으로 채워 놓을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행복해지려면 부정적인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외국의 텔레비젼 쇼에 많이 나갑니다. 그 텔레비젼 쇼에 나가면 전등불이 많이 비추고 청중석이 있어요. 청중석의 사람들이 텔레비젼 쇼를 구경하기 위해서 잔뜩 와서 앉아 있습니다. 잔뜩 와서 앉아있으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텔레비젼 촬영 마스터가 나와서 전부 지휘를 하는데 내가 들어가서 앉아서 나를 보고서 이제 조용기 목사님 한국 멀리서 잘 나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 다음 텔레비젼 마스터가 나를 보고 행동을 하면 앉아서 박수를 칩니다. 그러면 텔레비젼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박수치는 것을 찍어요. 그 다음 말을 한참하다가 그 다음 텔레비젼 마스타가 좀 재미있는 말나오면 청중들을 보고 웃으라고 행동을 합니다. 또 그러면 텔레비젼 청중들은 웃습니다. 제가 가만히 보니까 아니 저런 헛개비들 보아라 마스터가 박수 치라고 하면 박수치고 웃으라면 웃고 일어서라고 하면 다 일어서고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볼 때 텔레비젼 쇼에 나가서 마스터가 시키는대로 합니다. 마귀가 나와서 울어라. 울어라. 그러면 울고, 또 환경의 마귀가 나와서 가슴쳐라. 그러면 아유 답답해 하고 가슴을 칩니다. 또 마스터가 나와서 성내라. 성내라. 그러면 성내고, 이것은 인생의 주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시키는대 로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된다고요. 주체성을 가지고 내가 행동했으면 내 마음속에 결정한대로 서 가지고서 불행과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면 엎드려 기도해서 이것을 청산해 버리고 내 주체성에 서서 나는 기쁜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살아야지, 텔레비젼 쇼에 앉아서 마스터가 시키는대로 그저 박수치라면 박수치고 웃으라면 따라서 웃고 성내라고 하면 따라서 성내고 이러면 자기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그 인생은 완전히 환경의 노예가 되어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행복해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은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말고 어떠한 환경이 다가오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나는 행복해지기를 결심하고 기쁘고 좋은 생각을 엄격히 부여잡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행복은 생각의 습관입니다. 사람에게는 습관이 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고 늦잠을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또 밥을 빨리 먹는 것도 습관이고 밥을 천천히 먹는 것도 습관입니다.
성을 잘내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고 성을 안내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 습관을 한번 들여놓으면 습관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여러분 습관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습관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불행을 스스로 늘 찾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언제나 중립 아니면 대개 불행을 스스로 습관적으로 찾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안 좋은 것을 바라봅니다. 물통에 물이 반 정도 가득해도 아 반정도 가득하다고 하지 않고 반 정도 텅 비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슬픔을 가져오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습관을 뿌리 뽑지 않으면 회개와 기도로써 나의 부정적이고 언제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남을 할퀴고 미워하고 이와 같은 습관을 뽑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불행해지는 습관을 버리고 행복할 수 있는 습관을 붙이는데 사람이 습관을 뽑는 데도 스무하루가 걸리고 새로운 습관을 붙이는데도 스무 하루가 걸립니다. 21일 이것은 이미 심리학적으로 연구되고 결정된 사항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늘 불행을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스무 하루 동안 달력에다 기록해 놓고 스무 하루동안 매일 아침에 일어나거든 웃으십시오. 마누라 보고도 웃고 자식보고도 웃고 그리고 난 다음에 불평과 원망과 탄식과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언제나 좋은 것을 발견해서 기뻐하고 기쁜 생각을 자꾸가지는 것을 스무 하루 동안만 계속하면 여러분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의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행복의 습관을 들였습니다. 최근에 행복의 습관을 들이고 난 다음에는 늘 행복해요. 나는 이렇게 행복할 수 가 없어요. 나는 요사이 사는 것이 젖과 꿀이 흐릅니다. 야. 이렇게 사는 것이 참 좋다. 매 순간마다 나는 인생을 즐기면서 삽니다. 어떤 때는 너무 삶을 즐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기에 미안합니다. 너무 내가 삶을 즐기고 산다. 내 마음에 행복하기로 작정을 하고 내 생각에 언제나 기쁜 것을 언제나 갖다 심고 내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그리고 이것을 습관화시키고 나니까 이제는 자동적으로 무엇을 봐도 행복한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바라보고 나쁜 것이 오면 다 머리 속으로 지나가 버리고 좋은 것은 머리가 꽉잡아가지고서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마음과 몸과 생활을 치료하는 위대한 의약입니다. 마음의 기쁨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여러분 마음이 기쁜 사람 즉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 더욱 더 잘 생각할 수도 있고 일도 더 능률 있게 할 수 있으며 더 섬세히 느낄 수 있고 더 건강한 것입니다. 그 사실 그럴까? 여러분 심리학자 게일 텍크체이브란 사람이 오랜 시험결과에 과학적으로 증명했는데 그가 조사를 통해서 기록을 보면 사람이 행복할 때 시력이 더 잘 보이고 미각 맛을 잘 볼 수 있으며 귀가 더 잘 들리고 후각 냄새를 더 잘 맡으며 더 예리해져서 촉각의 판별력이 더 예리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만이 잘 보고 잘 듣고 잘 맛 보고 잘 냄새 맡고 그리고 촉각을 잘 느끼며 멋있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가렛트 고네스가 발표한 논문을 보니까 행복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 기억력이 크게 발전하고 또 마음에 평정을 갖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직장에서도 능률 있게 일할 수 있고 그리고 행복한 사람만이 끝까지 건강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 이러한 사회 이러한 국가는 행복으로 꽉 들어찰 때 비로소 세계는 참 평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쟁 대신에 평화를 미움 대신에 사랑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행복한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나라를 사랑하고 지도자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을 때 반항하고 부도덕하고 파괴적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이나 불평은 그 환경에 있지 아니하고 일에 있지 아니하고 여러분의 마음의 작정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행복하기로 마음에 작정하면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또 회개하고 성령께 의지해서 삶의 분명한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고 행복해지기로 마음에 결심해서 기쁨의 씨앗만 늘 심고 슬픔의 씨앗은 뽑아버리고 부정적인 환경에 노예가 되지 말고 늘 마음에 중심을 잡고 행복의 길을 걸어가며 이것을 반복해서 습관화하면 여러분은 1981년도를 진실로 대다수의 시간을 마음속에 기쁜 생각으로 가득 채워놓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해야 됩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가장 멋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성공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만이 진실로 참된 국민이요, 사회인이요, 세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주팔자로 오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떨어지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행복은 여러분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버지 불행하기 때문에 그들은 일에 능률도 생겨나지 아니하고 체력도 연약해지고 그래서 더욱 불행한 환경을 만들어 내고 맙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하오니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내마음의 작정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마음에 기쁨의 씨앗을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행한 사람이 오늘이 3부 예배 출석한 사람들 중에서는 한사람도 없게 만들어 주시옵시고, 모두다 주안에서 기뻐하고 또 기뻐하므로 행복이 강물같이 넘쳐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축복하고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