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마음의 평강

by 삶의언어 posted Oct 20,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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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마음/생각
예배드린 날 1989-07-30
오늘의 성구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 말씀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음의 평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이 환난을 당하고 보면 평안이 얼마나 좋은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우리 모든 민족들이 평안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학원이 소요스럽고 화염병이 난무하고 정치적으로 보수와 혁신이 대결해 서로 밀고 당기고 그런 가운데 북한 반군이라는 사람이 생겨서 그로 말미암아 정치적인 여러 가지 소요가 일어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마가 할퀴고 간곳에 태풍이 다가오고 이런 한국사회에 끊임없는 큼직큼직한 불안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모든 국민들이 ‘언제 평안이 다가올까? 사회적인 정치적인 환경적인 평화가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런 간절한 소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개인의 삶도 그래요.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도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으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오두막집에 못 먹고 살아도 마음에 평화가 있으면 이것이 훨씬 더 우리 영혼을 살찌게 하고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고 아침에 기지개 펴면서 편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이 요란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수 있다는 그 자체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런 평안은 돈을 주고 못삽니다. 부귀와 영화를 주고도 살수가 없어요. 권세를 주고도 이 평화를 살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절히 구할 것은 평화입니다. 마음에 평안, 이것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평안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철저히 회개하고 죄악을 버려 버려야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죄와 악이 있으면 마치 파도가 치고 바다물이 끓어오르면서 밑바닥에 있는 더러운 것을 끊임없이 위로 뿜어 올리듯 우리의 마음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대게 악인에게는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다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짓기 전에는 얼마나 좋았습니까? 죄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저녁 서늘할 때 손잡고서 동행했으니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에덴동산을 거닐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것입니까? 조금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도 없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대화하면서 에덴동산을 거닐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즉시로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뭐냐. 벌거벗은 것은 부끄러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앞에 범죄 하면 우리는 즉시 느끼는 것은 하나님 영광이 떠나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깊은 수치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양심이 벌거벗은 수치감을 느낍니다. 오늘날 여러분 벌거벗고 사람들 많은 곳에 나갈 수가 있습니까? 존경하는 사람 앞에 우리가 벌거벗고 나설 수가 없습니다. 또 더러운 옷을 입고도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 앞에나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이나 대중 앞에 나갈 때는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그리고 몸을 잘 치장하고 나가면 부끄러움이 없고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나면은 벌거벗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벌거벗게 돼요. 벌거벗을 만큼 죄를 안 지었으면 아주 더러운 옷을 입은 자와 같아 아주 양심이 더러워져요. 양심이 벌거벗든지 양심이 더러워지면 자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수치스럽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두려워 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어 수치스럽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래서 숨어버린 것처럼 우리가 범죄하고 나면은 양심에 벌거벗음, 양심의 더러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갈 수도 없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마음속에 평강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거역하고 범죄하고 난 다음에 마음에 평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 내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죄를 버려야 됩니다. 그냥 회개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입술로 그저 ‘내 죄 잘못했습니다. 죄 지었습니다.’ 회개만 해서 다시 그 죄 지으면 무슨 소용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고 성경은 개가 토했던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목욕하고 난 다음 수렁에 도로 들어가는 것과 한가지라 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회개하면 그 죄를 버려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그 죄를 짓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중대한 죄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치고 그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우상에 절하는 사람치고 그 마음속에 평안이 있을 턱이 없어요. 나무나 돌이나 금이나 은이나 이런 것으로 만든 우상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남편이 우상이 되든, 아내가 우상이 되든, 자식이 우상이 되든, 재물이 우상이 되든 우상 앞에 절하고는 그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난 다음에는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혹은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하나님 거룩하게 섬기라고 했는데 하나님 거룩하게 섬기지 않고서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는데 부모를 박대하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난 다음에 그가 마음에 평안이 있을 줄 알아요? 부모를 박대하고 난 다음에는 절대 그 마음속에 평화가 없습니다. 나는 어떤 선생 부부가 80이 넘은 자기 노모를 쫒아 내놓고 난 다음 우리 교회가 엘림 복지회에서 그 80노모를 모시지 않는다고 나를 보고서 사기꾼이니 엉터리 목사니 온갖 욕을 다해서 보낸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 부부는 지금 교직자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부부인데 자기 부부는 잘살면서 80 노모를 쫓아 내놓고 교회가 안 돌본다고 엉터리 교회니 조용기 목사는 사기꾼이라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강이 있겠습니까? 자기 부모를 내쫓고 난 다음 다른 사람이 자기 부모를 안 돌봐 준다고 사기꾼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그 마음속에 평강이 있겠습니까? 살인하고 평강이 있을 수가 있어요? 사람 죽여 놓고 난 다음에 자기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간음하고 난 다음에 자기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턱이 있어요? 마음속에 끊임없는 불안이 있을 것입니다. 남의 물건 도둑질 해놓고 난 다음 도둑놈이 자기 발 저린다고 도둑질하고 살면서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도둑질해서 남의 돈 아무리 많이 가지고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 다 가질지 몰라도 하루도 그것을 가지고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을 보고 자꾸 흉을 하고 남을 헐뜯고 남을 모욕하고 난 다음 자기 마음이 편안하나요? 절대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 잘되는 것 배가 아파서 그것을 늘 할퀴고 이웃을 탐해서 욕하고 그리고 난 다음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우리 마음속에 평화가 사라져요. 평화가 사라지면 다른 것 다 가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마음속에 참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철저히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심령이 씻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값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 죄를 씻어 달라고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다 씻어지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수 있도록 그렇게 될 때에 우리 마음속에 평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보혈로 씻음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어서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이러한 사람만이 그 마음속에 깊은 평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또한 마음속에 평화를 가지려면 우리 마음속에 탐욕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탐심이 꽉 들어차서 원망과 불평이 꽉 들어차면 절대로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분수에 맞게 분수대로 감사하면서 살게 되면 평화가 있지만 자기의 분수를 뛰어 넘어 탐욕이 마음속에 가득하면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원망이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은 굉장한 괴로움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자기 분수를 뛰어넘기 때문인 것입니다.
6.26사변 때 생활이 어려울 때 저는 부두에 노동을 하러 갔는데 제가 그때 15살인데 15살짜리는 부두에 노동을 안 시켜 줍니다. 저는 키가 컸기 때문에 18살로 거짓말로 속이고 15살짜리가 부두 노동에 들어갔습니다. 밤새도록 배에 올라가서 하역작업을 합니다. 추인감 그렇지 않으면 수류탄 여러 가지 탄약 이런 것들을 목도를 해서 하역을 하는데 자 나는 15살인데 18살이라고 자기의 분에 넘치는 거짓말을 해가지고서 들어가는데 3살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초저녁까지는 같이 목도를 하고 짐을 지고했는데 초저녁이 지나고 난 다음부터는 그 다음부터 짐을 지니까 짐 밑에 내가 가라앉는데 죽을 애를 써도 안돼요. 짐을 어깨에 짊어졌는데 무릎이 가라앉아 버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해도 하역을 할 수가 없어요. 지금도 제가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짐을 짊어지고 걸을 수가 없어서 주져 앉으니까 흑인 병사가 와가지고서 발길로 차고 그냥 그 큰 주먹으로 후리 때리는데 이 무릎은 안 일어나지 눈에 불은 얹어 맞아서 번쩍이지 정신이 왔다 갔다 하더라구요. 나는 그때 15살 차이에 18살하고 그 3살 차이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탐욕이 생겼습니다. 부두에 가서 노동하면 돈을 한꺼번에 많이 벌수 있다는 그 때문에 들어가서 그때 애를 먹은 것 평생에 잊어지지 않습니다. 15살짜리는 15살짜리로 살아야지요. 15살짜리가 18살짜리 행세를 하려다가 내가 그냥 혼이 났어요. 그때 느낀 것은 “야~ 뱁새가 황새 못 따라 가는구나” 그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 때 여러분, 자기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살아야지.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산다고 해서 탐욕을 가지고 살면 결코 평강도 잃어버리고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면 가룟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자기가 정치적인 권력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인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능력을 이용해 가지고서 로마 사람을 쫓아내고 자기가 정치적으로 대 성공을 해서 이스라엘을 독립 시키겠다는 그런 탐심의 목적으로 예수를 따라 왔었습니다.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진리를 깨달아서 주님을 섬기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돈궤를 맡았으면서도 돈궤에 돈을 자꾸 훔쳐 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구주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예언하자 그만 자기의 탐욕에 맞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분개했습니다. 예수님이 군중을 동원해서 로마를 내어 쫓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지 아니하고 인류의 구주가 되겠다는 말을 듣고 그만 자기 탐욕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는 분노해서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어 버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난 다음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그 마음에 불안 때문에 목메어 자살하고 만 것 입니다. 탐욕은 결과로 우리를 파멸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탐심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탐욕을 버리고 내 분수에 맞게끔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분수에 맞게끔 살면서 거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점점 발전되어 나가야지요. 욕심으로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에 겹게 욕심으로 빚을 내어서 집을 산다든지 빚을 내어서 욕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놓고 난 다음 도저히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나중에 그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염려와 근심을 당하고 결국에는 빈손 들고 나오게 되는 일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더 나은 내일을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현실에 있어서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심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탐심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은 사망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현실에 감사하면서 내가 열심히 일하면서 내일을 바라보아야지요. 탐심으로 인생을 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빼앗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내 뜻대로 할 때 마음에 불안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가라고 하는데 우리의 뜻은 이렇게 가겠다고 하면 하나님과 우리와 줄 당기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에 보면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 사울에게 명령하시기를 “나아가서 아말렉을 쳐서 멸하되 그 아말렉의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과 짐승과 그 짐승의 새끼까지 다 멸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을 쳐서 아멜렉 백성을 진멸하되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왕 아각을 잡아서 포로로 잡아오고 그 짐승들 중에서 살찐 양이나 염소나 소는 안 죽이고 그대로 끌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두 다 멸하라고 했는데 사울은 자기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짓밟아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 결과로 사무엘이 와서 말했습니다. “왕이여, 어찌하여 왕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나이까?” 그러니까 사울이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지켜서 저 아말렉을 진멸하고 왔습니다.”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데리고 온 이 아각은 무엇이며 저 뒤에 들려오는 염소와 양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 살찐 양과 염소들을 죽이지 말고 끌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자고 해서 내가 끌고 왔습니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럴 때 사무엘이 진노해서 말했습니다. “왕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은 수양의 기름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나은 것을 모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주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것은 우상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왕 됨이 상실되고 만 것 입니다. 사울이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왕권을 잃고 사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왕으로 앉겠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그 마음속에 고통과 괴로움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나중에 사울이 미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도 그 하나님의 뜻을 내 인간의 고집 때문에 짓밟아 버리고 나가면 절대로 마음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수주일 하라고 하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그날 놀러간다면 내가 세상일 하러 간다면 그 마음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라고 했는데 갑자기 집을 팔았다 땅을 팔았다 큰돈이 생겼다. 십일조의 액수가 커지니까 도저히 십일조 드리지 못하겠다. 그래서 눈감아 버리고 그냥 지나가지요. 아무리 내가 눈감아 버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눈감습니까? 그 결과로 마음속에 끝없는 갈등과 불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비참해지고 마음이 침울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하라.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 떨어진데도 불구하고 내가 바쁘다고 해서 그 심방도 안 해주고 기도도 안 해주면 하나님의 뜻을 내가 거역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로 내 마음속에 끝없이 불안해지고 불행해집니다.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우울해지고 슬픔이 꽉들어 찹니다. 그것은 왜냐, 내 뜻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 버리고 나면 그 마음속에 평강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평안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꽉 들어 찼을 때는 내가 혹시 하나님의 뜻을 짓밟아 버리고 내 뜻대로 살려고 나가지 않았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난 다음에 내 마음속에 평안하고 기쁨이 있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면 내 마음이 기뻐지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나면 내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마음속에 평강을 잃어버린 이유는 하나님께 일을 맡기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맡아 가지고서 내가 짊어지고 이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하면 여러분 한없는 마음속에 슬픔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이 세상에 적은 일은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지만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부부간의 갈등의 문제, 시어머니 며느리간의 갈등의 문제도 있고,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웃 간의 갈등도 있고, 사업도 있고, 자금문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굉장히 많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 내가 마음이 불안하지 않는데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서 내가 고심 참탄하고 괴로워 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다 사라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로 말했었습니다. 너 머릿속에서 걱정하라고 말하지 않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 네 짐을 야훼께 맡겨 버려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 짐에 눌려서 우리 마음속이 불안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요? 물론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가 맡기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먼저 죄를 회개해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탐욕을 저버려야 되겠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을 청산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앞에서 제가 말한 이런 조건을 다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와서 맡길 때는 기도를 해야 맡겨지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고 난 다음에 그냥 와서는 하나님은 절대로 맡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너희는 내게 부르 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길은 부르짖는 길인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도 잠시 엎드려서 몇마디 중언부언하고서 그치는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면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이 하나님께 맡겨지고 그 대신 이 마음속에 평화가 강물처럼 다가올 때까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맡겨질 때까지 1시간 기도해서 안 맡겨지거든 2시간 기도하십시오. 2시간 안되거든 3시간 기도하고 3시간 기도해도 안 맡겨지거든 철야기도 하십시오. 철야기도해도 안 맡겨지고 마음이 불안하거든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 하십시오. 그래서 내 마음에 무거운 염려와 근심의 짐이 내 마음에서 떠나서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질 때까지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맡겨지면 맡겨졌다는 증거로써 마음속에 평화가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강물처럼 넘칩니다. 염려와 근심은 다 머리 속에 그저 지식으로 남아 있고 내 가슴속에는 평화가 꽉 들어차서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고 선악 간에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마음속에 확신이 뱃속까지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고 난 다음에 마음에 평강을 가지고 할렐루야 하고 살아나가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신 말씀대로 희안 하게 일들이 합쳐서 잘 마무리 지어지고 선하게 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동행한다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동행할 때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하나님 앞에 손을 잡고 나갈 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속에 평강이 꽉들어 차서 찬송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이것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귀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을 얻기 위해서 오늘 제가 말씀한 이대로 실천하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꺼리끼는 하나님을 저항해서 지은 부끄러운 죄악이 있으면 이 죄악을 다 청산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질때까지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 속에 탐욕으로 일을 저지렀으면 탐심을 저버리고 자기의 분수를 따라 마음이 겸비하고 낮아져서 살고 분수를 따라 옷을 입고 분수를 따라 밥을 먹고 분수를 따라 집을 짓고 분수를 따라 생활하면은 마음속에 평강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분수를 뛰어 넘을 때 마음속에 교만이 다가오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고 불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짓밟아 버리는 이러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분명히 하나님 뜻인데도 불구하고 그 뜻을 알고도 내가 내 뜻대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 뜻을 거역해 버리면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마음속에 끝없는 불안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생활이 있으면 이것을 회개하고 자복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여러분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 맡겨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삶 전체를 무거운 짐 뿐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주님께 기도로써 내어 맡겨 버리고 우리 하나님은 매일 매일같이 여러분의 짐을 짊어지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지시는 자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짐을 매일같이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면 여러분 우리의 삶은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하고 기쁩니다. 그 기쁨이 있는 곳에 삶의 의욕이 생기고 믿음도 생기고 소망도 생기고 사랑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평안 속에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이런 사람이 영혼도 잘되고 범사도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도 정말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삽니다. 남 부럽지 않습니다. 남 잘먹고, 잘입고, 잘사는 것 조금도 부럽지 않아요.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구름기둥, 불기둥 같이 화끈 화끈한 저 화롯불같이 내 영혼 속에 임하여 계시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기쁨만 충만하고 영광이 충만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뿐 아니라 주님 오시는 그날에 당당하게 주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강 이것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어떠한 보화를 주고도 이와같은 평화를 살수가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평화는 진실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삶을 회개하고 저버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내 짐을 다 내어 맡겨 버리고 우리 영혼 속에 끝없는 평화가 다가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내 아버지 앞에 한주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내어서 이처럼 주님 앞에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주님을 섬기라고 했는데 아버지 일주일중 어느 날이든지 하루를 주님 섬기는 날로 우리가 내어서 하나님을 받들어야 되옵니다. 오늘 여기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날을 시간 내어서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받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복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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