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부자와 거지'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이 땅에 살았던 인물을 들어서 놀라운 사후의 세계에 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 도시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는 자색옷과 고은 베옷을 입고 밤낮으로 연락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문에는 거지가 아무것도없이 앉아서 그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는 전신에 병이 들어 있습니다. 개들도 와서 그 상처를 핥아주고 같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깐 예수님 말씀대로 거지가 죽어 장사되고, 부자도 죽어서 장례를 지내고 말았는데 이들이 그로써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거지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낙원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서 불꽃가운데 괴로워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안에 안겨서 낙원에서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라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케하여 주옵소서. 내가 이 불꽃가운데 번뇌하나이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는 말이 너는 세상에서 쾌락을 누렸고, 이 나사로는 고통을 당했다. 나사로는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고, 너는 그 고통가운데 있다. 그런데 너와 우리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 우리가 건너가지도 못하서, 그 곳에서 건너오지도 못한다. 그러니깐 이 부자가 또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러면 나사로를 보내셔서 우리 아버지 집에 가서 우리 형제 다섯에게 경고하여 나처럼 이 곳에 들어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니깐 아브라함이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는 모세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성경이 있으니까 성경을 가지고 믿으면 된다. 아니올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가면 그들이 믿을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가서 증거해도 믿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속에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위대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 부자와 거지와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것을 우리가 한번 알아보십시다.
이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고 했으니 그 당시에는 권세있는 사람만 자색 옷을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세마포를 입고 살았었으니 그는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권세가 있고, 돈이 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매일같이 술과 풍류와 여자들로써 그는 인생을 즐겼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생활을 가만히 보면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세상적이요, 외면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시적입니다. 화려한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그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기름진 음식을 먹고, 술과 풍류와 여자로 지내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집도 낡아지고, 옷도 썩어지고, 청춘도 다 썩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도 영원히 있을 것이 없습니다. 부자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모두다 세상적이요, 외면적이요, 일시적인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면적인 영적세계는 그렇게 가난한 거지일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도 몰랐고, 하나님의 믿음은 전혀 갖지 않은 속이 완전히 텅빈 지푸라기 허수아비와 같은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면에 우리가 거지 나사로를 보면은 나사로는 외면적인 세계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대문앞에 거적을 깔고, 거기 거적 위에 앉아서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배를 불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부스러기가 얼마나 많이 떨어지겠습니까? 항상 배고팠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주고 잠자리에 들어가 아침에 배고파 잠에서 깨었었습니다. 또 온 몸에는 헌대가 나서 상처 투성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퍽 인자한 것은 개들은 부자보다도 이 거지를 사랑했었습니다. 그래서 거지 곁에 개들이 같이 와 있었고, 상처를 핥아주었었습니다. 세속적으로 볼 때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가장 처참한 인간이었지만 그러나 내면적인 영적인 세계는 이 거지는 굉장한 부자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찬양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어가고, 찬양을 가지고 잠에서 깨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안에서 그는 의의와 평강과 희락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세상으로는 아무것도 갖고 있은 것이 없어도, 그의 마음에는 평화가 넘쳐흘렀고, 환하게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개들조차도 부자 곁에는 겁이 나서 안 가려 하지만은, 이 거지 곁에는 와서 함께 지내길 원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 외면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였지만은 내면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풍성한 부자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의 상황을 우리가 한번 살펴봅시다. 오늘날 세계는, 외적 세계는 날로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우리가 태어나서 어릴 때 자랄 때와 지금과의 비교를 해보면 말할 수 없이 풍성하게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 요사이 어린아이를 보십시오. 모두다 좋은 신발에, 이 좋은 책가방을 메고, 좋은 옷을 입고 학교를 다닙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이 뚜렷합니다. 제일 처음 해방되고 난 다음에 어머님께서 시장에 가서 고무신 한 켤레를 사다주는데 어찌 그 고무신이 좋든지, 그래서 그 고무신을 사람만 보면 신고, 가다가 사람만 없으면 벗어가지고서 탁탁탁 털어가지고서 옆구리에 끼고서 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고무신이 빨리 달을까 싶어서. 그런 우리의 옛날 시절을 비교하면 오늘날이야 얼마나 잘 삽니까? 사람들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려고 애를 쓰고, 더 좋은 옷, 더 유행에 빠른 옷을 입을려고 하고, 편리한 생활, 환경을 갖기를 원하며, 쾌락을 추구하고 삶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세계는 날로 날로 부유해지고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부자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다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적 세계는 어떻게 됩니까? 날로 황폐해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은 사라져가고, 마음속에 잠든 의의와 평강과 희락이 오늘날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미움과 불신과 시기와 분노와 질투가 꽉 들어차 있고, 불안과 공포와 좌절감과 죄책감과 삶의 무의미와 절망들이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학원가가 소요하고, 노사가 서로 대결하고, 정치. 사회가 혼란하고, 가정이 평안하지 못하고, 개인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손에는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생활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그럴까요? 외적인 부자가 반드시 내적인 평안과 기쁨을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초가 허약한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서 부딪치면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회도 겉만 부하고 속이 텅빈 상황이면 조만간 그는 반드시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의 폭풍우가 다가오고 창수가 나고 부딪치면 내적으로 의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는 사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는 사람, 내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서지 않는 사람은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성경에 기록한 부자와 같이 현실적인 세속적인 것만 가지고 있지, 내적이고 영적이며 영원한 것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지옥으로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심판으로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세계나 오늘 우리들은 진실로 우리가 내적으로 얼마나 텅빈 인간인가를 깨닫고, 회개하고 내적인 부자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외적인 세계는 영원히 계속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적 세계가 없는 사람은 외적 세계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너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란의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다음 주일이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편지를 냈는데, 갑자기 이라크 공군기의 공격을 받아서 순식간에 수많은 우리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누가 감히 꿈이나 꾸고 기대나 했겠습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무합니다. 모든 인생이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세계에 취해서 항상 이와같은 삶을 계속할 것이다. 남에게는 죽음이 다가올지라도 내게는 이와같은 현상이 결코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미혹이요, 착각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어느 순간에 어느 순간이고 이 외적이고, 육신적인 세계를 떠나가야할 사람들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한 이 교훈의 두 번째, 죽음에 관해서 우리한번 알아보십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죽습니다. 인간이 이룩한 문화도 역사도 과거라는 무덤에 파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들이 만든 문화도 살아온 역사도, 삶 자체도 반드시 심판을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부자가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자색 옷을 입고, 고은 베옷을 입고, 주지육림에 빠져 연락하면서, 오늘 또 오늘 또 오늘이 계속 될 줄 알았는데 성경이 말하기를, 세월이 흘러가매 그 부자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거창스런 상여를 만들고 수많은 조문객이 오고 이래서 파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어서 공동묘지에 그대로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곧장 사후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사후의 세계는 뭘까요? 그는 세상에만 부유하고 세상 것만 가지고 있었지, 영적으로 내적으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은 영적인 쓰레기더미인 지옥으로 떨어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음부에 내려갔었습니다. 음부라는 것은 장차 불과 유황으로 들어가기 전에 갇혀 있는 감옥인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갇히는 감옥인 음부에 들어갔었습니다. 음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 음부에 들어갔는데 그 인격과 감각과 기억과 인간관계도 거기에는 그대로 계속 되었습니다. 음부에서 그는 쳐다보니 저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과 그 품에 있는 나사로도 눈에 보였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야기하면서 귀에 다 음성이 들렸었습니다. 그는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부에 내려가도 인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감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억도 총명했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있었던 것을 다 기억했었습니다. 인간관계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세상에 가면은 우리 아버지 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다섯이 나와 같이 이 음부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육신의 옷을 입고 있을 따름이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겨울이 지나면 겨울옷을 벗어버리고, 봄옷으로 갈아입는데 옷을 갈아입었다고 사람이 달라집니까? 여름이 오면 봄옷 벗어버리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가을이 지나가면 또다시 겨울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옷은 아무리 갈아입어도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 육신의 옷을 벗어버린다고 해서 그 영혼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음부로 내려가도 똑같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음부에서 불꽃 중에 번뇌한다고 말했습니다. 음부에는 미움의 불꽃이 활활 타르고 있습니다. 공포의 불꽃이 휘황하게 타고 있습니다. 죄책의 불꽃은 끈이지않고 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절망의 불꽃이 온 천지에 활활 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부는 불꽃 천지입니다. 그곳에서 하루의 휴식도 없습니다. 소망은 전혀 없습니다. 사랑은 없습니다. 오직 절망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보면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그는 죽었을 때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앉아있던 거적에 둘둘 말아서 공동묘지에 던져버렸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천사들이 와서 그를 받들어서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 사람의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리자 그 속이 하늘나라로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보배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데리고 천국낙원으로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들어갔었습니다. 여러분 그는 그 속에 들어가서 모든 영화를 누렸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낙원에 가면은 그곳은 죄가 없습니다. 고독이 없습니다. 병이 없고, 배고픔이 없고, 추위가 없습니다. 저주가 없고, 이별이 없고, 미움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의의가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바로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이 낙원으로 들어가서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무수한 성도들과 천군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이 땅에 살 동안에 내가 속에 얼마나 부유했느냐, 부유하지 않았느냐 이것으로서 영원한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 한 사람도 버림받아 멸망 받지 않기 위해서 이천년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죄없이 동정녀 마리아 몸으로 태어났고, 이 땅에 오셔서 33년동안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시고 난 다음에 죄 있는 우리들을 속량하기 위해서 그가 친히 우리의 죄를, 불의를, 추악을,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짊어지고 자원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청산하셨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입니다.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저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어린양같이 광야의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감당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찢기고 고난당하고, 피를 흘리시므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악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 할 것 없이 청산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오늘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속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영생을 얻게되고, 성령이 그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말미암아 믿음 소망 사랑에서 자라고, 의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우리가 점점 성장하여 부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세상적으로 부유하면서 영적으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보다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현대 사회를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비유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자본주의 사회속에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많이 모으고, 부자가 되는 것이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마다 돈을 많이 모으고 부자가 될려고 생사를 걸어놓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돈과 이세상의 부귀를 천당까지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돈이나 부귀를 가지고 천국행 티켓을 살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부귀만 쫓아 살고,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등안히 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경고하기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부귀를 의지하고 현실에 묶여서 영원한 세계와 천국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오늘 제 설교를 듣고 계시는 여러분 중에서도 30년만 지난다면 이 곳의 대다수 사람들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모두다 한 세대는 지나가고, 다른 세대가 와서 이 자리를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살아있는 오늘이라는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의를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이 이야기 가운데서 기도에 대한 것을 알아보십시다.
인간은 누구든지 고난에 부딪치면 기도하게 됩니다. 자기가 건강하고 모든 것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큰소리 하지만은 고난에 부딪치면 그 주먹이 아무런 힘이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나사로가 거적에 앉아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항상 비웃었습니다. 아이고 저 주제에 기도는 무슨 기도냐? 이 부자는 밤낮 주지육림에 빠져서 연락하면서 나사로의 기도소리를 듣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도 기도할 날이 다가 왔었습니다. 그는 음부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음부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찟고, 피 흘린 것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회는 이 땅에 살 동안에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하면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건져주지만은 일단 이 땅을 떠나서 그 영혼이 이 몸을 떠나면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는 긍휼의 시기는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떠한 교파에서는 죽은 사람이라도 교회나 혹은 절간에 돈을 많이 갖다주고 기도를 하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조차도 내물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인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음부에 들어가서 그때야 비로소 고통가운데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아무리 고함을 쳐도 그를 불쌍히 여겨줄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살 동안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이 땅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부르짖어도 절대로 긍휼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가장 신랄한 비평과 심판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음부에서 부자가 기도한 소리는 응답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케 하소서. 여러분 음부가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물 한 방울을 간청했었습니다. 단지 물 한 방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하기를 뭐 지옥가면 지옥가지 까짓 것 하는데 그것은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음부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괴로운 곳입니다. 예수님 자체도 말하기를 음부는 불도 꺼지지 아니하고, 구데기도 죽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소금 치듯함을 당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를 보시고 유다야 차라리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부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닌데 나중에는 음부보다 더 지독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음부에 들어가서 너무 고통스러워 물 한 방울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고함쳤지만은 그 기도도 부인당하고 말았었습니다. 그 기도도 응답받지 않았었습니다. 세상에 살 동안에는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주시고, 은혜의 단비를 부어주시고, 온갖 은총을 주시지만은 일단 음부에 내려가고 난 다음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고통당해도 내 형제들은 고통당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래서 부탁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서 우리 아버지 집에 가서 우리 형제 다섯이 이곳에 들어오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음부에 들어간 죄인도 이 세상에 사는 형제를 생각했었습니다. 형제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만나고 나면 천당에 올라가서 부모형제를 몰라보면 어떻게 할꼬 그렇게 하는데, 여러분 음부에 내려간 사람도 형제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그는 내 형제를 위해서 나사로를 보내서 전도해서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성경이 있다, 모세는 율법이고, 선지자는 예언서고, 그 다음 복음서 합쳐서 이건 성경입니다. 세상에는 성경이 있다. 성경 말씀을 들어서 믿지 않은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가서 전도해도 그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기적과 이사를 체험해도 믿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여러분께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거대한 행복이요, 축복인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 나사로를 보내사 형제 다섯을 경고해서 이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도 거부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이 땅에 있을 동안에 하는 것입니다. 일단 음부에 내려가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천국 간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순교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이여, 이 땅에서 우리가 순교 당했으니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할 때, 흰옷을 주면서 하는 말이 잠시 동안만 더 기다려라. 너희 형제가 수가 차도록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간 우리 성도들도 기도합니다. 제가 가만히 목회생활을 하면서 체험하고 보니깐 희안합디다. 살아있을 동안에는 아무리 부모가 예수 믿으라고 자녀들에게 전도해도, 싱긋싱긋 웃고,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부모가 세상을 떠서 초상을 치르고 나면 그 뭐 아무런 반항없이 예수를 믿어요. 저가 30년 목회생활가운데 자식들이 아무리 완악하고 예수 안 믿다가도, 부모가 세상 뜨고 난 다음 초상 치고 난 다음 그 다음 주일에는 교회에 꼭 나온다고, 그 참 희안하다. 살아있을 때 예수 믿어가지고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했으면 좋을텐데, 꼭 부모가 죽고 난 다음에 나온단 말입니다. 그리고 또 부모들이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자식이 죽고 난 다음에는 교회 나와요. 그건 왜 그러냐, 이 세상을 떠난 부모나 형제나 처자가 천당에 올라가면 주님 직접 보좌앞에서 기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기도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도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하물며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같은 교회는 우리 교인들이 벌써 천당에 굉장히 많아요. 마 천당에서 단체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는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날에는 세상에서는 부하나,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가난한 영적 거지들에게는 가장 처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끝없는 행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서 부유하기를 원하되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 나라와 그 의의를 구하고 영적으로 부유해 지면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는데도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와 그 의의를 버리고 이 땅에서 아무리 부유해도 그것은 행복도 갖다주지 못한 텅 빈 허수아비 같은 인생을 살고 마지막에는 가장 처참한 부자와 같은 운명의 결과를 맺게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배를 띄워놓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는 점점 하류로, 하류로 흘러갑니다. 죽음이라는 곳을 향해서 흘러갑니다. 어떠한 사람도 이 운명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세상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쾌락이나 삶의 고통에 취해서 영원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간절히 기도하오니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세상에 취해서 믿다가 타락한 사람이 있으면 순식간에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순식간에 벼랑에서 한 발자국 잘못 디뎌 천길 만길 떨어지기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그의 생명이 하늘나라에 기록되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 돌보는 생명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