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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지혜가 부족하거든

by 삶의언어 posted Oct 21,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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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7-10-18
오늘의 성구 야고보서 1장 5절로 8절 말씀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라는 말씀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식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학교를 통해서 배울 수가 있고, 책을 읽어서 얻을 수가 있으며, 사물을 자세히 관찰해 봄으로 많은 지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지혜는 밝고 맑은 마음의 슬기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사물을 창조하며 발전시키는 능력이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정치, 경제, 군사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참으로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지 아니하면 안될 지경에 쳐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을 한다면 우리 조국의 내일은 걷잡을 수 없는 참담한 흑암 속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어떤 외신에서는 한국은 지금 일본과 같은 번영하는 국가로 가느냐, 필리핀처럼 암담한 처지로 떨어지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참으로 오늘날 지혜를 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밝고 맑은 슬기로 꽉 들어차서 인간의 감정으로 사물을 결정하지 않고, 또 지역적인 감정으로 어떠한 일을 결정하지 않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올바른 판단으로 우리가 결정을 내린다면 이 나라에 소망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이 '슬기로운 민족이 될 것이냐, 어리석은 민족이 될 것이냐, 지혜를 따라 모든 일을 판단할 것이냐, 감정과 편협된 마음으로 판단할 것이냐' 하는 이것이 우리 조국의 장래에 '광명이냐 흑암이냐, 사느냐 죽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 영광을 얻을 수 있느냐 수치 속에 떨어지느냐'의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구해야 할 때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밝고 맑은 마음의 슬기인 지혜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훼를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11편 10절에는 '야훼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야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야훼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며 의를 사랑하는 것이 야훼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은 죄하고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든지 그 독생자 예수를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 하시고, 그 예수께 모든 인류의 죄를 다 대신 담당시켜서 십자가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악을 그 아들 예수님께 담당시켜서 심판하실 때 인정 사정을 보지 아니하시고 얼마나 처참하게 심판하시든지, 그 아들이라도 야훼 하나님께 외쳐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통곡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죄가 바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분리시켜 놓고 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죄악 가운데서 살고 있다면 그는 야훼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죄를 따가라는 사람을 하나님은 영적으로 간음한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죄를 미워하고 죄를 지었으면 쉴새없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버립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은 언제나 다시 복구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은 의가 되십니다. 우리가 의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묵상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의를 사랑하게 되면 야훼를 경외하게 됩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야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시편 19편 7절에 보면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야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훼의 율법이란 것은 바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야훼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 우리의 영혼이 왕성하여 소성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영양분 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의 육체가 힘을 얻고 왕성해 지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어서 우리 영혼을 소성케하고 야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머리가 둔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는 사람이라도 이 야훼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확실히 깨달아 알고 이 말씀대로 실천하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99절에서 100절에 보면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의 증거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묵상할 때 그 말씀이 우리에게 명철을 주셔서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보다도 더 지혜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법도인 이 말씀을 지키면 우리 명철이 점점 더하여져서 우리보다 나이 많고 오래 산 노인보다도 우리가 더 지혜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의 말씀은 다윗의 말에 내 발의 등이 되며 내 길에 빛이 되신다고 말한 것처럼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철을 얻어서 결코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경청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지혜를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살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 탐심은 어리석음의 근본입니다.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오면 인간은 눈이 어두워지고 지혜가 캄캄해져서 자기의 죽을 곳을 서슴치 않고 걸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다.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지혜롭게 지음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마귀의 꾀임을 받아 그들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탐심이 들어오자 그만 눈이 어두워지고 마는, 지혜가 절벽같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죽을 길을 버젓이 알면서도 하나님을 반역하고 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12제자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명철한 제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금전을 맡겼었습니다. 원래 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금전을 맡기지 않습니까? 그런 가룟 유다가 기대를 져버리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판 것은 거의가 탐욕 때문에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정치적인 탐욕, 권력의 탐욕, 돈에 대한 탐욕이 들어오자 그만 그 시야가 얼마나 어두워졌던지 그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팔아먹고 나중에는 그 죄책감으로 자기도 목매어 자살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성경에 우상 숭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다가 앗수리아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탐욕을 가지면 우상 숭배하는 것이라서 지혜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우리는 탐심을 마음 속에서 버리고 자기 분수를 알아서 분수대로 살 때 야훼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10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야훼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야훼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인간적인 계획을 세우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일을 이루어 놓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내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을 찾고, 야훼 하나님께 의지하고, 야훼 하나님께 맡기면, 야훼 하나님의 지혜가 오셔서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심으로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인간 삶의 경쟁은 지혜의 경쟁입니다. 지혜가 많은 자가 지혜 없는 자보다 앞서며, 지혜 있는 민족이 지혜 없는 민족보다 앞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은을 구하지 말고, 금을 구하지 말며 지혜를 간절히 구해야 될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은 우리 지혜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에 야훼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 이것은 바로 여러분께서 지혜의 근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로 8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믿는 사람이 죄 없게 행동하고 살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지혜가 없느냐'하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담대하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으며,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으며,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게 된다고 하신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지혜를 후하게 주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하며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경쟁 생활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다른 것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를 구하고 귀를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생활의 문제 해결을 구했지만 하나님 앞에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십시오. 지혜가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다른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3장 4절로 15절에 보면 솔로몬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 다윗의 보위를 이어서 왕이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브온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드렸었습니다. 그가 번제 일천 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자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물었습니다. "솔로몬이여,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 솔로몬은 다른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백성들의 송사를 올바르게 분별하게 해 달라고 구했었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께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열왕기상 3장 10절로 13절에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혜를 구하니까 부도 따라오고 영광도 함께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난 다음 그는 왕위에 앉아서 송사를 참으로 지혜롭게 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와서 솔로몬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이 두 여인은 다 창녀인데 한 집, 한 방에서 생활했었습니다. 한 여인이 어린 아기를 낳은 다음에 삼일 후에 또 다른 여인이 어린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린 아기를 품에 품고 자는데 한 여인은 잠자리가 사나워서 그만 어린 아기를 덮어서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깨어보니 자기 아기가 죽은지라 죽은 아기를 자기 옆에 있는 여자의 품에 안겨놓고 옆에 있는 사내 아기를 자기가 품에 안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여인이 밤에 아기에게 젖을 주려고 깨어나서 보니 아기가 죽은지라 아침에 깨어나서 자세히 보니 자기 아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 아기 도로 내놓으라고 하니까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두 여인이 어린 아기 하나를 데리고 솔로몬에게 심판을 받으러 왔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심판입니다. 그럴 때 두 여인이 어린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고함을 칩니다. 솔로몬은 부하에게 말했습니다. "큰 칼을 가져와서 이 두여인이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기니 아기를 반을 잘라 공평하게 나누어 주라!" 그렇게 하니 아기의 참어머니는 가슴이 불타는 것 같아서 솔로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이 아기는 내 아기가 아닙니다. 내가 잘못 말했습니다. 나는 이 아기를 포기합니다. 이 아기를 칼로 자르지 말아주소서" 그런데 참어미가 아닌 여인은 "참 명 판단입니다. 나누소서. 어린 아기를 반으로 나누어서 저 어미에게 반을 주고 저에게 반을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부하에게 하는 말이 "자기 아기가 아니라고 이를 살려달라고 하는 이 여인이 참 어미다. 그러므로 이 아기를 그 어미에게 주라"고 말했습니다. 이래서 이와 같은 명 판단을 함으로 그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나타나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고 그가 지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매 나라가 평안하고 또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까 점점 더 축복이 임하여서 부도 따라오고 영광도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간절히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지혜를 넘치게 주시는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명기 34장 9절에 보면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보십시오. 안수 받고 성령 충만하니 그 성령이 바로 지혜의 신이었습니다. 지혜의 신이 오니 그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따라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여기에 보면 바로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느냐 하면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을 주시면 이러한 사람을 누가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와 같은 실례가 사도행전 6장 8절로 10절에 보면 스데반에게 나타났었습니다.『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능력과 모략의 신으로 충만해서 그 큰 지혜로 변론하니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이 도저히 대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은 성령으로 충만함 받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 받으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십시오. 원래 문명의 발상지는 동방입니다.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 문명과 문화가 일어났고 인도의 인더스, 갠지스강 유역에서 문화가 일어났었습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이 일어났고, 애굽의 나일강 유역에서 문명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므로 저 중동이나 근동이나 극동에서 문화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문화가 발상하지 않은 구라파가 온 세계 문명을 주도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구라파로 건너갔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로 복음이 전파되지 아니하고 구라파에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라파인 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매 저들이 우리 아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소위 말하는 근대화나 근대 문명이 구라파에서 오게 된 이유가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얻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을 갖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우리보다 앞서서 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문제, 항해에 대한 문제, 과학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기하학적인 문제들을 이 동양 사람들보다 탁월하게 앞서서 해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를 믿는 백성이 머리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다는 약속 말씀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제가 한국에 소망이 있다는 것은 한국이 이제 우리 동포의 30퍼센트 가까운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지혜와 총명의 신인 성령이 와 계시므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나가면, 이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이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과학적으로, 교육면에서, 문화면에서 탁월한 새로운 지혜의 계시를 통하여 발명과 발견과 창조와 발전이 우리 민족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놓으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놓으면 열 자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의 신을 이 민족에게 부어 주시므로, 머리되고 꼬리 되지 아니하는 기적적인 역사가 미래의 역사 속에 창조될 것은 고정된 사실인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역사와 경험을 통하여 지혜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동서 고금을 통하여 역사와 경험에 의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민족이나 개인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혜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고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 민족이 지금 당면해서 배워야 될 것은 아르젠친과 월남에서 배워야할 역사적인 지혜인 것입니다. 아르젠친을 보십시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르젠친은 선진국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형편없이 가난할 때 아르젠친은 벌써 일본보다 훨씬 앞서서 2차 대전 직후에 선진국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르젠친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진국 문턱에서 어련히 당하는 격렬한 노사 분쟁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노사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서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질서가 없으니까 군대가 일어나서 입김을 강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에 페론 대통령이 군대를 억압하고 자기가 권력을 쥐기 위해서 그만 노사 분쟁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일수의 임금을 40%에서 50%로 올려 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느 기업체라도 임금을 일수에 40%에서 50%로 올리고 난 다음에 그 기업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페론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노동자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만 그 나라의 경제는 곤두박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급격한 인플레와 수출 경쟁력 상실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파탄이 되었었습니다. 그러자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구름 떼 같이 생겨나니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페론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는 군사 쿠데타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일어났었습니다. 1000%, 2000%의 인플레가 생겨나면서, 그래서 결과 경제 정치의 파탄 국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한국보다 더 뒤진 후진국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한국은 이 아르젠친의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선진국에 들어가기 전에 노사 분쟁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노임을 올려버리면 결국 경제적인 파탄이 다가오고 모두가 거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기에 경영자나 노동자들이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수를 넘어서 요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실력을 뛰어 넘어서 임금을 높인다든지 또 임금을 안 준다든지 이렇게 해서 분쟁이 계속되면 나라는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이익이 생기면 그 열매를 기업주들은 노동자들과 공평하게 나눠야 될 것이요, 노동자들은 분수를 뛰어넘어 경제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임금을 높여 달라고 아우성 침으로 말미암아 아르젠친처럼 임금을 올려놓고 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플레사태 속에 들어가고 나라가 망해버리는 비극 속에 들어가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월남 사태에서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우리 세대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월남은 월맹이나 베트콩보다 군대도 많고, 탱크도 많았으며, 야포도 많았고, 비행기도 많았으며, 군사 물자도 월등하게 많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대일로 대결하면 월남이 이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월남은 정치적으로 불안했습니다. 계속해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정치적으로 불안했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부패했었습니다. 계속된 학생과 승려와 카톨릭 신부가 중심이 된 반정부 데모는 날이 갈수록 격화됐습니다.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집니다. 이러니 사회가 혼란하고 정신적으로 사람들이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 지하 조직이 확산해서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 유언비어를 유포했습니다. 공산당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잘한 점은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도 못된 것, 안 되는 것, 부정적인 것만 끌어내서 이것을 방송하고 매스컴에 나타내고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국민들로 하여금 완전히 서로 불신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공산당이란 상호간에 불신하게 만들고 상호간에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공산당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지하 조직이 확산되어서 부정적인 면을 자꾸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정부는 민간을, 민간은 정부를 완전히 불신하게 되고 국민 상호간에 서로 불신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그 결과로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서 결과, 일시적으로 국가가 붕괴되고 싸움한번 해보지 못하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월남 백성들이 어떻게 됐나요? 공산화 된 그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그리워해서 어선을 타고 남지나에 뛰어 들어갔다가 형언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상어 떼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떠돌아다니다가 상선에 발견된 사람은 혹은 한국에 와서도 수용이 되고, 일본에서도 수용이 되고, 혹은 외국에도 가 있지만은 그러나 사람 대우를 받습니까? 나라가 없는 민족이 어디 가서 인간 대우를 받고 사람 대우를 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철저히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불안을 가져오는 어떠한 요소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우리 사회에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서 그 온상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학생과 승려나 카톨릭 신부나 신교 교역자들이나 일반 군중이나 계속해서 반정 데모를 해서 사회 혼란을 가져오는 이러한 일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월남에서 교훈을 배워야 됩니다. 공산당은 이런 것을 이용해서 지하 조직을 확산해서 언제든지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여 불신을 조장하고 서로 대결하고 반모하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총 한번 쏘지 않고 자기가 제압해서 나라가 망쳐버리고 모든 사람이 노예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우리 지혜를 배우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어리석은 민족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상에서 지혜를 배우고, 우리는 그러한 올무에 빠지지 말고, 그러한 벼랑에 떨어지지 말고 거기를 피해서 가는 지혜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험은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의 지혜를 멸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세상에 살면서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므로 말미암아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은 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산전수전 겪은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역사는 단정된 것이 아닙니다. 너는 네 시대에 살고, 나는 내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살던 그 지혜를 현재도 받아들여서 우리가 살게되면 수많은 슬픔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세대는 무조건 세대 차이가 있다고 해서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노인들의 말을 거짓화 해버리고, '우리가 제일이다. 우리만 잘한다.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이와 같은 단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를 져버리고 어리석음을 자초해서 파멸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학교가 있습니까? 학교에는 이미 오래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후세에 가르치는 것이 학교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의 지혜를 멸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노인의 지혜와 젊은이의 왕성한 실천력이 합칠 때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생활에 얼마나 지혜가 부족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오늘 정치 세계 속에도 지혜가 부족합니다. 오늘 경제 세계도 지혜가 부족합니다. 오늘 사회 생활에도 지혜가 부족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몸부림치고 애를 써도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금을 구하지 말고, 은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있는 곳에는 은도 따라오고, 금도 따라오고, 부귀와 영화도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일심으로 지혜를 구하십시다. 그래서 다가오는 삶의 모든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위대한 개인과 조국의 삶을 우리는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같이 '하나님이여 내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내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건강 모든 문제를 지혜로써 해결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구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모든 구하는 자에게 후하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를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고, 지혜를 간구 함으로 지혜를 얻고, 역사와 경험에서 지혜를 배움으로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지혜 없는 개인은 이 생존 경쟁에서 망합니다. 지혜 없는 민족은 역사상 지혜 있는 민족에게 짓밟힙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시점에 대한민국 국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해방된 이후 42년 만에 민주화, 자유화 뿐 아니라 경제적인 대도약과 약진을 할 시기에 도달했으며 국가적으로도 올림픽을 통하여 전 세계 가운데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때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런데 만약 이 민족이 어리석게 행동한다면 이 귀한 처지에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 일천만 성도 뿐 아니라 우리 4천만 동포가 모두다 하나님 앞에 지혜를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진실로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으로,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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