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증인과 증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거짓말, 허위, 유언비어, 헛소문, 무고와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증인이 확실한 증거 없이 소문을 낸다든지 떠돌아다니는 말을 확실한 것인 양 말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근거에 서서 말을 해야 그 말이 거짓이 안되고 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무엇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 하신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33년을 사셨고 그 마지막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가지시고 복음을 증거하실 때 기사와 이적과 표적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고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낱낱이 청산하시기 위해서 자진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시어 몸 찢고 피 흘리셔서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오순절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장차 하늘에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영원한 구주가 되심을 우리는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언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증언될 때 우리의 말하는 것이 참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지어내서 이야기하는지, 소설을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이 흔들리지 않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위에 선 것일 때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믿고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믿음 속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실한 신빙성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가 증언하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을 실질적인 능력으로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증언에 대한 확실한 증거의 제시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있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제자들이 나가서 두루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증거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개인 신앙과 전도하는 신앙은 모두 증명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증거하는 죄사함과 중생은 개인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사실은 지어서,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이 참되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개개인의 가슴속에 증명되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 그리고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우리의 죄를 청산하면 우리는 거듭나는 위대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스승인 니고데모가 하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만일 하나님이 선생과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면 이와 같은 많은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에 니고데모는 깜짝 놀라 '선생님, 저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입니다. 제가 어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겠다'고 말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바람이 임의대로 불되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나니 이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거듭난다는 것이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이 위대한 체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그 어린아이의 탄생에 대해 온 이웃이 모두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거듭난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적으로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태어나자마자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며 말씀을 즐겁게 읽게 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며 교회오기를 즐거워하는 생활의 큰 변화가 다가오게 됩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증거를 체험하지 않고 형식적, 의식적,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이 체험의 깊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조그만 시험과 환난의 바람이 다가오면 그 신앙이 송두리째 뽑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깊은 뿌리를 가진 사람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 속에 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증명된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마귀의 참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중생의 체험을 마음 깊이 한 사람은 대외적으로도 분명한 열매로써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슬퍼하던 사람이 기뻐하게 되고 절망했던 사람이 소망을 가지게 되고 늘 화를 냈던 사람의 마음이 너그럽게 되며 술과 담배를 즐겨했던 사람들이 이를 끊게 되고 세상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했던 사람이 그 길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또 거짓말하던 사람이 참말을 하게 되고 도둑질했던 사람이 도둑질하지 않게 되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외적 변화의 증거를 바라보고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예수님께서 저 사람 속에 들어오셨다, 저 사람은 진실로 변화를 받았다고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사함과 중생을 증거 할 때 반드시 내적, 외적인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헛되게 되지 않고 그 증거가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한 체험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생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며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며 능력을 주시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잘 알지만 그러나 성령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불확실성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령이 우리 속에 넘쳐와서 우리를 통하여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흔들릴 수 없는 증거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120 문도가 예루살렘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열흘 동안 일심으로 기도한 후 오순절 날이 되매 갑자기 강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였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쫓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속에서 성령이 넘쳐 나와 우리의 혀와 입술을 붙잡아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실 때 우리 속에 성령께서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너는 성령으로 충만함 받지 아니하였다. 성령이 같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도 마귀의 말은 거짓이요,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방언을 통해서 보고 듣고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 오랫동안 방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무지하고 몽매하며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제 배속에서 성령께서 생수와 같이 솟아 나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 증거가 얼마나 분명하고 뚜렷한지 '나는 무능력하고 무력하나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계시므로 내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능력을 얻어서 복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에서 넘쳐나게 됩니다. 증거가 있을 때 마귀는 참소할 수 없고 우리는 확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 있을 때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일본 여성이 예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통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그 방언을 자신이 지어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방언이 쉽게 나와서 '내가 이것을 지어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또 마귀가 와서 '이 방언은 네가 지어서 하는 것이다'라고 참소 했습니다. 겁이 난 그 여인은 방언을 하다 말다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아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와서 '이 방언은 네가 지어서 하는 것이다'고 참소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동생과 사업 관계로 전화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동생은 이태리어를 잘 하는 동생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동생과 전화하는데 그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가 중지하려 했으나 방언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동생이 '누나가 미쳤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은 '누나 지금 무슨 말을 한 줄 아세요? 제가 오늘 큰 기적을 보았습니다. 누님이 지금 분명하고 똑똑한 이태리어로 '동생아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하셨다 네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으며 믿지 아니하면 정죄를 받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님은 이태리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법, 발음도 틀리지 않고 그렇게 정확한 이태리어를 말합니까?' 그래서 그 여인의 동생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은 자기가 지어서 하는 방언이 아니라 성령이 자기 속에 계셔서 자신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고 신앙적으로 의기양양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증거가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확고해져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은 치료의 복음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의 복음사역의 3분의 1을 병 고치는 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12제자와 70인의 제자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복음을 증거하신 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치료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복음을 증거할 때 그 증거의 표적으로서 우리 가운데 귀신이 쫓겨나가고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더라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표적이 나타나야 예수님께서 진실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고 많은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기쁨이 충만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육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빌립이 증거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성령으로 나타나셔서 귀신을 쫓나내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를 고치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 것을 뚜렷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룻다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룻다에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에 걸려 8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룻다의 침상에 가서 기도하여 가로되 '애니아야 나사렛 예수께서 너를 고쳐주시니 일어나서 침상을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즉시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이 애니아는 8년 간 누워있던 침상에서 일어나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이일이 일어나자 룻다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입으로 증거된 말이 실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떼를 지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또한 욥바에 갔을 때 도르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과부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도르가가 죽자 이 사람들이 그를 씻기고 다락방에 뉘어놓고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베드로가 오자 도르가가 생전에 만들어 준 옷들을 보이면서 과부들이 울며 도르가를 살려달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다락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므로 그는 담대하게 '도르가여 일어나라' 하매 그 여인이 눈을 떴습니다. 베드로가 그 손을 잡고 일으켜서 사람들에게 데리고 나오니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도르가를 보고 예수께서 함께 계심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증거를 통해 증명되매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두말하지 않고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복음에는 반드시 증거가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치료의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정말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다는 것이 치료의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만일 증명되지 아니하면 사람들은 의심할 수 있습니다. 마귀들도 참소하여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이 거짓되고 지어낸 헛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의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날 때 불신자들과 마귀들도 입을 다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나 교회는 단호하게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증거하는 복음이 위대한 능력으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우리들이 아브라함의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생활 속에 증명되어야 합니다. 첫 아담은 우리의 조상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영이 죽은 채로, 육신도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가 사는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났고 그는 저주를 받아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들은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나고 그들의 육신들은 이미 죽음의 날을 기약하고 살았으며 그들의 삶 자체도 저주와 곤고와 가난과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 아담이 지은 모든 죄를 다 지시고 모든 사망을 책임지셨습니다. 저주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위해서 형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 아담이 가져온 하나님을 반역한 죄와 영적, 육적인 죽음과 저주와 절망을 한꺼번에 자신이 안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못 박혀 하나님 앞에서 죽으심으로 이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 주님은 처음 아담 속에서 빚진 것을 깨끗이 청산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신 것처럼 옛 아담의 삶은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낭패와 실망과 절망과 처참한 가난에서 해방을 얻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넘치도록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낭패와 실패의 삶에서 성취와 성공의 삶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을 점령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 저주에 사로잡히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헐벗음과 굶주림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고 말하면 누가 우리를 믿어주겠습니까?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은 즉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흩어 나누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이 우리 생활 가운데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협하지 말고 단호한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자요 저주에서 해방을 얻은 자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복음 증거하실 때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을 주셨으니 이는 나로 하여금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그리스도의 복을 받아 수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명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복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이 땅의 삶은 행인과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전셋집 삶입니다. 이 전세의 기한이 차면 우리는 이 몸을 버리고 떠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이제 또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을 쫓아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있는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중 재림입니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을 공중으로 영접해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하고 이 땅에는 7년 동안 심판과 환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7년이 지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과 함께 이 땅에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잡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고 마귀를 잡아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시고 이 땅에 천년 왕국을 건설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이런 말을 하면 그것은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의 증거하는 이 말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 재료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언제가 마지막 때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나무에 싹이 나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처럼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내가 가까이 와서 문 밖에 와 선 줄을 알라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70년만에 로마의 디도 대장에 의해 공격을 받아 망했습니다. 그래서 온 천하에 흩어져서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유랑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제건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마지막 때가 되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서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은 독립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돋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세계의 시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주님은 마지막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잔에 다 이루리라"고 하셨는데 레위기에 보면 한 세대를 50년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지 약 40년이 가까웠으므로 이 세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은 지금이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말세가 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다니엘은 더욱 위대한 증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금, 가슴은 은, 허리는 동이요 다리는 철, 열 발가락은 철과 흙이 섞여 있는 신상이었는데 사람의 손으로 띄어지지 아니한 돌이 하늘로부터 날아와서 이 우상을 때리매 우상이 가루가 되어 천지에 흩어졌습니다. 이 꿈을 다니엘이 계시를 받아 해몽해 주었습니다. 황금의 머리는 바벨론이요, 은의 가슴은 메데와 파사요, 허리는 헬라요, 철의 두 다리는 로마, 그리고 로마의 판도에서 역사의 마지막에 열 발가락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열 나라가 서로 합쳐서 옛 로마의 판도에 정립할 것이고 그때 그리스도가 강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의 12개국이 EC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1958년 로마조약을 통해서 EC가 설립되었습니다. 유럽을 살리기 위해서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12월 31일자로 유럽공동기구는 각 나라의 합의를 거쳐 1992년에 유럽을 정치적으로 통합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럽은 2천 6백여 전에 다니엘이 환상가운데 본 것처럼 거대한 하나의 연방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지중해에서 열 뿔을 가진 큰 짐승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뿔 가운데 작은 뿔 하나가 나와서 뿔 셋을 뿌리 채 뽑은 후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참람한 말을 하고 세 때 반 동안 세상을 다스리나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이를 심판하시고 나라를 성도들에게 내어주시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장차 유럽은 10개국으로 통합될 것이고 그 통합된 유럽에 한 사람의 작은 뿔, 위대한 지도자가 생겨서 세 나라를 송두리째 뽑아 단일 국가로 통합시키고 그리고 강대한 정치, 경제, 군사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 세계를 호령하며 하나님 없는 세계를 건설하려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강림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처치하고 천년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예언이 우리 앞에 현재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2천 6백여 년 전에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한 것입니다. 이 예언이 우리 눈앞에서 역사적으로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볼 때 이 예언이 참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에게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말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는 증언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허위와 거짓이라 공격을 받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확실한 증언은 위대한 힘을 가집니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증거가 없는 허위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셨고 우리를 위해 기적을 행하셨으며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셨고 이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중생으로, 성령충만으로 증명되었고 치료와 귀신 쫓아냄으로 증명되었으며,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음으로 증명되었고, 재림에 대한 여러 가지 수많은 예언들의 성취로 우리 현실 속에서 증명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들의 구주가 되심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들은 영원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죄악과 무의미와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삶의 가치요, 우리의 부활이요, 영원한 기쁨이 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육신과 안목의 자랑, 세상 자랑에 취하여 여기에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원하고 기도하오니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여 주셔서 저들도 다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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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증인과 증거
by 삶의언어 posted Oct 18, 2024 Views 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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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성령/성령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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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7-09-27 |
오늘의 성구 | 사도행전 1장 6절로 8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MQ16iY_pLQg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