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낮은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기가 인정받고 싶고 대우를 받으며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거나 멸시를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집니다. 그 대신에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군에 있을 때 고급장교로 있었는데 제대하고 난 다음에 사회에 나와서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마음속에 무수한 정신적인 갈등을 가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군 고급장교로 있을 때는 명령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 또 군대사회에서 상당한 존경과 인정을 받았는데 사회에 들어와 보니까 그와 같은 인정도 해 주지 아니하고 존경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심각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회사에 간부회의가 있는데 그 간부회의에서 자기가 회사 일에 대한 보고를 했는데 직속 상사로부터 굉장한 면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마음속에 굉장한 충격이 다가 왔습니다. '나는 이래봐도 얼마 전까지 군대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장교였는데 나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무시하고 짓밟느냐? 내가 이 회사를 그만 두어야겠다.' 그러한 정신적인 굉장한 고통가운데서 그는 교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지금 누구냐? 너는 지금 군인이 아니라 이미 군복을 벗은 민간인이다. 군인생활은 이미 과거의 일이고 너는 현재 민간사회 속에 들어와서 민간의 사회의 한 조직원으로써 살고 있는데 네가 오늘 너의 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면박을 받은 것은 현재 너의 위치에서는 마땅한 일이다. 너는 이 이상의 높은 사람도 아니고 이 이상의 낮은 사람도 아니다. 네 자신을 알라 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 그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이 꾸중을 듣자마자 큰 깨달음이 그에게 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누구냐? 나는 지금 군인이 아니지 않나 나는 지금 사회인이 아니냐 이미 계급장을 다 벗었지 않느냐 사회의 계급 속에 들어갔으면 거기에 내가 적응해 살아야지 내가 뭐가 높다고 야단이냐 나는 보잘 것 없는 사회의 한 멤버가 아니냐'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난 다음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을 회개하고 자기 마음을 낮추자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기뻐지고 밉던 그 상사도 미워지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게 되더라는 간증을 제게 해 주었었습니다.
나는 그 간증을 듣고 난 다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고 그런 체험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우리 성도가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에 심방을 갔습니다. 병원의 높은 층에 있어서 심방 가서 안수해 드리고 난 다음 나오는데 환자 면회시간에는 굉장히 분비고 엘리베이터가 꽉 들어찹니다. 이래서 11층에서 내려오려니까 엘리베이터가 꽉꽉 차기 때문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가 내려와야겠다 싶어서 11층에 엘리베이터가 서기에 보니 엘리베이터가 비었습니다. 제가 그 안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아가씨가 나를 딱 정색하고 쳐다보고는 '내려가요' 그럽니다. 그래서 '아 엘리베이터가 비었으니까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그러니까 '내려가라니까' 아 내가 나이를 봐도 자기 아버지뻘인데 이거 반말을 탁 합니다. 그런데 나 혼자 갔으면 또 몰라도 장로님을 모시고 갔으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고 올라갔다가 내려오자'고 그러니까 '내려 가라니까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분노가 솟구쳐 올라옵니다. 자기 아버지 같은 사람을 그래도 목사를 보고 내려가라니 이런 고약한 놈이 어디 있느냐? 당장 자기 상사를 만나서 항의를 해야 되겠다. 이를 내가 가만 둘소냐? 그런 마음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걸 꾹 누르고 그 다음 엘리베이터가 도로 내려오기에 탔는데 그 아가씨 뒤에 서 있는데 자꾸 주먹이...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올라 옵니다. 그래 제가 그날 교회로 돌아왔는데 하루종일 마음이 우울해요. 그런데 오후 기도시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왜 마음이 우울하냐? 네 생각에는 네가 그 엘리베이터 소녀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보기에는 천만에다. 너나 그나 단 인간임에 불과하다. 인간인 이상 네가 그보다 잘났다고 해서 그에게 대접을 못 받았다고 해서 분노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우습다. 또 그뿐 아니라 그 소녀는 자기가 할 일을 마땅히 하고 있다. 상사가 올라가는 사람은 태우지 말라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봉에 하루종일 그 수많은 환자들과 손님들에게 시달리다 보니까 신경이 곤두서지 아니할 수가 없다. 오히려 네가 이해해야될 처지에 있는 사람이 네가 화를 내면 될 수 있느냐? 네가 무엇이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느냐? 나이가 많이 먹으면 높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목사니까 높다고 생각하느냐? 한 인간이면 두 사람이 다 똑같은 것이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니까 너무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만 나이 먹었다는 마음 그렇지 않으면 목사라는 마음의 높아진 것을 끌어내려서 낮추고 나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요. 미운 생각 다 없어지고 오히려 죄를 회개하고 그 소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평안이 넘치는 것을 체험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높은 데 마음을 두게 되면 늘 오해를 받고 오해당하고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낮은 데 두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어요. 좀 욕을 얻어 먹고 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도 낮은 데 마음을 둔 사람은 이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을 체험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이처럼 깨어지고 낮아진 인간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 완악하고 교만한 사람을 주님은 찾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라도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깨뜨리고 낮은 마음을 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상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고 마음이 깨어지지 아니하고 완악하며 마귀의 성품을 닮아서 교만한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부딪치고 미워하고 살상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깨어지고 낮아진 사람을 사용하고 또 하나님이 축복해 주려고 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그를 깨뜨리고 낮은 마음을 품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처음 자신만만하고 고집 세고 자존심이 심히 강한 사람이었었습니다. 자기의 구복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기 자존심 때문에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해서 시집을 보내더라도 그 대가로써 먹고살겠다는 이만한 사람이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보통인물이 아니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5년의 세월동안 많은 시련을 통하여 깨어지고 낮아져서 나중 그 나이 100세 이후에는 그 마음이 얼마나 깨어졌든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고 절대 신앙을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의 제물로 드리라고 말할 때 그는 한마디 하나님께 반항도 하지 아니하고 '왜 그렇게 하십니까?' 질문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완전히 겸비하고 낮아져서 절대 순종, 절대 신앙으로 그 아들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었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고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서 복위에 복을 주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삭도 그렇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손에 끌려서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단번에 죽을 뻔 당했었습니다. 그는 자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만 그는 장작더미 위에 눕히어서 아버지의 시퍼런 칼날이 그의 앞에 번쩍일 때 그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인생이란 별수 없는 존재로구나. 그래서 이삭은 순식간에 그 마음이 깨어지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삭은 한평생을 통해서 별 풍파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지 않았었습니다. 야곱은 교활하고 오만하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으로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외아저씨도 속이고 수없이 사기 치고 사기를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20여년의 세월동안 외아저씨 집에서 머슴살이하면서 갖은 고초와 괴로움을 겪는 중에 많이 깨어졌었습니다. 나이 약40이 넘어서 고향산천을 찾아올 때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듣자 오금이 녹아졌습니다. 간담이 서늘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새도록 얍복나루터에서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집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천사가 그 환도뼈를 치매 그는 환도뼈가 어그러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형이 그를 잡으러 올 때 그는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완전히 깨어져 버리고 완전히 먼지와 티끌처럼 겸손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자기를 죽이러 오는 형님을 향해서 걸어나갔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셔서 형의 마음이 감동되어 오히려 죽이려던 동생을 얼싸안고 눈물로써 환영하고 죽이려고 데려온 군대들을 도리어 그 동생을 호위하는 군대로 변화시키고 만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도덕적으로 흠 잡을 수 없는 깨끗한 청년이었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편애로 말미암아 행실이 없고 고집이 세고, 자만심이 강한 청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용하기 전에 그를 섭리하셔서 17세에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종으로 팔렸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의 종살이는 뼈를 깍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 오해를 받아서 시위대 감방에 갇혔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그는 17세에 팔려간 그가 잔뼈가 다 굵도록 나이 30세가 되도록 13년동안 갖은 고초와 멸시와 괴로움을 당했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을 깨어지고 완전히 낮아지고 순복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께서 30세에 그를 일으켜서 애굽을 살리는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애굽 바로의 딸의 왕자로 문무를 겸비한 고집 센 대장부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당당하고 자신있을 때는 하나님이 그로 실패하게 해서 쫓겨나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목동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오직 작열하는 태양과 불어오는 바람과 모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40년을 울고서 지낸 결과 그는 깨어질 대로 깨어지고 낮아질 대로 낮아졌습니다. 모세의 마음속의 모든 욕심은 다 제껴 졌습니다. 그는 아무 욕심도 없는 깨어지고 순수하게 낮아진 사람이 될 때 나이 80에 하나님께서 호렙산 가시넝쿨에서 나타나서 그를 부르셔서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정치가로 만들어서 애굽에 보내어 이스라엘 300만을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보게 될 때라도 얼마나 하나님께서 깨뜨리고 겸비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자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내실 필요가 있었을 때 예수님은 두말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보좌를 떠나시고 하나님의 위치를 떠나시고 모든 영광을 다 버리시고 그는 유대땅 나사렛의 한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가장 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비웃을 받는 동네에서 한 처녀의 몸에 성령의 잉태되어 그가 태어날 때는 베들레헴에서 여관에 들 집이 없어 짐승의 우리에서 퇴비 냄새가 나는 곳,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태어나서 누울 자리가 없어 말구유에 짚을 요로 삼고 누웠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도 가장 비참하게 낮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이 30이 될 때까지 그의 양아버지 요셉을 도와서 목수의 일을 했습니다. 손에 모두다 못이 박히도록 그는 목수의 일을 하면서 지냈었습니다. 30에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광야에 가서 40주40야를 금식하시고 나오셔서 그가 3년 반동안 복음을 전파할 때도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새교인이나 사두개교인이나 귀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았었으며 여우도 굴이 있고 산새도 들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노숙과 걸식을 하시면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이 처절하게 깨어지고 겸비하게 낮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나중에 조롱과 채찍에 맞으시고 인류를 대신해서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를 걸머졌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를 보고 말하기를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어졌을 뿐 아니라 낮아지고 아버지의 뜻을 쫓아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죽음, 나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깨어지시고 낮아지셔서 절대 순종, 절대 신앙으로 나갔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아들에게 감동하셨던지 빌립보서 2장 9절-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히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승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이 깨어지고 겸손하게 낮아질 때 그때 하나님께서는 오셔서 그러한 사람을 들어서 높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로 "너희 마음속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모인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의 가장 중대한 점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는 삶을 사신 예수님이 얼마나 낮아졌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그로 말미암아 불평 한 마디 하지 아니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은 우리 마음속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마음을 두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마음을 낮추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실상을 알아보면 우리가 누구를 불구하고 자기 마음을 높은 데 눌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치고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요. 이 땅에서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살아도 일생은 지나고 나면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밖에 없고 우리의 청춘은 신속히 늙어서 불과 얼마 살지 아니하여 북망산천에서 귀인이나 천인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인간의 실상을 살펴보면 인간이 높은 데 마음을 둘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종종 자기가 태어난 가문, 자기가 배운 학문, 자기의 사회적인 위치, 이런 것 때문에 높은 데 마음을 둘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선생 같은 사람은 좋은 가문에 태어났고, 훌륭한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그리고 머리가 좋았었습니다. 훌륭한 종교가였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가 높은 데 마음을 둘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끊임없이 그에게 고통을 당하게 했었습니다.
여러분 높은 데 마음을 두면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기 위해서 고통을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이 가시가 뽑혀나기 위해서 3번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약할 때 내가 강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가시로 말미암아 깨어져서 겸비하게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선생을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없는 시험과 환난이 왜 다가오는 지 압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높은 데 마음을 두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를 낮추어서 깨어셔 축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고통의 가시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 가시가 여러분과 나를 찔러서 우리를 깨뜨리고 겸비한 데 마음을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난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겸비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한국사회가 지금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이 다가온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족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낮추기 위해서 가시를 보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가 잘난 체 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와 같은 정치적인 불안의 가시를 보내어서 지도자나 우리 국민전체가 하나님 앞에 낮아지도록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가 낮아져서 깨어진다면 그래서 나라를 이끄는 정치가들이나 지도자들이나 우리 국민들이 모두다 깨어져서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대회와 화해를 통해서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하늘문을 열고 우리에게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어지는 과정으로써 이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우리 모든 국민들이 마음속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저도 한 면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나 다른 면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깨어지게 만들어 주신다면 우리가 이 기회에 우리 국민 전체가 하나님 앞에 깨어진다면, 여당도 깨어지고 야당도 깨어지고 정치권력자, 지도자들이 깨어진다면 이것이 장차 우리 역사 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하는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기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깨어지는 기회를 삼아야 될 것이요. 누가 잘 했다 누가 못했다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처지에 있지 말고 서로서로 엎드려서 회개하고 깨어지는 기회로 삼아야 되실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종의 마음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3-45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내가 섬김을 받으려고 할 때 원망과 불평이 생겨나지 내가 종의 자리에 서게 되면 만인을 섬기려고 하게 되면 우리는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없을 것입니다. 전력을 기울여 섬기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아들인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남을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절실히 배워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가장이 "나는 이 가정에서 가장이다. 나는 섬김을 받아야 한다. 아내여 나를 섬겨라 자식들아 나를 섬겨라"할 때 이 사람은 폭군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을 남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자식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되고 자기가 섬김을 받으려고 하니까 늘 마음속에 불만족하고 불평하고 원망이 꽉 들어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깨어져서 내가 이 가정에 가장이기 때문에 이 가정에 머리이기 때문에 으뜸을 되고자 한다면 섬기라고 했었음으로 열심을 다하여 아내를 섬기고 자식들은 섬겨주고 종의 태도를 취하면 온 가족이 감화감동해서 그 부인이나 자식들이 받들어서 그로 하여금 훌륭한 아버지요 훌륭한 가장이요 가정의 리더로 삼아줄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지 섬기려고 할 때 그 사람은 진실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현실적이 이러한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치, 권력자들이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국민을 주인으로 삼아서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국민 위에 주재해서 국민들을 부리려고 하고 국민들을 다스리려고 할 때 반발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공산주의와 달라서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바로 국민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을 섬기기 위해서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러한 혼돈이 어디에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대통령 중심제이든 내각책임제이든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정치자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기를 원하면 그대로 하고 국민들이 대통령 중심제를 원하면 그대로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무엇이 그리 어렵습니까 마음만 비우고 종의 태도로써 국민을 섬긴다는 마음에서 보게 되면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소리는 이 이상 더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기회에 제가 간절히 우리 정부 당국자나 야당이나 여당이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마음을 비웠다고 말만 하지 말고 진실로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삼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다하는 종의 태도를 취하고 섬기는 자의 태도를 취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라디오 TV에서 야당과 여당이 서로 여러 가지 조건으로 만나지 못하고 우리의 아들, 딸들이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정치적인 동기와 목적 때문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만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가슴이 아프기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오직 국민을 주인으로 삼고 섬기려고 하는 자를 지도자로 삼고 받드는 우리들이 되야 될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문제가 결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있는 힘을 다 해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될 것은 희생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불의한 일을 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불의를 대신 짊어지고 변명하지 아니하고 그는 잠잠하게 십자가에 올라가서 남의 죄 때문에 매를 맞고 남의 불의 때문에 얻어맞고 남의 저주 때문에 저주받고 남의 죽음 때문에 그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없이 높여주신 것입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말하고 자기의 짐은 벗어버리고 남에게 짐을 덮어씌우고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의 구복만 채우고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는 이 이기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면 이러한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국가는 하나님께서 한없이 높여주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의 짐을 짊어지는 희생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당은 야당의 짐을 짊어져 주고 야당은 여당의 짐을 짊어져 주고 국민의 정부의 짐을 짊어져 주고 또 정부는 국민의 짐을 짊어져 주며 서로서로 불쌍히 여겨서 협조한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자기의 욕심만 채워서 어찌하던지 국민이야 죽던 살던 나는 여당만 해야 되겠다 나는 야당만 해야 되겠다 한다면 국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문제의 해결은 간단한 것입니다. 여당은 야당될 각오만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여당으로 남아있겠다고 하니까 문제이지 내가 선거에서 지면 우리는 손 털털 털며 야당도 해 보겠다고 한다면 허심탄회하게 무엇을 못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야당은 진실로 국민을 위한다면 오늘 이 어려운 시점에 나는 어떠한 조건이 있어야만 대화를 하겠다고 끝까지 발을 버티고 달려드는 이 추잡하고 아니꼬운 짓을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청년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누구를 못 만나겠어요? 하루 속히 만나가지고 대화를 해서 국민을 살려야지 이러한 희생적인 마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졌다면 문제를 왜 해결하지 못 하겠어요?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내려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땅에서 한 국민으로 같이 살면서 지도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짐을 짊어지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이제 우리 국민들도 우리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으니 옛날보다도 생활도 나아지고 정치 의식도 발전되었습니다. 옛날과 같이 마음대로 권모술수로써 적당하게 이끌어 나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미 국민들이 말을 안 하고 앉아 있어도 지도자들이 무엇을 하는가 그 속까지 다 들여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제 진실성이 없는 정치는 절대로 우리 국민을 이끌어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진실해야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그러므로 저는 우리의 정부 지도자들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하고 국민을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권력에 연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5천년의 역사 앞에서 4천만 동포와 이북의 2천만 동포의 복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이러한 사람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껍질을 벗겨서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고 자기의 생활을 살찌게 하려는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은 오늘날 우리 정치 일선에서 물러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국민들이 의식이 발전되고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위치를 잘 지킨다면 이러한 지도자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한 대로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었으니 우리는 모두다 국민 전체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높은데 두지 말고 낮은데 마음을 두며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종의 마음으로 섬기려고 하고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가 나가서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겠다는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은 이러한 개인이나 가정, 이러한 사회나 국가를 하늘문을 열고 한없이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손을 잡고 조국과 인류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처지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높이시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사회, 그러한 국민을 가진 국가는 높아지기 마련이요 온 세계에 추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어렵고 곤혹스러운 때에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모든 국민 전체가 회개하는 기회를 삼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고 손가락질하지 말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모두가 낮아지고 모두다 종의 마음을 품고 모두다 남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조국과 민족을 어깨에 걸머지고 나가는 이 시점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너희 속에 이 마음을 품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조국과 민족의 미래에 서광이 비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