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과 함께 희생과 보상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세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천국 가기 위해서 믿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란 것은 단순히 현세에서 영적인, 정신적인, 그리고 윤리와 도덕적인 관계는 있으되 실제적인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복음 증거란 것은 천국 적인 복음 뿐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에서 우리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현세에서 주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현세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마귀에 묶인 자를 놓여나게 해 주셨으며, 현세에서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현세에서 배고픈 자를 먹여주었으며,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복음은 현실적인 우리 삶의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갖고 계시고 관계를 가지고 있고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생활 가운데 어떠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나와 복음을 위해서 그 집이나 부모나 처자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그리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복음과 현실적인 삶에 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통하여 배워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여기 말씀한 것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하여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 사람의 관심을 끄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펴보면 신문지상에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현실적인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우리 관심을 끌고있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정치적인 사건, 국제적인 사건, 또 전쟁과 전쟁소문의 사건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끊임없이 끌어가고 있으며, 세계적인 지도자, 또 국내적인 지도자들의 말이 우리들의 관심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여기에 가장 우리가 관심을 끌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달해 줬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 인지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사회적인, 경제적인, 국제적인 일이란 것은 하루가 없이 달라지고, 하루가 없이 일어났다가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무덤 속에 이러한 것들은 하나도 없이 다 장사 지낸바 되고 영원히 남을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현세뿐 아니라 영세토록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무서운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을 버리고 돈을 버리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한 자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그 것이 현세와 영원한 내세에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리스도가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삶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오늘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도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어 버리고 꽃은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이것으로서 인생은 종착역에 도착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릴 때 우리는 영원히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광이냐, 수치냐, 영생이냐, 영멸이냐, 영원한 소망이냐, 영원한 절망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보다더 중요한일이 없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해서 무관심한 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통탄스러운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하나의 몸에 붙이고 다니는 장신구와 같은 액세서리로 취급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는 다고 하지마는 그것은 자기 본의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목적이나 자기의 유익의 달성을 위해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진실히 마음을 다해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몸에 달고 있는 장신구나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귀걸이나, 손목걸이나, 발목걸이나, 그렇지 않으면 핸드백이나. 이와 같이 자기 몸에 달고 있는 장신구처럼 필요하면 붙이고, 필요 없으면 떼 놓는 이런 식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는데, 여러분 그 나라를 어떻게 구하며, 그 의를 어떻게 구합니까? 하늘나라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안이 하고는 하늘나라는 우리의 곁에 올 수도 없고 우리의 속에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란 사형 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십자가를 통해서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천국을, 십자가를 통해서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십자가를 통해서 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가면은 우리에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는 나에 대해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에서 사는 형틀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 육신생활, 내 인본주의적인, 내 욕심중심에서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깨어져 버리고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며, 세상을 따라가던 세속적인 삶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장사지낸바 되고, 하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생활 태도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태도의 변화 없이는 천국은 우리 속에도 임하지 아니하고 우리도 천국을 누릴 수 가없는 것입니다. 그저 종교만 받아들였다고 해서 여러분과 내가 천국에 이른다고 칭하면 안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가 있고,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고 예수가 살아나고, 세상이 죽고 천국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내 중심의 생활에서 예수님과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세상을 쫓는 생활에서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삶으로 전신의 변화가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나라와 그 의를 십자가를 통해서 그 나라를 구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 그 의를 구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거짓말하고, 여전히 살인하고, 여전히 간음하고, 여전히 도적질하고, 여전히 시기하고, 여전히 사람을 못살게 구는 이러한 생활을 한 다면은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임하고 우리가 천국에 산 다면은 우리의 삶의 태도와 생활에 의를 추구하는 삶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말하면은 거짓말을 그쳐야 될 것이고, 살인을 그쳐야 될 것이고, 간음을 그쳐야 될 것이고, 도적질을 그쳐야 될 것이고, 남을 모의하는 것을 그쳐야 될 것입니다. 물론, 한술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회개하며 노력하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나라를 우리가 추구하며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근원적인 태도가 올바르게 되면 여러분과 내가 부르짖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우리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이 축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되고 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사는 형식만 취하고 있지 진실로 십자가를 통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내 뒤에 있는 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저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과 나에게 다고 오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 땅에 임하여있고, 또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서 천국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윤리적인, 도덕적인 훈련도 아닙니다. 의식적인, 형식적인 것도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죽음의 형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천국을 가져왔고,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육신의 삶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서므로, 세상 중심의 삶에서 죽고 하늘나라를 찾는 중심으로 돌아서므로, 이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천국이 우리 속에 임하고, 우리가 천국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래서 우리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의로운 삶을 살게되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이세상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은 세상사람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비밀한 처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해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진실하고 올바른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이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준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우리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장차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상을 백배나 받을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집이라도 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 신앙의 신실함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신앙이란 그저 내 중심으로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내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하다가 내게 안 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러한 엉터리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내 현실 속에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라도 조금도 거리낌없이 내어놓는 희생이 있어야 그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참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참사랑이란 내가 받는 것만 참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사랑을 주게될 때 그 다음 사랑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필요가 충족하게 되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으로서 먼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의 씨앗을 심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집을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절실히 알고 있습니다. 1969년도에 하나님께서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에 나가서 만 명을 수용하는 있는 교회를 짖고 천하만국에 선교사를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때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그때 만여 명이 되었지만은 가난하기가 말로 다할 수가 없고 우리교회 돈이라고는 백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억이 드는 이 거대한 사역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야로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시여, 할만한 사람을 택해서 명령하소서.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네게 무엇이 있느냐?'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었습니다. '네 뒤에 숨긴 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아버지 하나님 이것은 내 집 한 채 있는 것, 이것은 안 돼요.' 명천동에 집 한 채 있었습니다. 제가 갓 결혼해서 그때 집 한 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여의도에 나가서 만 명을 수용하는 교회를 지으려면은 네 집부터 먼저 내놓아라. 네 집부터 먼저 심어라.' 그것은 굉장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이 집은 내 개인 집이 아니고 우리 집사람하고 공동 소유입니다. 내 마음대로 못 내놓아요.' '잔소리말고 내놓아라.' 그래서 내가 지금도 기억합니다. 우리 집사람에게 그 말을 내놓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 날 과자 한 봉지하고 스카프를 사 가지고서 와서 과자 주고, 스카프 주고, 기분 좋을 때, 여보. 그 집문서 좀 내놓으라고 하니까, 왜냐고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니까, 이 집은 당신 집뿐 아니라 나와 장차 태어날 우리 애들의 집인데 어떻게 당신 마음대로 이 집을 주냐고 하는 것입니다. 보니 태도가 단호해요.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들으셨지요. 내가 내 마음대로 못한다고 안 그랬습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 집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집문서 나오도록 해야지 별도리 있습니까?' 그런데 그 날 잠을 자는데 우리 집사람이 잠을 못 자더군요. 자꾸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기에 내가 속으로 '하나님 자꾸 꼬집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꼬집어야지 사람 힘으로 되나요. 나의 힘으로는 못해요.' 그랬더니 아침에 우리 집사람이 아무래도 하나님이 집을 드리라고 하는 것 같다면서 집문서를 내게 내 줍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집문서 가지고 와서 하나님 제단 위에 얹어놓고 나니까 그때부터 하늘에서 믿음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집 한 채 그때 바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백배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교회가 설립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백배가 아니라 수천 배, 수만 배를 주신 것입니다. 그때 내게는 쓰라린 것 같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그것을 심자 하나님께서는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돌려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께서 말씀하시면 오늘날 우리 참 신앙 인은 언제나 자기 것을 희생할 줄 알아야 그것이 참 신앙인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가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해서 예수 믿으려면 우리집안에서 나가라고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와 자매를 취할 것이냐? 그리스도를 취할 것이냐? 형제와 자매는 내 골육 친척이기 때문에 가깝지만은 그러나 혈육이라도 내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타협을 해야만 할 것 같으면 단호하게 형제나 자매를 하나님 앞에 내어 맡겨버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나올 수 있는 희생이 있어야 그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부모가 반대한다면, 부모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겠습니까? 인도의 성자 사도 산데싱 같은 사람은 예수를 믿게 되자 그 부모가 재산을 다 주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시키고 네가 원하는 것 다 줄 테니 네가 예수를 버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산데싱은 나는 죽더라도 예수를 믿겠다고 하니까 나중에 부모님이 그가 집에서 나갈 때 점심을 싸주었는데 그 점심에 독을 넣었습니다. 자식이 예수 믿는 것이 집안에 얼마나 큰 수치라고 생각했기에 부모가 예수 믿을 바에는 죽으라고 했었습니다. 그는 독이 든 점심을 먹고 피를 토하고 쓰러 졌었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서 살아나서 세계적인 성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복음은 부모와도 타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식도 복음에 걸림돌이 되면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택해야지 자식을 택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란 것은 천륜의 사랑이지 만은 그러나 자식의 사랑이라도 그리스도이상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이삭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외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몹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타협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제물로 올렸습니다. 그가 칼을 들어 자식을 막 잡으려고 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아 네 자식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 네가 외독자까지 아끼지 아니한 것을 볼 때 네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알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집을 심거나 형제나, 자매를,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주의 사업을 위해 심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백배를 갚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인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배고플 때 어린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지 않고 예수님이 원한대로 내어주어 심으니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먹이고난 다음에 바로 광야 그 자리에서 그 소년에게 열두 바구니를 돌려 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물질로 심는 자를 천국에서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써 백배나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핍박을 겸하여 받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측근에서 핍박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집을 바치면 주위의 형제, 자매들이 핍박할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하나님께 내어놓으면,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택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의 욕심대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탐욕을 취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온 세계 만물을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날 우리가 와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것을 희생으로 심으면은 그것을 기와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백배나 찾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마귀는 순한 사람을 충동하여서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참으로 참된 신앙이란 자아를 희생해서 하늘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먼저 심는 삶을 사는 사람이 참된 신앙 인이요. 그렇게 심을 때 여러분과 나는 담대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모든 삶에 축복을 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 할 수 있는 믿음의 담력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크게 축복하시기 전에 크게 심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거대한 희생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희생의 씨앗을 심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인 것입니다. 어떠한 농부도 심지 않고 거두기를 기대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의 생활도 먼저 희생적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백배나 갚아 주는 역사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그리스도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그 해결의 비결을 보여주는 위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백배나 축복을 받을 수가 있고 핍박을 받는 삶을 살게될 때 주님이
셋째로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내세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단호한 결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을 때 영생은 확정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심으셨습니다. 그 외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이 땅에 심으셨습니다. 그 몸을 찢으시고 그 피를 다 흘리게 하시고 그 속 사람을 쏟아서 이 땅에 심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외독자 예수를 심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아들을 얻으셨습니까? 수십 억의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 아들 하나 심어서 수십 억의 아들들을 하나님이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진실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짜 신앙은 절대로 자신에게 손해나는 것은 안 합니다. 가짜 신앙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습니다. 가짜 신앙은 십자가 없는 천국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십자가를 통해서 임하여 있고 여러분과 나도 천국에 십자가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이요, 세상 중심에서 하늘나라 중심으로 돌아서는 거대한 변역의 장소가 바로 저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내 집을 희생할 줄 알고 내 형제도 희생할 줄 알며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라도 희생할 줄 알면 이 사람을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 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거짓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신앙인 들이 입술로 주여, 주여 하나 천국에 올라가 보면 천국에는 그 이름도 없고, 천국에는 그 집도 없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이란 십자가 없는 신앙입니다. 이기주의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액세서리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입에 달면 받아들이고 입에 쓰면 내어버리는 이와 같은 탐욕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잘 믿는 것 같이 열심을 내지 만은 이것은 증권시장에 가서 증권의 오르고 내림을 보고 열심을 내는 것과 같이 예수 믿어서 내 육신 적인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을 내는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러한 신앙은 비바람이 불던지 풍랑이 다가오면 다 포기하고 달아날 신앙인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은 내가 십자가 밑에서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그러한 삶의 자세에 거대한 변화가 있을 때,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 땅에서 축복을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영생을 얻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필연적으로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 영원히 거할 처소가 없습니다. 잠시 왔다가 지나가는 안개와 같은 인생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육신의 장막 집은 언제 벗어버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요번에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한국의 기상이 나빠서 비행기가 굉장히 요동을 해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나는 하나님의 종이니 충분히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다녔으니 괜찮은데 나와 같이 선교여행을 따라온 우리 하장로나 오집사님이 같이 타고 있는데 비행기가 떨어지면 저분들 내가 함께 데리고 가면 안되겠는데....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시여 비행기를 잘 지켜주셔서 나는 언제가도 좋은데 그러나 나와 같이 있는 장로님이나 집사님 내가 데리고 안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제가 항상 비행기 여행을 하니까 비행기가 항상 떨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유고슬라비아에서 비행기가 떨어져서 사람들이 몰살했습니다. 언제 안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떨어져서도 죽을 때가 오면 죽고, 침상에서 자다가도 잘못해서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고, 길을 건너가다가 길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거대한 잘못인 것입니다. 나는 일본에서 우리 교회에서 이틀동안 복음말씀을 증거할 동안에 슬프디 슬픈 상황을 보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연수를 나간 한 가족인데 일본에서 연수를 마치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올 시간이 왔는데 그 집의 아이가 길을 건너가다가 트럭에 치여서 죽었습니다. 한국사람이고 며칠후면 한국으로 돌아 와야하는데 그만 트럭에 치여서 자식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에 연수간 것이 얼마나 한이 맺히겠습니까? 그 슬픔이 하늘에 쌓였습니다. 사람은 한 번나서 죽습니다. 어릴 때 죽기도 하고, 젊을 때 죽기도 하고, 장년에 죽기도 하고, 늙어서 죽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진실한 신앙 가운데 있으면 이 육신의 천막집이 언제 벗어버릴지 모르지마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일렀으리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땅위의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안이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는 안다고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잃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약한 몸이 강한 몸이 되고, 육의 몸이 신령한 몸이 되고,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이 되어서 영원토록 우주를 상속으로 받아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 말하는 동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이날이 우리 눈앞에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지구의 역사의 종말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종지부를 찍지 않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종지부를 찍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 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날이 여러분과 나에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삶을 얻는다는 것은 그 보다더 놀라운 은총과 축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먼저 예수 믿어도 십자가를 통하지 안이하면 이 사람은 나중 되고, 아무리 처음 믿더라도 처음부터 깨어져서 자아중심에서 그리스도중심으로, 세상중심에서 하늘나라 중심으로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면 이 사람은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먼저 믿어도 자기가 깨어지지 아니하고 그저 신앙이라는 것이 겨우 바늘구멍만큼 뚫어져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면은 이것은 나중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총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우리자신을 심는 삶을 사십시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나와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부모나, 형제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으며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겠다고 하신 주님이시여,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진실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말고 십자가를 통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가는 변화가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에 살면서 믿음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늘 시행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입술로만 주를 사랑한다고 하지말고 우리 행위로서 희생적으로 심고 거두는 신앙생활을 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영육간에 백배로 축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시고, 또 핍박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핍박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핍박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이 시간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거나, 믿다가 타락한 사람이 있으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때가 늦기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믿고 헌신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김으로 영원한 삶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람은 지혜로우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짐승같이 멸망하지 말고 영생을 얻는 자리에 들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