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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by 삶의언어 posted Sep 25,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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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우리 희재가 애지중지하던 개가 그만 죽었습니다. 개가 죽고 난 다음에 희재가 어찌나 마음에 안되게 여기고, 그 심령이 상하게 한 것을 제가 보고 저도 대단히 마음이 안되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희재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개도 혼이 있습니까?" "혼이 있고 말고.." "그럼 개는 죽으면 혼이 어디로 갑니까?" "개는 죽으면 혼이 없어진다. 개의 혼이란 육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육이 죽으면 육에 붙은 혼은 함께 흙이 되어 버리고,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개는 죽으면 아무 것도 없어진다." "그럼, 사람은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이다. 그래서 사람의 혼은 영에 붙어있기 때문에 영혼이다. 사람은 죽으면 육은 흙으로 변하지만, 영혼은 영원히 산다." 제가 그런 해석을 해 주었었습니다. 동물과 인간이 근원적으로 다른 점은 동물에게는 영이 없고, 인간은 그 자체가 영입니다. 영이 마음을 데리고 우리 몸 속에 살고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인간이 갖고있는 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물세계는 윤리니, 도덕이니.. 이런 것들이 전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양심을 통한 윤리와 도덕이 주어졌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육체 속에 죄악의 부패성도 동시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벌써 그 자체가 운명적으로 자아분열의 고통을 겪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천사처럼 살고싶어하는 양심의 간절한 호소가 있어서 어찌하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 천사처럼 되고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음과, 정 반대에서 또한 육체 속에 든 죄악은 인간을 악마처럼 타락하고, 죄악의 노예가 되게 하였고, 끌어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중간에서 천사도 되지 못하고, 악마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적인 혹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도 바울의 탄식은 바로 그러한 탄식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저의 설교를 듣고 계신 여러분 중에서 이와 같은 크고 작은 탄식을 여러분의 생애 속에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 다 이 자아분열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부르짖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해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간은 이 세상에 대개 3종류의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양심이 육신을 지배하며, 율법을 쫓아 사는 그러한 사람도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극히 소수이지만 그는 도덕적 양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누르고, 다스리고, 그리고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의롭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말씀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의로운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래도 자기 딴에는 양심을 따라 살고, 윤리와 도덕적으로 살아오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죄인이 아니다. 나는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의 적은, 의로운 도덕적인 행위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비극적인 존재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도덕적인 양심과 육신 사이를 방황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한동안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사는가하면, 그 다음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에 끌려가서 죄악의 주지육림 속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자기 속에서 인격적인 분열 속에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고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알기 때문에 쉽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할 때, 그는 예수 안에서 구원이 있는 줄을 알고 손을 내밀어서 그 구원의 밧줄을 잡고 신앙 속에 들어오는 체험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대개 오늘 예수 믿고 나오는 사람은 이런 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완전히 여기에 버림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도덕적인 양심을 져버린 동물과 같이 되고, 악마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그 마음속에 탐욕만 있을 뿐 의와, 진리와, 사랑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냐?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히틀러 같은 사람, 수많은 동족을 살해한 스탈린 같은 사람, 모택동 같은 사람,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같은 놈... 이런 류의 사람들은 동물화 되고, 완전히 그 마음이 악마화 되어서 그 속에 양심이라든지, 윤리나 도덕이란 것은 추호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자기의 탐욕을 위해서 어떤 사람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고, 노예화시킬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벌써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사람은 죽기로 예정되고 나온 사람과 같고, 그의 운명과 미래는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지게 돼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 3가지 부류 중에서 한 부류에 소속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 육신에 병이 든 사람이 자기가 어떤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의사를 찾게되는 것처럼,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영혼의 의사 되는 예수께서 오라고 청할 때, 곧장 그 앞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람들이 이제 복음을 듣게 되는데 둘째로,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바로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자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영생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인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맛보고, 실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죄, 나의 죄, 불의, 저주, 질병,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지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였습니다. 낮 12시에는 주님께서 "아, 목마르다"고 외치셨습니다. 하늘도, 땅도 다 진동하고 해조차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오후 3시에는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부활해서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우리를 포로로 잡았던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사슬에서 그 대가를 다 지불하고 청산해버렸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지불한 것 중에는 하나도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다 지불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반쯤 갚았다." 그러고 돌아가신 것 아닙니다. "내가 3분지 2쯤 갚았다." 그러고 돌아간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다 이루었다."하고서 주님께서 운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대단히 잘못되어 있는 점이 많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만 전적으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거짓증거 하지 마라, 이웃을 탐하지 마라... 이 율법을 지키려고 무수히 애씁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고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율법, 율법, 율법을 지키려고 죽을 애를 씁니다. 그러나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지키려고 할수록 점점 더 죄를 더 많이 범하고, 율법을 더 많이 범하기 때문에 그는 한번도 마음속에 평안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는 정죄 의식과 죄의식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 들어오기 전에는 마음이 편했는데, 교회 들어오고 난 다음 더 큰 죄인이 되어 가지고서 괴롭습니다. 율법주의 적인 설교를 하는 목사는 강단에서 추상같이 명령을 합니다. 자기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끊임없이 교인들의 머리에 퍼붓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그 설교를 듣고 난 다음, 정죄 의식이 안개와 구름같이 덮이어서 절망에 처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정말 죽어서 천당 갈 자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과거에 한국에서 부흥회를 많이 다닐 때, 종종 부흥회 설교 중에 그런 질문을 합니다. 기도 순서를 맡아서 강단에 앉아있는 장로님을 보고서 "장로님, 오늘 저녁에 세상 뜨시면 천국 갈 자신 있습니까?" 그러면 장로님이 고개를 떨어뜨리고서 겸연쩍게 웃으면서 "목사님, 죽어봐야 알죠." "그러면 권사님, 권사님은 어떻습니까?" "아이고, 죽어봐야 알죠. 내가 어떻게 알아요?" 모조리 죽어봐야 압니다. 죽어봐서 뭘 압니까? 지옥 가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인 것입니다. 왜? 이 땅에서 구원받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죽어봐야 안다는 것은, 그것은 벌써 틀린 것입니다. 왜 그러냐? 율법주의 적인 그 사상 속에서 언제나 '나는 죄인이다. 나는 못한다'는 절망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잘못 이해인 것입니다. 또 어떠한 사람들은 예수님 믿어서 은혜도 받고, 그리고 율법도 지켜야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제가 한 일 천억의 빚을 졌었습니다. 일 천억의 빚을 졌으니 도저히 내 힘으로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님이 오셔서 "내가 너의 일 천억을 갚아주마." 그럴 때 내가 일전 짜리를 내놓고 난 다음에 "그 일 천억을 아버지가 다 갚으면 어떡해요? 내 일전이라도 도와 드릴 테니깐 좀 받으십시오." 그래서 아버님께서만 내 빚을 갚은 것이 아니라 나도 일전을 도와서 갚은 것이니깐 나도 빚 갚았다고 자랑한다고 합시다. 그런 다면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아주 아니꼽게 생각하실 겁니다. "일천 억을 갚아주는데 일전을 내놓고 난 다음에 자기도 빚 갚았다고... 그렇다면 아예 안 갚아주겠다. 빚은 너 다 갚아라." 그렇게 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아예 은혜면 전적으로 은혜고, 율법이면 전적으로 율법이지 은혜도 아니고, 율법도 아닌 것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복음이냐? 전폭적인 신앙,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즉,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나와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대로 구원받는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추호도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하실 때 주님께서는 전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도 없이 깡그리 다 청산해버렸기 때문에 오직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 하나로 가지고서 받는 것입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학식 무학식,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그 자리에서 무조건, 전적으로 선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여기에 추호라도 나의 율법적인 행위를 보태거나,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빼면 그 사람은 복음에 가입할 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할례를 받고, 토요일날 안식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때 바울 선생이 탄식해서 말하기를 "갈라디아 사람들아, 내가 너희에게 일한 것이 헛되게 될까 두렵다"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의 하나를 지키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다 지켜야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여러분과 내가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이 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힘으로 절대로 죄의 빚과 사망의 빚을 갚을 수 없음으로 주님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오면 여러분의 과거가 어떠했던 상관할 길 없이 무조건 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버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굵은 죄, 적은 죄, 많은 죄, 작은 죄, 큰 죄, 조그마한 죄... 주님께서 상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그것을 따지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주께서 바라보시는 것은 믿음 하나만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믿으면 오늘 이 시간에 구원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구원받은 자의 고민에 관해서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구원은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었습니다. "무조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젠 자녀답게 살아보자.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보자." 이것이 이제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우러나는 소원인 것입니다. "나도 이젠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자녀답게 살아야지. 구원받은 사람이 달라야지." 그래서 "한번 율법도 지켜봐야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구원을 받아 놓았으니, 이제 율법 좀 지켜보자,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보자, 하나님께 귀함 받는 자녀가 되어보자... 다 같은 자녀라도 사랑 받고 귀함 받는 자녀가 있는가하면 천덕꾸러기로 미움받고, 쥐어 박히고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자녀는 역시 자녀인 것입니다. 그런 자녀에게는 큰 이익이 없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는 자녀가 있는가하면, 하나님께서 자꾸 채찍을 때리시고 꾸짖으시고 주님께 늘 꾸중을 들어,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 이젠 율법을 지키며 윤리와 도덕적인 생애를 살려고 애를 써볼 때, 막감당의 악의 세력에 기가 막힙니다. 내가 잘 믿고, 잘살아보려고 애를 쓸수록 더 많은 죄가 드러나고, 그리고 매일같이 내가 짓는 것은 죄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회개하고 탄식하는 것밖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7장 18절에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천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바울은 또 말하기를 "원하는 것만 내게 있지, 행위로서는 내가 하나도 선한 행위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1절로 24절에 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얼마나 비극적인 탄식인 것입니까?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싶은 간절한 법이 있는데, 이 육신 속에 죄의 법이 일어나서 이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 죄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법에서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처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도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애써도 못하며, 결심해도 안 되는 것을 압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자꾸만 죄만 더 짓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어찌해야될까?...' 마음에 탄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해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넷째로 성결은 성령님의 힘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나 자녀다운 행위는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예수 믿은 사람들은 다 알게되는 것입니다. 자녀는 자녀지요. 훌륭한 자녀도 자녀고, 죄를 짓는 자녀도 자녀고, 못된 자녀도 자녀고, 절름발이 자녀도 자녀인 것입니다. 일단 예수를 믿은 이상, 여러분과 나는 모두 다 자녀가 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값없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난 다음에 더 훌륭한 자녀, 위대한 자녀, 사랑 받는 자녀, 모범된 자녀, 축복 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이제는 법을 지키면서 살아야 되겠는데, 이것이 우리 힘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힘쓰고 애씀과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성령의 법이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여러분과 내가 죄의 법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일정 36년 동안 일본의 무단정치 하에서 무서운 압박과 고통을 당해봤습니다. 그 강력한 무력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을 점령하고, 36년 동안 총독정치를 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해방을 얻으려고 애를 써도 체포되어서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는 것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해도 해방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미국이 와서 일본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격파하고, 무장해제 시키고, 그리고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우리 한국에 상륙을 했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미국의 힘에 의해서, 일본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 묶여있는 이상,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힘으로는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풀려날 수가 없어요. 물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었으되, 육체 속에 있는 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가 해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주느냐? 주의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여러분과 나의 속에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자마자 성령은 우리 속에 와 계셔서 성령이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시고, 영의 귀를 띠어주시고, 그리고 영의 맘을 주셔서 하나님을 사모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고, 설교 듣고, 성경을 읽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이제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고는 저 개인의 생애 속에 성령 충만을 체험할 수가 없어요. 하루 한시간 이상 기도하면, 성령 충만을 체험할 수 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성경에는 '보혜사'라고 말했는데 보혜사라는 그 말의 의미는 '우리 곁에 부름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와 있는데, 도와주기 위해 와 있는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야 어떻게 여러분께서 승리로운 삶을 살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성령께서 여러분과 내 힘으로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시므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와주셨기 때문에 "성령이여, 이 죄악을 못이기겠습니다. 도와주소서. 이 유혹을 못이기겠습니다. 도와주소서. 성령이여, 나는 기도가 안됩니다. 도와주소서. 전도가 안됩니다. 도와주소서. 성경을 모릅니다. 도와주소서..." 성령은 여러분과 나의 연약함을 도우기 위해서 여러분 속에 와 계시고, 여러분 곁에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은 여러분, 우리는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 서대문에 있을 때, 하루 300명 물로 침례를 보는데 존 허드슨 목사님이 나를 돕기 위해서 옆에 와 계셨습니다. 내가 한 150명 세례 베풀고 너무 지쳐서 입술이 파래졌을 때, "조 목사, 내가 도와줄게 나와. 내가 들어가서 대신 해줄게"하는데 내 속으로 "흥, 내가 너보다 더 신령하지. 니가 뭘 신령해. 내가 다 세례 베풀어야지." 그래서 그 도움을 안 받고서 고집을 부리고 내가 교만으로 그 다 침례 베풀고 난 다음, 그날 저녁 부흥회 열 때 통역하다가 그만 심장이 아파서 쓰러져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때 쓰러지고 난 다음에 10년 동안 어지럽고, 땀나고, 심장이 뛰고, 한없는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때 도와주기 위해서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겸손하게 그 도움을 받았더라면 그런 고생 안 했을 것인데, 고집으로 교만으로 그 도움 안 받았다가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은 우리를 돕는 자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인데, 성령의 도움 청하지 않고 내 힘으로 기도해 보자, 내 힘으로 전도해 보자, 내 힘으로 의롭게 살아보자, 내 힘으로 윤리와 도덕적으로 살아보자, 내 힘으로 마귀와 싸워서 이겨보자... 그러다가 납작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고 성령을 보내셨사오니, 여러분께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여러분의 생활 속에 시시각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게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느냐, 패배하느냐의 관건인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써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길 자는 없습니다. 바울 선생같이 위대한 주의 종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다가, 그 다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그는 노래불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어떻게 과거에 처참하게 실패한 신자라도 오늘 성령이 와 계신 것을 깨닫게되고,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솔직하게 구하면 성령과 나는 합쳐서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전적, 절대적인 십자가은혜로 선물로 받게되며 거룩하고 깨끗한 삶도 전적, 절대적으로 성령님의 은혜로 죄를 버리고 의와 거룩함을 쫓아 살 생각과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아,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수많은 사람들이 입술로 주여, 주여 하면서도 복음을 믿지 아니하고, 율법주의자, 아니면 은혜와 율법을 함께 섞어서 구원도 행위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구원은 예수께서 다 이루어놓은 것, 빈손 들고 그 수레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오늘, 무조건하고 절대적인 선물인 그리스도의 구원을 은혜로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이 자리에서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의롭게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보혜사란 말은 우리 곁에 와서 도와주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는데, 도울 사람이 와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움 청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잘못인 것이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그러므로 지금부터 시시각각으로 성령의 도움을 청하여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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