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애착

by 삶의언어 posted Sep 08, 2024 Views 9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애 착'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애착심이란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애착의 포로가 되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 나올 때 애착이 무엇이든지 일단은 그 애착을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의 애착을 버리고 또 이 애착을 죽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도로 돌려주시기를 원하시면 이를 부활시켜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는 내 개인의 애착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에 그를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사랑을 중심을 붙잡아야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애착심이 생기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브라함을 보십시다. 그가 백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으니 그 마음속에 아들에 대한 애착심이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루 아브라함에게 무자비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외독자 이삭을 모리야산에 데려다가 내게 번제로 제물을 드려라." 여러분 번제의 제사라는 것은 각을 떠서 그래서 나무 위에 얹어 태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명령하신 이 명령은 불순종할 수 없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 무자비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마 그 가슴을 칼로써 베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 명령을 듣고 난 다음 잠을 자지 못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 애착이 불 끓듯이 그 아들에게 가는데 그 아들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니 이 처참한 명령을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라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버려야 되고 죽여야 돼요. 이래서 그는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걸어 모리야산에 가서 재단을 쌓고 그 아들을 묶어 재단 위에 얹어놓고 칼을 들어 그 아들의 심장을 내리치려는 그 찰나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불렀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이삭조차 아끼지 않고 내게 주었은즉 이젠 네가 나를 참 사랑한 줄 아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마음의 애착에서 떨어져나온 것입니다. 실상 죽지는 않았지만 죽인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로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었지만 아브라함에 대한 애착은 사라졌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그 아들을 대체 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여러분에게서 여러분 가정의 생활이나 여러분의 사회생활이나 여러분 직장이나 그 무엇이나 여러분 마음속에 애착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다가오셔서 그 애착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여러분께서 진실로 하나님 중심에 서게 하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도로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가복음 14장 26절로 27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여러분과 나의 마음의 사랑 전체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마음에 애착이 그 무엇이던지 오늘 그 애착은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되고 그 애착을 죽여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을 다시 부활시켜서 내게 돌려줄 때 이제는 내 마음에 애착은 아닌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누리더라도 거기에 사랑의 포로는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잔치를 갈 때 그 중에 한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이런 잔치를 먹고 참석하는 사람은 참 복되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거기에 여러 손님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잔치 시간이 되어서 손님을 청하기 위해서 종을 보내니까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니 가봐야 되겠다. 다른 사람은 소를 샀으니 가봐야겠다. 다른 사람은 장가들었으니 가봐야겠다. 그러므로 바빠서 잔치에 참여 못하겠으니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 말을 듣고 분노해서 그 종들에게 말하기를 나가서 바로 가난한 사람이나 병신들이나 소경이나 절름발이나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데려다가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초청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리라고 하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알아보고 싶은 것은 첫째로, 이 세상에 애착심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에 초청을 받았을 때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은 전부 이 세상의 애착심으로 꽉 들어찼으며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 마음에 애착심이 바로 땅을 사는 것이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서 그 밭을 봐야되겠으므로 천국 잔치 같은 곳에 초청 받은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전체 밭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초청을 받고 난 다음에도 그는 미안합니다.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밭에 나가봐야 되겠습니다. 이러므로 못 가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천국 잔치에 초청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자기의 밭을 보러 나간 것입니다. 그는 밭에 애착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말하기를 소 다섯 마리를 샀으니 소를 시험해봐야 되겠습니다. 그 마음은 소에 있었습니다. 천국 잔치보다도 현재 자기 눈에 보이는 이 소 마리를 시험해봐야 되겠으므로 거기에 애착심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그는 천국 잔치의 초청을 거부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 다음 사람은 그는 장가들었기 때문에 이제 처음 장가들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고 그리고 신혼생활의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 같은 것 아랑곳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초청을 거부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사람들은 세상 것을 사랑하여 천국과 영생에 관해서 그들은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실화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광산촌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금을 캤었습니다. 그런데 금광을 소유한 사람이 상당히 많은 금을 캐서 배에 싣고 그리고 광산촌에서 떠나서 도시로 오는데 그만 오다가 풍랑을 만나서 그 배가 파산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트를 내고 또 판자를 던지고 해서 그 배에서 뛰어나가서 헤엄을 쳐서 그 보트에 올라타고 판자에 배를 걸치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그 금광 주인은 금을 그 파산하는 배에 가뜩 실었기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못하고 그는 방황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금을 온몸에다 묶었습니다. 이 가슴팍으로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다리에까지 잔뜩 금을 띠로써 묶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물에 뛰어들어갔었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 내가 설명 안 해도 알 것입니다. 그렇게 무거운 금을 몸에 묶었으니 그가 헤엄 한번 쳐보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세상의 애착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세상의 고해를 뛰어넘어서 하늘나라로 오라고 하더라도 세상의 애착으로 그 몸 전체를 묶어놓은 사람은 세상의 애착이 얼마나 강하게 그를 빨아 당기기 때문에 결국에는 침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처음 초청을 받은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전혀 애착심이 없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이 너무 그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아무리 하늘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어도 그 마음속에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또 현재의 삶에 천국의 초청을 받은 것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오감각의 세계밖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같은 것은 이런 현실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현실세계에 안주한 사람은 천국의 침략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현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이곳이 좋사오니 여기에 그냥 머물러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이 외치고 현실적인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큰 시련에 부딪쳐 세상 것이 다 휴지가 되어야 비로소 그 때 이 세상의 애착이란 아무것도 아닌 물거품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 문을 열고 비로소 하늘나라의 초청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윤경화 자매님의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자매님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17년 동안 남편이 도박을 합니다. 상당히 부유한 가정이었는데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17년 동안 도박을 계속하니까 이 부인이 마음이 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살림은 점점 탕진해 갔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 세상에 애착을 잔뜩 가지고 천국복음이나 예수 전도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그가 할 수 없이 마음속에 극단의 고통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교회에 열심히 나왔습니다. 새벽기도도 나오고 주일날 수요일날 금요일날 또 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반협박과 공갈로 그 남편이 회개를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이혼장을 들고가서 이제는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라, 나는 이제 예수를 믿으니까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 그러니까 남편이 그때야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교회 나오는 척하다가 그 다음에는 둘이 다같이 교회를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생활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졌습니다. 이래서 세상 재미에 취해서 옛날에 교회 나간 것이 모두다 어리석게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둘이 아주 (인정 있게)? 많이 산 물건들을 차에 싣고서 집근처에 내려서 물건을 들고 오는데 집 근처에서 연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를 올라가고 있거든 '아 누구 집에 불났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둘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데 한사람이 뛰어내려 오더니 '아니, 여보 당신 무얼 하고 이제 오는 거야.' 무슨 말이냐니까 '당신 집에 불이 나가지고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데..'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드는데 '야, 부귀영화, 공명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되는구나. 내가 전에 급할 때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다가 내가 살만하니까 하나님 다 저버리고 이렇게 세상 쾌락만 쫓으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가진 것 몽땅 다 가지고 가시는구나.' 그래서 그는 그만 길거리에서 그 쇼핑한 물건들을 다 놓아놓고 꿇어 앉아 가지고서 '하나님이여 한번만 더 봐주십시오. 요번만 봐주시면 이젠 절대로 하나님 배반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따라가겠습니다.' 사람들은 답답하면 한번만 봐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고서 불길이 치솟는 집으로 뛰어가니까 다행히 그 불길이 이웃집은 태우지 않고 자기 집만 태웠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크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 공명이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그 남편과 잿더미에 올라앉아서 크게 회개하고 그때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뜨겁게 믿고 예수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은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에 결심했다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사람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외에 다른데 애착에 빠지게 되면 그 애착의 대상물을 주님께서 깨뜨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를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설 때 다시 그 죽인 것을 부활시켜서 우리 품에 돌려주시지만 그러나 그 때는 벌써 그는 애착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내가 하나님께로 선물로 받은 것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대신으로 그것을 소유하려고 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떠한 애착이라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리게 천국에 초청해 응한 사람들을 보십시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 분?과 미련이 약하거나 없는 사람들, 세상에 애착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가서 가난한 자를 청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착을 가질만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손 털고서 자기의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쉽게 걸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판잣집에 사는 사람은 그 판잣집이 불이 나서 태워 버려도 미련 없이 걸어 나올 수 있지만 큰 빌딩에 사는 사람은........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 것 없으니 천국의 복음을 들을 때 쉽게 그것을 받아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병신들을 불러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신들은 가난에다가 병까지 또 하나 더 들은 것입니다. 병신들이 어떻게 잘 살수 있겠습니까. 불구자가 되있은즉 활동을 잘하지 못하므로 잘살지 못합니다. 가난에다가 더구나 자기가 불구자가 되있으므로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짓눌려 살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쉽게 자기 운명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초청을 받을 때 그 희망을 향해서 걸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소경들을 청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소경들이야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지겹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다시 소경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찬란한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때 쉽게 그 메시지를 받아 들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는 이 성경에 보니 저는 자들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인생의 절름발이가 되 있습니다. 그는 가정의 절름발이가 되었던지 사업의 절름발이 되었던지 인생의 절름발이가 되었던지 육체의 절름발이가 되었던지 정상적인 삶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므로 거기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 속에서 영광스럽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로 초청을 받을 때 그는 쉽게 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소외된 사람을 불러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 길과 산울가로 가서 도시 한가운데 살지 못하고 쫓겨나서 소외된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삶에 소외된 사람은 하늘나라에 초청을 받을 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왜냐하면 현실세계에서 외롭고 고달프고 버림받은 심경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 실망하고 있기 때문에 애착이 없고 현실의 삶이 불안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정하고 살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생활 속에 변화가 다가와야 되겠다. 이 변화를 마음속에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것입니다. 그리고 현세에 방해가 없으므로 천국을 쉽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천국잔치에 청할 때 쉽게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 나오면 부귀영화, 공명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있지 아니하고 대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이 세상에 소외된 사람들이 교회 많이 참석한 이유는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애착 할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쉽게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현실세계에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그 애착물을 주님께서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서 이삭을 빼앗아가서 일단 그 애착을 죽여서 그 다음 다시 부활시켜서 주시더라도 애착심을 빼앗고 난 다음에 하늘나라를 사랑하게 만들고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두 가지 애착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결말에 관해서 오늘 함께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곳에 부자와 가난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부와 권력과 쾌락의 포로가 되어서 살았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그는 고운 베옷을 입었으니 부자요 자색 옷을 입었으니 그 당시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색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밤낮으로 주지육림에 빠져서 연락을 했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애착했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였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이세상 것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 앞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습니다. 거처와 의식을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병들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개들과 함께 자고 개들과 함께 깨고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서 그는 먹고살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 애착을 둘래야 둘 수가 없습니다. 부귀도 없고 영화도 없고 공명도 없고 건강도 없으니 이 세상에 미련 둘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는 천국의 뜨거운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국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끝날은 다가왔었습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무궁토록 살지는 않습니다. 순식간에 삶은 지나가 버리고 인간의 종말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말하기를 부자가 죽으매 장례 지내서 무덤 안에 들어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부에 내려가서 불꽃가운데서 고민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영이요, 그 영이 육을 입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렸다고 해서 참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자는 이세상과 이세상의 것을 애착했기 때문에 세상 것을 빼앗기자 그는 갈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서 불꽃가운데서 번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사로는 역시 그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게나 장사지낸바 되었지만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리자 그가 애착하던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와서 그를 데리고서 낙원으로 데려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게 한 것입니다. 이 부자가 눈을 들어 보니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나사로가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 나사로를 내게 보내어서 손가락으로 물한방울 찍어서 내 혀를 서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이 음부 속에서 번뇌하고 고통 당하나이다."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애착하여 세상을 사랑하고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으니 너는 음부에 들어있고 나사로는 하늘나라를 주야로 사모하고 천국에 애착을 가지고 믿음을 가졌으니 지금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그곳에서 이리 넘어올 수 없고 이곳에서 그곳을 갈 수 있다."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부자는 마지막으로 그가 음부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한번도 기도하지 않은 사람이 음부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 세상에 나가면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이 다섯이 모두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을 애착해서 하늘나라를 전혀 찾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어서 내 형제 다섯 명에게 경고하여 저들로 하여금 나 있는 곳에 오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 죽어서 음부에 내려간 사람도 자기의 부모, 형제, 처자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천국에 올라간 여러분 우리의 부모가 어찌 자기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음부에 가서도 기도하는데 천국에 먼저 간 우리 부모들이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 주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이 최후로 기도했으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말이 "저 세상에는 모세도 있고 성경책도 있고 선지자도 있는데 그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서 가도 그 사람 믿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운명이란 이 세상에서 종결이 지어 진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마음대로 살다가 인생 종말을 지어버리면 그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이 자리에서 종말 지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종말 지어질 인생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에 종말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를 위하여 죄를 대속했겠습니까. 여러분과 나는 이 세상에서 육신의 장막 집에 살고 있지만 영원히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애벌레가 고치 속에 들어갔다가 나비가 되어서 날라가는 것처럼 여러분과 나는 이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리는 그 날에는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광이냐 수치냐, 영생이냐 영멸이냐, 우리의 갈 길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이 그 분기점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애착하게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게 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 세상을 동시에 섬겨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보다 무엇이던지 더 애착하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올무가 되어서 그로 말미암아 끝없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제 세상 사람처럼 떡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성경엔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놓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깨닫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과 나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의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비한 길로 여러분과 나를 손잡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 많은 시험이 다가오고 환난이 다가오고 가슴아픈 일이 다가오는 이유는 여러분의 마음에 애착이 하나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여러분의 가족이나 여러분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세상이나 영화나 이런 곳에 떨어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이삭을 빼앗아 가듯이 여러분의 애착물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여러분과 내 마음에 애착을 빼앗아서 이를 재단에 얹어서 이를 재물로 드려버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될 때는 이제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권능으로 다시 그것을 부활시켜서 여러분의 가슴에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같이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심술이 나서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애착이 세상에 서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빼앗아갔다가 그것이 재단에 얹어서 하나님께 바쳐버리고 난 다음에는 다시 부활시켜 여러분에게 돌려주시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의 애착만은 하나님 중심에 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사랑 전체를 원하지 여러분의 사랑의 어느 부분만을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 바쳐 십자가의 재단에 우리의 모든 애착물을 다 바쳐버리십시다. 그리고 진심으로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그 능력의 손으로 돌보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썩어질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할 때가 종종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믿고 세상의 나의 애착을 좇아서 애착의 포로가 되어서 그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때가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우리 마음을 수술하여 주시고 우리 마음에 애착을 빼내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에 서도록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아직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아니하고 부자처럼 이세상과 이세상것만 추구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왔다면 이 시간에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내 아버지 이 세상이 끝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가장 영광스럽고 귀한 자리에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버림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서 불타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40908-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