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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by 삶의언어 posted Sep 07, 2024 Views 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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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화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작은 의견의 불일치로부터 크게는 생명을 건 대결에 이르기까지 조화가 깨진 세계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조화가 아닌 대결 속에는 마음의 안정과 기쁨, 행복이 없습니다. 서로가 대결하고 있는 이상 적대감, 미움, 공포, 좌절감 그리고 죄책감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대결양상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결이 급기야는 폭력으로 변하고 또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자해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심히 아프고 염려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당과 정당은 대화를 통한 화해를 해야할 것이고 정치인들의 사이, 고용인과 고용주의 사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 기성 세대와 신 세대 사이에 반드시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화해는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조성되지 않습니다. 폭력은 다시 폭력을 불러옵니다. 강압도 그 반작용으로써 강압을 불러옵니다. 화해는 사랑, 인내, 대화의 상호 양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상호 희생이 따르지 않는 화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귀중한 화해의 메시지를 가져다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화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맹자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천시를 만나야 하고 지리를 잘 만나야 하며 인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천시를 만나고 지리가 좋아도 사람의 마음이 화해되지 않고 분열되면 망하고 맙니다. 바울선생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기를 '너희가 서로 다투면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불화로 가득한 삶을 살아야만 할까요?

첫째로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처럼 불안과 공포, 절망과 대결로 가득한 처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에덴에 낙원을 창설하시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아름다운 처소를 만드셨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일 그 곳에서 아담과 하와가 순종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조화롭게만 살았다면 행복으로 가득한 세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그 마음속에 자신들의 분수를 뛰어넘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조화와 화해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각기 지으심을 받은 대로 분수를 쫓아 살아야지 이 분수를 뛰어넘는 탐욕을 가지면 그때부터 대결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꾀임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탐욕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마귀의 꾀임을 받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그 후손들은 대대로 하나님과 불화한 가운데 대결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대결하고 하나님과 원수 된 결과, 그 불화 가운데서 인간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영적인 죽음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악의 담이 섰고 영은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지고 하늘나라를 그 가슴속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그에 더하여 환경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아름답게 주신 환경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사망의 세력이 들어왔습니다. 대립과 대결, 싸움과 살상이 환경가운데 들어와서 이 환경은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므로 저주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살아야 했고 그 후손인 우리들도 저주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대적한 결과 육체의 죽음이 인간에게 다가왔습니다. 육체의 죽음의 시작은 병입니다. 여러 가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에 들게 되었고 병고에서 고통받고 시달리다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 없는 흑암 속으로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사는 인간들은 미움과 분노, 원한, 불안, 초조 그리고 허무, 무의미, 좌절감, 절망의식, 패배감, 죄책, 양심의 고통, 정죄감 등이 마치 안개같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의 대적 상태에서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기쁨, 희망,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가 불화한 사람이 자신의 이웃과 진정한 화목을 이루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자손 중에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쳐죽여서 가정에 큰 고통과 슬픔을 가져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오늘까지 세상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살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들도 마음속에 화해가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진실한 화해가 있는가? 부모와 자식이 화해된 화목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형제간, 이웃간에 조화와 화해가 있는가? 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매일 신문에서 우리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 조화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정신적 사고의 차이 때문에 화해가 사라지고 불협화음이 가득하여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결,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대결을 처처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참된 화해를 가져오지 않고는 조화와 행복과 축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의 화해는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실한 화해는 먼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화목의 토대 위에서 이웃과 이웃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다면 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해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에 대해서 밝은 메시지,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19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케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먼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 이 놀라운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사야 53장 1절로 3절은 화목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 강림하심과 그 실상을 지금으로부터 2천 6백여 년 전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너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와 그 영광스러움과 절대주권을 다 포기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다 쫓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뉘어지셨습니다. 그는 일생을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억압된 사람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화목 제물로 우리에게 오셨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은 자랑하고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권력자들에게 소외당하셨고 종교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바리새 교인들과 사두개 교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가wu오는 화목제로 오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죽으리라"하였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은 이상 사망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화목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화목은 반드시 희생의 대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보내셔서 인간을 대표하게 하시고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셔서 몸을 찢고 피를 쏟아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화목을 가져오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화목을 가져온 것은 그 무서운 대가를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높이 매달리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셨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가장 처절한 죽음을 당해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원수 됨을 제하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신 것을 생각할 때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죄짓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버림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회개하고 나오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목하시고 화목의 증표로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 나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목을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열매를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의 첫 열매는 치료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원수 되었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육체와 생활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성경 이사야 53절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왜 고통을 당하는지를 몰랐지만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께서는 화목의 열매로서 우리에게 치료를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친히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화목을 얻은 사람에게는 화목의 열매로서 치료가 하늘에서 강물처럼 흘러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마음과 육체가 치료를 받고 이를 통해 인생의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병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병은 마음에 깊은 상처와 슬픔을 가져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치료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구하고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화목과 치료의 직분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3분의 2를 치료하는 데 보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12명과 70인의 제자를 보내실 때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후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질병이 아니라 회개하고 천국을 받아들인 사람의 건강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화목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을 통해 우리의 과거, 현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성경은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찔리고 상함은 허물 많은 인생,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다 청산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훌륭한 인격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탕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큰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의 또 다른 열매는 평화입니다. 원수 되었다가 화목하게 되면 평화가 다가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자 마음의 평화가 넘칩니다. 우리 가족간에도 나라간에도 화목이 오면 평화가 넘칩니다. 이 평화는 마음의 평화뿐 아니라 생활과 환경의 평화도 포함합니다. 우리의 화목과 평화는 주위 환경과도 화목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다 제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평화만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 가운데 저주가 없어짐으로 환경과의 대결을 피하는 화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밭이 우리와 화목하기 때문에 우리가 씨를 뿌리면 열매를 잘 맞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을 가꾸면 그 정원이 우리에게 협조하여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와 대결하면 그 씨가 가뭄이 와서 죽고 말라버리고 화초를 심으면 그 화초가 다 벌레 먹어 죽어버리며 사업을 할 때 그것이 우리와 대결하여 가시와 엉겅퀴로 변해버리면 우리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다는 것은 그 화목을 통해서 우리의 주위와 환경과도 화목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생활 환경과 화목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화목함으로써 그 열매로 의를 선물로 받게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 13절에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시고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조금도 마음에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마귀가 참소 하지 못하도록 의롭게 만들어주셔서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전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함을 통해 의와 희락과 화평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마음 가득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었은 즉 이제는 화목을 가져와야 할 빚을 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원수 된 자가 화목을 얻었은 즉 우리는 이제 마땅히 화목의 사신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화목의 소식을 전해야할 빚진 자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로 16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데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은 하나님과 화목 되고 구원받은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그 감사와 함께 마음에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내가 가서 이 빚을 갚아야 하겠다 내가 가서 복음을 증거 해야 하겠다'고 바울은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되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은 하나님의 화목을 증거하는 대사들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로 21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을 삼으신 것이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의 지상 대사관인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는 지상의 하나님의 대사관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를 파괴하면 하나님의 천국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교회를 받들면 천국을 받드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누구일까요?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신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교회에 나온 하나님의 사신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상처 입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처 입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교회를 회파하고 교인들을 죽였을 때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하셨습니다. 그가 '뉘시니이까'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요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 가정에 살고 직장에 살고 이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 천국의 사신들이요 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밀사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가는 곳마다 메시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고 육신, 안목의 정욕과 자랑을 따라 살지만 하나님의 대사관에서 하나님의 사신이 되신 여러분은 메시지를 가지고 인생을 삽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사명을 다하고 전도해야할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과 화목 하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죄를 짓고 못났음에도, 버림을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못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 되어 영생복락을 얻게 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지 아니하면 이 세상을 마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반드시 가족들에게, 친척들에게, 이웃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증거해야 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화목하자고 청하고 계시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상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믿고 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전력을 기울여 국내외 선교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사관인 교회와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지상명령이요 과제인 것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사업을 어떻게 할까보다 앞선 지상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깨나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힘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며 사신들을 오대양 육대주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뒤에서 응원해야 합니다. 이 일을 잘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지만 일을 잘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꾸중과 더 나아가서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00년 전에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라가 미국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무지몽매하고 흑암 가운데 죽어 가는 이 땅에 왔습니다. 그들이 첫 발을 내딛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지 100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이제 우리 한국은 선교 1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 이후에 수많은 구라파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었습니다. 그들은 눈물과 피와 땀으로 그리스도의 올바른 사신으로서 복음을 증거해 주었고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은 1천만 명의 기독교인, 6천여 신교 교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일어나서 세계를 복음화 해야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바톤은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뛰어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한 후 그 바톤을 이제 우리 한국의 교회에 넘겨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바톤을 이어받아 주님 오실 때까지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릴레이를 잘 뛰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다가 넘어지던지 바톤을 던져버리면 우리는 복음 증거를 실패케 하는 원인 제공자가 됩니다. 릴레이 경기에서는 마지막 뛰는 사람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아무리 중간에 잘 뛰어도 마지막 뛰는 자가 결실을 잘 맺지 못하면 그 릴레이는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지막 주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곧 강림하십니다. 첫 주자로서 팔레스타인의 사도들이, 중간 주자들로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뛰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마지막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경주를 우리가 뛰도록 맡기셨습니다. 이는 가장 잘 뛰는 사람을 릴레이의 가장 마지막에 뛰도록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을 가장 신뢰하시기 때문인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들고 이 복잡 다단한 사회에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절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게으름피우지 않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일을 마음과 뜻과 정성 그리고 목숨을 다하여 전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우리들의 경주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는 스타디움에 들어가고 이 세상의 눈물과 근심과 탄식, 괴로움, 앓는 것, 곡하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은 사라지고 맙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있는 우리의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께서 예비한 영원한 세계를 상속으로 받아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날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어 주의 사도로서의 우리의 사명을 다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웬 말인지 웬 은혜인지 조상 대대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몸과 피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 성찬을 받을 때 성찬의 떡과 잔이 화목의 증표로서 우리에게 전달됨을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되었던 담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화목의 열매로서 치료가 넘쳐나고 용서가 넘쳐나며 축복과 의가 가득 차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우리가 의안에서 왕 노릇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화목을 통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채우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자, 사신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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