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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부모와 어린이와 내일

by 삶의언어 posted Sep 05,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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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3-05-01
오늘의 성구 마가복음 10장 13절로 16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e3UP0_hr5Zc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부모와 어린이와 장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주간은 가정 주간입니다. 특히 오늘은 어린이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얻는 것은 우리가 원해서 얻고 우리가 싫어서 얻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주시는 기업인 것입니다. 기업은 받아서 우리가 잘 가꾸어야 되고 자녀는 또한 하나님이 상급으로 주시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우리가 가꿔야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처럼 자식을 잘 기를 수 있는 교육적인 기회와 수단이 풍부할 때도 없었습니다. 또 그와 동시에 오늘날처럼 자식 교육이 힘들 때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세계 속에 환경적, 정신적 공해가 도처에 꽉 들어차 있고, 세속적인 물결이 TV, 잡지를 통하여 무제한 적으로 안방까지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밖에만 나가면 눈과 마음을 현혹케 하는 타락의 손길이 처처에 우리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와중에서 우리들이 씩씩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범사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심신이 튼튼한 자녀들로 길러나가야될 의무와 책임이 부모에게 얹어 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인 어린 자녀들을 잘 길러 나갈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자녀 교육에 가장 중ㅇ요한 시기를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우리 품울 떠날 때까지 우리 부모의 슬하에서 자랄 때, 어느 시기가 가장 중요할까요? 오늘날 성경도 심리학자들도 다 동시에 1살 때부터 6살 때까지가 그 일생을 결정하는 가장 귀한 기간이라는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콜디 마이어 박사는 그의 책에서 말하기를 약 85% 이상의 성인들의 행동 양상과 태도는 그가 1살에서 6살 사이에 심어진다는 나의 신념을 난 충분히 실증하고 증명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품에서 자라는 어린 아이들, 1살에서 6살 까지가 벌써 그가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며 태도를 가질 것인가의 85%가 결정돼 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얼마나 부모의 슬하에서 아직 유치원을 들락날락하기 전에 어린이의 인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서 22장 6절을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조기교육, 1살에서 6살까지의 어린이에 대해서 일찌감치 우리가 교육을 잘하는 것은 중ㅇ요한 일이요, 또 어린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그 어린 아이의 일평생 인격을 형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1살에서 6살 까지에 마음에 얻은 상처는 일생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1살에서 6살까지의 어린이의 장성기에 그 마음속에 믿음, 소망, 사랑을 넣어주는 대신에 일생을 정신적인 상처를 가지고서 감정적인 고통ㅇ을 유발하면서 살도록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에 어린이를 기를 때 어떠한 것을 심지 말아야 되는가 이 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미움을 심어주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1살에서 6살 사이에 어린아이들은 아직 언어 구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것을 변명할 수도 없고 풀어 놓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이 그 심령 속에 무서운 상처를 남기고 파헤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린 아이가 나는 거부 당하고 있다는 아픔, 다시 말하면 나는 친밀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모는 나를 원해서 낳은 것이 아니라 부모는 나를 싫어하면서도 기르고 있다는 이러한 감정을 실어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부반응을 체험하거나, 쌀쌀하고 무관심하며, 그저 의무적인 취급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미움받고 있다. 나는 거부당하고 있다. 나는 원치 않는 어린아이다. 이런 것이 마음속에 미움의 상처를 입혀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장성하고 난 다음에도 그 마음속에 깊은 아픔의 감정이 되어서 사람들과의 대화가 잘 되지 않고 부부간에 서로 애정을 나눌 수 없는 마음의병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또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죄책감을 심어줘서는 안됩니다. 죄책이란 속으로 자기를 미워하는 감정입니다. 부모가 완전주의자로써 어린이의 불안전한 인격애ㅔ 대하여 심한 비평과 꾸짖음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는 불안전한 존재인데, 무엇이든지 완전하기를 원합니다. 머리도 완전히 빗어라. 완전히 이빨을 닦아라. 손도 깨끗이 씻어라. 옷도 완전히 입어라. 생활도 완전히 하라. 그래서 완전 주의에 도저히 자기가 미달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언제나 부모 앞에 서면 나는 불완전하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또한 항상 타인과 비교해서 평론할 때 어린 아이는 자기 불완전을 미워하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왜 쟤는 잘하는데 너는 못하느냐? 쟤는 훌륭한데, 너는 훌륭하지 못하느냐. 비교 죄책감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죄책감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 다음에 이 어린 아이는 자라서 장년이 되더라도 언제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늘 쫓기는 삶을 살고 자기를 미워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격적인 불구자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 열등 의식을 심어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자기에 대한 과소 평가인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과대 평가를 해서 교만해서도 안되겠지만 자기에 대한 과소평가를 해서 나는 못났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버림 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한다 의 인간으로 만들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이라는 ㄴ것은 잘하는 점을 칭찬하지 않고 항상 못하는 점을 강조해서 꾸짖을 때 그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깊은 열등의식을 넣어주고 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니까 잘못한 것ㅇ도 있지요. 그러나 잘못 한 것을 될 수 있으면 덮어주고, 잘하는 것을 지적해서 이것을 강조해주면, 마음의 자신이 흠양되고 긍정적인 인생을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너는 왜 이것을 못하느냐. 너는 병신이다. 너는 바보구나. 아이구 바보야 너는 밥을 먹지 마라. 너는 밥통이다. 이렇게 말해 놓으면 그는 열등 의식으로 마음이 가득 차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 무엇을 시켜도 그 인격 속에 깊은 잠재의식 속에 나는 못한다는 인격이 생겨나기 때문에 주저하고 늘 초조하며 불안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심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심어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연약합니다. 아직까지도 대외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방어할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에게 늘 협박과 공갈과 무서움의 상태로 떨어 뜨려 두어서 공포감을 갖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줘야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더불어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전지 전능 무소 부지하신 크게 힘있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너를 품어주신다. 그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너를 사랑하심으로 피를 흘리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너를 품어주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그 사랑을 마음속에 1살에서 6살 사이에 깊이 넣어주면 그 어린 아이는 마음속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속 깊은 곳의 자신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1살에서 6살 그 사이에 부모들은 가정에서 어린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넣어줘야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1살에서 6살 사이를 지나서 국민학교 들어가서 국민학교를 공부마치고 난 다음에 중학교를 지날 때 가장 고통스러운 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 age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속에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는 나이가 12살에서 16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12살에서 16살의 사이가 어린 아이에서 청년, 장년으로 장성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갑자기 그 육체적으로 그 심리적으로 그리고 그 생활 주변에서 거대한 폭풍우와 같은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도저히 자기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한 그러한 일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는 체내의 호르몬의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12살에서 16살이 되자, 콧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에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체내의 호르모 변화는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의 불안을 가져오고 또 몸의 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새로운 마음의 충동과 욕구가 생깁니다. 옛날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그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독립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욕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책이 마음속에 끝없이 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잘못한 것만 같아서 그 죄책을 떠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혼돈하며 또 거기에 대해서 반발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부모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고, 권위에 대한 반발,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장 고통스럽고 몸부림치는 12살에서 16살의 어린 나이에 불량청소년이 되기 쉽습니다. 가정을 이탈해 나가기도 하고, 그리고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워보고, 술을 먹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잘못된 일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나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잘 돌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이해와 동정을 가진 사랑을 퍼부어 주어야 되고, 인내를 가지고 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부모가 늘 이야기해 주고, 대화를 통해서 그 어린 아이의 정신적인 결핍을 채워줘야 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나이에는 선악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도 선이라고 말하고 악도 선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라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12살에서 16살, 그 인격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에 그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별못하고 있을 때, 부모가 단호하게 이것은 해도 좋고, 이것은 하면 안된다는 울타리를 고정해 주어야 그가 올바른 인격적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선은 칭찬해주고, 악을 행할 때는 부모가 단호한 태도를 취해서 그는 거부시키고, 안되면 채찍이라도 때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잠언서 29장 15절에 말하기를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서 23장 13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이러므로 12살에서 16살의 나이에 잘못될 때는 불러다가 종아리를 때리고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 반항심을 꺾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해주는 것은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 아이가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 부모는 그 어린 아이의 장래에 올바르게,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을 흠양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살에서 6살 까지 여러분은 그 인격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감정적인 아픔을 가지고서 일생을 살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12살에서 16살까지 반항기에 부모는 어린 아이와 함께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을 해주며 인내를 가지고 대화해서 그들의 혼돈을 바로 잡아주며, 선악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가 잘못된 길로 걸어가지 않도록 의무와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냥 낳아서 밥만 먹이고 옷만 입히고 학교만 보내면 나 할 일 다했다고 내 던져버리는 그와 같은 무책임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자녀들이 몸은 자라 장성을 했지만, 정신적으로 병들고 고통 속에 허덕이며 성장하지 못한 국민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제 어린아이들에게 올바른 생활의 지혜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갈까? 어린 아이들은 그 지혜를 가정에 살 동안에 부모를 바라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남자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고 배우고 여자 아이는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집에 있을 동안에 인생을 살아갈 참된 지혜를 부모가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세상은 무엇을 하든지 출세욕과 황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늘 출세하라. 출세하라. 돈 벌어라. 돈 벌어라. 하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어찌 한지 세상에 산다는 것은 권모술수를 쓰더라도 탐관오리를 하더라도 출세를 하고 돈만 벌면 되는구나 이와 같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지혜를 어린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아이가 자기 슬하에 있을 동안에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올바른 지혜를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여줘야 될까요? 인생에서 정직한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라는 것을 부모는 그의 생활을 통해서 그의 언어를 통해서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기꾼의 생활은 일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탄에 이른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성실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고, 겉다르고 속다른 인생을 만들어서는 안된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한결같은 사람, 그러한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해 놓으면 틀림없이 해놓는 사람, 그 말과 행동이 언제나 일치하는 사람, 이런 성실함이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실보다 더 좋은 지혜가 없다는 사실을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가르치고 몸으로써 보여줘야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 근면이 바로 재산인 것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들을 하든지 전신 전역으로 부지런히 일해서 그 땀흘린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 참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이 사실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인생을 충성스럽게 살아야 된다.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여기 기회가 있으면 뛰어갔다가 저기 기회가 있으면 저기 뛰어가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배반하고 팔고 사고 조급한 것을 쉬지 않고 행하는 그런 일생이 되서는 안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한 가지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충성스럽게 살아야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충성스럽게 살아야 되고 국민은 국가에 대해서 충성하고 또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해야 된다. 그 마음속에 충성스러운 마음, 이것이 위대한 삶의 지혜라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지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평생을 사는 동안 언제나 성경을 떠나지 말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을 떠나지 말고 어느 곳에 가든지 교회를 찾아서 주일 날 교회 나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저버리지 않도록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위대한 지혜가 정직하고 성실하며 근면하고 충성스러우며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교회에 언제나 출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때 자녀들은 이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 비록 조그만 하게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또 크게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엇길로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기 슬하의 자식들이 있을 때 이러한 지혜를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들이 자녀를 기를 때 자기의 소질을 따라 나가도록 도와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성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소질을 주어서 내보내 주었기 때문에 자기 성취를 하면 행복한 것이지. 아버지의 욕구를 , 어머니의 기대를 어린 아이가 덮어써 버려서 자기는 원치도 않는데, 아버지가 원하기 때문에 할 수없이 이렇게 해야되겠다. 엄마가 너무나 원하기 때문에 엄마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내 개인의 모든 기대를 꺾어버리고 엄마의 욕망을 이루어야 되겠다. 이렇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아버지와 엄마로써 자기 세대를 산 것입니다. 자식은 또 자식으로써 자기 세대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식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소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밖에는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사기 9장 8절로 13절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나무들이 모여서 우리 임금을 하나 뽑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임금을 뽑으러 이리저리 동분서주를 합니다. 나무들이 처음 간 나무가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여, 당신은 참 수려하고 좋습니다. 그 사막에서도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도 쉬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임금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감람나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왕이 되리요. 나는 나의 천분이 있다. 나는 내가 해야할 사명이 있다. 나는 기름을 내어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데 나의 본분을 버리고 나의 근본적인 사명과 소질을 버리고 내가 분수에도 맞지 않은 왕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들이 감람나무에서 실망을 하고 무화과나무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무화과 나무여 당신은 참으로 겸비한 나무인 즉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소서" 무화과나무가 말하기를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어찌 버리고 왕이 되리요. 나는 왕이 안된다. 나의 본분이란 속으로 꽃이 피어서 달고 단 무화과나무를 만들어서 이 열매를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이 내 직분이다. 내 직분을 버리고서 내 천성의 소질을 버리고서 내가 왜 왕이 된단 말인가. 그러자 나무들이 포도나무를 찾아갔습니다. "포도나무여 당신이 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소서." 포도나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왕이 되리요. 나는 왕이 못된다. 나의 이 새 술은 하나님도 기뻐하고 사람도 기뻐하는데 왜 내가 왕이 되요. 나는 내 본분을 다해야지. 그래서 여기에서 나무들이 그 좋은 감람나무에 가보니 감람나무는 자기의 사명과 소질대로 가겠다고 말하고, 무화과 나무에 가니까 무화과 나무도 자기의 사명과 소질대로 가겠다고 말하고, 포도나무에 가도 포도나무가 나는 내 사명과 소질로 가지. 내 분수에도 맞지 않고 내 사명에도 맞지 않은 왕은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할 수없이 가시나무에 갔습니다. 막 가시가 돋고 몰골이 사나운 가시 나무에게 가서 "가시나무여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 라니 일어나서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다 "오냐 왕이 되겠다. 모두다 내 품으로 들어 오라 " 고함을 쳤습니다. 이 못난 게 자기 직분을 버리고서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 가시나무가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까? 오늘날 못난 인생이 자기 분수를 뛰어넘어 자기 소질을 뛰어넘어 탐욕으로써 무엇을 바라다가 자기도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을 내보낼 때 그 사람의 소질대로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의 소질을 다 발견해 내서 감람나무면 기름을 산출해 내어야 하고, 무화과 나무면 단 아름다운 실과를 내야 하고 포도나무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새 술을 만들어 내야지. 포도나무가 감람나무처럼 기름을 낼 수도 없고, 무화과 나무가 포도나무처럼 술을 낼수도 없으며 감람나무가 무화과나무처럼 단 열매를 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맡겨놓은 기업이기 때문에 자녀들의 소질을 발견해서 그 소질대로 인생을 살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돈벌이해라. 반드시 세상에 출세해라.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돈과 출세가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일방통로의 길인 것입니다. 한 번 사는데 자기 마음속의 소질을 살려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쌓아놓고 좋은 옷을 입고 ??의 집에 살면서도 불행하고 슬프게 인생을 보내는 것은 그것은 인생인 아닌 것입니다. 인생의 참 성공은 물질의 풍부함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질을 얼마나 개발하고 인생이란 자기를 성취해서 살았는가 살지 않았는가. 이것이 자기에게 가장 위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부모들이 일류병에 걸려서 부모의 탐욕의 노예가 되도록 어린아이를 만들어서 일류에 안가면 너는 버림 받았다. 일류에 안갈려거든 너는 밥도 먹지 말라. 일류에 안갈려거든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말라. 너는 서울대학에 가야돼. 연세대학을 가야된다. 고려대학을 가야된다. 일류대학을 가야된다. 일류병에 걸려있어서 애들 조차도 일류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리 부르시면 일류에 가도 좋지 마는 제 삼류를 가나 제 사류를 가나 혹은 대학을 못가더라도 자기 소질을 개발해서 자기 성취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살면 이것은 참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 농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식 농사인 것입니다. 세상 농사는 실패하면 다시 다음에 성공시키면 되겠지만, 자식 농사는 한 번 실패 놓으면 다시 성공시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올바르게 자식을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의 영혼을 구원시키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될 마땅한 책임이요, 의무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가정 주간에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업인 어린 자식, 태의 상급으로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훌륭하게 길러내어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부모들이 마땅히 해야될 사명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자녀들에게 밥이나 먹여주고, 옷이나 입혀주고, 잠자리나 마련해 주면 이로써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우리 한국의 과거의 전통적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녀들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그와 같은 기계가 아니고 그와 같은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우리 스스로가 자녀의 교육에 전심전력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의 기업을 주시고 태의 열매로써 상급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자녀는 잘 기르면 크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잘못 길러 놓으면 그보다 더 뼈가 썩고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가정 주간을 맞이해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품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가? 1살부터 6살 사이의 유년기, 12살부터 16살 사이의 가장 고통스러운 해, 그 다음이 그 들이 앞으로 진출해 나가는 길, 이런 일에 대해서 부모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서 도와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총과 사랑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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