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

by 삶의언어 posted Aug 22,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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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은혜를 체험하고 은혜를 받으면서도 은혜라는 말의 그 깊은 의미를 정의 내릴수가 없을때가 많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은혜라고 말할 때 먼저 수려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야 은혜롭다! 카리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산자수려하고 아름다움에 감동되었을 때 정말 은혜롭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의미가 점점 발전이 되어서 그 다음 우리 인간 생활에서 덕성스럽고 모범적이며 칭찬받을만한 귀한 행동을 한 사람보고 그 사람 은혜로운 행동을 했다. 그 사람 참 은혜롭다 그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그와 함께 또한 은혜란 의미는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전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주는 행동 이와같은 것을 은혜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시간에 이 은혜와 율법이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한번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이란 무엇일까요?
율법이란 여러분 좁은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준 십계명을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로 말하면 구약성경 전체를 율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다음 모세오경을 율법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켜야하는 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율법은 여러분 십계명을 잘알고 있지 않습니까? 십계명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사람이 지켜야할 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마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이것은 최소한도 하나님앞에 나가는 사람이면 지켜야 할 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계명이 여러분과 나를 구원할수 있는 힘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그 근원적으로 도리킬 수 없이 부패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어떠한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킬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바로 인간의 그 약점을 드러내고 인간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앞에 의롭다 함을 입은 육체가 한사람도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도 어 그 어느 누구를 불구하고 흠도없고 점도없이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은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고 나온다면 그 사람은 한가지 죄를 더 짓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죄를 더 짓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느 육체든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앞에 자신있게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율법은 인간의 약점을 파헤쳐내고 인간을 죄인으로서 정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율법은 손을 내밀어 연약하고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 앞에 서서 우리들은 두려워 떨고 우리 약점이 다 노출되고 정죄되어서 파멸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고 성경은 죄를 지은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율법도 이렇게 무섭거든 우리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율법으로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는 언제나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여러분 보면 부모가 너무 율법적으로 자식을 대하면은 그 자식이 부모앞에 서지를 못하고 나중에 가출을 하던지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가 언제나 자식의 약점만 자꾸 드러냅니다. 너는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안하냐? 너는 왜 이렇게 못났느냐? 왜 불충스러우냐? 왜 성실 안하냐? 자식에게 계속해서 아버지가 율법의 자를 가지고서 대어서 율법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고 그 자식의 약점을 드러내고 정죄하면은 그 아버지와 그 어머니 앞에 그 자식들은 견뎌내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집을 떨쳐 나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문제아로 전락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부부사이가 여러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남편이 율법적인 남편이 되어서 그 부인의 약점을 스물네시간 늘 드러냅니다. 그래서 부인이 남편에게 설 때 그 몸둘바를 모릅니다. 남편이 항상 부인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당신은 교육을 못받았다. 당신은 언어 사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당신은 옷 맵시가 못났다. 당신은 몸을 간수할줄 모른다. 화장을 할 줄 모른다. 돈을 잘 쓸 줄 모른다. 예의범절이 없다. 계속해서 부인의 약점을 자꾸 드러내고 부인을 정죄하면 그 부인은 남편앞에 서지 못합니다. 자살을 하던지 도망을 치던지 위선자가 되던지 그렇게 되지 정신적으로 파탄에 이릅니다. 내가 요번에 미국가서 두부인이 내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두 부인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어요. 한분은 오클라호마주에서 한분은 시카고에서 왔는데 한분은 남편이 마흔아홉살 먹었는데 그동안 정말 모범적인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잘한 것 같더니만 갑자기 보따리를 싸서 이제는 도저히 이 집에 살수없다. 당신 보기가 엄청시럽고 몸서리난다. 너 근처에도 오지마라. 그러면서 보따리 싸서 나는 인생을 재출발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집을 떠나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 부인이 절망 가운데서 내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시카코에 오니깐 남편이 쉬흔세살인데 자기 부인을 불러서 이제는 우리 헤어지자. 나는 이이상 더 당신하고 살수가 없다. 이제는 고통스럽고 괴로워 견딜수가 없다. 이제는 당신하고 나와 이젠 이별이다. 나는 봇짐을 싸고 오늘 집을 나간다.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대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그 남편에게만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인이 율법적인 부인이 되가지고서 끊임없이 남편을 자꾸 구박합니다. 남편의 약점을 자꾸 캐어서 남편을 불안하게 만들고 남편을 자꾸만 정죄합니다. 이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십년 이십년 삼십년 싸이게 되면 나중에 그 남편은 좌절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와서 그 부인에게 추호의 애정도 마음속에 느끼지 못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형식적인 가정 율법적으로 묶어논 가정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급기야 자기 나이가 늙어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벌써 사십이되고 이젠 오십이 되었구나! 내 인생이 이제는 마지막길을 달려가구나! 이 이상 더 억압된 생활속에 살 필요가 없다. 죽기전에 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보자. 그래서 갑자기 가정을 파괴해 버리고 일어나 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나는 우리 남편의 ** 법적으로 우리 남편이다.자식을 낳고 사니깐 이젠 내 마음대로 해보자. 그래서 남편의 약점을 자꾸 들춰내고 남편을 구박하고 남편을 짓밟고 정죄하고 그렇게 하고 자기 마음에 상쾌함을 느끼는 부인들이 많습니다. 남편하고 싸워서 이론적으로 남편을 이겼다고 의기양양한 부인 있다면 바봅니다. 겉으로 이기고 속으로 남편을 잃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많은 부인들이 남편하고 논쟁을 해서 남편을 이깁니다. 남편을 코너에 밀어넣고 남편을 옴짝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남편은 화가나서 옷을 걸쳐 들고서 집으로 뛰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난 남편을 이겼다. 내가 잘못한 것이 뭐냐? 나는 이겼다. 나는 올바르다. 그러나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남편하고 싸워서 이론적으로 이겼지만은 남편의 마음은 잃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남편을 집을 떠나고 그 부인을 떠나고 방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점점 누적되기 시작하면 급기야 어느 순간에 다리가 무너지듯이 무너내려앉고 가정은 파괴되고 그는 정처없이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율법적인 관계란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율법적인 관계 속에서는 견뎌낼수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관계를 가진 이웃과의 사이도 무너집니다. 아무리 다정한 친구라도 그 친구가 계속해서 자기으 약점을 들춰내고 정죄하고 비난하면 그 친구관계가 이루어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은 올바른 것 같지만은 율법만 가지고서는 이 세상에 살아나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율법 앞에 어떠한 사람도 설수가 없고 하나님 앞에 존재할수 없는 것처럼 율법을 가지고서만 살아가는 부모 앞에 자식이 견디지 못하고 율법만 가지고서 살아가는 남편 앞에 부인이 떠나가고 율법으로서 남편을 괴롭히는 그러한 의로운 부인 앞에 죄많은 남편이 파탄당하고 그리고 의롭고 주장만하는 그러한 친구들 곁에 이 세상에 부족함이 많은 친구들이 존재하지 못하고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이란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은 그러나 그 율법 자체를 가지고서는 어떠한 사람도 구원하거나 도와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은혜란 것은 무엇일까요?
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근원적으로 은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에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하고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죄없이 삼십삼년을 사시고 난 다음에 모든 아담의 후예들의 죄악을 다 씻어주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스스로 자원해 나가서 인간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이 찢기고 그 몸에 피를 다 쏟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고 그 처절한 고통을 다 감내하고 난 다음 내가 다 이루었다고 청산해 버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 아무런 가치와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 상처입은 손을 내 밀고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나 한사람 한사람 만일 율법앞에 서서 죄를 살펴본다면 죄인 아닌 사람 누가 있습니까? 모두 다 오늘 이시간에 하나님께 심판 받아 지옥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 앞에 나올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이 모든 죄와 불의를 다 하나님 앞에 맡아서 청산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게서 이 죄악을 아 청산하고 그 큰 사랑으로 나를 불러 품에 앉아 주실 때 그 감격이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으로서 우리 약점을 자꾸 파헤쳐내고 정죄하기 때문에 겁이나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혀 저 찢어지고 늘어진 그 몸앞에서 용서를 받고 사랑을 받은 그 감격으로 그리스도와 만나게 될 때 내가 죄 용서받은 그 감격이 마음에 사무치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한 예수님 앞에서 나는 다시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 나를 죄를 버려야 되겠다. 나는 올바른 사람이 되야 되겠다. 은혜를 받고 감격의 체험을 하게 될 때 여러분과 나의 생애속에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죄인을 잡아다가 형무소에 갔다 놓아도 형무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 죄지을 공부를 더해서 더 범죄자의 공부를 수련해서 나와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전과 1범, 전과 뭐 2범, 전과3범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형무소에서 사람의 약점을 잡아서 정죄하여 집어넌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언제 변화 되느냐?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사람은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용서받고 거기에서 사랑받고 거기에서 용납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감격해서 자기의 죄를 다 고백하고 자기 일생을 예수께 던질수 있는 것은 바로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은혜로 말미암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격려해줄 때 그것이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고 변화시켜 주고 이러할 때 신뢰가 생겨나고 그리고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은 그러나 율법으로서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구원은 못합니다. 율법은 사람의 약점을 드러내지만은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린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여러분 율법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은 그러나 율법으로서 인생을 살지말고 은혜로서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로서 자식들을 최대한대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격려해주고 그 다음에는 율법으로서 이러한 하나님 법 앞에 걸리지 말도록 경고해 줘야 될것인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은혜의 눈으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뭐든 약점과 못난점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은혜로서 품어주시면 그 사랑의 깊은 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정신적인 갱년기가 다가와도 부인을 버리고 나가는 남편이 생겨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정이들고 마음속에 인정의 뿌리가 내리는데 어떻게 권태가 왔다고 해서 그 남편을 버리거나 그 아내를 버리고 떠나갈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평소에 율법으로서 늘 정죄하고 심판하고 까다롭게 굴고 정이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뿌리채 다 뽑혀버린 그 상황속에서 허구만 가득남은 그런 형식적인 가정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정신적인 갱년기가 다가오면 이것을 다 발길로 차버리고 그는 정처없이 떠나가 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것처럼 우린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할것인 것입니다.

셋째로 저가 여러분께 율법과 은혜의 실상을 한번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은혜와 진리의 말씀에 사람들은 마음이 다 뺏겨서 얼마나 큰 행복속에서선지 시간 가는줄 몰랐었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남자들의 고함치는 굵은 음성 분노에 가득찬 외침이 들리는가 하면 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소스라쳐 놀라서 돌아보니 여기에 율법사들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들이 한 여자를 끌고오는데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찢어지고 신발은 벗어버리고 얼굴에는 상처를 입고 눈은 충혈되고 고함 고함 치면서 끌려오고 있습니다. 이 여자를 끌고와서 예수님 발앞에 내동댕이치고 난 다음에 그 많은 사람앞에서 살기가 등등한 율법사들 사두개교인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 앞에 삿대질을 하면서 발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합니까? 이 사람들 자체가 위선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이 여자가 잡히었으면 왜 여자만 끌고옵니까? 남자도 같이 안끌고오고? 남자는 보내놓고 난 다음은 여자만 끌고와 가지고서 예수님 발 앞에 내어 던져놓고 난 다음에 시내산 모세의 제자들은 율법 그대로 집행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인간을 정죄해서 인간에게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히었으므로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돌로 맞아 죽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께 강요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고 한다면은 예수에 대한 예수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집행할수 없습니다. 돌로 치지말라면은 정의를 무시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퇴위기에 빠질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암 말도 안하시고 허리를 굽혀서 그는 손가락으로 글을 썼습니다. 무엇을 썼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저가 한 삼십년을 설교를 하고 보니깐 내 마음속에 무엇을 썼을것이라고 짐작이 갑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십계명을 썼을줄로 압니다. 땅에 내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부터 시작해서 십 열째는 네 웃을 탐하지 마라 십계명을 다 썼을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공격하던 사람들이 어깨너머로 쓰는 것을 보고 어 십계명을 다 쓰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화같이 예수님께 재촉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깨를 쭉펴서 거기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나이 어린 사람까지 살펴보시고 난 다음 주님께서 장엄하고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했습니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서 이 여자를 쳐라!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는 엎드려 가지고서 그 손가락으로 또 글을 씁니다. 요번엔 뭘 썼겠어요? 돌로서 칠려고 부들 부들 떨리는 손으로서 손을 높이 들면서 예수님의 손가락이 가는 것을 보니깐 예수님의 손가락이 적는것 마다 자기들의 숨은 죄악이 드러납니다. 큰 자로부터 작은자까지 예수님이 써내려가는 손가락 끝에 그들의 감추인 죄악이 다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여자만 돌로 맞아 죽어야될 여잔줄 알았는데 그들이 속에 숨은 죄악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니깐 그들은 모조리 다 오금이 오려지고 이 여자를 돌러 쳤다가는 그 돌에 자기도 얻어 맞을것이 기억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손가락으로 글을 써내려나가는 동안에 그들은 한사람 두사람 모두 다 돌멩이를 놔두고 나는 지금 일이 바빠서 나는 지금 직장에 시간이 지금 없어 지금 논 갈러 가야돼 지금 소 보러 가야돼 하고서 다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었습니다. 한참만에 예수님께서 허리를 펴서 그 여자를 보았었습니다. 여자여 고개를 들라. 지금이라도 돌이 날라올 것을 생각하고 겁을 내어서 머리를 잔뜩 안고서 엎드리던 여자가 서서히 서서히 손을 내리고 겁에 질린 눈으로서 그는 주위를 살펴 보았었습니다. 여자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오른편을 보았었습니다. 왼편을 보았었습니다. 온 주위에 자기를 칠려고 하는 돌멩이만 너즐번하게 흩어져있지 그를 정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주를 바라고 놀란 눈으로 말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 끄덕 하시면서 여자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은혭니다.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자기를 정죄하고 돌로서 죽이라고 아우성 치는 사람이 돌을 다 내번져 두고서 그들은 다 떠나가 버렸는데 그들을 내어 쫓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조차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고 말한 그 은혜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입자말자 그 여자의 마음속에 솟구쳐 오르는 감격과 감사의 눈물은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으며 절망에서 소망을 얻었으며 수치와 곤욕에서 다시 구원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이 여자는 황망히 일어났었습니다. 머리결을 바로 했었습니다. 그는 옷깃을 여미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틀림없이 예수님 앞에 큰 절 한번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일어나서 돌아가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을 베출어준 저 어른의 은덕을 인해서라도 나는 새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그는 그렇게 각오하고 그는 나갔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돌로 쳐서 사람을 변화시킬수는 없지만은 사랑을 베풀고 은혜와 용서를 베풀므로 사람을 변화시킬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간음하다가 잡힌 이 여자 앞에서 율법과 은혜가 대결했었습니다. 그 결과 율법은 은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떠나가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율법은 어떠한 한 사람도 의롭게 만들 수 없고 율법은 어떠한 한 사람도 살릴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약점을 드러내고 사람을 정죄하고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지만은 은혜는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고 구원하는 것이 바로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돌을 당신이 다 얻어맞은 것입니다. 이천년전 갈보리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는 모든 인생들이 다 당해야될 정죄를 당신이 다 당한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어린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빰에 맞고 침뱉음을 받고 얻어맞아 등이 터지고 창으로 찔리고 못에 찔리고 그 몸이 다 찢어지고 그 몸에 피를 다 흘리고 갖은 모욕과 처절한 고통을 다 겪으면서 우리 인간들이 율법을 범하여 지은 죄악을 하나님 앞에 다 청산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예수앞에 나와서 우린 은혜를 받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고 인생을 재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누구를 불구하고 모두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의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내가 은혜로서 빚을 졌으니 나도 이제 남에게 은혜로서 갚아 줘야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율법으로 대할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율법은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합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때묻은 것 잘못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거울만 들고 다니면서 야! 못난 너 얼굴 좀 봐라 못난 너 모습 좀 봐라 너는 죽어야 마땅하다 하지말고 거울로서 우리의 잘못이 보이거들랑 그다음에 물통을 들고 댕기면서 잘못된 것을 씻어줄 수 있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죄만 하지말고 은혜로서 용서하고 갚아주는 우리들이 되야될 것인 것입니다. 은혜없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올바르게 맺어줄수 없습니다. 정죄의 율법으로 자식의 잘못된 것이 드러났었으면 이것으로 경고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따뜻한 은혜의 사랑으로 그 물통으로 물로서 씻어줄줄알고 앉아줄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남편이 오히려 앉아주고 씻어주어서 변화시켜 주어야 됩니다. 남편이 못났더라도 성경말씀대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셨으므로 여러분 성경말씀에 아내는 남편에게 주님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 하셨습니다. 못난 남편이라도 복종하고 순종하고 잘돌보아주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면 사나운 남편이라도 그 마음이 변화되고 그 아내에 대한 감사함이 뿌리가 깊어서 결코 그 아내를 떠나서 이중생활을 하거나 등돌리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큰 은혜로서 남편을 감싸주고 아주 일일이 남편의 이론을 달고 논쟁을 해서 이기고 약점을 들추어내고 율법으로 남편을 심판하고 발로서 잡아서 문질러버리고 이렇게 하고도 남편이 그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할 것을 기대한다면은 이것은 사막에서 장미꽃을 구하는거와 한가지인 것입니다. 법은 필요하지만은 그러나 법으로서 사람을 변화시킬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간에 생활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내 이웃이 아무리 밉고 못났을지라도 그것을 율법으로 심판하고 정죄해서 그 이웃이 여러분을 사랑할줄 압니까? 심판하고 판단하면 그 이웃도 또다시 여러분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잘못한 것이 있는 것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만은 그러나 큰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기도해주고 품어주면 그 상대방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변화시킬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마라 보라 지금이 은혜받을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은 지금 이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약점을 드러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은 찾아 오셔서 보라 이 은혜의 시대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게 지금이 은혜받을만한 때다. 지금 내가 구원을 베풀기를 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상처 투성이인 인간이라도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십시다. 예수님만이 여러분과 나를 죄에서 용서와 의로 원수된 자리에서 하나님과 화목으로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질병에서 고쳐주시고 저주의 가시틀에서 구출해 주시고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시민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 율법앞에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지금 서게되면 우리 자신은 만신창이입니다. 하나님앞에 감히 얼굴을 들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짓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아니고는 우리는 살아남을자가 없습니다. 천국갈자가 없는 우리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은혜를 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율법의 거울이 있는곳에 그것을 씻어주는 물통의 은혜를 항상 우리가 예비하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부모 자식간에 부부간에 이웃간에 내 아버지 율법으로 살아가지 말고 은혜로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은혜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변화받지 못할 사람이옵니다.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사람은 영원히 지옥불에 갈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율법의 채찍으로도 변화시킬수가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지금이 은혜받을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인 이때에 예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은 우리들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도 이웃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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