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by 삶의언어 posted Aug 21, 2024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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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가 약할 때 그때에 곧 강하리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위대한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약 60%을 친히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빼어내신 종 사도바울 선생도 그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그 몸의 가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 워츠만리는 젊었을 때 몸이 굉장히 약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의사들은 그을 보고 삼십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워츠만리는 열렬한 성도로써 하나님께 많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저녁에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 꿈에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 가운데 큰 바윗돌이 가로막아서 배가 그만 그 바윗돌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그 바위 때문에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그는 배에서 꿈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배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런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워츠만리야. 내가 이 바위를 강에서 옮겨주랴. 강물을 더 부풀게 해서 돌 위로 배를 타고 건너가게 해주랴. 그래서 그가 잠시 생각한 후에 돌을 옮겨 버리는 것도 좋지만 강물이 부풀어서 강물위로 물이 흘러버리면 배를 타고 건너갈 수 있지 않겠냐. 그래서 하나님 강물이 부풀어서 이 돌위로 물이 넘치므로 그 위로 배가 건너가게 하옵소서. 그러자 강물이 자꾸 자꾸 높아지니 돌이 물 속에 파 묻쳐 버리고 배는 그 위로 지나가고 그래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내 병이 몸에서 옮겨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 몸속에 굉장히 임하여서 그 신유의 능력으로 이병을 그냥 극복해 버리고 가게 도와주소서. 그 결과 삼십때 그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이 굉장히 임하여서 일평생 몸이 약했었으나 늘 그 몸을 극복할 힘을 얻었고 그는 중국 선교에 크나큰 공을 세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간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첫째로, 가시가 축복이냐. 가시냐. 하는 것입니다. 가시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극복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만일 예수그리스도 은혜를 받지 않고 그대로 인간의 힘으로 가시와 대항한다면 이 가시가 우리를 찢고 파멸시키는 저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조 진주를 만드는데 가보면 여러분 놀랄 것입니다. 진주조개에 핀센트를 가지고서 거기에 모래알을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진주는 그 혀 밑에 모래알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모래가 아파서 그것을 부드럽게 하기위해서 시일이 걸려서 자꾸만 모래를 쌉니다. 한겹 싸고 두겹 싸고 세겹 쌉니다. 이렇게 자꾸 싸다보면 모래가 혀를 걸리는 것이 없게 되기 때문에 부드러워지므로 진주조개가 견딜 수 있고 그것은 나중에 아주 값진 진주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시련과 연단이 여러분과 나를 진주로 만듭니다. 우리가 천국 올라갈 때 천국은 그 문이 열두 진주 문으로 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진주 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연단을 받아서 변화 받은 사람만이 그 문을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황금 문이 아니라 진주 문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연단과 고통을 받은 성도들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모두다 진주와 같이 되어서 하나님 성전에 들어갈 것을 예건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학교가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서 논두렁을 지나 먼길을 걸어서 학교를 갔는데 그 여름철에 어린아이들은 장난이 심하지요. 가면서 고추 밑을 바라보면은 잠자리가 고추 속에서 나옵니다. 잠자리가 고추 속에서 머리만 나와서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 잠자리 고추를 찌어서 내어주고 가곤 했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보면 그 잠자리 옆에 개미가 잔뜩 붙어서 파먹고 있어요. 그 잠자리는 날지를 못합니다. 이상하다. 내가 쉽게 나오게 하기 위해서 찌어주었는데 왜 날지를 못할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잠자리는 반드시 고추의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서 죽을 애를 쓰고 나오려고 하면 말미암아 그 몸에서 기름이 나와서 날개를 기름으로 적셔주기 때문에 고추 밑에 나와서 햇볕 밑에 있으면 날개가 쫙 펴져서 비단 같은 날개를 가지고서 공중을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쉽게 날고 쪽 찌어져 버리면 날개가 오그라져 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햇볕이 비쳐도 날개가 펴지지 않기 때문에 날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수많은 시험과 환란을 하나님께서 통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신앙생활 가운데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서 우리가 거기에서 신앙의 날개를 활짝 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쉽게만 하나님께서 도와주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자라지 않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역경의 가시가 나를 찌를 때 인간의 허약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사 형통하고 좋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큰 소리도 하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큰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려워지고 역경이 다가와서 가시로 찌르게 되면 인간의 허약함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허약하고 못난 줄을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을 듣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대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 좋고 편안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역경에 부딪쳐 가시가 찌를 때 그때 하나님을 찾고 어디에서, 어디에서 힘이 그렇게 나오는지 주일만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 철야기도도 계속 나오고 금식기도원에도 발이 닿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이것은 역경이 가져다주는 가시가 우리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심으로 기도하게 되고 그리고 믿음이 부쩍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자매님 한분의 간증에 평소에는 믿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교회에 왔다갔다했는데 남편이 간경화증에 걸렸어요. 그래서 그렇게 튼튼하던 남편이 고목 쓰러지듯이 집에서 쓰러져 버리고 병원에서는 나을 약이 없다고 하니까 그 자매님 하는 말씀이 어디에서 그런 신앙이 생겼는지 마음속에 불같은 욕심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므로 교회, 철야기도도 빠지지 않고 부르짖고 기도원에 가서도 부르짖고 기도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이여 우리 남편을 살려주소서. 하는데 전에는 그토록 교회 다녀도 믿음이 작았는데 그만 남편 역경 때문에 그 믿음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말씀이 사모되고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하고 하는데 하루 저녁에 잠을 자는데 새벽 4시 정도쯤 꿈에 빨리 기도원으로 올라가라.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침밥을 해 놓고 부랴 부랴 기도원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목숨을 받쳐놓고 하나님이여 우리 남편을 간경화증에서 고쳐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눈에 환상이 본 듯이 뚜렷이 나타나면서 예수님께서 남편에게 안수를 하면서 너희 남편이 죽지 않고 5월에는 일어나고 6월에는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용기 백배해서 내려오니까 남편의 증세가 그때로부터 좋아지더니만 5월이 되자 그는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고 6월부터는 사업을 시작하여 이제는 사업이 잘된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환란 당하기 전에는 신앙이 없더니만 환란을 당하자 어디에서 그렇게 신앙이 생기는지 불길 같은 신앙이 마음속에 쏫구쳐 올라오더라.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란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기도와 믿음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약해질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그리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와서 우리 모든 허약함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 환란과 고난이 없이 모든 것이 평안한 것은 실제로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태어날 때부터 묘지에 갈 때까지 만사 형통하고 편안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종족이기 때문에 영이 죽어있으므로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를 못합니다. 환경에서 무서운 압력이 다가와야 비로써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는 그 마음이 있어야 성령께서 그들에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시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환란과 고난이란 우리가 예수를 찾게 되면 그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의 동기가 되지만 예수님을 찾지 아니하면 파멸하는 저주의 가시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란과 고난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지 말고 그때일수록 더욱 깨어지고 더욱 회개하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면 그 덕분으로 여러분이 도저히 알지 못하는 영적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런 것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두 번째로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저에게 왜 삼박자 축복을 증거하느냐고 공격을 하는데 그것에 대한 변명을 오늘하고 싶습니다. 물론 삼박자란 말이 별로 신통하고 좋은 말 같지 않지만 그 보다 좋은 말이 없기 때문에 제가 삼박자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전임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이것은 어찌할 수 없이 저의 생애 속에 하나님께서 이를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그가 자란 환경과 심신에 부딪친 체험이 그의 사상과 인격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삼박자 축복을 찾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러한 환경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해서 밀어 넣어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무리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태어나게 하는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고 자기 부모가 자란 환경을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이 저희 어머니 아버지 아들로 태어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울주군 삼난면 조동리 31번지 산장이었습니다. 이것은 남부에 보면 공동묘지가 꽉들어차고 동쪽에는 동부 공동묘지, 서쪽에는 서부 공동묘지, 공동묘지로 둘러쌓인 그 가운데 신지를 개발해서 과수원을 세웠고 그 주위는 숲이 울창하니까 밤마다 와서 여우가 공동묘지에서 웁니다. 정말 마음속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여우는 와서 새롭게 무덤을 만들어 놓으면 그 무덤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시체를 먹습니다. 그러면 여우가 소리내어 울면 밤에 자다가도 오금이 오그라듭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별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 노는데 마음속에 늘 깊은 충격이 일어난 것은 제가 구경하는 것은 동부 서부 남부에서 죽은 시체를 내고 오는 그런 구경인 것입니다. 매일 초상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것만 보고 그런 소리만 듣고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저도 잠자리를 잡아서 죽이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잠자리를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큰 마음에 충격을 준 것은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공동묘지에 와서 무덤에 엎드려서 아침부터 저녁 해 질때까지 우는 소리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유행병이 유행하고 나면은 이제는 화장을 합니다. 화장을 만들어서 나무 숯으로 장작위에 나무 숯을 올려 놓고 지푸라기를 얹어 놓고 지푸라기를 집을 지어놓고 불을 올려놓으면 그 어머니가 와서 말을 합니다. 애가 너희 집에 불났다. 빨리 나와라. 그 어머니가 통곡하며 부르짖는 소리, 그것은 정말 간장을 녹혔요. 그 어머니가 얼마나 애절하게 애야 너희 집에 불났다. 빨리 나와라. 나는 매일 그것을 보고 어릴 때 자랐기 때문에 내 영혼 속에 어찌할 도리가 없이 인간은 죽는구나 인간은 하나의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나요. 왔다가 그렇게 갈 바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면 인간이 이 세상에 죽고 난 다음에 어떤 영원한 세계가 있겠는가. 저는 누가 가르쳐 주기 전에 어릴 때부터 배속부터 그러한 간절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러므로 제가 나중에 예수그리스도로 전도를 받았을 때 의문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속에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몰렸습니다. 아마 저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기 위해서 마치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내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했을 때 저는 아무런 반응 없이 내 영혼 속에 깊이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은 그런 어린 시절에 하나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영혼이 잘되는 길을 계속 추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잘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한참 자랄 때 6.25 사변이 일어나서 그 충격으로 우리 국민들의 가난과 괴로움은 말로 형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1958년 제가 첫 개척을 시작했을 때 그때 가난도 뼈저린 것이었습니다. 비는 세고 돗자리는 썩어가고 먹을 것은 없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속에서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하니까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종종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 천당이 그렇게 좋으면 그 천당에서 우리 사는 여기에 조금만 가져다 달라고 그럽니다. 나중에 죽어서 그 좋은 천당 가기 전에 이 땅에 살 동안에 조금만 가져다 주고 우리를 예수 믿으라고 하지. 지금은 조금도 안주면서 장차 천당만 좋다고 하니 그 천당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그럽니다. 거기에서 저는 심한 충격을 받고서 성경을 새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연구하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성경의 진리를 건성으로 알때는 이 세상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야 천당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니 아브라함은 많은 시련을 받아서 그가 깨어졌으나 그러나 그가 물질적으로 궁핍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은과 금과 짐승 떼가 풍부하여서 거부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보다 더 거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상속을 다 받았고 한해 농사도 백배나 축복을 받아서 마침내 성경은 말하기를 창대하고 거부가 되었다고 말했으며 야곱은 그가 거느린 짐승이 한떼 두떼 바다의 모래떼 보다 많았으며 동방에서 제 1인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다 많은 인생의 환란을 겪어서 불순종의 인생이 깨어지고 인본주의가 깨어지고 신본주의로 변화되는 과정을 체험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헐벗고 굶주리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냐고 물을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상의 하나님이요. 아곱의 하나님이요. 곧 전능하신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신학 성경에 왔어도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대게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요.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범사에 잘되는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먼저 환경이 바꿔지기 전에 마음부터 바꿔져야 한다. 마음이 열등의식과 좌절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들어차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못산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망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다. 우리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넘치도록 능히 하시리라 하시니 생각을 바꾸자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했으니 마음을 긍정적으로 넓게 열자 그래서 그 진리를 힘차게 전파했고 사람들이 마음이 범사에 잘된 믿음을 받아드려서 신념을 가지고 일어서게 되자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여 주셔서 처참한 환경에 하나님의 은혜가 입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난 것을 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히려 지금 돌이켜 볼 때 그때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환경가운데서 자란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범사에 잘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을 수가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 줄 알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늘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고 했는데 이것은 병과 허약과 고통과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입니다.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나서 세상 떠날 때까지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허약하여 병과 늘 싸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홍역을 앓고 그때로부터 몸이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그런 다음 폐병을 앓아서 쓰러지게 되고 폐병에서 낳고 난 다음에도 목회를 하면서 심장병으로 심장이 약해서 고생을 했고 급기야는 1974년 설교하다가 강당에서 쓰러지고 난 다음에는 신경쇠약증이 걸려서 끝없는 고통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목회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할 수 없이 가시를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다가 보니까 신유의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저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가 나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음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 하나님께 의지해서 힘을 얻어 그 병과 연약을 극복할 수가 있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찌할 도리 없이 자기의 자라난 환경과 그 운명이 삼박자 축복을 자구 깨닫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영원히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이와 같은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아서 영원히 고통속에서 범사의 처절한 가난과 어려움속에서 질병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의 마음속에 신앙의 근본이 되고 하나의 신앙의 신념이 될 수 밖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사도바울 선생을 보면 셋째로, 이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 곧 가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어찌 기막힌 역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찬미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말씀하기를 자기는 자랑할 것은 강한 것은 없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 왜 자기가 약할 때 자기가 약하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해야 되어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이 한 장은 지극히 약하지만 그 약한 종이를 강한 강당 같은데 붙여놓으면 손가락으로 뚫어지지 않습니다. 약한 종이는 손가락으로 쉽게 뚫을 수 있지만 이 것을 나무에 붙여놓으면 손가락이 닳도록 뚫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선생은 나는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 내가 약할 때 강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강한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나는 하나님의 강하므로 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능력 받는 것을 오히려 자랑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을 그를 욕하고 침을 뱉고 능욕할 때 그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능욕 당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되니까 오히려 능욕 당한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나는 궁핍을 자랑으로 삼는다. 세상에서 내가 궁핍하게 될 때 나는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영광가운데 풍성하게 주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궁핍하게 된 것을 자랑하게 되고 나는 핍박을 자랑한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이 핍박에서 나를 발길로 찰 때 하나님은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 귀한 진리를 깨닫고 온 세상이 다 나를 핍박할 때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부은바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또 말하기를 나는 곤란을 자랑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곤란에 부딪칠 때 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편안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곤란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므로 그리고 또 하나님을 더 알게 되므로 나는 오히려 곤란을 기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이 같은 가시를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찬란한 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회개하고 깨어지게 하며 고통은 우리를 기도하게 되며 문제는 우리로 하나님의 해답을 얻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약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는 인생 행로에 모든 도전에 능히 응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므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그 은혜를 말미암아 그 역병을 화초동산으로 변화시켜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만군의 야웨 우리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알지 못할 때는 환경에 편안함만 구했지만 우리가 알고 난 다음에는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나이다. 내 하나님 아버지시여 어떠한 환경에 처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는 족하다고 성경에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깨어져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므로 이 은혜를 통하여 모든 역경을 이길 수가 있고 선으로 변할 수가 있음을 감사하옵나이다. 그러므로 내 하나님 아버지시여 내 인생에 햇빛비치는 찬란한 날도 있을 뿐 아니라 바람 불고 비 오는 수선한 날도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우린 인생이 참으로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회개하게 도와주시옵시고, 깨닫게 도와주시옵시고, 깨어지게 도와주시옵시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믿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서 영적으로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세상 끝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때 하나님 앞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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