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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by 삶의언어 posted Aug 31,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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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에게는 차별 없이 생로병사의 근원적인 권한이 있습니다. 그 위에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시련과 권한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권한이 인간을 절망케 하거나 망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가 이것이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더 위대한 승리를 얻게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장사지내버리고 말 무덤을 팔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 인 다윗이 기록한 고난에 대한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고백은 우리들에게 값진 지혜를 얻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뼈아픈 역경과 고난을 다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불멸의 왕이요, 하나님의 사람이 된 다윗의 신앙 간증은 오늘 우리에게 큰 빛을 던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올까요.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노래한 이 시편을 통해서 그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렇게 노래했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는 종종 지나게 됩니다. 큰 사막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고 작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건너야 될까요. 여러분과 나는 모두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완악해지고 인간 중심으로 서고 그리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의 포로가 된 아담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신령한 세계로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을 때는 이제 길들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침 야생의 동물들을 데려다가 집안에 키우려면 그것을 길들여야 하는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길들임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의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남으로 말미암아 자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편안하고 안정할 때는 자기가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서 고통과 괴로움이 자기를 휩쓸어 칠 때 자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란 자기가 깨어지고 더 밝고 맑고 환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생명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을 받으려 할 때 축복을 받으려고 할 때 그 그릇이 적으면 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납니다. 그릇이 크면 더 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납니다. 자아가 얼마나 많이 깨어지고 죽느냐 거기에 정비례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광명과 생명으로 나아올 수 있는가, 비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그것이 결코 자기에게 해가 되지 아니하고 유익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인 지팡이와 막대기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배가 고플 때 밥 생각이 나고 병들었을 때 건강을 찾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 때 그는 사망에서 건져 줄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서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등 따스하고 배부를 때 누가 기도합니까. 평안할 때 누가 하나님을 찾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체험하게 되고 깊은 신앙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제게 와서 이런 간증하는 것을 들었었습니다. 그는 만일 고난 당하지 않았었으면 결코 예수를 믿지 않았을 거란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될 아무런 필요성이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서 사랑을 받고 재물도 넉넉하고 다 생활도 좋고 평안하기 때문에 전혀 그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에 불치의 병이 들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해봐도 확실히 중대한 병이 들렸는데 의사는 병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급해져서 불안 가운데 있을 때 이웃에 있는 구역장이 와서 예수를 믿어보란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가 만일 불치의 병에 들리지 않았었으면 예수를 찾을 이유가 없는데 그는 불치의 병에 걸렸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경험을 통해서 교회 찾아 왔었습니다. 교회에 찾아오자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 몸을 나을 거이라는 큰 확신이 오고 열흘동안 금식 기도하라는 그러한 마음에 충격이 생겨서 그 길로부터 시작해서 열흘동안 금식하고 간절히 기도한 결과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불치의 병에서 고침을 받고 오늘날엔 우리 교회 구역장까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자기가 과거에 고난 받은 것이 오히려 유익이라. 만일 고난 받지 않았었으면 예수를 믿지 않았을 텐데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감사함을 드렸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믿음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지혜와 총명과 인간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 하며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둘러쌓임?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이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을 해도 안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신을 던져 버리고 자신을 벗어나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게 되자 고난은 극복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으로 둘러 쌓임을 당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쌓을 수 없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말하기를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아주 답답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늘을 쳐다봐도 답답하고 땅을 내려다 봐도 답답합니다. 이럴 때 그는 인간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버려버리고 인간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어나므로 답답한 일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절망은 극복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체험하는 놀라운 동기가 된다고 바울 선생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아니한다고 또 바울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역사를 보면 핍박을 당할 때 교세가 더 왕성했었습니다. 평안할 때는 나태해집니다. 누구든지 사람이 등 따스하고 배부르고 평안하면 나태해지는 것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의 바람이 다가와서 고통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눈물을 흘리면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와서 어떠한 핍박보다도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서 오히려 핍박당하므로 말미암아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깊은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되어서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더 큰 은총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히려 핍박의 사망의 골짜기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생명에 들어가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계속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거꾸러뜨림을 다하는 것은 절대로 망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나 기독교회를 거꾸러뜨리려고 오늘날 역사를 통해서 보면 그 많은 임금들과 왕국들과 권세아들이 대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의 권세나 세상 권세가 아무리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역사는 증명하기를 그들의 도모가 다 헛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천년의 기독교 역사상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려고 한 불의의 세력과 세상의 권세는 오늘 역사의 페이지 속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이천년동안 푸른 나무같이 무성하고 세계 땅 끝까지 ??하게 살아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사람은 거꾸러짐 같지만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우리를 거꾸러뜨리는 나라나 불의의 권세를 멸하고 예수 믿는 성도와 교회는 더 푸르러 청천하고 왕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오히려 어두워야 밝은 빛이 드러나고 그리고 추워야 따뜻함이 드러나며 병들었을 때 건강함이 드러나듯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비로소 우리 인간이 수단과 방법과 능력과 지혜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가 깨어져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세와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시편 기자?(저자?)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손해가 나고 해를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 나는 해를 당하지 아니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는 하나님을 내가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지팡이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내가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막대기인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므로 말미암아 이적은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힘을 벗어버리고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전지전능 무서 부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그 능력과 그 인도함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체험하게 되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내게 크게 유익이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개인의 생활에 혹은 가정에 우리의 사업에서 종종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우리는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무덤을 파버리고 그곳에서 파멸돼 버리고 말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여기에 다윗과 같이 사도 바울처럼 오히려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좋지 않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은 좋은 그대로 좋게 해 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좋지 않은 것도 종국적으로 변해서 좋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과거의 생활을 돌아 볼 때 우리에게 행복하고 좋았던 일보다도 우리가 시련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고난의 사망의 골짜기를 지났던 것이 오늘날 돌이켜 볼 때 나에게 얼마나 더 유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떠날 때 자기의 교만을 거기에 남겨놓고 자기의 고집을 거기에 버려놓고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불신앙과 불순종을 그곳에 다 죽여 버리고 하나님의 더 큰 생명과 광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여러분과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취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이란 자기의 운명에 처해서 어떠한 마음의 태도를 취하는가 그것이 그 운명에 부딪친 자기의 자신 무덤을 파게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크나 큰 발전과 축복과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에 다윗은 말하기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게 노래했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 우리에게 원수가 많이 다가옵니다. 내 집안 식구가 내 원수라고 해서 혹은 집안 식구 가운데서 나를 헐뜯고 언제나 결점을 찾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원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 가운데 원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 가운데 혹은 또 우리 국가적으로 보면 우리는 이북의 공산주의 같은 사람이 우리의 원수로서 우리를 시시각각으로 호시탐탐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영적으론 원수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육체적으론 어느 곳에 가나 원수들이 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원수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와 원수와의 사이에 ???? 같은 싸움을 계속해야 될 것인가. 어떠한 태도로 원수를 맞이해야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를 해롭게 하고 파멸시키려고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원수가 오면 우리는 크게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될 수만 있으면 원수가 없으면 좋겠다. 원수를 피하던지 원수를 박살을 내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해준 계시는 위대합니다.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은 원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을 밝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당장 원수를 벼락을 때리거나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키거나 유행병을 통해서 다 멸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오면 원수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목적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원수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보다 나를 우리편을 강하게 만들어 주셔서 원수가 스스로 와서 무릎을 끓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네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복 빌어주라. 왜냐 원수는 내가 갚는다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다. 너희는 오늘날 가만히 있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싸우시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잘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시고 힘있게 만들어 주셔서 우리를 굉장히 강하게 만들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우리를 치러왔다가 그만 그곳에서 쇠미해서 스스로 무릎을 꿇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실까요.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 서 상을 베푸신다고 말했었습니다. 여기에 상이란 것은 밥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수성찬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여러분 우리를 굶주리게 하고 영양실조에 걸리게 하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헐벗고 굶주려서 멸망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올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차리고서 원수보다 잘먹고 잘입고 또 힘을 얻게 만들어주신 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원수가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원수가 있는 것이 났습니다. 원수가 없으면 진수성찬도 없거니와 원수가 오면은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기회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원수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여러분을 그 원수보다 더 잘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더 심통이 터지게 만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기에 이런 숯불이 머리에서 타 내려가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므로 친구들 가운데도 원수가 있는 것이 괜찮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우리 대한 민국은 머리 위에 공산주의 같은 원수가 있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수가 있기 때문에 ...을 차려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에 원수보다 더 낫게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절대로 망하지 아니 할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우리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 산업, 과학에 눈부신 성장을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 우리 위에 소련과 중공과 이복공산주의란 원수를 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수들은 우리를 호시탐탐하고 우리를 망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여러분 대한민국에는 일천만의 기독교신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예루살렘이 돼 있는 것입니다. 이 원수들이 우리를 멸하려고 하나 하나님께선 아시아의 예루살렘인 이 대한민국을 오히려 들어서 우리에게 축복을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우리 전체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게 하려므로 원구들이 우리를 보고 속이 타서 못 견디게 만들어놓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히려 원수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원수가 오거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여 이제 또 진수성찬을 먹게 되었습니다. 핍박이 다가오고 환난이 다가오고 원수가 오리에게 주먹질을 하거든 이제는 진수성찬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원수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위대한 기회가 올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대하고 마음을 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 아니라 원수가 오면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신 즉 능력을 베풀어주시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붓는 다는 것은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옛날에 기름을 부어서 임금으로 만들어주시고 기름 부어서 제사장으로 만들어주시고 기름 부어서 선지자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기름 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고 하나님이 능력을 주어서 자기 동료보다 높이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위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원수보다 높여주는 것입니다. 원수보다 더 능력도 많고 지혜도 많고 권세도 많게 만들어 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예수께 무한히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동료들보다 높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원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원수 오는 것 별로 그렇게 하찮지 않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아 원수보다 확실히 높아지므로 그 결과 원수 앞에서 우리 삶의 잔이 넘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인 생활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육신의 생활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모든 생활의 잔이 넘치므로 내가 마실 뿐 아니라 남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오거든 여러분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을 해주십시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어주십시오. 왜냐하면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수 갚는 방법은 원수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놀랍게 축복을 해주고 힘을 주어 여러분을 높여줌으로 말미암아 원수가 여러분의 발등 상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기 다윗이 말하기를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고 해서 자기의 평생의 회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젊었었으나 이젠 나이가 늙었다 그러나 내가 젊어서 늙을 때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의인의 후손이 결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일평생을 살아오면서 이와 같은 마음의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서 하나님 믿고 살아와 보니 자기의 발걸음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왔으나 결국 하나님은 선을 주셨다. 로마서 8장 28절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좋은 것, 하자는 것, 슬픈 것, 기쁜 것, 건강할 때, 병들 때, 잘살 때, 못살 때,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말하기를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이 나를 따른다 젊었을 때도 따랐고 나이 먹었을 때도 선하심이 따른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인자하심이 또 나를 따른다 늘 죄짓고 불순종하고 불신앙에 빠졌으나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오래 참고 돌보시고 거두어 주셨다 나의 평생에 한번 있는? 선하심을 베푸시고 다른 면에서는 인자하심을 베풀었다. 이러므로 나는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보고 지금을 돌이켜 볼 때 주님은 결과적으로 선하시고 인자하신 좋은 하나님이었다. 나는 좋은 하나님 속에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나의 미래의 기대는 무엇인가 다윗의 미래의 기도는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세상 삶은 모래집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전에도 여러분께 말씀한 적이 있지만 어린 아이들이 봄철에 해변 가에 원?을 가서 땅따먹기를 합니다. 선을 그어놓고 난 다음에 주먹, 보, 가위를 해서 서로 땅따먹기를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성남?이 붙어서 니 땅이다, 내 땅이다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밀치고 땡기고 멱살을 잡고 물고 입으로 깨물고 그럽니다.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것은 니 땅이다, 내 땅이다 소유의 투쟁입니다. 그럴 때 선생이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후루루~ 호루라기를 불면서 "얘들아, 이제는 노는 시간이 끝났다. 돌아가자. 앞으로 나란히!" 그러니까 전부 다 줄을 서서 앞으로 나란히 했습니다. 털털 손 털고 옷 털고 섰습니다. "바로 앞으로 가!"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가니 뒤에 남은 것은 니 땅, 내 땅, 모래땅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니 것이다, 내 것이다 이렇게 싸웠던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니 것, 내 것이라고 우리가 물고 찢고 싸우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 호루라기를 붑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을 쫓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서 니 땅, 내 땅, 모래땅 남겨놓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곳에서 우리의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다윗과 같이 우리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우리는 현실적인 눈에 인간의 이해관계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영원을 두고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영원한 천당을 얻은 우리들은 영원한 마음의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서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나 그렇지 않으면 원수를 만날 때 조금도 두려워 하지말고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여호와의 영원한 집에 거하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크고 작은 사망의 동굴을 지납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지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며 우리를 파괴하는 원수들이 다가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살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사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계시하신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그 권세와 인도를 체험하고 감사하게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원수가 다가오면 진수성찬도 차려주고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 받아서 더 능력이 커질 것을 기대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추호라도 위축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헤서 인간적인 힘으로 대결하다가 파멸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를 믿는 자는 종국적으로 돌아보면 아버지 주의 선하심이 나를 따르고 인자하심이 나를 받들어 주고 결과에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해주는 거이므로 내 아버지 하나님시여 이 당에 그렇게 악착스럽게 붙잡고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어느 때 주님이 부르실 지라도 영원한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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