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고난 당할 때

by 삶의언어 posted Jul 25, 2024 Views 7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 당할 때"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 이쁘고 재롱둥이 딸을 암으로 잃은 부형님의 비탄에 빠진 절규의 편지를 받아 보았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 어린 생명을 구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기도했으나 그 어린 생명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말로써 도저히 위로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절망의 심려 속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짓눌린 가슴을 부여안고 울부짖게 됩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다가올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미워하실 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시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꼬리를 문 질문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만 할까요? 도 왜 기도해야만 할까요?

첫째로, 고난 당할 때는 우리가 기도해서 회개할 때인 것입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고난이 오면 자기 자신의 죄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 때는 죄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 고난이 다가와서 고통의 심령에 빠지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내가 하나님께 무슨 죄를 범했는가 하나님께 이렇게 벌받을 무슨 짓을 했는가 이것을 당연히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평안할 때 하나님을 거역한 죄들을 기억나게 해서 이 죄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알고도 불순종한 죄 이러한 것을 회개하게 되며 쾌활할 때 더욱 하나님을 열심히 찾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몇 주간 전에 심히 아파서 드러누운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팠던지 27년의 목회생활에 주일교회에 나오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몸이 아플 때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무슨 죄를 지었는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불순종했는가, 내가 어떤 면에서 게을러졌는가, 이것을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둘째 제껴놓고 내 영혼이 하나님께 혹시나 병들지 않았는가, 이것을 살펴보게 되고 하나님 성령께 내 마음을 비춰주기를 간절히 구하게 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심령의 잘못됨을 치료하는 이러한 기간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러므로 평안할 때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여러 가지 잘못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는 반드시 이것을 회개하고 우리 영혼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에게 반드시 평안의 날만 좋다고 생각할 수만 없는 것입니다. 평안의 날만 다가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역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지 않은 이 모든 행동을 그대로 덮어놓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의 영혼이 병들게 되고 급기야 어느 한 순간에는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흘러가서 영원한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 속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에게 맑은 날만 주는 것이 아니라 비오고 폭풍우 이는 고난의 날도 허락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스스로의 생애를 깊이 돌이켜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평안한 날만 우리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고난의 날이 다가올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인간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은 우리가 즐기라고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감당 할 수 없는 괴로움을 가지고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괴로워할 때 비로소 통회하고 자복하며 자기의 단단하게 굳은 위선이 다 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난의 채찍에 맞을 때만 우리는 진실한 헌신을 하나님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합니다. 세상의 탐심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하나님이여 주의 뜻을 좇아 살겠습니다. 고난의 채찍에 맞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발걸음을 돌이켜서 하나님 뜻을 찾아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물질을 드려서 시간을 드려서 이젠 몸을 드려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새로운 마음의 결심을 하게 되며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서 이 이상 더 방황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살겠다고 헌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통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모든 탐욕을 벗어버리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이 되어서 주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선악간에 삶의 깊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고난 당할 때 회개치 않고 오히려 완악해져서 반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결과는 파멸에 처하고 말지마는 고난 당할 때 깨어져서 회개하면 고난은 오히려 큰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위대한 종 하나님이 택해서 사용하는 사람 치고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해서 위대한 약속을 둔 아브라함도 75세에 갈데아 우레 땅을 떠났지만 25년의 생활동안 그는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해서 나이 100살이 되어서야 변화 받은 사람이 되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삭도 죽음의 고난을 통했었으며 야곱은 22년 동안 외 아저씨 집에서 머슴살이를 통하여 수많은 고난을 통하여 깨어지고 얍복 나루터에서 환두뼈가 어르러지는 체험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잉태기 고매하고 죄를 짓지 않았던 요셉 같은 사람,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하여 종으로 팔리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시위대감옥에 갇히기도 하여 13년 동안 짓밟히고 깨어졌으나 그 고난을 통해서 그는 변화를 받아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시고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 치고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이끌어주는 사람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불순종하고 불 신앙하며 죄를 짓는 것이 그 몸에 뼈에 사무쳐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어도 그의 행실과 습관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을 따라가던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는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해서 잘못이 다 타지고 변화 받아서 새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즉시로 그 사람에게 찬란한 태양만 비추어주고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 사람을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한 면의 즐거움도 주시고 다른 면에서 고난의 풀무 불을 통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물을 통하게 하는가 하면 또 불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주시는가 하면 고난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점점 성장하고 자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하나님께 찬양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찬양을 드리고 고난받는 날에는 앉아서 생각하고 회개하며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근신하는 기회를 삼는 이와 같은 성장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고난 당할 때 감사를 드릴 때인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든 환경적 축복을 범상히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많은 축복들 찬란한 태양, 아름다운 공기, 맑은 물, 오곡백과, 사랑하는 가족 이와 같은 것을 그대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미국의 시사 주간지를 봤는데 거기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아이더스라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려서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는 그런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청년이 고백한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음의 날만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니 얼마나 인생이 아름다운 것을 자기는 느꼈다. 물 한 컵을 마시더라도 이것을 빨리 마시지 않고 입에 넣어서 이것을 물맛을 다 생각하면서 마신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이 세상을 떠날 것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을 다시는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물 한 컵 마시는 것도 음미해 가면서 그 맛을 깊이 기억하면서 마시고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깊이 깊이 음미하면서 경치를 바라보고 숨을 한번 들이키는 것도 공기의 감사함을 깊이 뼈저리게 느끼면서 숨을 쉰다. 자기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세상에 얼마 남지 아니해서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남은 시간 주어진 이것을 한껏 음미해보고 즐기면서 떠나고 싶다. 그렇게 기록한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든 환경 적인 축복이 그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난이 다가오게 될 때 그것이 거저 주운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야 밥의 감사를 깨닫게 되고 병들 때야 건강의 귀중성을 깨닫게 되며 집을 떠났을 때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식사할 때마다 이 밥 먹는 감사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건 왜냐 우리는 일정 말기에 그 어려움을 통했고 6.25사변의 배고픈 것을 통했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 밥 톨 하나 떨어져도 반드시 주워먹고 그릇에 밥풀이 하나 붙어도 반드시 띄어 먹습니다. 그러면서 애들 보고 말합니다. "너희들 이 밥 한 톨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느냐 농부들이 얼마나 땀을 흘려서 이 밥을 만든 것이며 이 밥한 톨이 없어서 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러니 이것을 감사하게 먹어라." 아무리 타일러도 걔들에게는 감사가 다가올 리가 없습니다. 고난을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밥 먹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금식기도원에 데려가서 금식을 시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금식을 시키면 밥의 귀중함을 알아요. 우리 둘째 몇 년 전에 금식을 일주일 시켰더니만 나중에 울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죽거들랑 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밥의 귀중성을 알아서 죽으면 밥이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다른 기도는 별로 할게 없으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나는 것은 옛날에 제가 군에 입대해서 논산 훈련소에 가서 훈련받을 때 였었습니다. 그 당시에 훈련소 훈련이란 것은 굉장히 괴로웠었습니다. 환경도 좋지 아니하고 그리고 대단히 사납게 훈련을 시키고 밤낮으로 얻어맞고 그래서 저녁에 오면 애들이 내무반에 들어와서 엉엉 웁니다. 모두다 집에 편지를 쓰는데 그렇게 효자들이 될 수가 없어요. 편지마다 절절이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의 슬하에서 사랑 받았던 것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저도 그 때 내가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 사회 생활할 때 그리고 우리 성도들하고 같이 있을 때 얼마나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을 주신 것은 맑은 날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들은 감사할 것을 잊어버립니다.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으며 울지 않는 새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은 감사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맛이 있고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옛말에도 귀한 자식 여행시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면 아무리해도 자기 집 아랫목처럼 편하지 않고 자기 손수 모든 것을 다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 고생을 하고 나면 집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부모의 손길이 얼마나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난을 통하여 범사에 감사한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할퀴고 지나간 가슴에는 없는 것에 대한 불평보다도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나 자기 환경 가운데 없는 것을 발견하고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자기 남편에게 없는 그와 같은 능력을 바라보고 불평을 하고 자기 아내에게 없는 여러 가지 성품을 발견하고 아내에 대한 불평을 말하며 가정에 부족한 것을 보고 불평하고 사회와 국가에도 없는 것을 끄집어내어서 불평을 합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부정적인 것, 어두운 것, 이런 것을 파헤쳐 가지고서 원망, 불평을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 매스컴을 보십시요. 매스컴의 기사내용을 보면 좋은 것은 별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사회의 잘못된 것, 사람의 생활에서 잘못된 것, 수치스러운 것, 치부, 이러한 것을 즉각적으로 끌어내어서 그것을 기사화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것을 듣기를 좋아하고 그런 것 보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그 마음속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심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할 때 그러한 것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할 때는 없는 것을 가지고서 불평, 원망, 탄식 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지금 남아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 현재 있는 것 때문에 그것을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이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고 치료시키는 중대한 하나님의 약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옛말에도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몸에는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쓰디쓴 체험으로 오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위대하게 살 수 있도록 변화시켜주는 하나님의 양약인 것을 우리가 알고 고난 당할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을 감사로 받아들이면 이것이 우리에게 소화되어서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재료가 되지마는 원망과 탄식으로 고난을 대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독초가 되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파멸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똑같은 고난을 통하여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고난을 당하여 더 못돼지고 더 파괴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써 그 고난을 당하는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는 기도와 믿음을 배울 때인 것입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분도 고난 당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고난은 기도의 채찍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난 우리 성도들을 많이 봅니다. 27년의 세월동안 목회 해오면서 나는 고난이 얼마나 우리 성도들의 신령한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교회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점점 도가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제일 첨 어려울 때는 주야로 주님께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이여 한번만 살려주면 목숨을 바쳐 한평생 충성하겠다고 그러고 난 다음에 나중에 하나님을 축복을 받아 좋아지면 주일예배에 나오고 수요일 나오고 금요일 철야 나오던 사람이 금요일 철야도 떨어져 나가고 수요일 예배도 바쁘다고 나가고 주일날도 어떤 때는 바쁘다고 왔다 갔다 하고 나중에는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 무엇 때문에 교회만 자꾸 가냐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채찍을 들어서 한 대 때리면 "아이구 나 죽네," 고함을 치고 그 다음에는 주일예배를 두 번, 세 번 수요일 나오고 금요일 철야를 나오고 보따리를 싸고 기도원에 줄달음질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별 수 없이 사람들은 고난 당해야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불란서의 무신론자였던 보르테르 그는 문예 부흥가였으며 계몽주의자였었습니다. 그는 극렬하게 기독교를 반대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의 팬을 가지고 100년 이내에 지상에서 기독교라는 미신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강연을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다가 배가 파선이 되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다 배의 널 쪽지를 때어 물에 떠 있는데 허우적거리다가 한 사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배의 큰 쪽지 하나를 타고서 물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옆에 가서 자기도 몸을 얹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저 그 널쪽을 탄 사람이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구조선을 보내셔서 구조해주소서"하고 기도하는데 이 유명한 기독교 비평자인 보르테르는 기도를 안하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한참 기도하다가 말고 먼저 그 널 쪽지를 차지한 사람이 "여보시요, 이 널 쪽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요 당신 여기에서 내 널 쪽지에 배를 걸치고서 살려고 하거든 기도하시오. 안 그러려면 나가라. 기도 안하고 옆에 있으니까 내 기도도 안나온다. 이 널 쪽지에서 나가라. 그러나 나와 함께 살려거든 기도하라." 그러니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요 기독교 비평자였던 보르테르가 하나님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이란 별 수 없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 기도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보르테르의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그를 살려줄 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 오늘날 그의 저택인 불란서에 있는 집은 불란서 성서 공에 성경 창고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무신론을 지어내던 그 집에 성경이 잔뜩 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르테르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 당하게 되면 별로 잘난 사람 없이 모두다 하나님 앞에 깨어져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때에 진실한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건지는 능력을 베풀어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서 신앙이 깊어지는 영화로움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어려움을 당해야 응답 받는 기쁨도 얻을 수가 있지 아무런 어려움도 안 당하면 응답 받는 기쁨이 없습니다. 저는 기억을 하지마는 옛날에 제가 종로4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거기에 부흥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또 수많은 사람의 병도 낫고 또 저의 간증설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아는 저명한 목사님 한 분이 내게 와서 안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수 내용이 참 희한합니다. "목사님 내게 안수해서 나도 폐병 걸려 안 죽을 만큼 고생하다가 살아나도록 안수 기도를 좀 해 주십시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합니까?" "목사님 나는 아주 편안한 집에서 태어나서 절대로 물질적인 고생은 한번도 안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그 다음 아버지의 간구 해서 신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강단에 설 때 하나님이 내게 이런 것 해줬다는 할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성경에 배운 것밖에 없고 너무 행복한 삶만 살았기 때문에 간증거리가 없으니 내 선교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나는 죽어서는 안되겠고 안 죽을 만큼 폐병이 걸렸다가 하나님 능력으로 낫도록 그렇게 안수기도를 좀 해주십시요. 그래야 내가 무슨 능력 있는 설교를 하지 안 그러고는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건지시는 손길이 임할 때 그 신앙은 불꽃같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뼛속까지 믿음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기적을 믿게 되고 주님이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주를 믿겠다는 욥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나오는 김경순 자매님은 예수를 안 믿는 불신자였었습니다. 가족 전체가 예수의 예 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가다가 차에 부딪쳐서 쓰러졌는데 병원에 가서 들여다보니까 팔의 관절이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여기에 인공관절을 만들어 넣어야 되는데 그걸 만들어 넣으면 이 팔은 자라지 않고 몽당 팔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인공관절을 만들어 넣었다가는 병신이 되겠으니 안되겠다고 그래서 물리치료 받는데 가서 보니까 넉달 동안 치료를 해도 이것은 뻐퉁 팔이 되고 말지 이 팔은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인공관절을 해 넣을 순 없고 물리치료를 다니면서 평생에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죄없는 자식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 죄가 있으면 내가 죄가 있지 부모가 죄가 있지 왜 자식에게 죄가 있습니까? 아이구 하나님이여 내 죄를 용서하시고 이 자식을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의 예 자도 모르면서 고난 처하니까 입에서 기도가 술술 나옵니다. 그 기도하는 소리를 병원에서 왔던 우리 성도가 들었습니다. 듣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됐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냐." "아니요, 예수 믿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답답하면 기도 안 하는 사람 누가 있느냐" "그러면 응답 받을 분에게 가르쳐 주겠다." 그래서 곧장 그 집에 따라와서 그 곳에 있는 구역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역장이 와서 예수께로 그 가족을 인도하고 난 다음에 안수하여 기도를 해주었는데 구역장 안수를 받고 난 다음 물로 찜질을 하는데 그만 팔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놀래 가지고서 이야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그때부터 물리치료 받는 것을 그치고 구역장님 집에 가서 계속 안수를 받은 결과에 두 달만에 박살이 났던 관절이 깨끗이 나아서 마음대로 이제 움직이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을 배우고 고난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결과로 온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리고 말하기를 이제 돌아보니 자전거가 차에 부딪쳐 내 아들 관절이 부러진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관절이 부러졌기 때문에 우리는 온 가족이 천당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수많은 경우에서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고 기적을 체험하고 위대한 삶으로 들어가는 인물이 된다는 것은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고난은 심신에 무서운 타격을 가져오는 시련이지마는 그 누구도 고난 당하기를 원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굳세고 부드럽고 이해심 있고 헌신적인 인품은 고난의 용광로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불평, 원망이나 반항적이 되지 말고 깨어지고 항복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고난의 불에서 나오게 할 때 금 같은 사람으로 변화돼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생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써 값 주고 산 사람에게는 고난이 다가오게 될 때 뜻이 있어서 보내는 것이요 이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서 인내하고 변화된 인격이 되면 이것은 세상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을 주고 살수 없는 위대한 인격자로 변화시켜 주고 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무식한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원망과 불평부터 먼저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 불평하고 자기 운명과, 환경에 대해서 도전하고 대적합니다. 바울아, 바울아 니가 가시철을 뒷발질하기에 고난스럽다고 말한 것처럼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반항을 하면 가시철을 발길로 차는 것이 되어서 피투성이가 되고 더 파멸할 것밖에 없습니다만 고난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를 통하여 연단을 받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기림을 받는 위대한 변화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데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축복 받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고난 당할 때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우리들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좋을 때는 찬양 드리고 어려울 때는 생각하고 회개하고 감사하며 믿음을 배우는 고난의 학교를 무사히 통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를 닮는 사람들이 되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진실로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연단 받은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40725-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