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나는 왜 여기(지구)에 와 있나

by 삶의언어 posted Jul 30,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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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사명없이 바람부는대로 사는 불쌍한 인생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부르심과 목적 알면
주님께 칭찬받고 성공하는 삶 살게 돼


 제가 회의참석차 어느 호텔에 갔을 때 로비에서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아주 반갑게 서로 포옹을 하고 등을 두드리고 오래간만이라고 서로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대뜸 “야∼ 오랫만이다. 그런데 여기는 왜 왔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 여기 회의가 있어 왔어 너는 왜 왔어?”라고 물으니 “그저 은퇴하고 어영부영하다 차나 한잔 마시러 왔지”라고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습니다. “너 여기에 왜 왔지?”라는 말이 “너 지구에 왜 왔지?” 그 말로 들렸습니다. “나는 사명이 있어 왔어. 교회를 세우고 세계선교를 하려고, 너는 왜 지구에 왔지?” “나 별 볼일 없이 그냥 왔다갔다하며 세월을 허송하다 여기까지 왔지”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가치도 모르고 떠도는 구름 같이 떠다니는 삶은 비극입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존 맥스웰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간단히 구분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과 비전’이 명확하고, 성공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 지금만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명확히 압니다. 목표의식이 분명할수록 인생은 선명해 집니다. 삶의 목적도 의미도 모른 채 흐르는 물 위의 나무토막처럼 의미없는 삶은 종국적으로 비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 삶의 원인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원인이 됨을 알아야 우리 인생의 목적과 방향,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에서 아메바를 통해서 세포분열을 해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적인 논리를 따라서 살다가 죽는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모든 것이 우연히 이뤄진 것입니다. 우주도 우연히 자연도 우연히 인생도 우연히 진화해서 이뤄졌다고 하면 인간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허무하기 짝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는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들었고 그의 기르는 백성이요 그가 기르는 양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명명백백하게 맑고 밝고 환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기르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요, 가치요, 의미가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생물에서 세포분열로 우연히 인간이 되었다면 우리는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죽은 나무토막이 물에 넘실거려 떠내려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과학자들도 자연 과학을 연구한 결과 세계 존재의 근원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원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때에 내 생명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뿌리를 알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담대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우연히 된 것도 아니고 사탄의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도 아니다. 너는 내 것이다’ 이와 같은 확실한 뿌리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레이 프리처드 목사가 쓴 ‘생각을 뛰어넘는 기도’라는 책에는 믿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레이 프리처드 목사는 자신의 교회 성도 한 사람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가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80세가 넘은 노인에게 폐와 심장으로 통하는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하여 강력한 혈액 용해제를 투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약은 아주 강력해서 잘못하면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보자 그 환자는 노구의 손으로 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을 보니 힘이 나네요.” 그에게 상태를 묻자, 그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 주치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입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주를 믿으니 생명이 위급해도 내 주치의가 예수님이시니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확신히 생기고 평안함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1981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총을 맞아 암살당할 뻔했을 때, 그의 담임목사는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레이건 대통령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저에게는 구세주가 계시잖아요”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숨이 가빠도 그의 마음에는 구세주가 있으니 예수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위기의 순간에 평안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삶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 때 죽음도 담대하게 대면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셔서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확을 갖게 하기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오늘 여기 왔습니까? 우연히 온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보내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공원 청소부가 해가 기울자 서둘러 청소를 마치고 공원을 떠나려고 하는데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청소부가 벤치에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서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 왔어요?” 그러니 “그것도 잘 몰라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그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허허. 이 사람보게. 지금 공원문을 닫아야 하니 어디로든 가세요” “글쎄요 그것을 알았으면 벌써 여기서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공원 청소부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 이는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였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이러한 질문은 바로 우리 삶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 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원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온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누구요?”라는 물음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여기서 뭣하오?”라는 물음에는 “주를 위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여기에 있소” 또 “당신은 어디로 가요?”라는 물음에는 “천당으로 가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를 만드신 이유

 우리들 대부분이 자녀를 낳아서 기릅니다. 왜 자녀를 낳습니까? 사랑하고 행복하고 장래 소망을 위해서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고생스럽습니다. 똥, 오줌 가려내고 온갖 못된 짓하는 것을 견뎌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기른다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또 자녀에 대한 소망이 헛될지라도 장래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자녀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부간의 사랑의 유대도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 23장 18절에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장래소망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장차 천국을 상속으로 주시려는 목적 때문에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 말씀을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같이 못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 보혈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우리를 가만히 보고 사랑하여 머리를 끄덕끄덕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박수를 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복 받은 자들에게 창세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정성들여 예비한 새나라와 새땅과 새예루살렘을 상속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실 때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2대 계명인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살면서 울며 불행하라고 보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라고 보내셨지 슬프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고통을 당하라고 보내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어떠하든지 우리를 슬프게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사명과 달란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낼 때 모두다 달란트를 주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달란트가 무효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면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사용해서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없이 인간의 꾀를 내어서 사는 것은 종국에는 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27장 1절로 2절 말씀을 보면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인생의 집을 짓는데도 하나님 없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집을 지으면 지어 놓아도 헛수고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고 고통스러워 집지은 목적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라를 세워 그 나라가 아무리 부강해져도 소용이 없는 것은 독재자가 다스리므로 고통과 괴로움이 끊일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부귀도 영화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지켜지는 것입니다. 명예와 부귀와 영화와 권세가 오면 그것이 더 인생을 타락하고 부패하고 절망적이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패하게 만들고 하나님 없는 권력은 부패권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부귀 영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속적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일생을 살아서 70, 80년을 살고 죽을 때 뭘 가지고 가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한 것입니다.

 건축자가 집을 짓는데 집주인의 설계도대로 집을 짓지 않고 마음대로 지어 놓으면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허물어 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 설교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다가 인생이 파멸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기술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한국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를 원해서 공업학교 기계과에 들어가서 기계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폐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는 의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최고의 의사가 되어 나도 살고 남도 살리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열심히 의학공부를 했습니다. 그 길도 하나님의 길이 아니어서 막혔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생각도 아니하고 꿈도 꾸지 아니한 목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계획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로 50년의 세월을 목회했는데 돌아볼 때 얼마나 하나님이 신기하고 능력있게 저를 이끌었는지 내 생각한 것보다 더 달리, 나의 계획한 길보다 완전히 다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러시아의 소설 가운데 ‘외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샀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가난한 사람의 목적이었습니다.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을 모아서 좋은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너무 좋아서 외투를 입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그만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것입니다. 외투를 빼앗기자 그의 인생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외투 한 벌을 사기 위해서 여태까지 고생을 하고 애를 썼는데 외투를 빼앗기고 나니 삶의 목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쓸쓸히 병들어서 죽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된 이야기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잠시있다 사라지는 인간의 길을 따라 간다면 너무 허무하고 맹랑한 외투 한 벌로 말미암아 인생을 망치는 이러한 사람처럼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세상에 보낼 때 모두 다 달란트를 줘서 보낸 것입니다. 한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 혹은 다섯 달란트라는 재능을 주어서 보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 때 하나님은 다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로 15절에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나님이 재능을 주셨는데 재능을 사용해야 발전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은 열 달란트를 만들었고 두 달란트는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만 한 달란트 준 사람은 땅에 파묻어 놓은 것입니다. 사용함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면 점점 발전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 되어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근육도 자꾸 사용하면 근육이 튼튼하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면 근육이 시들어 지는 것입니다.

 벤저민 리턴버그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만 살아가는 것은 실상 일종의 자살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쓸모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우리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큰 목적이든 작은 목적이든 내 사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면 하나님이 일을 많이 했다고 축복해 주시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 다섯 달란트 받아서 열 달란트 만든 사람이나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 만든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사명에 착하고 충성된 것을 바라봤지 많이 돈벌었다. 적게 돈벌었다. 그것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세계 최대의 교회를 목회했다고 “내 아들아 세계 최대의 교회를 목회했으니 상받으라” 안하십니다. 내가 큰 교회를 맡을 수 있도록 달란트를 주었는데 그 달란트에 착하고 충성되게 봉사했느냐 게으르고 나태하게 했느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는 하나님이 그 능력을 주었으니 큰교회를 할수밖에 없습니다. 제 능력으로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직 내가 충성되고 착하게 하나님의 달란트를 사용했느냐 안했느냐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맡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일을 할만하기 때문에 달란트를 주신 것이요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어떤일을 맡았던지 착하고 충성되게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결과는 큰일을 한 사람이나 적은 일을 한 사람이나 하늘에 가서 영광을 똑같이 나누고 똑같은 칭찬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생에 사명없이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사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부르심과 목적을 알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그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서 주님께 칭찬받고 영광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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