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by 삶의언어 posted Jul 07,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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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봉건주의적 사상이나 사회제도에서는 어린아이란 어른 사회의 한 종속물이요 개체적인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성인들이 옛날 어린아이로 자란 시절은 대개 이와 같은 사회 풍토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에 자라는 어린이들은 단지 어른들의 종속물이란 위치를 벗어나서 귀중한 개체적인 인격자로서 법률적, 사회적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벌써 수천 년 전부터 어린이에 대하여 봉건사회에서 생각하는 것과 판이하게 다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 127편 3절로 5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벌써 성경에는 수천 년 전에 자식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급이요 또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가 제정한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야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이 범죄 하는 죄악에 관해서 생각해보고 우리가 크게 회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어린이라고 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이만 어린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를 어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는 벌써 뱃속에 잉태되어서 10주간에서 12주간이 되면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마음대로 활동을 하고 배 안에서 움직이며 또 손가락을 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호적에 이름이 오르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 완전한 한 개체의 생명체를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있는 어린아이를 생각하지 아니하고는 이 어린이 주간을 축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극적이게도 전세계 걸쳐서 뱃속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해방운동이란 미명하에 처참한 태아살해가 진행되는가 하면 인구 증가를 억제한다는 미명하에서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기 때문에 역사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길이길이 지탄받고 있습니다만 뱃속에 있는 어린 아기는 수 천만 명이 살해를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의 양심에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범죄를 부모가 아무런 마음에 가책 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1984년 9월 10월 합본 호에 있는 데스튼이라는 미국 잡지에서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태아가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매일 4천200 태아가 낙태란 이름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매 20초에 한 태아가 살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1973년 1월 22일 미국 대법원에선 낙태가 허락된 이후로 1984년까지 무려 천 500만 태아가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화장터에서는 하루에 4천명의 태아를 불로 태워서 거름무더기에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어느 국제 전쟁에서 하루에 4천명이 죽어 갔다면 세계적인 뉴스가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천명의 태아가 매일같이 화장터에서 잿더미로 변합니다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일본 사람들 중에 군, 관, 민 할 것 없이 전쟁으로 죽은 숫자는 600만 명입니다. 긴 전쟁에 처참한 싸움을 해서 600만 명이 죽었습니다만 전후 40년 동안 일본에서 낙태로써 죽인 태아는 3천만 명입니다. 전쟁동안에 죽은 600만 명에 대해서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전후 40년 동안에 어머니 뱃속에 자란 태아가 3천 만 명이나 죽었건마는 거기에 대해서는 세계 양심이 암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이미 낙태법이 허용돼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낙태해서 수백만의 태아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슬프게도 통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통계를 내어서 말 할 수 없습니다만 음성적으로 수천, 수만의 어린이들이 낙태 당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난자와 정자가 합쳐진 순간에 생명은 이미 시작한 것입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지 인간이 마음대로 그것을 중지시킬만한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마다 행하는 어린이날행사에 앞서 살 권리를 가진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를 중지해야 어린이날 어른들이 축하하는 이 위선의 행위를 우리가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말할 필요 없고 믿지 않는 사회까지도 우리는 강력하게 어린이 살해에 대해서 저항하고 일어나야 될 것인 것입니다. 나는 많은 부인들이 자궁암에 걸려서 내게 기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 부인들의 거의 대다수가 두 번 세 번 낙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는 자기 편리를 따라서 어린아이의 생명을 죽이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자궁암에 걸려 가지고서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자기 생명은 살려 달라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낙태란 것이 그렇게 아름다운 이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낙태의 현장을 너무나 많이 본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를 여러분 어머니 뱃속에서 떼어낼 때 그대로 나오는 줄 압니까? 가위를 넣어 가지고서 다리는 다리대로 자르고 팔은 팔대로 자르고 목은 목대로 잘라 가지고서 그 다음 집게를 넣어서 골을 바싹 깨어 가지고서 머리 파편을 하나씩 끄집어냅니다. 거름 무더기처럼 병원뒷마당에 쌓아 놓습니다. 수거 차가 와서 그것을 거두어 가서 불태워 버립니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을 뻔뻔스럽게 죽이고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옛날 소돔 고모라의 죄가 하늘에 닿았다고 한다면 오늘의 살인죄는 천지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어린아이가 생기기 전에 오늘날 발달된 의학지식을 가지고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모르겠지마는 일단 어린 생명이 뱃속에 생긴 이상은 절대로 그의 생명을 중지시킬 권리가 부모에게는 없습니다.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살인죄의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옛날 알지 못한 세대는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했다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깨닫고 안 세대는 결단코 태아를 죽이는 그 살인죄를 여러분 범치 말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둘째로,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 다행스럽게 낙태가 되지 않고 천우신조로 태어난 우리 애기들 이 애기들을 우린 어떻게 키울 것입니까?
저는 오늘날의 어린이들을 보고 포식세대의 어린이들이라고 부릅니다. 왜 포식세대라고 하느냐. 우리가 자랄 때는 전쟁과 전후복구시대에 자랐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배고픔과 헐벗음과 고통 속에서 자라났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매일같이 밥상에 밥이 올라올 때 자동적으로 내 마음속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아, 밥을 먹을 수 있구나' 내가 우리 애들을 보고서 "얘, 밥상에 밥을 얹어놓고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밥 한 톨이라도 흘리지 마라" 그러면 "그걸 모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합니까? 우리만 밥 먹나요? 우리 동포들이 다 먹는데" 포식세대에서는 밥 먹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옛날에 옷 한 벌 입으면 그걸 가지고 365일을 입지 않았습니까? 옷 입는 거 신발 우리 어른들이 자란 시대는 전쟁과 전후세대의 고통과 복구시대에 자랐기 때문에 정말 수많은 결핍증에서 자라났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어떤 결심이 생기냐 하면 내 자식만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공부 잘시키고 잘 키워야 되겠다. 이것이 과도하게 되어 가지고서 오늘날 어른들의 과보호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이 온실 속에서 자라는 화초와 같이 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부모가 적극적으로 보호합니다. 이래서 절대로 어린아이에게 정신적인 부담도 안 주려고 하고 육체적인 힘든 일도 시키지 아니하고 책임감 있는 일도 시키지 않으려고 하고 모든 것을 부모가 다 맡아 버리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어찌하든지 편하게 자라게 합니다. 이러므로 인내력이 어린아이들이 무척 약합니다. 체력도 약하고 정신력도 약해서 조그만한 일을 당하면 견디지 못하여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자살합니까? 조그만한 일이 생겼다고 학교에서 시험에 들었다고 자살하고 부모에게 꾸중들었다고 해서 자살합니다. 인력이 그와 같이 약해지고 만 것은 과보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쉽게 탈선합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만 집을 나갑니다. 요사이 애들 키우는 게 얼마나 겁이 나냐 하면 조금만 심한 꾸지람을 하면 보따리 싸 갖고 나갑니다. 우리 집 애들도 나에게 여러 번 협박했습니다. 내가 좀 강하게 꾸짖으면 나보고 직접 말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나간다고 하십시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하면 "나가도록 내버려둬라. 나가 가지고서 얼마나 배고프고 춥고 괴로운 것이 어떤 것을 한번 배워 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론 나가면 어찌할까 싶어서 내 기도실에서 "아버지 하나님 나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어릴 때 어디 감히 나간다고 말합니까? 부모님께 종아리를 맞고 피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나간다는 말 한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쉽게 탈선한 어린이들 이것은 정신적으로 약하게 길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부모로써 참으로 좋은 자식을 기르려면 인내력을 주고 쉽게 탈선하지 않도록 독립정신이 있는 강한 자녀를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너무 과보호하지 마십시요. 배고픈 것도 좀 알아야 돼요. 추운 것도 좀 알아야 됩니다. 힘든 일도 시키고 책임 있는 일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강한 인격자로써 자기 자식을 기를 줄 알아야 그 자식이 장차 이 험한 세상에 나가서 험한 도전에 응전하여 훌륭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한사람이 내게 신앙상담을 왔는데 내게 와서 손을 비비고 몸을 틀고 말을 못해서 머뭇거립니다. 왜 그러냐니깐 "목사님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날 좀 살려 주십시요." "왜?"상당히 부모님이 부자고 잘사는 집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학교 갔다 공부하고 오면은요 우리 어머니가요 날보고 시간 정해서 피아노 치러 갑니다. 그 피아노 애를 쓰고 하기 싫어도 치지요. 그러면 그 다음엔 피아노 끝나면 그림 그리는데 가라고 합니다. 거기 가서 열심히 그림 그리고 오면 그 다음엔 웅변학원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웅변학원에서 웅변을 하면 그러면 또 태권도 하러 가라고 합니다. 못살겠습니다. 목사님. 죽고 싶어요. 피아노도 보기 싫고 그림도 그리기 싫고 이제는 웅변도 하기 싫고 태권도도 하기 싫습니다만 안 하면 어머니가 눈에 불을 켜고 호통을 합니다. 손을 잡고 끌고 갑니다. 이러니 나는 한가지도 잘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목사님 우리 어머님한테 얘기해서 한가지만 하게 하던지 그러면 안 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날 부모들이 자기가 하지 못한 탐욕을 그 자식들에게 희생 제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피아노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웅변도 하고 태권도도 하고 노래도 하고 온갖 거 다 하라고 합니다. 자기가 못하는 것을. 이러한 부모의 탐욕을 버려야 됩니다. 어린아이 때는 더 많은 시간을 주어서 더 많이 자고 잘 먹고 씩씩하게 뛰어 놀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너무 공부하라, 공부하라 스트레스를 눌러 가지고서 중학교, 고등학교, 그 다음 대학교 들어가면 이제는 해방이다 이제는 공부하지 말고 데모나 하자. 그래서 뭐 공부하고 전혀 관계없고 대학생활과도 관계없는 일을 데모한다고 뛰어 나옵니다. 그것은 뭐냐 오랜 세월동안 속에 쌓여 있는 스트레스가 견디지 못해서 폭발하는 겁니다. 진짜로 열심히 공부해야 될 대학시절에 가서는 공부를 안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기의 탐욕적인 이상의 희생 제물로써 어린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강박관념을 주어서 정상적인 인격자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과욕을 버려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 오늘 조목사가 이젠 공부시키지 마라고 했으니까 공부하지 말고 놀기만 하라." 이것은 아닙니다. 학생이 해야 될 본분만 지키고 난 다음에 그 이외의 부모의 욕심으로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파탄에 이르지 말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만든 오염된 사회 속의 어린이를 보십시요. 어린이들이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 모두다 TV는 아이들을 상품화하지요. 학교주변엔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사실 우리가 어린이주일이라고 해서 이곳에서 어린이들 크게 위해주는 것같이 나라가 떠들썩하지마는 단지 하루뿐이고 그 이후에 우리 국가 정책적으로나 사회 제도적으로나 진실로 어린아이들이 마음놓고 정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우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완전히 상품화하는 이러한 사회 속에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내어 던져 이 오염 속에 살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고 싶은 것은 정말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좋은 부모인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아야 돼요.
우리들은 아직 좋은 부모가 되기도 전에 부모 수련을 받기도 전에 벌써 자식부터 먼저 넣어서 어떻게 자식을 기를 줄도 모르고 어리벙벙한 가운데서 자식들이 커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어린아이를 진실로 인격적으로 대해주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어릴 때 언제 우리도 어른 되어서 사람 대우 받아볼까? 그런 생각했지요. 저도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내가 어른이 되어 가지고서 나도 사람 대우를 받고 살아볼까 하는 그런 심정이 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하나의 어른의 종속물로써 개체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로써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하고 폭력으로 억압만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협박과 폭력으로 다스림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우리가 어린이를 키울 때 그것은 하나의 언약하지만 주먹을 쓸만한 힘은 없지만 재정적인 힘은 없지만은 완전한 인격자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협박과 폭력으로 다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할 때마다 저 자신의 심각한 양심의 고통을 느낍니다. 제가 1969년도에 여의도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너무 그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통스럽고 심신의 타격이 많아서 정신적인 안정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는 우리 집사람하고 말다툼도 많이 하고 손찌검도 하고 그때 처음 제가 맏아들을 낳았는데 우리 희제가 자랄 때 여러 가지 집안에 부족한 것이 많으니까 불평이 많습니다. 뭐 먹는 것도 불평이 많고 입는 것도 불평이 많고 여러 가지 불평이 많아 칭얼거리고 짭니다. 저가 어른이라서 걔를 폭력으로 많이 때린 것이 지금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죄책감이 되고 후회가 됩니다. 울면 끌고 나와 가지고서 그것을 교훈적으로 때린 것이 아니라 분노로써 때렸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일이 우리는 절대로 없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는 좋은 모범이 되어서 어린아이를 길러야 됩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1살에서 6살까지가 거의 인격의 바탕이 형성되고 어린아이의 인생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은 12살 될 때 완성이 돼버립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어린아이를 집에서 기를 그 때가 어린아이 전체의 인생관이 결정됩니다. 뭐 교회학교에서 돌보아 주겠지, 학교에 보내면 선생이 애를 돌봐주겠지, 학교나 교회학교에서 어린아이의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지극히 적습니다. 부모님 슬하에 있으면서 어린아이는 흰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인격에 부모를 보고서 모범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부모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 어
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부모에게 배웁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하는 말도 부모에게 배웁니다. 나는 아버지보다도 엄마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내 여동생이 경상도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경상도 사람이니까. 내 매제는 황해도 사람입니다. 근데 그 집 애들 가만히 자라는 걸 보면 전부 경상도 말이에요. 서울에서 자랐는데 엄마하고 교제가 너무 깊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발음 악센트를 받지 아니하고 엄마의 악센트를 닮았습니다. 부모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 어린아이들에게는 깊이 인상을 줍니다. 저는 나이가 올해 50인데 저희 아버님은 이젠 75세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하나 놀라운 것은 저의 일거수 일투족에 너무 놀랄 만큼 조두천 장로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데 나는 어찌하던지 우리 아버지의 그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만 역시 우리 아버지의 말을 쓰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 내가 행동할 때, 조용기 인 데도 불구하고 내 속에 우리 아버지 조두천 장로님이 나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님께서 우리 일생을 우리 애들 앞에서 담배 피운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 아무도 담배 안 폈습니다. 술 드셔서 술 투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술에 손댄 적 없습니다. 방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그것보고서 방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방탕 안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님께서 성을 잘 냈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이 성을 다 잘 냅니다. 저도 어지간히 참을 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려고 하지 않고 '아, 아버지도 성내시더라. 그러므로 나도 성내도 괜찮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50이 된 한 남자의 생애 속에서도 그 아버지가 그릇처럼 살아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때 여러분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여러분과 나의 자녀들이 일생에 인격을 형성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부부간에 인정 있게 살고 부모와 자식간에 인정 있게 살면 그것이 자녀의 일생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아버지께 대항해 싸우고 '아하, 부부란 것은 때리고 싸우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자기도 결혼하면 막 때리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혹시 부부간에 사니까 안 싸울 수는 없지만 싸우고 싶거들랑 애들 재워 놓고 그 다음 문 채워놓고 조용한 목소리로 싸우십시요. 애들에게는 여러분의 그것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랑의 대화와 교제를 가지는 가정, 서로 이해해주고 동정해주며 고민을 나누는 따뜻한 가정, 이것보다 더 어린아이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러므로 부모와 자식간에 부부간에 언제나 이해하고 동정하고 고민을 나누는 이와 같은 협동적인 생활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이 모범을 배우고 그래서 자기들도 자기들의 이상향의 가정을 그렇게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대개 여러분 남자들 보십시요. 장가 들 때 자기의 아내를 어떤 사람을 찾느냐, 엄마와 닮은 사람을 찾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안 그렇다고 해도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자꾸 찾아요. 그리고 여러분 처녀들이 시집갈 때 누구를 모범으로 삼는지 압니까? 대개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안된 말이지마는 우리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이고 마누라 때리는 사람이니까 절대 그런 남자한테 시집 안 간다고 한 사람도 나중에 시집가고 나면 그런 남자를 택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잠재 의식적으로 자기의 남편을 자기 아버지의 형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교육시켜줄 그러한 마땅한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 인생만 살 것이 아니라 자식의 인생들도 사는 그 기반을 닦아준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저는 50 평생에 내 몸에서 책을 뗀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저는 어디 가더라도 포켓 속에 이렇게 외국어 공부하는 단어장 책을 넣어서 시간만 있으면 읽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평생에 책을 손에서 뗀 적이 없습니다. 내 어린아이 때부터 늙을 때까지 그저 밥상에도 늘 책 들고 계시고 침대 맡에도 책 들고 계시고 앉아도 책, 서도 책, 산보할 때 책을 읽으니까 '아, 인생은 책을 들고 다니는 거구나' 그래서 저도 천성이 그렇게 닮아 버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자녀들에게 좋은 모범과 좋은 습관을 주어서 참으로 훌륭한 인생을 살게 하는 훌륭한 부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여러분께 격려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굳세게 서도록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참 지혜와 참 지식과 참 판단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배드리며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저는 27년 동안 설교를 해오고 있습니다만 이제 마음속에 종국적으로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하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보다 더 지혜로운 말씀이 없으며 말씀보다 더 지식에 꽉 들어찬 말씀이 없으며 이 세상에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판단력을 받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을 확정하게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여러분께서 자식교육할 때 다른 것 크게 못 주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신앙을 주도록 전력을 기울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약숫물이 떨어지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여러분이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찬송 부르고 말씀을 나누면 그것이 인격 속에 깊이깊이 박히게 됩니다. 어린아이 시절의 습관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씀에 선 자녀들을 여러분 만들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우리는 모두다 후회 할 것이 없는 훌륭한 부모로서의 훌륭한 교육을 시켜서 자녀들을 이 세상에 내보내게 될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좋은 아버님이 되신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 2세 국민들을 올바르게 잘 키울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주님께서 축복하고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육신으로 태어났고 또 육신의 자녀를 낳았습니다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생활은 70이요 80년 살다가 죽어 버리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원히 버림받지마는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