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축복 받는 생활태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 살면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삶의 태도와 자세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순풍의 돗을 단 듯이 순경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또 역풍을 만나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한평생을 살면서 항상 순풍만 당하지는 않습니다. 또 항상 역풍만 당하지도 않습니다. 순풍을 당하는가 하면 역풍을 당하고 역풍을 통하는가 하면 또 순풍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과정에서 우리가 불행 대신에 행복을, 슬픔 대신에 기쁨을, 절망 대신에 소마을, 낭패 대신에 성공을, 패배 대신에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은 우리 마음의 생각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 그 자세가 여러분과 나의 운명의 갈림길에서 좌냐 우냐를 결정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마음의 자세 가장 중요한 일곱가지 요소를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역경과 순경 중에서 언제나 승리롭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분명하고도 영롱한 내일에 대한 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대도시에 가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그보다 더 산중에 들어가서 길을 잃어버리면 더 무서울 것입니다. 망망한 대양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대양에서 떠돌게 된다면 그야말로 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장 큰 절망은 인생항해로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난 다음에 그 영이 죽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전적으로 끊어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 대한 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인류는 이 세상에서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방향감각을 전혀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서 살며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시비 걸고 싸우고 죽이며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파멸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참으로 인생을 가치있게 살고 유유히 살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영원한 꿈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초청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적게 사랑하면 적게 주고 많이 사랑하면 많이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는데 얼마나 사랑하셨을까요?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가 없는 창조자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게 하셔서 그 살을 먹여주시고 그 피를 흘려 마시게 해 주셔서 우리의 일생의 죄악에서 우리를 씻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형언할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총애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호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꿈을 가지게 되고 예수 안에서 영원한 천국의 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한 삶의 찬란한 꿈을 마음속에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하늘나라의 꿈을 마음속에 소유하게 되면 삶의 방향이 뚜렷해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과 가치가 확실해지고 이러한 사람들은 동남풍이 부나 서북풍이 부나 그 폭풍우를 통해서 내 갈 길을 향하여 방향을 잃지 않고 나갈 수가 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늘나라에 대한 꿈을 분명히 가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세상의 꿈도 분명히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 삶의 의욕이 넘쳐나고 그 꿈이 있는 사람이 매일같이 발전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또 성취의 환희와 기쁨이 그 마음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다 영원한 꿈을 예수 안에서 가지고 그리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현실상황에서 우리의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야 이러한 사람이 마음속에 행복과 성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나 교만을 경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자기 이상의 가치를 부여해서 그래서 말이나 행동이나 생활에 건방지고 거만하게 행동할 때 교만이 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의 사탄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사탄은 원래 하나님께서 가장 영화롭고 가장 아름다운 천사장으로 만들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기름부은 자로 만들어 주시고 하늘의 모든 음악을 총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고 난 다음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서 그만 자기를 과대평가했었습니다. '나라고 하나님이 못되라는 법이 있느냐? 나보다 하나님이 무엇이 더 잘났느냐?' 그래서 자기를 과대평가해서 그때부터 거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방지게 행하고 거만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 보좌를 지극히 높은 북극에 높여서 하나님과 대등되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셔서 그를 하늘에서 쫓아내어서 만세에 버림받은 존재가 되게 하시고 사탄이 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교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패망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신만이 잘 낫다고 생각하는 이 거만한 행동을 우리는 언제나 조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린아이들이 학교 시험칠 때도 너무 자신만만하다고 하는 애들은 시험에 실패합니다. 시험을 칠 때도 겸허해야 됩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것도 겸허하게 대해야 합니다. 잘 아는 길도 내가 겸허하게 찾아나갈 때 실족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행복을 가져오고 성공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겸허한 마음인 것입니다.
옛말에도 전투에 이기고 난 다음에도 투구를 벗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도 보면 그돌라오멜 왕이 소돔과 고모라 왕과의 연합군이 일대 결전을 해서 소돔과 고모라 왕을 격파하고 그 군대를 괴멸시키고 그 모든 백성들을 남녀노소 다 사로잡고 재산을 다 탈취해서 의기양양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롯과 그 가족도 같이 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 자기 집에서 기른 자병 318명을 거느리고 야흠을 타서 들어갔었습니다. 그도라오멜은 그만 전쟁이 이기고 난 다음에 자신만만해서 교만해지고 만 것입니다. 투구를 벗어버리고 신발을 벗어버리고 주지육림에 빠져서 얼큰히 취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야흠을 타서 아브라함의 318명의 가신들이 공격해 들어가서 대군대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산산조각으로 격파해 버리고 그들을 완전히 괴멸시키고 그리고 모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과 재산과 조카 롯을 구원해 온 사건입니다.
이것은 교만해서 이제 자기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그런 자신감을 가졌다가 헛점을 보여서 파멸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겸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인생을 살아나가면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크게 성공해도 결코 헛점을 보여주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을 경계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탐욕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서 욕심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이 왜 타락했었습니까? 아담이 사람이 지음을 받았으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어디 건방지게 자기 분수를 넘어서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 분수를 주었었어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믿음의 분량을 주셨습니다. 그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아담은 사람으로 지음받았은즉 끝까지 사람으로 살아야지 왜 감히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래서 그만 하나님이 못 먹게 한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처참하게 버림을 받아서 그와 그 자손들이 영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쓰레기더미에 불타게 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비극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게 될지라도 언제나 지도자가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탐욕을 가질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전 유럽을 석권하려고 했고, 일본의 동조가 온 아시아 태평양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이 정해주신 나라와 국경이 있는데 그것 안에서 만족해야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법을 어기고 남의 나라까지 먹으려고 하다가 세계는 전쟁의 비극 속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이 무효화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욕심은 언제나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되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분수를 자세히 알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리 경제가 부흥하고 발전되었다고 하더라도 미국하고 견줄 수가 없고 일본하고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생활의 형태는 미국처럼 살려고 하고 일본처럼 살려고 한다면 우리의 생활의 분수를 넘은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 자기의 신분과 분수를 알아서 그를 따라 사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살아갈 때에 무리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의 한계를 언제나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을 자세히 계산해야 합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한 임금이 있어서 군사 1만을 가지고 자기에게 쳐들어오는 군사 2만을 가지고 오는 왕과 싸워 이길 계산이 있는가 해보고 이길 계산이 없거든 빨리 사자를 보내서 화해하라'고 말했었습니다. 또한 여기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한 사람이 망대를 세우는데 망대를 끝까지 세울 것을 잘 계산해 보고 그 망대를 끝까지 세울 자신이 있으면 세우거니와 그렇지 않고 무리하게 계산도 아니 해보고 망대를 세우다가 기초를 닦아놓고 난 다음 망대를 못 세움으로 모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치거리가 되고 욕거리가 되고 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어떠한 정도의 능력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떠한 분량의 믿음을 주셨는가? 그 분량에 따라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나아가야지 내 믿음의 분량은 제껴놓고 남이 하니까 나도 경쟁 해보자 남이 잘하니까 나도 시기해서 한번 해보자 그래서 자기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우리 가정생활에도 자기 수입이상의 능력으로 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합쳐서 수입이 50만원이면 50만원 한계에서 살아야지 70만원, 80만원짜리 생활을 하려고 하다가는 나중에 빚더미에 올라앉고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건강도 그런 것입니다. 건강할 때 자기의 분수를 지켜가지고서 그 한계를 넘지 말아야지 건강하다고 자랑해서 건강의 한계를 넘어서 계속 무리를 하다가는 결국 그 건강이 파괴되고 그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업도 그렇지요.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파탄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업이 잘 될 때일수록 건강에 주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잘 된다고 해서 갑자기 무리를 해서 은행빚을 내고 사채를 내어가지고서 무리하게 확장했다가 나중에 경기가 지나고 나면 파탄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에게 주신 능력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무리하지 않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무리함으로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정도 내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는가? 그 믿음의 분량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 '레마'를 받아서 해야지 하나님께로부터 '레마'를 받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 한계점을 알지도 못하고서 뛰어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면 그 능력주시는 그 한계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지 하나님의 능력을 넘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다섯째로 우리는 마음에 평안을 갖고 사는 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가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입니다. 평화가 없이 뿌리가 흔들려서 마음이 불안하고 가정의 평화가 없고 나의 생활에 평화가 없으면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는 진실로 평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모시고 순종하는 삶을 살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내 마음 가운데 평화를 빼앗아 가는 요소를 제껴야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빼앗아 가는 요소가 바로 마음속에 죄인 것입니다. 여러분 죄가 들어오고 불의가 들어오고 미움이 들어오고 원한이 들어오고 분쟁과 시기와 분노와 질투등이 들어오면 마음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믿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평화를 깨뜨리는 이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주님 앞에 십자가 밑에서 제하여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불의의 길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미움을 마음속에서 쫓아내고 분쟁을 해결하고 용서하며 서로 화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아깝지가 아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 속에 행복이 다가오고 건강도 다가오고 성공도 다가오고 축복도 평화 속에 다가오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우리들은 항상 기뻐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슬픔과 기쁨의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택할 수도 있고 슬픔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기쁨만 다가오는 일은 없습니다. 또 항상 슬픔만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뒤범벅이 되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기쁨을 선택할 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부가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아서 해변에 끌고 나와서 자기가 원하는 고기와 원치 않는 고기를 서로 분리해 내듯이 여러분과 나의 생활 그물 속에 걸려온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걸러낼 줄 알아야만 됩니다.
많은 경우에서 모든 사건이 어두운 면이 있는가 하면 밝은 면이 있고 슬픈 면이 있는가 하면 기쁜 면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을 선택하고 기쁨을 바라보고 기쁨을 생각하고 말하도록 마음에 결심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나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기쁨을 얻을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이 긍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밝고 맑고 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난 다음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게 되고 희망차게 되며 자기만 행복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게 되고 삶의 용기와 힘을 가지고 살게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의 힘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에 슬픔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속이 자동적으로 우울해지고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절망적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만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온 가족이나 온 이웃까지라도 슬프게 만들고 그 결과로 힘이 쭉 빠져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사라져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여 언제나 기쁨을 선택해야 됩니다. 성경은 그러기 때문에 우리보고 '항상 기뻐하라 다시 네게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로마의 감옥에 잡히어서 어둡고 캄캄한 칠흑같은 지하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위에서 뚜껑을 열어서 식사를 내려 주었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혼자 캄캄한 감옥 속에 그것도 철고랑에 채워져서 습기가 칙칙한 곳에 앉아있었습니다. 만일 바울선생이 그곳에서 슬픔을 택하고 절망을 택했더라면 그는 마음속에 견딜 수 없는 초조와 절망과 화병이 생겨서 정신이상이 걸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역사를 보면 로마의 지하감옥에 넣은 죄수 치고 얼마 있지 않아 모두다 정신병자가 되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선생은 그곳에서 빌립보인들에게 한없이 기쁨이 충만한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가장 슬퍼야 될 감옥 속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기뻐할 이유가 어디 있었습니까? 그가 슬픈 일을 생각했더라면 슬픈 일을 선택했더라면 수만가지의 슬픈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사업을 하다가 비록 지하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는 기쁜 일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생각했었습니다. 믿음을 생각했었습니다. 축복을 생각했었습니다. 평화를 생각했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감옥 속에라도 성령이 같이 계심을 생각했었습니다. 감옥 속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같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리고 아무리 인간이 감옥 속에 집어 넣어도 그 영은 자유로워서 마음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런 기쁜 것들을 생각하고 바울은 찬송을 불렀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했습니다. 아는 말로 기도했었습니다. 그는 방언으로 기도했었습니다. 그는 아는 말로 찬송했었습니다. 그는 방언으로 찬송했었습니다.
그는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말미암아 감옥이 천국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도 기쁘고 즐거웠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마귀의 역사도 받아들이지 않았었습니다. 그의 몸은 건강했고 그는 심리적으로 건강해서 정신병이 걸릴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는 기쁨을 선택하게 된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 크나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가 여러분과 내가 기쁠 것이냐 슬플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일곱째로 여러분 우리가 선택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삶의 원천으로 삼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죽어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가시가 나고 엉겅퀴가 남으로 그는 이마에 땀이 나고 손톱이 제껴지도록 열심히 인간을 의지하고 힘을 써야만 먹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인간은 인간의 자기 힘을 의지해서 오늘날 인간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과학을 발전시켜 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인간들은 완전히 인본주의가 되어서 인간이 스스로 돕지 아니하면 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열린 세계를 허락해 주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세계, 자연의 세계뿐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른 세계 천국을 우리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자연이나 인간의 세계 속에 눈에 안 보이는 천국을 하나님이 가져오셔서 이제 우리는 천국 사람으로써 천국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하나님이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법칙을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살면서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천지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의 야훼라 온 우주를 지으시고 우주를 소유하시고 우주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과 내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자원으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맺어주셔서 그 아들의 살을 찢어주시고 피를 흘려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이러므로 이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 영의 삶의 자원이 되고 내 마음의 삶의 자원이 되고 건강의 자원이 되고 내 생활에 자원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선언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를 심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으로부터 떡과 포도주를 받고 난 다음에 떡과 포도주의 언약 속에 자기가 들어가는 증거로써 자기의 십일조를 다 심었었습니다.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를 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우리의 무궁한 자원으로 삼고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선 오늘날도 손을 내밀어 주셔서 여러분과 나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하나님과 우리를 십자가에서 화목케 하셔서 성령을 주시며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여러분과 나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게 하며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서 사망을 철퇴하시고 음부를 폐하시고 영원한 영광과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차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결국에 손을 내밀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의 자세를 어떻게 취하는 가에 따라서 이 인생 삶에서 폭풍우 속에 살기도 하고 평안 속에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밝히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의 생각의 태도를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마음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겸허하게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인생을 자기 실력 한도에서 살고 무리하게 살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살아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신 이 아름다운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 스스로의 삶의 태도를 잘못 가짐으로 말미암아 길로 가지 않고 진흙창으로 들어가서 방황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이 우리에게 길을 만들어 놓으시며 길로 나오라고 초청할 때 우리 아버지 마음에 올바른 자세를 취함으로 우리의 삶이 탄탄 대로를 걸어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산골짝 험한 길 진흙창으로 들어가서 인생의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는 자리에 들어서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주의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는 다 무지하고 목매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님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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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축복을 얻는 생활태도
by 삶의언어 posted Jul 05,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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