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신앙의 사계절

by 삶의언어 posted Jun 06,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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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1∼6절

 

신앙에는 항상 축복의 생활만 있지 않아
은혜·시련·싸움·죽음의 사계절 다가올 때
낙심치 말고 주님 의지하면 선하게 인도하셔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보면 신앙이란 항상 축복만 쏟아지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고난만 다가오는 생활도 아닙니다. 1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신앙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1. 은혜와 축복의 계절

 우리가 주를 믿을 때 먼저 은혜와 축복의 계절을 체험합니다. 봄이 다가와서 만물이 푸르고 아름답고 생명이 충만한 것처럼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굉장한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생명이 넘치는 축복 속에 사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과 푸른 풀밭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시편 23편 2절은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고 말씀합니다.

 필립 켈러는 원래 호주에서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목사가 된 이후 ‘목자가 바라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그 책에서 보면 양이 풀밭에 드러누울 때는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양을 잡아먹으려는 원수가 없어야 풀밭에 눕고 이리나 사자나 여우가 주위에 있으면 절대로 풀밭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화목해야 풀밭에 눕고 뿔로 싸우고 머리로 밀치고 하는 싸움이 있을 때에는 절대로 풀밭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몸에 빈대나 벼룩이 있을 때는 절대로 풀밭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충분히 꼴을 먹고 배가 불러야 푸른 풀밭에 드러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눕힌다는 것은 우리에게 원수가 없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화목함이 있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빈대와 벼룩을 없애 주시고,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원수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병든 것을 고치시고 염려, 근심을 제하여 주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셔서 정말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꿀맛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계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와 축복의 계절에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알고 간증하고 찬송하고 기뻐합니다.

 또한 그때는 성령의 생명수가 마음에 넘칩니다. 우리가 목마르고 마실 물이 없을 때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옛날 제가 어릴 때에는 여름철에 밭에 가서 일을 종종 했는데 콩밭을 매든지 여러 가지 밭농사를 지을 때 얼마나 더운지. 땀이 비같이 흐르는데 그때 우물에서 찬물을 길어 와서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간장을 좀 섞어 마시면 굉장히 시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우리 영혼이 언제나 갈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죽었든 살았든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돈만 벌면 만족할 것 같아도 돈만 가지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물질만 많으면 행복할 것 같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에 언제나 갈급함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갈급함인지 꼬집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갈급함이 있습니다. 그 갈급함이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인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사람의 고향은 바로 하나님의 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은 모든 세상 것을 다 가져도 항상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을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쾌락으로 채워 보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는 마음에 결코 평안함이 없고 만족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축복의 계절에는 푸른 풀밭에 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2. 시련의 계절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다가오는 것처럼 축복의 계절이 지나면 시련의 계절도 꼭 다가옵니다. 대개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축복의 계절이 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얼마나 마음이 뜨거워지고 좋고 기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계절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리만리 밖에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이 완전히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에 와도 외톨이 같고 부르짖어도 응답을 안 해주는 것 같고 나는 완전히 하나님이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꼭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성인이 되면 반드시 밤에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 밧줄로 묶인 채로 혼자 밤을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성인식을 하고 난 다음에 그 아들을 아버지가 산에 끌고 가서 나무에 묶어놓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캄캄해지는데 짐승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사나운 짐승이 곁에 와서 빙글빙글 돕니다. 그런데 짐승이 곁에 가까이 오기만 하면 어디서 화살이 날아와서 짐승을 쏘아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떠는데 짐승이 곁에만 오면 어디서 화살이 날아옵니다. 그래서 아침에 보니까 바로 앞 나무 위에 아버지가 앉아서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짐승만 오면 화살로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바로 앞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보호하면서 곁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도 해를 받지 않도록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에는 만질 수가 없어도 하나님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고통당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꼭 환난의 시절이 필요한 것은 이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굳센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보면 우리 성도들 가운데 환난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작은 짐도 짊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억센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은 무거운 짐도 짊어지고 나가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고 나가며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란 성도가 돼야하고 힘이 있는 성도가 돼야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것은 근육을 살려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근육이 튼튼해야 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말랑말랑해져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의 근육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의 계절을 줘서 시련을 통하여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고 울고 가슴을 치고 몸부림치는 그런 삶을 통해서 신앙의 근육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우리 신앙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어려운 세계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기도를 통해서 흑암을 물리치고 사탄을 이기고 고난과 괴로움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련은 반드시 옵니다. 잊지 마십시오. 축복의 계절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시련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며 내가 해를 받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나와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당해서 “이제는 벼랑에서 떨어진다. 이제는 떨어지면 죽는다”고 할 때에도 반드시 주님이 와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심과 고통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붙들어 준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원수와 싸우는 계절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시련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이제 한숨 돌리고 살겠다’ 싶은데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대적하는 원수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이고 답답한 일이 생기고 핍박을 당하고 넘어지고 온갖 괴로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갑자기 남편이 사나워지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고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고 형제 간에 원수가 되고 친한 친구가 배반하고 사업의 동업자가 원수가 되고 사면초가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말로 비난하고 공격하고 고발하고 발길로 차서 피투성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오는 것은 원수가 올 때 하나님이 축복의 밥상도 차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원수와 싸워 이기도록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축복해 주시고 승리로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큰 축복을 받기 전에 반드시 원수의 진을 꿰뚫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진을 꿰뚫지 않고는 축복의 밥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일으켜 우리를 쳐서 멸하고 점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 앞에 밥상을 차려줘서 “내가 이 백성을 사랑하고 이 백성과 같이 있다”는 것을 증거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때문에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오면 우리에게 좋은 일도 생겨나고 원수가 우리를 도둑질하면 하나님이 더 채워주시고 원수가 우리를 쥐어박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품에 안아 주시고 더 위로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원수와 싸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믿지 않는 세계와도 싸우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타교단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몰아쳐서 싸우고, 본교단에서도 우리를 쫓아내서 고통당하고, 우리 교회 내에서도 성도들이 서로 분열해서 싸웠습니다. 온갖 투쟁과 고통을 다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수가 우리를 시험하려고 다가오는 그런 계절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이 결국에는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십니다. 인생의 가을철인 것입니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는데 가을은 추수기 아닙니까? 열매가 풍성하고 먹을 것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축복의 계절이 지나가면 시련의 계절이 오고, 시련의 계절이 지나가면 싸움의 계절이 오고, 싸움의 계절이 지나가면 이제는 가을의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계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국에 가서는 전부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행복과 만족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로 10절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도둑은 완전히 지나가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감

 시편 23편 6절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고 말씀합니다.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이제 인생길에서 다 은퇴하고 앉아서 뒤를 돌아봅니다. 초년시절부터 중년, 장년, 노년이 될 때까지 되돌아보면서 “그때는 괴로웠는데 이제 돌아보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이 됐구나. 축복의 계절, 시험과 환난의 계절, 원수의 공격을 받던 계절, 열매를 맺던 계절, 이 모든 것이 다 합쳐서 내게 유익이 됐구나. 큰 축복이 됐구나”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17살에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되어 끌려갈 때는 얼마나 큰 절망이었습니까? 그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극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더 어려운 고통에 들어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는데 그때 노예는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겨우 종살이에서 쉬게 되고 가정 총무가 됐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참소해서 그만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 감방은 생지옥입니다. 그 감옥에 들어가서 3년을 감옥살이합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국무총리가 돼서 이스라엘에 있는 온 가족을 다 불러서 애굽의 고센 땅에 살게 하고 온 애굽 국민들을 다 먹고살게 만들어주고 모든 사람이 그를 경배할 때 요셉이 뒤를 돌아보니 형들이 종으로 판 그때는 고난이었는데 실제로는 굉장한 축복이었습니다. 형들이 안 팔았으면 요셉이 애굽에 올 턱이 없습니다. 또한 10년 동안 종살이 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종살이를 안했으면 보디발의 집에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로 고소해서 감옥에 들어온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큰 절망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돼서 여생을 큰 영광 중에 살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젊었을 때 당한 그 심한 고통과 괴로움이 지나고 보니 전부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전부 기적적으로 은혜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했으나 이제 돌아보니 그것이 다 축복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평생 동안 선하게 인도하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의 날들도 지나고 보면 늘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살아온 날은 다 과거가 되고 앞으로 죽을 날이 가까우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마 70세가 넘으면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요사이는 오래 살아서 80년을 살고 90년을 산다 해도 70세가 되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을 날을 생각하면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죽기를 원해서 기도하게 되고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과 슬픔이 앞에 다가오기 때문에 죽을 날을 생각하면 몸서리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부활하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영생복락과 천국을 허락받았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이미 우리 속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 상황의 변화에 불과합니다. 육의 옷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그 변화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축복의 계절이 오거든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즐기십시오. 그 축복의 계절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어머니의 품에 앉아서 젖을 물고 어머니의 응석을 받던 계절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밥을 먹을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과 환난이 다가와서 몸부림치며 고통당하는 시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늘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가고 난 다음 이제 좀 살만하면 원수가 다가오는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 계절이 있을 동안에 주님께서 밥상을 차려 주시고 잔이 넘치는 삶을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절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 계절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를 살펴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앞으로 내가 거할 영원한 집으로 갈 준비를 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계절을 지나서 우리의 일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이구나. 이를 통해서 나를 완성시켜서 영원한 영광의 집에 거하게 만들어 주시는구나” 이것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축복의 계절, 시련의 계절, 원수에게 공격당하는 계절, 하나님의 열매를 만끽하는 계절, 죽음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고 어떤 계절이 다가와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영혼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와 함께 인생의 모든 계절을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이런 변화와 계절이 없는 천국의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