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고난이 우리를 엄습할 때

by 삶의언어 posted Jun 21, 2024 Views 1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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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우리를 엄습할 때 " 이와 같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 인생 일생이란 누구를 불구하고 고난의 숲과 늪을 지나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욥기에 인간을 비유해서 말하기를 마치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가는 곳마다 가시 채를 헤치면서 살아야되고 엉겅퀴를 밟으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도한 인간은 가는 곳마다 해산의 수고를 겪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며 결국에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고난을 당하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중에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고난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또한 지금도 고난을 헤치고 나가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찢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여러분과 나를 도와주고 살려주고 더 나은 내일을 창조해주는 천사의 손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는 우리로써 어찌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와 대응책은 우리 각자가 다 스스로 결정해야 될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고난을 악마화 시키지 말고 고난을 천사의 손길로 변화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이상한 일 당한 것같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오면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다가오는가 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고난에 대한 반발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여러분 이상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것입니다. 사람으로써 이 지상에 살아있으면 반드시 고난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 안 당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고난 당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겪어가면서 고난 당하는 것을 항상 비정상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제가 싫어하고 반발했었습니다. 그 후로 말미암아 고난이 올 때마다 심령에 고통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제가 성서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고난 당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요 이것은 보편적인 것이고 고난은 안 당하는 것이 이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다음부터는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기쁘게 고난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여러분 마음속에 원한과 불평과 원망적으로 받아들이면 고난 그 자체보다도 그 마음에 부정적인 태도가 그 영혼을 파괴합니다. 마음에 평화를 빼앗아버리고 즐거움을 산산조각이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서 원망불평을 하면 마음이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소망도 사랑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라 긍정적인 자세로써 고난을 받아들이면 고난이 악마로써 왔다가도 천사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느냐하면 고난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도전이요 기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한 생활 속에서는 발전과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센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을 당할 때 삶의 방향을 수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게 되고 삶의 방향을 수정해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가 있습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자아가 깨어지지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고 하나님을 반역하면서 살다가도 거친 고난이 다가오면 박살이 나고 깨어져서 하나님 중심으로 서는 방향수정을 할 뿐 아니라 자아가 깨어져서 인격적으로 모난 것을 다 정비하여 부드럽게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철저히 나가도록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고난을 당해야 비로소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불평하지 아니하며 시간이 나는 데로 철야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외치게 되고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을 감사함으로 여러분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여러분께 휘몰아칠 때 이것을 부정적인 태도로 받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으십시다. 성경엔 말하기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해야 될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밝은 마음으로 긍정적인 태도로써 고난을 받아들일 때 그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파괴하는 힘을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의 그 가시 돋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우리에게 아름답고 부드러운 손길로 변화돼 우리를 대접해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원한에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고난 당할 때 우리에게 고난을 가져온 사람에 대해서 마음속에 원한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고난 당하게 된 환경에 대해서 원한을 품게 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조차도 원한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마음속에 쓴 뿌리가 나서 원한이 우리 속에 사무치게 되면 그 고난 자체로 말미암기보다도 그 원한 때문에 이 사람은 하나님과의 기도가 끊어지고 믿음이 사라지고 평안이 없어지고 마음속에 쓴 물이 가득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나 환경이나 심지어 하나님께 대하여 원한을 품지 말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의 태도를 보고 잘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욥은 그 소유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 열 자녀가 함께 잔치를 베풀다가 거친 바람이 불어와서 집이 무너져서 일시에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자기의 몸은 고칠 수 없는 무서운 병이 들어서 그는 잿더미 위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 아내조차 와서 말하기를 "너가 이래도 성전을 지키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극도에 달해있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원망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쓰디쓴 마음을 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 1장 20절로 22절에 보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보게되면 고난을 당할 때 원망하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오히려 이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히려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고난은 욥에게 소화가 되어버리고 욥은 고난 이후에 더 나은 기반 위에 서서 더 큰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요셉의 승리를 보면 대단히 마음속에 감동을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자녀 중에 열 한 번째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다른 형제들에게 시기를 받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이 목축을 하러 갔을 때 아버지의 뜻을 좇아 음식을 가지고서 형들을 돌봐주러 가는데 형들이 갑자기 와서 요셉을 잡아 옷을 벗기고 음식만 빼앗고 벌거벗은 그를 마른 우물에 던졌다가 아라비아대상이 애굽으로 내려가니 마른 우물에서 끌어내어서 그를 팔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종으로 끌려가면서 그는 뒤를 돌아보고 울며, 울며 "형들이여 나를 살려달라"고 고함쳤지만 형들은 요셉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껄껄 웃고서 그를 떠나보내고 만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속에 원한이 사무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가서 보디발의 집의 종으로 팔려서 혹사를 당하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했습니다. 겨우 살만하니까 또 무명을 덮어쓰고 그는 시위대 감옥에 갇혀서 거기에서 썩어져 갔습니다. 요셉은 무려 13년의 세월동안 그는 밤이나 낮이나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쳤었습니다. 그럴 동안에 그 마음 가운데 형들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겠습니까? 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칼을 갈고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계셔서 13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애굽 전국에는 양식이 있고 전 가나안땅에 기근이 들어왔을 때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와서 국무총리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동생 요셉인 줄 몰랐습니다. 요셉은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그 아버지 야곱과 함께 형들 그 가족들을 다 고센땅으로 불러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해주었습니다만 아버지 야곱이 죽으니까 형들이 두려움이 덜컥 났습니다. 아버지 계실 동안에는 아버지를 보고 우리를 돌보아 주었지만 아버지가 세상 뜬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요셉은 우리에게 원한을 갚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 형들이 요셉에게 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이르되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을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며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13년의 세월동안 그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그는 이를 갈고 칼을 갈았는데 요셉이 원한을 품었더라면 위대한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형들을 극진히 대접해주고 그는 그 마음속에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용서와 이해와 사랑과 동정을 가지고서 옛날은 흘러가는 물에 다 떠내려보내고 그는 새로운 삶으로써 시작한 사람인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자기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에 대한 원한을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자기가 상처 입은 환경이나 상처를 입힌 여러 가지 여건을 마음속에 원한으로 쓴 뿌리가 되도록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인정도 다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원한은 변치 않고 가지고 있어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파괴되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할퀴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될 것은 고난 당할 때 우리에게 고난을 가져다 준 사람이나 환경이나 하나님까지도 합쳐서 우리는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저러니 저들의 조를 용서하여 주십시요." 성경에는 "너희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원수가 잘되라고 원수를 위해서 축복해주고 먹이고 마시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원한을 품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갚아 줘 버리면 그 축복이 우리 자신 속에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겠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자기 행위대로 반드시 거둡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소홀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만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원수를 용서해주고 마음속에 쓴 뿌리가 나지 않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고 기쁨 가운데 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마음속에 원한을 없애버려야 됩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마음 가득하게 이해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해야 된다.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우리가 고난이 다가올 때 고난의 암흑에서 내일의 꿈을 버리지 말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해서 구출하셨나요? 요셉은 바로 형들에게 팔리기 전에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꿈을 꾸니 형들과 함께 들에 나가서 곡식을 거두는데 형들의 열 한 단이 다 둘러서서 자기 단을 향해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다음 또한 꿈을 꾸니까 하룻밤에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서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서서 자기를 향하여 절을 합니다. 해와 달은 아버지, 어머니고 열 한 별은 형들인 것입니다. 그는 그 마음속에 깊이 깨달았습니다. 장차 나는 우리 가정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겠고 온 가족들을 내가 돌보는 사람이 되겠고 온 가정에 내가 구주가 되겠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가 나를 잘 다스려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종으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고 스산하고 처참한 환경 적인 체험을 했을지라도 그는 마음속에 낙심할 수 없는 것은 요셉은 자기가 꿈을 잡은 것이 아니라 꿈이 요셉을 잡아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꿈이 요셉을 인내하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하고 힘을 내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용서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꿈이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는 방탕하게 되고 꿈이 없는 가정은 파괴되고 꿈이 없는 민족은 약소민족이 되거나 남의 민족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소망 차게 만들고 믿음 있게 만들고 사랑으로 넘치게 만들고 강하게 만들며 진취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당하여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내 앞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서 꿈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갈 때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중생 하는 꿈을 얻을 수 있으며 십자가 밑에서 치료받을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축복 받는 꿈을 가질 수 있으며 십자가 밑에서 재림하는 예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데려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이별하는 곳이나 곡하는 것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데리고 갈 꿈을 우리가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는 이상 절대로 그 개인이나 그 단체나 민족은 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꿈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와서 늙은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꿈과 환상을 갖는 것이 아니라 꿈과 환상이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결코 절망에 처해서도 내일에 대한 꿈을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속에 자는 사람은 그 꿈이 그 사람을 이끌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고난이 다가와서 ?? 폭풍이 불고 내 삶 전체가 스산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대한 끈질긴 신념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것은 사랑에 대한 신뢰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절대 믿음이 안 생겨요. 남편이 사랑할 때 아내가 남편을 믿을 수 있으며 아내가 사랑해줄 때 남편이 아내를 믿을 수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믿는 것은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진영에서 아무리 테이블을 같이 하고 계약을 맺어도 그 계약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질시하고 있게 때문에 그와 같은 계약이 절대로 신뢰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사랑으로 말미암아서만이 역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나요?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목숨을 내어 바쳐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여러분과 내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책임졌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매달렸을 때 여러분과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짊어지셨으며 우리의 저주와 질병과 절망과 죽음을 혼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처참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의 대리가 돼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심판 받을 때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해도 빛을 발하지 아니하고 천체들이 다 어두워졌습니다. 땅도 진동하고 초목이 다 울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하나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얼만 그 시간이 고통스럽고 괴로웠던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통곡하고 탄식했었습니다. 처참한 심판 그를 통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과 나를 죄에서 놓아주시고 질병에서 건져주시고 부활할 수 있게 해 주시며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영원히 멸망 받을 자리에서 영원히 부활해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도록 예비해주셨으니 이에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었을 때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증명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밝히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고 할 때 그 사랑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랑은 얼마나 큰지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세상 그 아무 피조물이라도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가운데 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랑을 좇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 로마서 8장 28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어둡고 괴로워도 장차 끝에 가서는 선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대한 위대한 신뢰 이것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떠한 환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사랑을 신뢰하게 되면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기주의적으로 무엇을 받을까 예수 믿는 것도 사태가 어려워지면 박살이 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냉랭한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몇 개 끌어내서 그것을 가지고 믿습니다 하다가도 사태 여의치 못하면 전부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그 깨어진 피 흘린 죽음으로써의 허락해준 그 사랑을 내가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어도 믿고 서북풍이 불어도 믿습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도 믿고 내 앞길이 스산해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 무소 부지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셔서 종국에 위대한 승리를 만들 것을 우리는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고난은 우리에게 아무 힘도 없어집니다. 고난이 아무리 소용돌이치매 다가오고 무서운 가싯발을 내고서 우리를 찌르고 달려들어도 우리는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이 모든 고난을 다 변화시켜서 나를 섬기는 종이 되게 하고 천사가 되게 만들어주실 것을 확실히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을 자원하거나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란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고난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여하에 따라서 그 고난은 우리들에게 악마로 변화될 수도 있고 천사로 변화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난을 올바른 태도로 받아들여 뭇천사로 변화시켜 이 고난의 천사의 손길을 받들어서 우리는 내일의 삶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될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다가올 때 이상한 일 당한 것같이 생각하지 마십시요.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요 오히려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될 것입니다. 고난 다가올 때 마음속에 고난을 가져온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서 원한을 품지 마십시요. 그 원한은 마음속에 쓴 뿌리가 되어서 여러분이 쓴 물을 마시고 영혼에 처절한 절망을 가지게 될 것인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이해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으로 고난을 가져온 사람이나 환경이나 하나님까지라도 다 용서하고 마음속에 기쁨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꿈을 버리지 마십시요. 어떻게 어둡고 캄캄할지라도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부여잡고 절대로 꿈을 놓지 마십시요. 꿈이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를 창조해주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끈질긴 신뢰를 가지십시요. 고난은 천사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고난의 숲과 늪을 지나갑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고난이 없는 삶은 비정상적인 삶이요, 고난이 있는 삶이 정상적인 삶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난을 당하면 고난은 천사의 손길로 변화되지만 하나님 없이 당하는 고난은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악마의 손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이 세상 살면서 작은 고난, 큰 고난, 작은 악마, 큰 악마에 시달리고 찢기는 삶을 살지 말고 예수님 안에 나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고난이 우리를 섬기는 종으로 변화되게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