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당신의 꿈이 죽을

by 삶의언어 posted Jun 16,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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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당신의 꿈이 죽을 때'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크고 작은 꿈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슬픔들도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꿈이 땅에 떨어져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날 때 우리들은 절망에 계곡에서 죽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와 같이 절망과 죽음을 체험한 대표적인 인물인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모세는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어서 40년 동안 바로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의식주의 호화로운 생활은 말할 필요 없고 그 당시의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나 그러나 그 속에 흐리는 피는 히브리인의 피였었습니다. 나이 40이 되자 애국 애족할 마음이 생겨서 종살이하는 히브리 민족의 정황을 살피려 궁 밖에 나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노역장에 가보니까 애굽사람 한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몹시 구박하고 때리는 것을 보고 난 다음 전후 좌우를 살펴보자 다른 사람이 안 보이니까 달려들어 그 애굽 사람을 쳐서 죽여서 모래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통하여 히브리 민족을 구출한 줄로 알았었습니다. 그 다음날 또 나가보니까 히브리 민족끼리 서로 싸우는 지라 그가 들어가서 뜯어 말렸습니다. "어찌하여 동포끼리 싸우느뇨. 외국에서 종살이하는 것도 슬픈 일인데 동포끼리 싸우다니 이 왠 말이요." 그러자 악을 행하던 히브리 민족이 모세를 향하여 달려들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누가 재판관으로 세웠소. 어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인 것처럼 또 나를 쳐죽이겠소?" 그렇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정황을 보자 모세는 자기가 어제 애굽사람을 쳐죽인 것이 히브리 민족에게 이해가 될 줄 알았는데 동포들이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자기 일이 탄로 나는 줄 알고 그 길로 도망을 쳐서 미디안 광야로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이제 도망친 사람으로서의 쓸쓸한 삶이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또, 아무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희망이 다 끊어졌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라는 유목민족의 추장의 딸과 결혼을 해서 목동으로서 전략해서 그로부터 시작해서 40년을 하루같이 그는 호렙산 주변을 양 무리를 끌고 다니면서 울며 세월을 보냈었습니다. 모세가 앉았다가 일어난 곳마다 모세는 자기의 청춘이 죽어서 파묻힌 장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울며 40평생의 세월이 지나고 이젠 나이 80이 되었습니다. 얼굴은 주글주글 해지고 눈은 뿌옇게 되고 허리는 굽어지고 이제는 노인이 되고 이제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란 하나도 없이 다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절망의 미디안 광야에서 그는 40년 동안에 죽음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안간 하루는 호렙산 기슭에서 불타면서 꺼지지 않는 가시넝쿨을 보고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서 구경하러 갔다가 그 가시넝쿨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십 청춘에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님께서 팔십에 다시 부활시켜서 모세를 택하여 지팡이 하나만 짚고 홍해를 건너가서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깨달아야 될 것은 여러분의 생애가 산산조각이 나고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 절망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꿈이 깨어지고 우리의 소망이 다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우리의 심령이 죽음의 벽에 부딪혔을 때, 그때 꿈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음을 가지고서 참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교훈을 아브라함의 가족의 생애 가운데에서 알아봐야 될 것입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꿈과 그 절망을 우리 함께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믿음의 모범이요, 사표요, 조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일들은 여러분과 나에게도 크고 적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 갈디아 우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참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영광스럽고 찬란한 꿈이 마음속에 넘쳐 왔습니다.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은 위대한 삶의 기회가 다가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꿈이 마음속에 사무쳐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온 가족들을 다 뒤로 두고 자기의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가나안땅을 향해서 전진해 나간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발걸음마다 그는 꿈이 출렁거렸었습니다. 가나안땅에 가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젖과 꿀이 흐르고 거기에서 위대한 나라가 이루어질 줄 기대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왠 말인 것입니까?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여태까지 가슴속에 품고 오던 그 모든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가뭄과 흉년이 다가와서 온 천지가 새 빨갛게 타버리고 물이란 물의 흐름은 다 말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데리고 온 짐승 떼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 다 죽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함께 온 종들도 다 뿔뿔이 흩어져서 살길을 찾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밥 달라고 우는 조카를 데리고 아브라함은 도저히 생각도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한 애굽 땅을 향해서 그 아내와 함께 살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애굽 땅에 내려가자 절망은 거기에서 더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그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사라를 취하여 바로의 아내로 삼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는 찬란한 꿈을 안고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꿈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찬란한 꿈 대신에 애굽에 내려와서 쓰디쓴 절망의 골짜기에서 죽음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내조차 잃어버리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산송장의 삶을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겪은 그 마음의 절망이란 우리말로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속에서 죽었습니다. 개인의 꿈이 사라지고 자기 마음의 기대가 사라지고 인간적인 모든 희망과 용기가 다 사라지고 그는 산산조각이 나고 인생으로서의 모든 것이 박살나이 나버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또 다시 그 꿈을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데려온 사라는 선지자의 아내다. 이는 아브라함의 아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어라. 만일 돌려주지 아니하면 너의 집안에 내가 심판해서 큰 불행을 자초하겠다.' 바로가 이 꿈을 꾸고 놀라서 일어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왜 네가 진작 사라를 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왜 네 동생이라고 말했는가?' 그래서 그 아내를 돌려주고 그 아내를 자기가 빼앗은 그 보상으로서 많은 금과 은과 짐승 떼와 노비를 주어서 아브라함을 내보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그 아내를 찾고 많은 금과 은과 짐승과 노비들을 거느리고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가나안에서 재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아브라함아 네 눈을 떠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으로 보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가장 무서운 절망의 계곡에서 그 꿈이 다시 부활해 일어나서 그는 가나안 땅에 올라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그 땅을 얻게된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두 번째, 사라의 꿈과 절망을 한번 살펴볼까요?
여러분 사라는 아브라함을 따라서 갈디아 우르에서 나올 때, 그는 사랑하는 자녀의 어미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으니 그 민족을 이루고자면 반드시 자기 몸에서 자손이 생겨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여삼추로 사라는 자녀가 생기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세월은 점점 흘러가서 가나안으로 온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나가서 그의 남편의 나이가 85세가 되고 자기의 나이 75세가 되도록 어린 아기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어린 아기를 얻을 만한 그러한 기력도 다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사라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 여인으로서 어린 아기를 낳지 못하고 한 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는 마음의 수치와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75세까지 기다린 사라는 이제는 어린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꿈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남편 아브라함을 자꾸 꾀했었습니다. '내가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까 내 여종 하갈이라도 첩으로 취해서 첩의 몸에서라고 자식을 하나 얻어라'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여 첩으로 삼고 그 첩에서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으나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의 풍파는 그치지 않았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낳은 하갈은 그 때로부터 자신을 얻고 어깨에 힘을 주고 그의 주인인 사라를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 결과로 가정 풍파가 끝이 없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쟁상태에 놓은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어서 아브라함은 사라와 약속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쫓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정적인 비극까지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첩에서 어린 아기를 낳아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려는 사라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쓴 분노와 눈물밖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끝장났었습니다. 이제 자식을 얻겠다는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사라의 모든 희망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 89세 되었을 때, 주님께서 찾아와서 그 꿈을 부활시키려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18장 12절로 15절에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이제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었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 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 에게 와서 이제 곧 아들이 있겠다고 말하니까 아브라함도 엎드려서 웃었습니다.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살게 하여 주옵소서 ' 사라는 말할 것도 없이 천막 뒤에 숨어서 웃었습니다. '나 같은 이제 89살이나 된 사람이 아들을 낳다니 그런 웃기는 말씀을 어떻게 하시옵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절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난 다음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이 되고 자라의 나이 9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들을 낳았으니 그 이름이 바로 이삭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절대로 절망하지 말 것을 교훈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11절에서 12절로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시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여러분과 나의 꿈이 깨어지고 우리의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서 우리의 삶이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처럼 될 때도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일을 하나님으로 믿었으면 우리 스스로가 주님께 나오셔서 우리 자신이 죽은 자와 방불한 인생같이 되더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주님 앞에서 기다리면 아브라함에게 부활을 주신 하나님, 사라 에게 부활을 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도 위대한 부활을 주셔서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세 번째로, 가장 큰 죽음, 가장 큰 축복에 관해서 말씀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 에게 동시에 다가온 일인 것입니다. 그들은 소망의 꽃으로서 이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날로 자라서 이제는 금지옥엽 같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성장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모든 꿈과 사라의 모든 꿈이 이삭에 총 집결되었습니다. 그럴 때 청천벽력 같은 꿈을 깨드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네 외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가서 그를 잡아 제물로 드려라' 인간의 꿈이 깨어진다 해도 이처럼 처참하게 깨어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친자식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 이 하나님의 명령보다 처참한 명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 아브라함은 조금도 자기 스스로의 생각에 굴하지 아니하고 곧장 그 아들의 나무를 짊어지고 그 한 손에 불을 들고 한 손에 칼을 들고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가서 짐승과 종들을 두고서 아이와 함께 내가 제사를 지내고 오겠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올라갈 때 이삭이 질문했습니다. '아버지 장작도 있고 여기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간담이 서늘하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했었습니다. '이 사람아 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그 아들과 부지런히 제단을 쌓았었습니다. 제단을 다 쌓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아 하나님께서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명령이니 내가 어찌 거역하겠는가 또 하나님께서 나의 후손을 너로 말미암아 나겠다고 했었으니 내가 비록 너를 잡아죽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잿더미 속에서 너를 다시 부활할 줄을 나는 믿고서 너를 제물로 드려야만 하겠다' 이삭은 순순히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어서 그 제단에 올려놓은 다음에 그는 칼을 빼어 들어서 높이 쳐들어 그의 아들 이삭을 내려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것이 가능할 까요? 나는 자신 없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범인들은 결코 그렇게 할 만한 용기가 없습니다. 차라리 천당본부에 못 들어가고 문지기가 될지언정 하나님 이것만은 면해주시옵소서.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면 자기의 외 독자 이삭까지라도 서슴지 않고 바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이였었습니다. 나는 이 믿음의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속의 감격하고 감동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막 칼로 내리치려고 할 때, 하늘에서 천사의 음성이 내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에게 해 치지 말라. 네가 네 독자 네 외아들에도 아끼지 아니한 즉 참으로 이제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아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때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해서 가로되, '내게 네게 복 주며 복 주고 너를 변치 않게 하고 너를 번창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큰 죽음에서 가장 큰 부활의 은총이 그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서 보게 될 때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우리가 받을 위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성경은 말씀하기를 '모두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조상으로 삼은 이상 아브라함을 섭리하시고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후손인 여러분과 나에게도 그와 같은 원리를 가지고서 주님께서 섭리하시고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찬란한 꿈들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 치고 꿈이 없이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할 꿈과 환상을 가져올 수가 있을 것이며 구원의 꿈이 있고 성령 충만의 꿈이 있으며 치료의 꿈이 있고 축복의 꿈이 있으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꿈들이 말씀과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속에 가득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꿈이 인간에게 덧붙여질 때 인간은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죽음을 체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히브리사람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에 도전하게 전에 반드시 그 사이에는 죽음의 계곡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네게 부족함이 없지만 잔이 넘치는 생활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 죽음의 골짜기를 지났었습니다. 사라도 그 죽음의 골짜기를 지났었습니다. 이삭도 그 죽음의 골짜기를 지났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심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서 내 희망이 다 깨어지고 이제 모든 것은 절망으로 아는 그러한 산송장이 되는 그런 느낌, 마치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되는 그런 느낌, 이와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 여러분과 내가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그런 섭리인 것입니다.

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꿈이 깨어질 때 여러분의 육신의 자아도 깨어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꿈을 이루어 주면 옛날의 아담과 하와가 교만했듯이 우리가 교만해져서 또 다시 마귀를 점지하는 점지에 떨어질까 위험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꿈을 이루기 전에 반드시 교만의 가시를 뽑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했다. 나를 보라. 내가 얼마나 위대하냐. 교만의 가시를 깨드리기 위해서 교만의 가시를 뽑아버리기 위해서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여러분과 나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서 자아가 깨어지는 체험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자아 인간의 혼이 깨어지는 것은 혼이 나야 깨어지지 혼이 나지 않으면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마음에 품었던 그 꿈을 산산조각 나게 해서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혼이 나고 마음이 깨어지고 주님 그 발 앞에 엎드려 항복하도록 만드는 이와 같은 섭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크고 작은 꿈이 다가오면 크고 작은 죽음이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여러분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마십시오. 원망하거나 탄식하는 사람은 자격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깨어질 때 감사함으로 그 분 앞에 엎드려 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로, 여러분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순종을 배웁니다.
성경에는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도 그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지게 하시므로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지막 순종을 보십시오. 그 외 독자 외아들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리라고 말할 때 두말하지 아니하고 순종한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순종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 교육에도 너무 자녀 좋다고 해서 금지옥엽으로 사랑만 하고 좋은 일만 해주면 나중에 그 자녀 고집을 길러서 이 사회에 나가서 살 수 없는 이기주의자가 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부모가 자녀들이 잘못할 때 채찍을 들고 종아리를 때리고 그를 경계하는 것은 그 고집을 깨드려서 순종함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인격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소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고집을 깨드리고 절대 순종하는 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 당할 즘에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께 순종하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여러분 고난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꿈이 반드시 부활할 것을 믿고 인내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고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망했다.' 손을 털어 버리는 자는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내 꿈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면 그가 얼마나 내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날지라도 무덤에 들어간 나사로를 나흘만에 불어 일으킨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꿈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기적으로 다시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천지가 캄캄하고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할지라도 여러분의 꿈이 부활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종으로 팔리고 종으로 팔린 그 자리까지도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시위대 뜰에 갇혔을 지라도 그 마음속에 꿈을 져버리지 않았었습니다. 끈질기게 그 꿈을 잡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때가 오시매 위대한 기적을 나타내서 그 꿈을 다시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저는 26년의 목회생활 동안에 3번의 교회를 세우면서 수많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났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꿈을 받았을 때마다 그 꿈을 이룰 때까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도망치고 포기하고 다 던져버릴 마음이 있었지만 그 치욕스런 혹심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내가 깨어지고 내가 순종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믿을 때 언제나 주님은 내 인간으로 상상을 초월해서 위대한 부활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죽을 때 여러분 자신의 믿음조차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견뎌낼 때 반드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을 통해서 하늘에 별과 같고 땅에 허다한 모래같이 성장케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죽을 때 하나님은 다시 부활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기 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을 통해서 하늘에 별과 같고 땅의 모래와 같이 번창시킨 것처럼 우리가 꿈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우리가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될 때 하나님이여 자아도 깨어주고 절대로 순종하고 꿈이 부활할 것을 믿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도와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