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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죄와 의

by 삶의언어 posted Jun 13, 2024 Views 1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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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죄와 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죄가 있다. 죄인이다. 그는 의인이다. 의로운 사람이다. 이런말을 많이 쓰는데 만일 누가 여러분에게 와서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시다. 죄가 도대체 무엇이요? 죄가 어떻게 생겨났어요? 의란 무엇입니까? 의인이 될려면 어떻게 돼야 됩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이와 같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만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습니다. 의에 문제에 대한 해답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죄인이 되며 의는 무엇이며 왜 어떻게 의인이 되는가? 그 문제에 관해서 밝히 우리에게 해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죄가 어디서 생겨 났나요?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죄인도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후 주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동방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곳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삼고 거기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 나무가 나게 하시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게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 인생들에게 꼭 유의시킬 것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받들고 사는 관리자지 주인과 주권자는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 선악과라는 실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이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에덴이란 아담과 하와가 늘상 사는 집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선악과라는 실과를 두고서 밤낮으로 그것을 보도록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손대면 죽는다. 먹으면 죽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너희 가운데 주권자가 계신다. 너희 가운데 우주의 주인이 계신다. 너희들은 하나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시험거리가 된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약점을 알고서 아담 하와를 꽤서 말했습니다. 이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된다. 주권자가 된다. 주인이 된다. 관리자로 있을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듣고 하와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매 그가 손을 내밀어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해서 하나님을 반역한 모반죄를 지었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로서의 자기 위치를 벗어나서 자기가 주인이 되고 주권자가 될려는 빗나간 행동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자기의 본분을 떠나서 빗나가서 관리자가 주인이 되고 주권자가 될려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 이것이 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반역을 한 두분은 죄인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죄인은 여러분 그냥 죄인이 되고 가만있으면 좋은데 거기에 심각한 대가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자 말자 벌거벗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체면이 서지 않고 벌거벗어 수치와 곤욕 가운데서 할 수 없이 두려워서 뛰어 나무 뒤에 숨었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엮어서 아무리 부끄러움을 가릴려고 해도 햇빛에 쨍쨍 비치는 무화과 잎은 자꾸 말라 시들어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전에는 없었던데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생겨서 힘들었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 불림을 받아 나가서 꾸중을 듣고 그리고는 저주를 받아 쫓겨났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나서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곳에 피를 흩뿌리고 가난과 저주 속에 고통을 당했었으며 거기에 또 부과해서 그들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 죽고 그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죄란 것은 여러분 옛날이나 오늘이나 그 성격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죄 또 우리가 죄인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여러분과 나에게 무지한의 파괴를 가해오는 것입니다. 죄는 진실로 마귀의 손에 잡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죄의 영은 바로 마귀인 것입니다.

첫째로 죄가 하는 일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죄는 인생들을 발가벗깁니다. 인생을 발가벗긴다는 것은 인간의 자존심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여러분 가장 근원적으로 중요한 것이 자존심입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면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못 받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까지라도 속에 자존심이 있습니다. 자존심만은 사람들이 잃어버리지 않을려고 하는 겁니다. 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광스러운 인생이기 때문에 그 영광에 흔적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존심입니다. 짐승들에게는 자존심이 없어요. 사람은 자존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존심을 발가벗겨 버리면 인간은 거기에서 무한한 파괴적인 존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친해도 여러분 친하면 친할수록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늘 말하는 것은 한 가정에 부부간에 같이 살 때 아무리 친해도 남편은 아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거든요. 사람마다 그 약점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약점을 후벼 파헤쳐 가지고서 한 대 먹여버리면 그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사람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면 그리고 자기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때 그 사람은 윤리도 도덕도 지키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버리면 짐승처럼 포악해지고 난폭해지고 방탕해 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술주정뱅이가 된다든지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 포악한 살인자 방탕자들은 자존심을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어린아이라도 부모가 내자식이라고 불러다가 쥐어박고 난 다음에 그냥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하면 자존심이 깨어지매 그만 집에서 나갑니다. 나가서 밖에 가서 도적질하고 깡패노릇하고 못할 짓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상처 나면 인간은 짐승과 같이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가 어찌하던지 사람들의 자존심을 없애기 위해서 죄를 짓게 해서 인간을 발가벗깁니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양심 앞에서 발가벗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론 아무리 근사해도 속에 양심의 정죄를 받고 양심 앞에서 발가벗게 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에 대해서 내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내 스스로에 대해서 내가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할 수 없게 존경할 수 없게 됩니다. 자기를 존경할 수 없게 되면 자기를 미워하게 되고 자기를 미워하게 되면 자존심이 파괴되고 그때로부터 인간은 벌써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롯유다 보십시오. 유다가 제일 처음 예수님이 제자로 택할 때는 열두제자중에 제일 모범 되는 제자였었습니다. 그도 나가서 기사와 이적도 행하고 굉장한 지도적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주님이 가장 신뢰했기 때문에 돈을 맡겼습니다. 여러분 신뢰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 안 맡깁니다. 그런 가롯유다가 나중에 시험이 들어 가지고서 예수를 은삼십냥에 팔아먹고 난 다음에 그 죄책이 그 영혼을 불태웠었습니다. 그 영혼 속에 죄책이 들어와서 그를 완전히 발가벗겨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선생을 팔어먹은놈 주님을 팔아먹은 놈 무죄자의 피를 흘리게 한놈 자존심이 완전히 깨어지고 가롯유다는 자기가 미웠습니다. 자기가 보기 싫었었습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원수를 갚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에 올라가서 밧줄로서 목을 매어서 자살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자기 양심 앞에 벌거벗은 벌거벗은 자기 존재를 보는 사람 치고 자기를 존경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의 가는 길은 벌거벗은 인생으로서의 파탄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러므로 죄가 들어오면 양심 앞에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 벌거벗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 모든 사람에게 지탄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인격적으로 벌거벗은 모습이 되고 나아가 말할 필요없이 하나님 앞에 설곳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마귀는 세차게 참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곳을 전혀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존심을 잃게 해서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게 되고 남을 미워하게 되면 전쟁과 전쟁 미움과 원한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세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뭔지 압니까? 오늘날 인류들은 옛날보다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과학도 발달되고 좋은 세대에 살고있지만은 그러나 옛날보다 더 무섭게 전쟁과 전쟁을 하고 살상하고 이 세계는 처참한 지경을 향해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왜 인간이 자존심을 잃어버렸었습니다. 거대한 도시와 산업화 사회 속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죄악 가운데서 자존심을 잃었었습니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통해서 인간은 과학을 통해서 사람들을 무자비하고 처참하게 죽이는 이러한 일을 한 것을 보았었습니다. 동물보다 훨씬 못하고 2차대전이 끝나고 난 오늘날까지 약 이 세계는 백이십여개의 전쟁을 치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정의도 없고 이성도 없고 인간에게는 잘난점이 전혀 없는 비참한 존재인 것을 알게되고 자존심이 상실되고 인간은 자기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를 미워하는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기 때문에 남도 미워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이유는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도 존엄하게 여기지 않고 남의 생명도 존엄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자존심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미움만이 꽉들어차서 그래서 미움을 통해서 분쟁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살상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이 자존심을 살려주지 아니하면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여하간 좌우간 죄가 들어오면 우리를 발가벗겨 가지고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벗겨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죄는 우리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했듯이 우리가 두려워합니다. 왜? 죄가 들어오면 죄가 들킬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죄짓고 난 다음 여러분 다리를 오그리고 앉아있는 사람 없습니다. 언제나 들킬까 싶어서 개만 짖어도 간이 덜컥 내려앉고 문만 열어도 간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건 왜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제는 누가 잡으로 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래도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해도 내 죄값으로 이것이 심판 받았지 않을까 죄값으로 이일이 안되지 않을까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날이 흐리고 천둥벽력이 치고 벼락이 때리면 내가 죄값으로 벼락을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조차 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개 악인에게는 마음에 평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마음에 평강을 빼앗아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심판의식속에 사는 것입니다. 또 죄는 여러분을 쫓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꿈을 꾸어본적 있습니까? 꿈에 악한이나를 잡으로 오는데 내가 죽을힘을 가지고 달리는데 아무리 달려갈라해도 발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데 원수는 자꾸 가까이 오고 그래 가지고서 나무 수풀에 숨어도 그곳에 숨을 자리가 없고 어느 곳에 가나 숨을자리없어 꿈에 그렇게 악몽을 꾸고 땀을 흘리고 애를 쓰다가 깨어난 적이 있지요? 아마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꿈을 다 꾸었을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는 그런 꿈을 종종 꾸었었습니다. 쫓기는 삶 이거 참 비극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여러분 죄를 짓고 난 다음 양심에 쫓기는 삶인 것입니다. 양심이 끊임없이 마치 사냥개처럼 자기를 향해서 짖으며 쫓아오는 것입니다. 항상 양심에 쫓기면서 숨을려고 무화과나무 잎을 해서 엮어 몸을 감아봅니다. 자기 변명을 하고 타당을 합니다. 이런 죄 안 짓는 사람 누가 있느냐?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이런 정도 죄 안 짓는 사람 누가 있느냐? 나 처지에 누구도 이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무화과나무 잎을 가지고 엮어서 자기 타당화를 해보아도 이것이 쫓기는 삶을 막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양심에 쫓기는 것뿐만 아니라 법에도 쫓깁니다. 늘 죄를 짓고 난 다음에는 법망이 그를 바라보고서 쫓아오는 것입니다. 법에 쫓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쫓깁니다. 언제고 하나님께서 이 죄이 값은 사망으로 값아줄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쫓깁니다. 이러기 때문에 언제나 죄는 우리로 하여금 안정되지 못하고 쫓기는 삶을 살도록 만들기 때문에 죄를 우리가 용납해서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는 여러분과 나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냅니다. 하나님의 예비한 동산에 쫓아냅니다. 에덴이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한 동산을 에덴동산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은 원래 그 이름이 여호와 이레 시라.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직접 모든 것을 예비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일체의 축복을 빼앗기고 그들이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되며 가난과 저주가 그들을 떠나지 아니했고 가는 곳마다 가사와 엉겅퀴가 그들을 찔렀고 나아가서 최후의 심판을 받고 몸은 죽고 영혼은 지옥에 내어쫓길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는 우리를 발가벗겨서 자존심을 파괴해 버리고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며 우리를 쫓기는 삶을 살 게하고 하나님이 예비한곳에서 쫓겨나서 축복과 생명을 다 상실하고 종국적으로 지옥의 자식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빚쟁이는 남의 빚을 못갚아줍니다. 자기 빚도 못 갚는 처지에 누구 빚을 갚습니까? 죄인이 다른 사람 죄인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많은 종교가도 산출하고 철학인도 산출하고 인생경륜가도 내놓았지만 은 저들이 우리를 구출할 수 없는 것은 저들도 죄인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그 씨를 받아 태어난 사람 치고 죄안지은 사람 없습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데 죄지은 아담의 씨를 받은 사람은 죄지은 아담의 혈통으로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고쳐주고 건져줄수 있습니까?

이것이 내가 오늘 두 번째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의의 근원과 의인이 되는 길을 말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의인은 의인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아버지 없이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아담의 씨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죄인의 피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성결한 자로 태어났었고 그 일생을 사시는 동안에 한번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적 없어서 원수들까지라도 예수에게 죄책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하기를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했었으며 예수님 자신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빚을 진 적이 없고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죄를 값을수 있는 유일한 자격자요 실력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죄없는 그가 우리 죄를 대신 값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추악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자기의 살을 찢고 피를 쏟아서 이 죄를 하나님 앞에서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지 모릅니다. 종교가는 얼마든지 여러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철학인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인생을 경륜한 시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갚으실 자는 죄없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예수 예수 이외에는 죄인 된 이 세상에 죄와 죄인의 사슬에서 풀어줄자 없기 때문에 예수 없는 세상은 소망이 없는 절망인 것입니다. 지 어떻게 날고뛰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온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재주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윤리와 도덕적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하나의 도덕주의자지 종교가지 빚을 갚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빚졌는데 남의 빚을 어떻게 갚습니까? 죄없이 태어난 우리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우리 예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우리 예수밖에 없습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난 우리 예수밖에 없습니다. 죄없이 태어나서 죄없이 사시고 그래서 인류를 위해서 대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이 되어서 죄를 값아 주신 그 어른만이 의요 그를 믿는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그 죄를 예수님이 청산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죄없이 청산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하나님이 의롭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하나님이 인정을 해준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 앞에 설 때 마음에 아무런 죄책을 느끼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설 수 있게 해주시고 또 마귀가 와서 아무리 참소해도 이미 빚 값아 버렸는데 아무리 참소해도 참소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그런 존재요 그 다음에는 자존심을 살려줍니다. 왜? 죄악의 발가벗은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의 옷을 입혀 주어서 어디를 봐도 이젠 부끄럽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입니다. 내가 부귀영화 공명이 없다 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이래봬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라는 위대한 자존심을 그 가슴속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침 인간의 생애 속에 자존심을 넣어주는 분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부귀나 영화나 공명이 있으면 내 돈 봐라. 내 권세 봐라. 이 내 이 능력 봐라. 나 괜찮지. 일시적인 인간이 만든 무화과 나뭇잎의 자존심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일시적이고 없어집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다 인간다운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인간으로서의 자랑을 느낍니다. 구원받은 자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 들어와서 나의 죄와 불의와 추악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용납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서 그래서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 그 의를 상속으로 받을 자가 될 때 인간은 자존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너 인정하던지 인정 안 하던지 나를 칭찬하는지 미워하는지 내가 상관할 것 뭐냐! 나는 이래봬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마음에 자부심이 얼마나 좋은지 이 자기를 존경하게 되자 자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를 존경하지 아니하면 사랑하지 않아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을 존경하지 않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해요? 속으로 남편보고 아이구 저 병신 같은 것 아이구 지지리도 못난 것 비열한 인간 그리고도 I Love you!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존경을 못하면 사랑을 못합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분들이 내게 결혼하기 전에 카운셀링을 많이 와요. 남자는 별로 안 오는데 여자들이 많이 와요. 처녀들이. 목사님 내가 결혼하게 됐는데 목사님이 최후로 내게 주의할 것을 하나 일러주십시오. 그리고 그럼 내가 언제나 한마디 하는 게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남편과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에 밥을 먹고 서로 같이 살면서라도 절대로 남편 앞에서 존경심을 잃지 마라. 이 세상에 창녀같이 이 세상에 있는 무슨 저 술집의 아가씨같이 그런 행동을 하지 마라. 왜? 누구든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그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존경하지 아니하면 자기 아내를 항구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 아내를 발가벗겨 버리고 자기 아내를 나중에는 비열하고 더럽게 보면은 절대로 이용을 하지 사랑을 하지 않아요. 말에도 존경받을 말을 쓰고 행동도 존경받을 행동을 하라. 옷매무새도 존경받을 옷매무새를 하라. 남편에 존경을 받을 때 남편은 끝까지 사랑한다. 그러나 남편이 존경을 포기해 버리면 나중에는 시정배같이 취급하면 절대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건 철칙입니다. 여러분 저는 저의 집사람을 존경합니다. 내가 가만히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신앙 면에서도 나보고 나은것같고 그 다음에 가정에 애들 돌보는 것도 나보다 나은것같고 사리를 처리하는 것도 나보다 나은것같기 때문에 솔직한 말로 본인 앞에서는 내가 말은 안 하지만은 강단에서는 가끔 말을 합니다. 내 속으로 존경을 해요. 내가 존경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를 비열하게 보면은 사랑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도 그렇습니다. 자기도 자기를 존경해야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보고 아이구 서푼어치 가치도 없는 것 아이구 더러워서 니도 인간이냐! 이렇게 말해놓으면 부단 자기를 존경하지 않는데 자기를 사랑합니까? 자기 사랑안해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안해요. 될 대로 되라. 파탄하고 말아요. 사람도 자기를 존경해야 됩니다. 여러분 나는 옛날에 나를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나는 폐병으로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교육도 중단해 받다가 말고 집도 가난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그만 내가 나를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뭐 이런 것은 살아서 뭘하겠는가! 세상에 쓰레기 더미요. 이거는 필요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내 내가 나를 존경하지 못할 때 내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엔 자꾸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어린 젊은 시절에 김삿갓처럼 되가지고서 될 대로 되라. 남의것 훔쳐먹기도 하고 협박도 치고 방탕도 하고 반짝 살다가 가면 그뿐이지 무슨 뭐가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부터 나를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래봬도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사람이다. 그렇다면 꽤 나도 존경받을 사람이 아닌가! 그러자 내 인생과 운명을 사랑하게 되고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자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인간답게 윤리와 도덕을 지키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는 순복음 중앙교회 세계 최대의 교회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나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한 푼 어치 가치도 없는 소리인 것입니다. 왜 나는 원래부터 실력도 없는 사람이고 공부도 많이 못할 사람이고 건강도 없던 사람이고 돈도 없던 사람인데 내가 나된 것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어서 된 것이지 내가 스스로 무엇을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나를 존경할 순 없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나를 존경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나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하든가 나를 욕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헐뜯고 비참하게 만들려고 해도 나는 하나 압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십자가의 보혈공로를 통해서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용납해서 하나님 아들로 만들어 주셨고 내게 영생을 얻었고 성령이 계시고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에 내가 들어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합니다. 나를 존경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술먹고 방탕하고 그렇지 않으면 퇴폐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내가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침 나도 내처자를 사랑하고 내이웃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벌거벗고 자존심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마귀는 죄로 말미암아 발가벗기지만은 예수님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를 데리고 와서 그 피로 씻어주고 예수님의 의로운 옷을 입혀주어서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여러분 정말 메시지를 잘못 전하고 온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 오면 사람들의 자존심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된 자격 인간의 근본적인 자존심을 처절하게 파괴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열등의식과 좌절감으로 꽉들어차게 합니다. 조그만한 반딧불 만한 자존심이나 가지고 교회 오면 교회 설교할 때 너는 죄인이다. 너는 흉악자다. 너는 버림받았다. 만물의 찌끼보다도 못하고 만물의 때보다도 못하고 구더기 보다 못한 인생이라고 그래요. 아이구 설교에도 그런다면 조그만침 반짝하는 자존심 이라도 가지고 왔다가 뭐 나갈 때는 만물의 때보다도 못하고 만물의 찌끼보다도 못하고 구더기보다 못한 인생 구더기만도 못한 인생을 사랑할 사람 누가 있어요? 내가 구더기만도 못하면 누가 나를 존경하겠어요? 내가 나를 존경 못하니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가 미운데 다른 사람 내가 사랑할게 뭐요? 이와 같은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발가벗길려고 하는 짓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만물의 때보다도 못하고 만물의 찌기보다 못하고 구더기 같은 인생예요? 이래봬도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요 영생을 얻었고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을 후사로 받을 사람이 뭐 구더기보다 못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마귀는 우리를 발가벗길려고 하지만 죄는 우리를 벌거벗길려고 하지만은 예수님은 오셔서 용서와 사랑과 의로운 의복으로 입혀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사람된 어깨를 펴고 가슴을 활짝 펴고 이래봬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온 세상이 나를 인정해줘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 아들답게 말하고 아들답게 행동하고 아들답게 산다. 자존심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그러면 자기를 사랑할 때 인생의 운명을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예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서 주시는 위대한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으면 사자처럼 담대해져요. 용서를 받고 이제 의롭게 되었으니 내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내 죄가 다 예수님이 청산해 주셨으므로 이 양심에 찌름이 없이 내 양심이 담대하고 또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이므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또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찔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서 나를 씻어주시고 계시고 씻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 3장 21절로 22절에 말씀처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느니라" 오직 의인만이 기도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고 하나님 앞에 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리낌이 없으니깐 담대하게 되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선 죽은 하나님이 아니요 몰인정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내가 언제나 움추려가지고 나는 자격도 없어요. 나는 하나님께 응답 받을 아무런 힘도 없어요. 난 못해요. 이러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응답해요? 강하고 담대하게 와서 아버지 예수의 피로 나는 용서받았고 의롭다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쳐다봐도 그리스도의 피안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자녑니다. 아버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응답하옵소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게되면 그 결과로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평안 여러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평안이 오나요? 나는 오늘 어떤 자매님의 간증을 하나 읽었는데 참 운명이 거센 운명의 소유자도 있어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따라서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재혼해서 가니깐 그 양아버지가 어찌나 미워하는지 하 두들겨 패고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얻어맞아서 안터진데가 없습니다. 하루는 앞뜰에다가 보릿단을 쌓아놓고 난 다음 보리집을 쌓아놓고 집처럼 움막을 만들어놓고 자꾸 거기들어가라. 거기 들어가라. 이리 들어가라. 열세살먹을 때 그래서 이 아버지가 막 눈을 흐리뜨고 자꾸 들어가라고 하니깐엔 할 수 없이 무서워서 들어갔어요. 그러니깐엔 그 양아버지가 성냥에 불을 붙여 보릿단에 불을 질러버렸어요. 그러니 막 보릿단에 불이 붙고 치마에 불이 붙으니깐 얘가 막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때 마침 엄마가 밖에서 뛰어들어왔어요. 엄마가 뛰어들어와서 막 그 보릿단을 헤치고 그냥 불을 끄고 겨우 살려놨어요. 아이구 내 새끼야 이일이 웬말이냐 도저히 그 의붓아비와 살 수 없어서 먼 친척집으로 보냈는데 그 먼 친척집에서 얼마나 거기에 있는 친척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는지 한겨울에도 늘 냉방에서 자고 내복이라고는 하나도 입어보지 못하고 하루종일 소같이 부려먹습니다. 처참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한시도 눈물 없이 세월을 보낸 적이 없어요. 나는 그 간증을 일고 참 인생의 그 처참한 그 팔자도 있다. 그래서 그 다음 누구 소개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자말자 긴장이 풀리니깐 그 모든 정신적인 영적인 마음에 육체의 고통이 일시에 다 들어와서 불치의 병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의붓아버지에 대한 원한 그리고 친척언니들에 대한 원한으로 말미암아 쓴 물을 쏫아내서 심리적으로 뭐 완전히 패인이 되고 몸은 맞은 데가 다시 이제 전부 터져가 온 전신이 그냥 다 무너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미움과 원한과 버림받은 심정 불안과 초조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 이웃에 있는 구역장이 순복음 중앙교회 나가자고 우리 교회 데리고 와서 우리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난 다음 여기에서 그는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나를 사랑하고 알아주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로 계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인 것입니다. 통곡을 하고 울고 그는 하나님 앞에 그 인생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 줄 몰랐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피를 흘려서 날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나!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는 의붓아버지도 용서하고 내 옛날 친척언니들도 다 용서합니다. 예수의 사랑을 받고 다 용서하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용납했으니 이 기구하고 못된 못난 인생도 나도 나를 용서하고 나도 이제 용납해 줘야지. 나는 내가 늘 밉고 나를 버린 인간으로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품어주고 사랑해주니 나도 사랑받을만한 인간이 됐으니 나도 용서하고 용납하자. 그러자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모든 마음의 심리적인 병은 용서로서 다 없어져버리고 육체의 병도 다 낫고 영혼의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되고 남편이 또 얼마나 착한지 열심히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고 자기를 얼마나 위로해주고 사랑을 해주는지 이제는 자다가도 손을 꼽아보면서 이게 천당인가 이것 이것 생신가 이거 내팔자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 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해 본다구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생존경쟁에서 버림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여러분 살아남기 위한 악전고투인 것입니다. 내가 살아남지 못하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고 내가 살아남겠다는 몸부림 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여기에 오직 사랑으로만 나를 용납해주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는 못 자국난 손으로 어루 만져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될 때 비로소 자기도 자기를 용납하게 되고 자기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용서해줄 수 있고 용납할 수 있고 화목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 속에서 우리가 의인이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을 통해서 나 자신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그 결과는 강물같이 넘치는 평안이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얻고 용서를 받고나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예비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바울선생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놓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였으나 성령이 이것을 보여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과 내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예배해 주셨으며 하나님께선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성령의 힘을 예비해 주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병고침을 예비해 놓았었으며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예비해 놓았었으며 마귀에서 자유를 예비해 놓았었으며 영원한 지옥과 죽음에서 건져내어 천국에 들어가도록 천국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비하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십니다. 옛날에 에덴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 예수를 믿고 죄사함받고 의인이 된 사람을 위해서 주님은 탁월하게 십자가를 통해서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에덴을 통한 예비 아니라 이제는 십자가를 통한 예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와서 인생을 사는 지혜를 얻게되고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불의를 이기고 사는 거룩함을 얻게 되었으며 십자가를 통하여 저가 채찍에 맞아서 병고침을 받는 예비한 것을 받아 치료함을 입으며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하고 부요와 축복을 예비한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사망을 다 철폐하고 새하늘과 새땅과 영원한 삶을 예비해 놓은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으며 성령 충만 믿음 충만 은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는 죄 죄인의 길이 있고 의 의인의 길이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인은 바로 그 열매를 맺어서 파멸돼 가는 것이요 의인의 바로 예수그리스도시오 그 용서를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아름다운 삼박자 축복의 열매를 맺는 것이 의의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갈래 길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가는 죄의길 의인이 가는 의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도의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지금은 이렇게 섞여 삽니다. 지금은 죄의 영인 마귀는 죄의 길로 끌고갈려하고 의의 영이신 성령은 의의 길로 이끌어갈려고하는 그 투쟁 속에 살고있습니다. 여기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우리는 결정 내려야 됩니다. 중간 길은 없습니다. 죄와 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최후의 파멸로 떨어질 것이요 의와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눈물과 근심과 탄식함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천국을 상속으로 받게될 것입니다. 그뿐만은 아닙니다. 죄와 죄인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벌거벗은 수치를 겪게되고 자존심을 상처 나게 되고 자기를 미워하고 이웃을 미워하게 되고 사랑이 없는 삭막한 인생을 살고 늘 불안과 공포에 떨고 쫓기는 삶을 살고 하나님이 예비한 축복에서 내어 몰아친 고생과 수고와 눈물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살 지만은 의와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제는 그리스도의 용서로서 의의 의복을 입고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이웃을 사랑할수있게되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담력을 얻으며 주님이 예비하신 삼박자 축복 속에 들어가서 살다가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이니 의와 그 의의 열매가 얼마나 큽니까?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를 믿다가 잘못 믿어서 져버리고 나간 사람의 얼마나 그 인생의 손실과 비극을 무엇으로 메꿀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일방통롭니다.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 길을 잘 들어야지 한번 길을 잘못 들어 놓으면 그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슬픔에는 끝이 없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참 사는 길을 보여드립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의인이요 예수의 길이 바로 의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모두 다를 불러서 피로서 씻어 의롭게 만들어주고 의의 열매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찾고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서슴치말고 지체치 말고 일어나 예수 앞에 몸을 던지십시오. 그의 피의 강물에 뛰어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새사람이 되고 의인이 되어서 의인의 열매를 맺고 의의 길을 걸어가고 의인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죄의 길 의의길 죄인의 가는 길 의인이 가는 길 갈림길에서 우리는 모두다 의인을 길을 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의 그 무궁하신 은총과 사랑을 누리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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